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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2. 04. 수요일

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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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감사


업무 마감 시간이 가까워졌다. 형사가 찾아와 엽기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사라진 뒤에도 사무실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철수는 형사가 부탁한 일을 빠르게 처리하느라 집중하다가 기운이 빠져 맥이 풀렸다.


보통 월초에는 채무자 파악을 주로하고 집중적으로 추심업무에 들어가는 시기는 10일 이후였기 때문에 실적이 좋지 않은 추심원들도 그리 초조해하지는 않았다. 오늘 실적이 눈에 띄게 좋은 장재완은 여유만만해서 대놓고 인터넷 서핑을 하며 노닥거렸다. 담배를 피우느라 들락날락 하기도 했고 몰래 딴 짓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본의 아니게 열심히 일하고 있던 유일한 사람은 박치훈 과장이었다. 그는 채무자와 오래도록 통화를 하고 있었다. 채무자는 유흥업소에서 일해온 화류계 아가씨였다. 보통 추심원과 채무자가 교섭을 하기 시작하면 열심히 설득하는 쪽은 추심원일 때가 많은데 이번에는 반대로 채무자가 추심원을 설득하느라 안달이었다.

 

 

“요즘 자주 오는 영감님이 하나 있거든. 이제 공사 들어가서 한참이야. 오늘 저녁에 온다고 했으니까 오빠가 전화 좀 해줘요. 내가 전화받고 징징거리다 영감님 바꿔줄 테니까 잘 좀 얘기해봐요.”

 

 

“내가 영감님하고 무슨 할 얘기가 있어?”

 

 

“나한테 말한 그대로, 오빠가 얘기해야 진짜 같지. 그리고 진짜 맞잖아. 나한테 빚이 있는데 이자랑 원래 빌린 돈이랑 천만원 가까이 된다고 얘기해줘. 아니다, 한 삼천만원 된다고 해주라. 삼천 정도는 어렵잖게 땡길 수 있을 것 같아.”

 

 

“고객님. 우리 그런 사람들 아니야.”

 

 

“선수끼리 왜 이래? 영감님만 그런줄 알면 되는 거지.”

 

 

“아, 다 늙은 언니가 무슨 늙은이 슈킹을 치겠다고 이러셔?”

 

 

“강연자 아직 안 죽었어. 오빠만 제대로 하면 이 공사는 백프로 성공이야. 그럼 여덟시, 아니 아홉시 쯤에 전화해주는 거다. 알았지, 응?”

 

 

업소에서 일하는 아가씨가 꼬박꼬박 돈을 모아 빚 갚기를 기다리느니 돈 많은 스폰서를 설득해주는 편이 돈을 받아내기엔 빠른 방법일 것이다. 허나 이런 식으로 사기를 치는 데 동참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의 나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마흔이 되고, 만에 하나라도 법적인 문제가 생겨 회사를 떠나게 되면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될지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박치훈은 일단 전화번호라도 저장해 두자고 업무용 휴대전화를 꺼냈다. 업무용 기기는 오래 된 피쳐폰이었다. 그는 전화기를 들고 잠시 망설이다 철수를 불렀다.

 

 

“철수야, 신상 스맛폰 갖고 와봐라. 우리 언니 와꾸 좀 보자.”

 

 

박치훈은 제 것인 양 철수의 스마트폰을 넘겨받은 뒤 잠금화면을 해지했다. 철수는 그 익숙한 손놀림에 혀를 내둘렀다. 이 남자는 얼마나 눈치가 빠르고 기억력이 좋은 걸까, 부하직원의 휴대전화 단말기 보안패턴까지 눈여겨 보고 기억해 두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어차피 과장에게 숨길만한 비밀도 없었고 비밀번호를 풀어 달라고 하면 뜻 대로 쓰게 해 줄 생각이었지만 철수의 기분이 편하지는 않았다.


