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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출마가 장난이냐고 묻고 싶지만, 변희재도 출마하는 마당에 누군들 못하겠나 싶다. 출마 일성으로 '통합조정의 소명을 수행하기 위해서'를 외쳤는데 그 소명은 또 누가 주었는지 궁금하다. 어쨌든, 이번 편은 김종인 전 대표의 경제민주화, 정치 이력 일화를 조명해보는 편이 되시겠다. 이 고집불통 어르신의 삶을 디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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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김종인 (金鍾仁)

 
1940년 출생
1958년 중앙고등학교 졸업
1964년 한국외대 독일어 학사
1964년 ~ 1972년 뮌스터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박사
1973년 ~ 1988년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1989년 보건사회부 장관
1990년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2012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
2016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제20대 국회의원



1940년, '일제강점기 조선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창동리', 현재 서울 도봉구 창동에서 태어났다. 살아온 세월이 그대로 느껴지는 주소지다. 독립운동가들의 소송을 도맡아온 가인 김병로의 손자로 태어나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할아버지의 손에서 자라게 됐다고. 그래서인지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늘 조부인 김병로 선생을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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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환경 덕에 초딩 때부터 선거에 관심이 많아 국회의원 유세장을 빠지지 않고 다니면서 될 사람, 안 될 사람을 식별하고 다녔다고. 또, 조부가 박정희 대통령의 공화당에 대항하는 야당을 집에서 만든 덕에 몸이 불편했던 조부를 대신해 온갖 정치 심부름을 수행하면서 '책과 돈으로 배울 수 없는 것을 그때 많이 배웠다'고 한다.

 

64년, 조부가 별세하자 독일로 유학했고 이것이 그의 인생 첫 번째 터닝포인트다. 독일에서 배우고 직접 경험한 모든 것들이 평생에 걸쳐 주장하는 '경제민주화'의 바탕이 되었다. 유학 중에도 특유의 성격 때문에 지도교수들과 많이 다투셨단다. 독일 유학의 장점으로는 한국에 경제학 선배나 스승이 없기 때문에, '학파'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는 점이라고 밝혔는데 이것은 그의 신념이 꺾이지 않을 수 있었던 장점이자 경제민주화가 늘 좌절됐던 단점이기도 하다.

 

한국으로 돌아와 34세의 나이로 서강대 교수를 역임하는 가운데 유신체제의 박정희 정권의 정책자문역할로 참여했다. 이게 두 번째 터닝포인트. '재산형성저축제도'와 '근로자 사회의료보험 도입'에 일조했단다. 생각해보면, 정당을 넘나들며 활동해온 그의 전력은 조부가 야당을 만들었음에도 불구, 박정희 정부에 정책고언을 했던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겠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 '스스로 경제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갖고 있었던 유일한 대통령'이라 평가하기도. 한편, 서강대 교수직을 역임할 때 박근혜가 자신의 수업을 듣기도 했다는데, 도대체 제자를 어떻게 키운 것인지...

 


1979년, 전두환의 국보위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고, 정의롭지도 민주적이지도 않았던 민주정의당의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해 11대, 12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987년 개헌 때 고집을 부려 경제민주화 조항을 삽입한 것은 유명한 일화.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당시의 '슈퍼루키' 이해찬 의원에게 패해 낙선하기도 했지만, 1989년엔 제24대 보건사회부 장관을, 1990년엔 청와대 경제수석을 역임하며 노태우 정부의 핵심 경제관료로 활약하게 된다. 이때 한국에선 거의 처음으로 재벌들과 충돌하며 대기업의 비업무용 토지를 강제로 매각하게 하는 '5.8조치' 등을 실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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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겨레신문

 

 

문민정부의 등장 이후로는 야인으로 지내며 93년 뇌물혐의로 징역을 살기도 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직 물망에 오르긴 하지만 늘 전경련의 반대로 좌절되며 변두리에서 당대 정권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다, 2012년, 박근혜와 손을 잡으니, 잊혀지는 줄 알았던 그가 다시 정계에 등판하는 세 번째 터닝포인트이자, 그의 인생 최대의 오판이 되시겠다. 

