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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는 조금 다른 류의 줄줄이지만, 영국도 연일 ‘뜨거운 감자’들이 줄줄이다. 특히, 2017년 3월 28일자 ‘데일리 메일’(Daily Mail)은 그야말로 ‘오늘의 빅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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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스코틀랜드 의회 수상 니콜라 스터전, 오른쪽은 영국 총리 테레사 메이)



‘브렉시트’( Brexit) 따위는 관심 없고, 누구 다리가 이겼냐는 황당한 기사가 보도된 것. 여전히 ‘찌라시’ 정도에 머물고 있다 평가받는 데일리 메일이 여성 비하 논란과 함께 비난 여론에 뭇매를 맡고 있다. (물론, 이 기사 하나로 여러 가지 주제의 논의가 가능하지만, 잠시 배제하기로 한다)


다른 부분(여성 비하, 성적 비하)으로 데일리 메일의 기사가 논란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 사진에서 처럼, 요즘 ‘테레사 메이’(Theresa May) 총리와 ‘니콜라 스터전’(Nicola Sturgeon) 스코틀랜드 의회 수상이 자주 만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유는 스코틀랜드의 2차 독립투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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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상, 하원 의회에서의 논의, 영국 대법원 승인 등의 복잡한 단계를 거친 끝에 영국의 테레사 메이 총리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위한 공식적인 첫 발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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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지난 44년간 지속되어온 영국과 유럽연합의 관계는, Article 50를 발동함에 따라 2년간의 단절 과정을 끝으로 남남이 된다. 2017년, 유럽연합은 로마조약 60주년 기념 준비로 여념이 없다. 특이하게도 1957년, 유럽 석탄 철강 공동체(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 ECSC) – ECSC는 로마조약으로 탄생됨 - 를 시작으로 형성된 유럽 연합의 모체에는 영국이 없었고, 60년이 지난 2017년에도 영국은 빠져나갔다. ‘브렉시트’(Brexit) 국민투표 이후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관련 뉴스가 보도되지 않는 날이 없었을 만큼, 영국에서도 그리고 전세계적으로도 화제였던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런데, 또 다른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스코틀랜드의 독립이 그것이다. 2014년 9월 18일, 데이비드 카메론 전 총리는 스코틀랜드의 독립투표 당시, 영국은 반드시 유럽연합 내에 존속할 것임을 스코틀랜드 국민들에게 약속한 바 있다. 오랜 기간, 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잉글랜드에 착취를 당하고 있다고 여겼던 스코틀랜드 국민들은 영국, 연합왕국(The United Kingdom)에서 떠나고 싶어했다. 하지만, 당시 카메론 영국 총리의 발언이 독립 투표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고 결국 55.3% vs 44.7%로( 반대가 약 9% 우세) 스코틀랜드 독립은 좌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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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카메론 전 총리의 선거 승부수 였던 유럽연합 탈퇴에 대한 찬반 국민투표가 2015년 ‘탈퇴’로 결정되면서 정치적 변수 들이 새롭게 등장했다. 그렇게 스코틀랜드 국민투표는 또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게 된다.


이제 영국은 유럽연합을 떠난다. 그래서, 영국이 유럽연합 내에 있기를 바랐던 스코틀랜드는 2차 독립투표를 진행하려 하고 있다. 요즘 메이 총리가 스터전 수상을 자주 만나는 이유다.


그렇게 데일리 메일이 두 여성 대표의 사진을 1면에 실었던 3월 28일, 스코틀랜드 의회는 2019년, 제2차 독립 국민투표를 치르도록 영국 정부에 허가를 공식 요청하는 안건을 찬성 69표대 반대 58표로 통과시켰다. 스터전 대표는 이번주 안으로 메이 총리에게 국민투표 요청 서한을 보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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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메이 총리는 이미 이러한 요청을 거절한 바 있다. 공식 요청이 아닌 비공식 요청이었지만 영국은 지금 상황에서 스코틀랜드까지 떨어져 나간다면 미래를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메이 총리는 스코틀랜드를 붙잡을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코틀랜드는 영국 총리에게 스코틀랜드 2차 독립투표를 공식적으로 제안하기로 한 것. 영국이 유럽연합을 최종적으로 탈퇴하는 2019년, 스코틀랜드는 연합왕국으로부터 독립하고 유럽연합에 가입하려고 준비중이다.