과장이 채무자 강연자의 전화번호를 철수의 스마트폰에 저장했다. 전화번호를 저장하자 연동된 카카오톡 주소록에 '연아(하트)'라는 이름이 추가되었다. 박치훈은 카톡 프로필과 카카오스토리에 공개해둔 사진을 확인해 보았다. 여자의 사진을 확인한 박치훈은 입술에서 쩝 소리가 나게 혀를 차더니 말했다.

 

 

“이쁘다. 뽀샵하고 나이하고 감가상각해도 이쁘네.”

 

 

박치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장재완이 잽싸게 박치환 곁으로 다가왔다. 장재완이 보기에도 여자의 외모가 만족스러웠더라, 두 사람은 고개를 처박고 작은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 보았다. 둘은 카카오톡에 공개된 대여섯 장의 사진을 하나 하나 넘겨가며 유심히 살폈다. 장재완은 강연자의 외모를 두고 품평하듯 말했다.

 

 

“가슴이 아주 훌륭하고 몸매도 좋은데 얼굴이 착하게 생겨서 부담스럽지 않은 인상이라 꼭 아사미 유마 같습니다.”

 

 

아사미 유마, 고유명사가 나오자 주위에 있던 열 대의 키보드에서 백 개의 손가락이 동시에 움직였다. 검색 결과 여기저기에서 외마디의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장재완은 다른 직원들이 이 적절한 비유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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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네들 이런 빨통에 껌뻑 죽습니다. 딱 걸렸습니다.”

 

 

유흥업소애서 웨이터로 일했던 경력이 있는 장재완은 이 작업에 참여해 보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박치훈은 아무래도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괜히 밤에 전화하기 그렇잖아. 그리고 삼자고지로 걸리기라도 하면 어떡하냐?”

 

 

“9시 전에만 걸면 되잖습니까. 그리고 언니한테 전화했다가 언니가 노인네 바꿔주는 건데 무슨 삼자고지에 걸립니까? 제가 단언컨대 이건 확실히 받을 수 있는 돈입니다. 한 번 해보십쇼.”

 

 

장재완이 받을 수 있는 돈이라고 장담을 하자 박치훈 과장의 마음도 조금 흔들렸다. 박치훈이 가만 생각해 보기에도 작정하고 함정을 파놓은 것은 아닌 듯 싶었다. 박치훈과 장재완이 철수의 스마트폰을 들고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사장이 다가왔다. 사장은 장재완의 뒤통수를 쿡 찌른 뒤 철수의 스마트폰을 빼앗았다. 두 사람의 화제에 오른 여자의 사진을 뒤로 넘기며 확인했다. 사장은 사진을 보고는 아무 말 않고 혀로 입술을 축였다. 그로서는 대놓고 부하직원에게 사기행각에 가담해보라는 권유를 할 수 없었다.


사장은 옆에 멀뚱하게 서 있는 철수에게 전화기를 돌려주었다. 철수는 전화기를 받아들고 후다닥 제자리로 돌아갔다. 박치훈과 장재완은 강연자의 사진이 사라지자 그와 닮은 일본의 여배우 아사미 유마를 두고 시시덕거렸다.


철수는 강한 압박감을 느꼈다. 수아와 관련된 매각채권 목록이 서버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었다. 아직 확인하지 못한 다른 기록도 남아있을 지 몰랐다. 철수는 개인정보를 파악할 수 있도록 검색을 더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와이어넷 서버에서는 검색 로그가 저장되고 있었다. 담당하고 있는 채권도 아닌데 검색해 본 기록만 남아버리면 괜한 문제를 더하게 될 지도 몰랐다. 수아의 회원번호는 영등포의 지역번호 107, 그리고 개인번호 18973였다. 철수는 앞뒤로 걸리는 다른 번호를 괜히 열람해 보았다.