  

 

1. 경제민주화 희망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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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공약을 발표하는 노태우와 그 왼쪽에서 멀뚱멀뚱 서 있는 분이 김종인 전 대표다

출처 - 한국일보

 

 

그에게 경제 민주화를 빼놓으면 뭐가 남을까. 아마도 그저 그런, 체육관에서 대통령 뽑던 시절의 거수기 국회의원 정도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가 이름 석 자를 떨칠 수 있는 이유는, 오롯이 경제 민주화를 주장해왔던 일관성 있는 삶에서 기인한다. 세간에서 그의 3대 업적으로 박정희 정부 시절 의료보험 도입, 87년 개헌 당시 헌법 조항에 경제 민주화 문구 삽입, 유례없던 재벌 규제 조치인 5.8 조치를 든다는데, 그중에서 5.8 조치에 관한 일화를 가져와 봤다.

 

“4월 30일 김종인은 플라자 호텔에서 10대 그룹의 기획조정실장을 불러 대통령의 노여움을 전달했다. 보유 부동산의 일부를 자진 매각해 달라고 요구했다. 10대 그룹의 전체 보유 부동산이 8,000만 평 가량 되니까 그 10분의 1인 800만 평을 팔아야 한다는 주문이었다”(‘한국현대사 산책’ 中)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을 강제로 매각하는 ‘5ㆍ8조치’는 역사상 가장 강도 높은 재벌 규제였다. 그는 이 정책으로 기록적인 폭등을 거듭하던 부동산 시장을 단번에 안정시켰다. 

 

한국일보, [인물 360°] 김종인, ‘경제민주화 전도사’와 ‘독불장군’의 엇갈린 평가 <링크>  




일본이 플라자 호텔에서 미국에게 죽빵을 먹었듯, 재벌들은 플라자 호텔에서 김종인 대표에게 죽빵을 먹었다. 그 결과



10대 그룹들은 매각대상 부동산을 결정하기까지 내부적으로 심한 진통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략) 매각 규모가 공개되자 일부 그룹에서는 「부동산재벌이라는 누명을 벗게 됐다」며 후련해하는가 하면 금싸라기 땅을 내놓은 그룹에서는 「아끼는 자식을 빼앗긴 기분」이라며 아쉬워하기도.

 

매각결정 후 “자식 빼앗긴 기분”/「부동산처분」 발표 재벌들 이모저모, 한국일보 1990.05.11

 

 

재벌 중심의 경제 성장이 당연시되고 절대적이었던 시대에 재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들에 대한 규제를 실제로 실천한 첫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김 대표는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자식을 빼앗긴 기분'이라며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재벌 총수들의 표정을 라이브로 보고 싶을 지경이다. 지금처럼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단점으로 지목받는 재벌 문제가 심해진 상황에서, 그의 과거는 강한 무게감을 지니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이 분이 정계의 러브콜을 받았다는 것은, 풀어야 할 문제를 풀지 않아 온 지난 세월을 그대로 보여준 현상이었다.

 

그의 경제민주화 정책은 소기의 성과를 내기도 했으나, 항상 전경련으로 대표되는 재계와 경제 학자들의 강한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2. 경제민주화 좌절 편

 

당시 정주영 씨가 전경련 회장이었는데, 신문에 전경련이 헌법개정과 관련해서 헌법개정을 위한 홍보대책위원회 조직을 하고 홍보대책위원장을 김우중 대우 회장이 맡고 예산을 20억이나 확보했다는 보도가 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주영 당시 전경련 회장이 나에게 전화를 했는데, 전경련 세미나에 참석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래서 세미나에 가보았더니 언론계, 학계를 포함해서 약 30명가량이 있었다. 대부분 전경련을 옹호하는 세력이었다. 