영국은, 1차 독립투표 때도 스코틀랜드에 비슷한 말을 했고, 지금도 같은 말을 반복하며 스코틀랜드를 설득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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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BBC와의 인터뷰에서도 메이 총리가 밝혔지만, 3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 국가 체제 안에서 협력해왔고, 미래를 위해 우리는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 잉글랜드의 입장이다.


하지만, 스코틀랜드 국민들은 생각이 다르다. ‘대영제국’이라는 이름으로 국제적 명성을 누린 것은 인정하지만, 옛 부터 잉글랜드에게 늘 손해만 봐왔던 스코틀랜드에게 잉글랜드로부터의 독립은, 마치 한국에게 우리가 통일을 염원하는 것과도 같다. 왜, 스코틀랜드는 틈만 나면 독립을 하려고 하는 걸까? 그냥 독립하면 되지 왜 영국의 승인을 얻어야 하는 걸까? 언제부터 이들의 질긴 인연이 시작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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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스코틀랜드가 영국에 속한 작은 민족 정도로 이해되고 있지만, 1500년대, 종교개혁 시절만 하더라도 스코틀랜드는 국제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주도권을 지니고 있었다. 당시 프랑스의 왕세자였던 ‘프란시스’(Crown Prince Francis)는 스코틀랜드의 여왕인 ‘메리’(Mary, Queen of Scots)와 결혼을 한 상태였다. 유럽 대륙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었던 프랑스와 연을 맺은 스코틀랜드의 영향력이 늘어간 것은 당연한 이치이자 순차적인 단계였다.


한편, 스코틀랜드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잉글랜드는 엘리자베스(Queen Elizabeth) 1세의 통치아래 구교(천주교)에서 신교(개신교)로 전환되는 시기를 맞고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믿고 있던 신교를 국교로 선택하면서 잉글랜드 교회(지금의 성공회)도 종교개혁의 급 물살을 타게 된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천주교 국가이다. 당시 종교개혁이 한창이었던 스코틀랜드는 깊은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국제적인 영향력이 있지만 종교적 입장이 달랐던 프랑스’ vs ‘사이가 좋지 않지만 같은 종교개혁적 입장을 취한 잉글랜드’ 사이에서 결정을 내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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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는 세속적인 영향력 보다는 종교개혁에 손을 들었고, 당시 스코틀랜드 의회의 이러한 결정은 결국 1603년 왕국 연합(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연합 왕국의 왕이 되면서 제임스 1세로 등극된 사건), 그리고 1707년 스코틀랜드, 잉글랜드의 의회 연합에까지 이르게 했다. 이후 지금까지 3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와 함께 공동 운명체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는 지금의 대영제국의 시작은 자신들의 양보로 시작되었다 믿는다. 국제적인 영향력 보다는 종교와 신념을 먼저라고 생각했던 스코틀랜드는 실리보다는 이념을 강조했다. 당시 잉글랜드도 ‘수장령’ 이후, 천주교로 부터 분리되어 새로운 종교적 영향력을 모색하고 있던 상황이었고, 스코틀랜드 의회의 선택은 유럽대륙의 주류 종교와 다른 길을 걷게 된 잉글랜드에게 매우 큰 힘이 되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탄생한 두 국가의 연합은 어느 한쪽의 희생이 밑거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후에도 언급하겠지만, 잉글랜드의 스코틀랜드를 향한 기만과 조롱은 양보를 선택한 스코틀랜드에 대한 배신 행위였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땅에 있지만, 오랜기간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 스코틀랜드 국민들에게 잉글랜드의 위선은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독립을 열망하게 하는 이유이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영국의 발명품이라고 알려진 대부분의 현대 산업의 발명품들은 스코틀랜드인들 에게서 온 것들이다.


아담 스미스(국부론), 윌리엄 패티슨(은행), 윌리엄 플레이페어(통계), 존 네이페이(소수점), 제임스 와트(증기엔진), 존 로지 베어드(TV), 알렉산더 벨(전화), 윌리엄 사이밍턴(동력보트), 커크패트릭 맥밀란(자전거), 앤드류 메이클(탈곡기) 등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것이라고 알려지기 보단 영국이라는 이름에 가려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영국이라는 이름도 ‘英國’이라는 한자어 ‘잉꿔르’라는 잉글랜드를 표현한 것이니 사실 ‘영국=잉글랜드’나 다름 없다. 이처럼 영국은 잉글랜드로 대표되는 나라이고 스코틀랜드는 늘 역사의 뒤편에서 서러움을 견뎌야 했다. 스코틀랜드가 끊임없이 독립을 외치는 기저에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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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계속)





BRYAN

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