영등포 지점에서 대출을 받은 채무자의 개인번호는 10001부터 시작해서 53820번으로 끝났다. 영등포에서만 삼만 명이 넘는 회원이 캐시앤머니에서 대출을 받아간 것이다. 철수는 영등포구의 전체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했다. 총 391,408명, 전체 인구의 10%가 넘는 사람들이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렸다니 믿기 어려웠다. 영등포 지점에서 영등포에 거주하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대출서비스를 하는 것은 아니므로 다른 동네 사람이 유동인구가 많은 영등포에 와서 대출을 받는 경우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철수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대부업체에서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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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들이 돈을 빌리고 갚지 못하고 있는데도 텔레비전에서는 끝없이 금융사의 광고가 쏟아져 나왔다. 돈이 급할 때 전화 한 통화면 편리하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누구나 무담보로, 친구한테 누나한테 아쉬운 소리 할 필요 없이, 30분이면 한 번에 대출완료… 특히 케이블방송의 광고 중에는 대부업체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이 10%가 넘었다. 그러나 말랑말랑한 드라마와 화려한 쇼프로그램에서 빚에 쪼들리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일은 없었다. 우리 사회의 채무자들은 어두운 그림자에 가려져 있지만 사실은 아물지 않은 속살 같은 존재, 피 흘리며 곪아가는 상처 같은 사람들이었다.


금융계에서는 6개월 이상 연체된 부실채권을 원금의 5% 미만으로 할인해 추심업체에 매각했다. 일부 신용정보회사로 매각되는 부실채권 중에는 1% 수준으로 거래되는 것도 많았다. 쉽게 이야기하면 100만원짜리 채권을 1만원에 팔아치우는 것이다. 그렇게 싼 값에 채권을 매각하는 이유는 어차피 못 받을 돈이라는 계산이 깔려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부실채권 비율(고정이하여신 비율)을 낮춰 기관의 자산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금융감독원은 올해 말 기준으로 국내은행의 부실채권 비율이 1.49% 아래로 목표하고 있지만 이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은행은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정도. 은행에서 조차 회수할 수 없는 돈을 빌려주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돈을 빌린 사람에게만 책임이 있고 빌려준 쪽의 책임은 전혀 없는 것일까? 채무자의 상환능력이 부족한데 소득수준 이산으로 돈을 빌려주는 행위, 이를 약탈적 대출이라고 부른다. 만약 돈을 빌려간 사람이 그 돈을 밑천으로 삼아 더 나은 기회를 찾는다면 대부업 역시 사회에 기여하는 도덕적인 사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돈을 빌려간 쪽은 점점 더 궁핍해지는 반면 돈을 빌려준 쪽만 이익을 채운다면 이런 대출은 약탈과 다를 바가 없다는 개념이다.


약탈자의 언어는 이러하다. 고객님, 배우자를 보증인을 세우면 대출을 해드리겠습니다. 다시 해석하면 이런 뜻이 된다. 고객님이 빚을 갚지 못한다면 배우자의 자산을 가져가겠다.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신용대출이 가능합니다. 이 말은 자식을 대학교육까지 시킨 부모의 주머니를 담보로 소득이 없는 학생에게 돈을 빌려주겠다는 뜻이다. 채무자가 상환하지 못할 경우 대신 돈을 갚아낼 보증인을 세우도록 하거나, 부동산이나 동산을 담보로 채무상환이 연체될 경우 이를 빼앗아 가거나, 가진 자산이 없더라도 미래에 생길 수입, 즉 급여를 압류하는 방식으로 돈을 빌려주는 쪽은 손해를 보지 않는다.


이슬람 은행에서는 종교적인 이유로 이자가 금지된다. 실물거래를 통해 상업이윤을 얻는 것은 권장하지만, 돈이 돈을 버는 일은 종교적인 가르침에 위배된다. 고리대금으로 이익을 취한다면 지옥행 급행열차에 올라탈 것이다. 또한 채무자가 형편이 되지 않을 때 상환을 독촉하거나 재산을 압류하는 일도 불가능하다. 빈익빈부익부를 초래하는 불로소득을 취하는 것은 강도질과 같다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금융주도 자본주의 국가에서 약탈적 대출을 당연하게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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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분위기가 어수선한 와중에 사장이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조금 있다 보안감사 나온단다.”

 

 

그 말을 듣자마자 장재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오늘 좋은 데 가는 겁니까? 보안과장님도 되게 좋아하시던데.”