<'自由人' 인터뷰 2>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링크> 


 

'경제 민주화' 조항을 삽입하려는 헌법 개정 참여 활동에 위기의식을 느낀 정주영 회장이 주최하고, 김종인 대표가 참석했던 대토론회는 이 할배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리고, 이 장면은 20여 년을 지나 재현되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와 ‘경제민주화의 아이콘’으로 영입된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의 갈등이 막바지까지 치달았다. 대기업의 기존 순환출자분 처리 여부를 놓고 박 후보와 갈등해온 김종인 위원장은 11일 박 후보 쪽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다. 김 위원장은 ‘박 후보와 단둘이 얘기할 마지막 자리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약속 장소에 도착한 김 위원장은 당황했다. 박 후보는 황우여 대표, 진영 정책위의장, 서병수 사무총장, 김무성 총괄선거대책본부장, 권영세 종합상황실장, 이정현 공보단장, 이학재 비서실장, 안종범·강석훈 의원(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 등 측근 9명을 대동했다. 이들 가운데 김 위원장의 경제민주화 방안에 찬성하는 이는 거의 없다.


한겨레, 김종인, 박근혜가 불러 나가보니…어머, ‘10대1’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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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삐졌엉 흥

 


그는 경제 민주화를 위해선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해왔는데, 아마도 경제 수석으로 참여했지만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던 노태우 정부 시절에서 교훈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그 교훈을 거름삼아 택한 사람이, 짠-, 박근혜라니. 사실 그가 박근혜를 밀었던 이유는 박근혜보다 박정희 시대의 강력했던 경제정책을 믿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재벌들을 다 때려잡을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진' 제왕적 대통령. 그래서 박근혜를 민 것이 아닐까. 

 

지금,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때 그가 염려되는 까닭도 그 점에 있다. 일단 사람을 보는 눈이 너무 터무니 없고(아무리 그래도 박근혜라니...), 토론이라는 기초적인 의사소통 방법조차 불쾌해하는 특유의 성격으로써는, 그가 만약에라도 대통령이 된다면 어떻게 내각을 꾸리고 의회와는 어떤 관계를 유지할지 뻔히 그려지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대통령 그 자체보단 다른 잿밥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지만.

 


3. 꼰대력 충만한 화법

 

더구나 경제 민주화에 대한 강한 확신과는 달리, 그 특유의 성격을 그대로 담아내는 (못 말리는) 언행들이 여러 '오해'를 낳기도 했으니, 대표적인 예가 노조 관련 발언이다.

 


“기업 안에 노동조합 지부나 노조를 두는 것은 전근대적인 어리석은 짓이다. 노조는 노조대로 사회적 기능을 하게 만들어줘야 한다. 노조 활동을 통해 사회와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어야 한다. 기업에 노조 지부가 있어서는 안 된다. 기업은 생산하는 곳이다. 기업 내에서 파업을 할 경우 생산시설을 보호하는데 위협을 받기 때문이다” 

 

필자의 논리는 분명했다. 기업에는 노동조합원도 있고 조합원이 아닌 직원들도 있다. 따라서 기업 안에 노동조합을 두는 것은 절대로 안 되며, 노동조합 지부도 기업 안에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기업의 생산시설을 보호할 수 있다.


 

- 김종인 저,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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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막히는 어색함

 

 

본인의 저서에서 전두환 정권 시절 노동법 개정 관련 일화를 밝히면서 적은 '기업 외 노조'에 대한 이야기는 그가 총선 때 민주노총을 방문에 "노조가 사회문제에 너무 관심을 갖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힌 바와 일맥상통하는 지점이다. 이때 진보진영 지지자들은 '기업 내에서 파업을 할 경우 생산시설을 보호하는데 위협을 받기 때문이다'라는 그의 글과 발언 때문에 혼란스러워했다. 그래서 그의 말 뒤에는 꼭 해설 기사가 등장해야만 했다.

 

이런 그가 지난 3월 민주노총에서 왜 그런 발언을 했을까. 김 대표가 염두에 둔 서유럽과 북미 선진국에서 노동자들이 관여하는 의제들은 소극적으로는 노동자 자신들의 권익에 대한 것이고 크게 봐도 기업경영에 관한 사항들이다. 이런 인식이 ‘노동자들은 사회문제에 개입하기보다 근로조건 개선 문제에 대해서나 신경쓰라’는 식으로 표출된 것이다.

 

한겨레, 김종인표 경제민주화엔 ‘노동’이 없다? <링크>

 


그의 노조관이 전부 옳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일찍부터 노동자의 사회적 역할과 권리를 보장하려 했던 경제학자임은 분명하다. 또 '1만 명 이상 기업에 노동자의 경영감시가 필요하다'는 요지의 주장을 줄기차게 했었다. 그런데 몇몇 필터 없는 발언, '남이사 제대로 알아듣든 말든 내 진심은 순수해'라는, 이 지독한 나르시스트의 발언들은 자신을 지지할 수 있는 세력조차 갈등 때리게 만들곤 했다. 이것도 노회한 정치가의 노련미라고 해야 할까. 

 

본인이 줄기차게, 일관성 있게 주장해온 분야조차도 사람들의 오해 혹은 이해거부를 불러일으키는 특유의 성격과 화법은, 사람이 모이는 족족 빠져나가게 만드니 그의 경제민주화 간판만 믿고 표를 주기엔 불안하기만 하다. 더구나 남의 얘기 듣는 것도 불쾌하신 분이니, 오해가 생기면 풀려하지도 않고 오롯이 자기 얘기만 주구장창 하려 할 텐데, 으으, 생각만 해도 꼰대력에 압사당하는 기분이다.

 


4. 정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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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걸까

 

 

그에게 사람들을 포섭하고 끌고 가는 능력이 있었다면 연세를 둘째치고 진지하게 고려해보기는 했을 텐데, 그가 쌓아온 정치 경력에서 그런 흔적들을 찾아볼 수가 없다. 아니, 일단 기초적인 문제점들이 드러난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가 재벌의 경영을 투명하게 하는 상법 개정안을 낼 계획이다. 김 대표의 생애 첫 대표발의 법안이다. (...) 지난 21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거대경제세력’, 이른바 재벌 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한 김 대표가 경제민주화 법안으로 상법 개정안을 들고 나온 것이다.


비례대표만으로 5선 고지에 오른 특별한 경력을 가진 김 대표가 법안을 처음으로 대표 발의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야권 최고의 경세가라는 평을 받는 김 대표가 16년이 넘은 의정생활 동안 법안 발의를 주도한 적이 없다는 수치이기 때문이다.

 

한겨레, 5선 김종인, 17년차 의정생활 첫 대표발의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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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민주화에 대한 주장만큼이나 일관성 있는 비례대표 업무 방기는 그에게 정치란 어떤 것인가 되묻게 한다. 아무래도 그의 생각 속에 있는 정치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더민주 탈당파’의 좌장 격인 김한길 공동선대위원장은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여러 의원들과 얘기를 나눠봤는데, 다 많은 고민이 있는 것 같다. 토론이 더 심화돼야 하지 않느냐 생각한다”고 말했다. (...) 천정배 공동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우리가 (분열돼) 새누리당에 어부지리를 줘선 안 된다는 게 일관된 입장”이라며 통합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더민주의) 고질적인 패권주의 청산과 기득권 해체 등 (추가 조처와 관련해) 당내 의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김종인 대표의 통합 제안을 “성사되지 않아도 손해 볼 게 없는 승부수”로 평가한다. 통합이 좌초되더라도 ‘필리버스터 정국 탈출’이란 실리와, 이후 총선 국면에서 ‘통합 주도세력’이란 명분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겨레, 김종인 “야권 통합” 제안…김한길·천정배 “논의 필요” <링크>

 

 

필리버스터 정국의 출구전략으로 국민의당에 야권 통합 제안을 던져 국면을 타개하고 여론을 흔드는 정치공학적 행위, 소위 말하는 '스킬'이 그가 생각하는 정치 행위가 아닐까. 


하지만 필자는 전략가보다 정치인을 원한다. 초선이든 다선이든 관계없이, 시민이 요구를 수렴해서 법안을 발의하고, 정치적 환경이 비록 어렵더라도 그것을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지난한 과정 끝에 비록 폐기된다고 해도 그 모든 행위를 정치인의 족적으로 여기고 평가하고 싶다. 아직은 모든 의원들에 대한 세세한 평가가 공개되진 않지만, 앞으로 점점 더 활성화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에 비해 5선이나, 그것도 전문성을 살리기 위해 도입된 비례대표를 지내며 고작 상법 개정안 발의 1건의 기록을 남겼다는 것은, 국회의원 본연의 업무에 대한 그의 생각에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하기야 체육관 거수기 민주정의당의 창당발기인이었던 그에게, 최근의 유권자가 국회의원을 평가하는 항목을 들이댄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가 돕지 않아 경제 민주화를 이룩할 수 없었다'는 그의 주장과는 달리, 다른 경제학자보다 훨씬 더 정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인물로서 경제 민주화를 위해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된다.