 

 

장재완은 왼손으로 주먹을 쥐고 오른손 손바닥으로 왼주먹을 툭툭 내리쳤다. 손 모양을 오목하게 만들어서 안에 공기를 채워 양손이 부딪힐 때마다 뻑뻑 소리가 났다. 박치훈과 장재완이 눈을 마주치며 낄낄 웃었다.


하지만 사장은 이런 장난에 상대하지 않고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오진성, 거기 계약서 정리해서 대장에 빨리 꽂아 놔. 컴퓨터 비번 풀어놓은 새끼들 확인해서 다시 걸어 놓고. 철수야, 돌아 다니면서 애들 컴퓨터 좀 봐줘라.”

 

 

사무실이 분주해졌다. 보안감사는 매월 초에 의례적으로 하는 행사였다. 본사 캐시앤머니의 보안과장이 자회사인 와이캐피탈에 방문하는 일은 보통 첫 번째 주의 금요일에 들이닥쳤다. 오늘은 수요일, 일정이 바뀐다면 미리 연락을 받았을 터인데 오늘은 급작스럽게 결정된 모양이었다.


본사 보안과장은 와이캐피탈 사장의 선배였다. 그냥 선배가 아니라 추심회사가 본사에서 분리되어 나오기 전까지 바로 사장 위에서 채권추심 일을 가르쳤던 선배였다. 그는 채권추심에 있어서는 귀신 같은 감각을 가지고 있었고 독사 같이 집요하게 일을 했다. 그래서 와이캐피탈이 독립법인이 되었을 때, 바로 그가 이 회사의 사장으로 부임하게 될 거라고 누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깨고 지금의 사장이 이 자리에 앉게 된 까닭은 사장이 4년제 대학교를 졸업했고 선배는 고등학교 중퇴로 학력을 마쳤기 때문이었다. 회사의 규모가 커져도 선배의 승진은 보안과장 자리에서 멈추어 더 올라가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와이캐피탈 사장과 본사 보안과장 사이에는 전반적인 연대의식을 가로지르는 미묘한 적대감이 흘렀다.


사장은 보안과장이 오기를 기다리며 사무실 문을 열고 그 앞에 서서 엘레베이터를 바라보았다. 마침내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고 덩치가 크고 혈색이 좋은 보안과장이 위풍당당하게 사무실로 들어왔다. 사장이 한달음에 달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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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 잘 지내셨습니까?”

 

 

“내가 어떻게 지내겠냐? 매일 니 걱정 하면서 지내지.”

 

 

“예. 저희는 별 일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야지. 내가 자나 깨나 너 하나 잘 되기만을 바라고 있는데 그래야지 그럼.”

 

 

“감사합니다.”

 

 

“씹새끼 간지럽게 정색하고 지랄이야. 뭐 시원한 것 좀 가져와라. 맥주, 사무실에 맥주 없냐?”

 

 

“저희 사무실엔 없습니다. 밖으로 나가시겠습니까?”

 

 

“임마, 나 일하러 왔어. 끝나고 한 잔 하자.”

 

 

“한 잔 하실 거면 좀 일찍 오시지...”

 

 

“회사에서 월급을 이렇게나 많이 주는데 어떻게 술 먹자고 일찍 나오냐?”

 

 

철수는 보안감사를 좋아했다. 일단 보안감사가 예정된 날에는 이에 대비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컴퓨터를 맘 놓고 뒤져볼 수 있었다. 그리고 본사 보안과장이 나와서 떠드는 입담이 재미있었다. 평소에는 대장 노릇을 하는 사장이 선배 앞에서 쩔쩔매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작은 즐거움 중 하나였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오늘로 수아와 관련된 모든 일을 처리하려고 했는데 어째서인지 자꾸만 일이 꼬이고 있었다.


보안과장이 성큼성큼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장재완이 자리에서 일어나 깍듯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보안과장은 장재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추심원으로서 실적부터 술자리에서 노는 방식까지 여러 모로 보안과장과 장재완은 죽이 잘 맞았다. 보안과장은 무심하게 장재완의 책상서랍을 드르륵 열어보았다. 서랍에는 칫솔과 치약 같은 개인물품이 널부러져 있었다. 그리고 책이 한 권 들어있었다.