 

아무래도 그의 생각 속에서 정치란, 경제 민주화라는 이상을 위한 도구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것까지는 그럴 수 있으나, 그가 생각하는 정치가 오로지 정치공학적인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면, 아무리 이상이 훌륭해도 그를 진심으로 지지하기는 쉽지 않겠다.

 

 

5. 수틀리면 도망, 불리할땐 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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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의정활동이 백지로 남아있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수틀리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당무 거부를 선언하는 특유의 액티브 스킬 때문이기도 하다.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에서 김 대표와 함께 일했던 인사가 언론(조선일보 1월16일자)에 전한 평가다. 당무 거부라는 벼랑 끝 전술을 썼던 것이 처음이 아니란 것이다.


2012년 대선 때 무려 다섯 번이나 당무 거부를 선언한 전례가 있다. 열린우리당 분당 사태 후인 2004년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 2번으로 당선돼 부대표 직함을 맡았지만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자 그때도 당무를 거부했다.


그래서 정계에서는 그를 차르나 마키아벨리에 곧잘 비유한다. 반대파를 설득해 합의를 이끌어내기보다 이를 무시하고 독선적인 행동을 보인다는 점에서 제왕적 군주에 가깝다는 것이다. 모 정치인은 “머리는 경제민주화를 중시하지만 몸은 구시대적 리더십에 갇혀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일보, [인물 360°] 김종인, ‘경제민주화 전도사’와 ‘독불장군’의 엇갈린 평가 <링크>

 


새천년민주당 시절부터 이어온 당무 거부 스킬은 총선 직전 더민주를 공황상태까지 몰아붙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씁쓸한 대목이다. 그의 리더쉽으로 더민주의 스피커가 통일되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더민주가 마땅히 내야 할 목소리를 죽였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다.

 

선거라는 특이한 상황이었기에 이 상황은 그럭저럭 용인되었지만, 선거 이후 그의 행보를 통해 집권 이후(만약의 만약을 가정해서 집권 이후)를 생각한다면 그의 한계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시민을 상대로 직무를 거부하는 대통령이 나온다면, 이웃 나라에서는 즐거운 구경거리가, 자국민에게는 분통 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국회의원직, 당직을 가벼이 여기고 그것을 협상의 수단으로 쓰는 방법이 모조리 잘못됐다는 지적은 아니지만. 김 대표의 경우에는 워낙 상습범이라 쉴드를 치기에 민망한 수준이다. 근간에 깔려있는 독불장군형 스타일이 가장 큰 원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요한 대목에서는 또 능구렁이 같은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당을 이끈 지난 7개월을 되돌아본 김 대표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문제와 관련, 자신이 선택한 ‘전략적 모호성’을 두고 쏟아진 비판에 대해서도 적극 해명했다. 그는 “외부에서 ‘어떻게 더민주가 이런 식으로 가냐’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저는 ‘당신들의 지적 만족을 위해 정당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얘기한다”며 “더민주가 취하는 태도가 애매모호하고 맞지 않을지 몰라도 우리는 집권이 주요 과제이기에 이런 식으로 끌고 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한국일보, 김종인, 사드 ‘전략적 모호성’ 해명 “더민주 집권 위해선 그렇게 가야” <링크>

 


'사드 배치'에 대한 전략적 모호성을 강조한 김종인의 선택이 옳았는지는 차치하더라고, 능구렁이 같은 면모가 너무 지나친 감이 있다. '반문인 듯 반문 아닌 반문 같은' 행보를 보이면서, '제3 지대인 듯 제3 지대아닌 제3 지대 같은' 발언들을 하며, 마침내 '대선 출마인 듯 대선 출마아닌 대선 출마 같은' 모습을 보이던 그의 지난 1년을 떠올려보면, 기본적으로 시민을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도달한 대선 출마라는 선택조차도, 또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피곤한 추측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스타일의 지도자, 필자는 별로다. 전략적 모호함은 정치인에게 때론 필요한 전략이라고 이해하지만, 그것을 습관처럼 쓰는 사람은 쳐다보고 싶지 않다.

 

 

6. 그가 꿈꾸는 대통령

 


필자가 노태우 정부에서 경제수석으로 있을 때 대통령에게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지금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 가보세요. 수많은 자동차가 사방에서 몰려오기 때문에 교통순경이 아무리 빨리 차량을 소통시키려 해도 자동차가 빨리 움직이지 못합니다. 차량이 적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자동차들이 주행선과 교통신호를 제대로 지키는지 여부만 살피고 자동차들이 스스로 알아서 스무스하게 흘러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 다음 관찰할 것이 또 있습니다. 과거에는 자동차 색깔이 까만 것만 있었는데 지금은 하얀색과 자주색, 은색 등 아주 다양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 사회입니다. 이처럼 다양한 사람들을 어떻게 조화롭게 살도록 이끌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 김종인 저,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

 


노태우 대통령에게 조언한 '교통순경' 비유는 비록 정부가 시장에 완전히 개입하지 말고 감시의 역할만 해야 한다는, 경제 환경에 대한 비유였지만, 그가 그리는 대통령의 모습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특히 '조화'를 언급한 게 주목할 만하다. 그가 주도하는 '경제민주화 정책 포럼'의 이름도 '조화로운 사회'다. 타인과 가장 조화롭지 못한 분이 조화를 논하는 것, 이 무슨 조화일까. 어쨌든, 경제 분야뿐 아니라 그가 생각하는 대통령의 역할은 '조화로운 사회를 구축하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또 하나, 그는 존경하는 정치가로 독일의 에르하르트 경제 장관을 꼽았다. 전후 독일의 경제를 이끌며 '라인강의 기적'을 일군 에르하르트는 전쟁 말엽부터 독일군의 패전을 전제한 상황에서 독일의 경제 발전에 대해 연구를 했고, 연합군의 점령 후 각종 반대를 무릅쓰고 꿋꿋이 정책을 밀고 나간 양반으로 알려져 있다. 김 대표가 저서에서 밝힌, '대통령은 준비가 철두철미해야 한다'는 아마도 에르하르트가 미래를 예측해 정책을 준비하고, 기회가 왔을 때 그 플랜을 착실히 수행해나갔던 사례에서 도출한 결론이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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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높은 인기를 바탕으로 수상 자리에 오른 에르하르트는 놀랍도록 빠르게 인기가 식어 빠르게 실각했는데, 주요한 원인 중 하나는 '당내 기반'이었다. 내각책임제에서 당의 힘, 또 그 인물이 가진 당내에서의 힘은 국정을 수행하는 필수적인 요소인데 에르하르트는 이것이 뒷받침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애초부터 당원이 아니었을 정도로 당내 정치에 무관심했다. 여러 당을 와리가리 하며 정당정치의 근간 따위는 알 바 아닌듯한 행보를 보여온 김종인 전 대표와 어쩌면 비슷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었나 싶다. 

 

김 대표가 존경하는 에르하르트의 사례에서, 김 대표가 주장해온 내각제 개헌의 위험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7. 기승전내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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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각제의 불안정성을 우려하는 시각에 대해선 “우리나라엔 별 능력이 없으면서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내각제 개헌은 죽어도 안 된다고 한다. 과거 프랑스의 내각제, 지금 일본의 내각제, 또 우리 장면 총리 시절의 내각제를 보며 불안정하다고 말한다"면서 "(그러나) 독일은 (불안정했던) 바이마르 공화국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았다. 취임 후 2년 내에는 총리를 불신임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순수 내각제의 불안정성은 얼마든지 보완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며 거듭 독일식 내각제 추진 의지를 분명히 했다.

 

뷰스앤뉴스, 김종인 "퇴진후 '독일식 내각제' 개헌에 전력하겠다" <링크>



 

우리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크게 두 가지로 문제점을 분석한다. 사람들이 시스템에 충실했는가, 그렇다면 그 시스템이 잘못되지는 않았는가. 현행 제도에 대한 비판점에 대해선 독자 개인의 견해가 충분히 있으실 테니 필자의 사견을 담지는 않겠다. 다만, 내각제를 우려하는 가장 주된 목소리는 이것이 분명해 보인다. 