보안과장이 책을 꺼내들고 소리 내어 웃었다.

 

 

“법정스님의 무소유? 얌마, 추심하는 새끼가 무소유? 크크크크.”

 

 

“아, 과장님. 제 거 아닙니다.”

 

 

사장이 곁으로 다가오더니 그 책을 넘겨 받았다. 책의 소유주는 사장이었다. 법정스님 타계 후 책이 절판될 거라는 뉴스를 보고 주문해둔 것이었다. 사장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장재완을 보며 물었다.

 

 

“여태 가지고 있었냐? 다른 애들하고 돌려보라고 그랬잖아.”

 

 

“제가 아직 다 보지를 못해가지고 말입니다.”

 

 

“별로 두껍지도 않은 책, 요만한 걸.”

 

 

“사장님, 제가 말입니다. 평생 읽은 책이 두 권 있는데 말입니다. 한 권이 퇴마록 1권이고 다른 한 권이 삼국지 1권입니다.”

 

 

철수는 평생 읽은 책이 두 권이라는 고백을 당당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퇴마록과 삼국지를 1권까지만 보고 2권은 찾아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랐다. 철수만 놀란 것 같지는 않았다. 보안과장도 사장도 어이 없는 얼굴로 서로를 바라 보며 웃었다.


보안과장이 장재완을 지나 철수한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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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김철수 맞지?”

 

 

“예. 맞습니다.”

 

 

풍채가 좋은 보안과장이 가까이 다가오자 철수의 목소리가 저절로 덜덜 떨렸다. 사장도 보안과장을 뒤따라 와 철수가 앉아 있는 의자 등받이에 팔꿈치를 대고 몸을 기댔다. 그러자 등받이에 걸쳐 놓은 철수의 양복 재킷이 눌리며 주머니가 벌어졌다. 보안과장의 시선이 그 속으로 향했다. 주머니 속에는 구겨진 종이가 한 장 접혀 있었다. 이민호와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가 떼어 들고 온 채용공고문이었다.


보안과장이 비죽 튀어나온 종이를 꺼내 펼쳐보더니 사장을 향해 물었다.

 

 

“채용공고? 사람 구하냐?”

 

 

“예. 인력이 부족하다고 난립니다.”

 

 

“그래. 본사에서도 더 뽑는다고 하더라. 늬들도 미리 애들 구해서 굴려 놔라.”

 

 

“본사에서도 일이 많은가 봅니다.”

 

 

“요즘 장난 아냐...”

 

 

본사 보안과장과 사장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조황진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철수가 채용공고를 떼어 들고 온 이유가 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사장과 그의 선배가 이야기를 하는 중이니 자기가 나서서 말을 꺼내지는 못하고 눈짓으로 철수를 향해 물음표를 날렸다. 철수는 바짝 긴장해서 조황진이 가까이 다가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자 이민호가 끼어들어 조황진에게 설명했다.

 

 

“저거 아까 담배 피러 나갔는데 바닥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민호의 목소리를 듣고 철수도 퍼뜩 정신을 차렸다. 철수가 조황진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어물어물 말을 보탰다.

 

 

“예... 저... 제가 과장님께 말씀드린다는 걸 깜빡 잊었습니다.”

 

 

“아, 그래. 다시 붙여야겠네.”

 

 

조황진은 별 다른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철수 옆으로 왔다.

 

 

보안과장과 사장에 이어 조황진까지 의자에 앉아 있는 철수를 빙 둘러싸고 서 있었다. 체구가 좋은 세 남자가 주위에 벽을 쌓은 것 같았다. 철수는 바짝 긴장해서 등받이에서 등을 떼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워 앉았다. 손가락이 오그라들 것 같아 주먹을 쥐었다가 흠칫 놀라 얼른 손바닥을 쭉 폈다. 서랍 속에 넣어 놓은 수아의 문서 파일이 신경쓰여 미칠 것 같았다. 숨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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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작가

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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