'저 놈들이 어떤 놈들인데.'


한국의 의회가 걸어온 역사를 돌이켜보면, 시민들이 내각제라는 훌륭한 시스템을 믿고 국가를 맡기기보다는 직접 대통령을 뽑는 것을 선호해왔다.  더구나 대선을 한 달 놔둔 현재 상황을 지켜보면, 내각제를 강하게 주장하는 일부 의원들이 시민들에게 신뢰를 주기에 부족하다는 큰 문제점이 있다. 필자는 김종인 대표에게서도 그런 면모를 느낀다. 


김종인, 정운찬, 홍석현의 지지율 총합 0% 경로당 3인방이 자기들끼리 뭉쳐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국가의 미래'를 운운하며, 누가 바라지도 않았는데 '이 한 몸 불사르기' 위해 대통령에 출마하는 것, 이거, 시민의 눈높이에서 함께하기보다 저 높이 엘리트의 성좌에 앉아 시민들을 '계도하는', 그리하여 종래엔 권력을 끼리끼리 냠냠하여 시민들의 의사와는 달리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지도자를 선출할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드는 것은 필자가 김 총수의 방송을 너무 많이 들은 탓에 전염된 음모론적인 발상일까.

 

이 모든 것이 경제 민주화를 위한 발판일 뿐이라지만, 제1당의 대표, 5선의 국회의원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서도 김 대표가 경제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선택지는 참 많았다. 수많은 정치인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그 자리에 가기를 꿈꾸겠지만, 김 대표의 선택은 국회의원 배지조차도 홀라당 날려버리고 아무도 원하지 않는 대선 출마였다. '더민주에선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디스했지만, 뭘 하려고는 하셨는지 의문이다. 그냥 젊은 사람들이 본인 말을 안 들어 처먹어서 삐지신 거 다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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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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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머니 투데이



죄송한 얘기지만, 솔직히 말하면 김종인 편은 이전의 시리즈들보다 준비를 좀 덜 했다. 별로 개인적인 흥미가 돋지 않기 때문이다. 이 분이 지금 이 시점에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여기저기 일수꾼이 수금하듯 돌아다니며 꿍짝꿍짝하는 모양새가 대체 왜 가능하고, 또 그것이 주목받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것은 아무래도, 오래전부터 제기되어온 '제3 지대'의 가능성 때문인듯싶다. 또 특정 상황에서 다른 후보의 손을 들어주는, 이른바 '페이스 메이커'의 역할을 기대하는 세력도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들었다. 경제민주화는 김종인만의 것인가. 다른 이들이 비슷한 정책을 구현한다고 해도 경제민주화의 딱지는 붙일 수 없는 것일까. 김종인 대표가 여러 정치 세력을 믿고 경제민주화를 맡겼지만 토사구팽당한 경험을 토대로 직접 뛰게 된 그 마음은 이해하나,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 지나쳐 시민과는 등을 돌린 자세로 정치를 하고 계신다. 경제민주화가 이 시대에 꼭 필요한 가치라는 데엔 일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것을 수행하는 주체는 시민의 선택에 달렸다. 지지율 0%대인 분이 다른 꿍꿍이만 굴리다가 이제 와 대선 출마를 선언하는 것, 누가 그의 경제민주화를 향한 진심만을 믿을 수 있을까.

 

더욱이, 지금 제왕적 대통령제를 비판하며 내각제를 주장한다는 것, 다른 이도 아닌 김 대표가 한다니 좀 우습다. 긴가민가했지만 박근혜와 거대 정당 새누리당이 가진 힘과 스타일을 믿고 경제민주화를 맡겼던 것, 그 속내에 제왕적 대통령제가 가진 제도적 맹점을 이용해 이상을 실현하려 했던 욕심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 아니, 김종인 대표 자체가 제왕적인 사람인데, 공정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입각한 완벽한 내각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신뢰가 영 가질 않는다.

 

글을 쓰는 내내 학창시절에 배운 어떤 시가 생각났다. 그 시구로 마무리해본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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