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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력한 대선후보 중 한 명인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조폭과 찍은 기념사진(CBS보도에 따르면 6명 모두 실제 조폭으로 4명은 경찰관리 대상이다)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전쟁같은 선거기간에 볼 수 있는 흥미로운 해프닝이다. 안철수 후보 개인이 이것을 알았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번 대선과는 별개로 조폭과 관련된 사안만 따로 놓고 본다면 수사가 이루어져야 할 사안이기도 하다. 한국의 조폭이 점점 일본의 야쿠자화되어 가는 경향을 보면 이번 기회에 이 사안을 한 번 고민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사진에 나온 관리대상 6명이 지역청년회의소에 소속돼 있다고 하는데 JC라는 이름으로 불린 지역청년회의소는 일본에도 아주 많다. 각 지자체에 무조건 하나 이상씩 있다. 이런 단체(청년회의소, 청년상공회 등)에 조폭이 조직적으로 들어가 활동하는 것을 여기서는 지역밀착형 기업형 사제(企業型舎弟)라고 부른다. 사제는 일본의 야쿠자 사이에서 쓰이는 명칭이다. 물론 그렇다고 JC나 청년회의소, 상공회 자체가 조폭이라는 소리가 아니니 오해는 하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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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장(우리나라로 두목)의 의형제 격을 '사제'라고 부른다



약 10년 전, 김태촌이 일본에 왔다. 회개하고 봉사활동 하고 있다길래 취재 겸 3일 정도 따라다녔는데, 건전한 삶을 사는 거 같아 인터뷰 해서 기사화도 했다(그 기사 나간 후, 바로 한국에 가서 권상우 협박해 나한테 빅엿을 먹인 건 비밀. 하긴, 은퇴했다는 양반이 무슨 최고급 벤츠를 타고 앞뒤로 호위용 렉서스가 달라붙는지)


이 소동을 보고 있자니 그 때 그를 수행했던 젊은 친구들이 떠오른다. 조폭을 떠올릴 만한 면면이었고 무엇보다 김태촌을 수행하고 있었으니 조폭인 건 분명한데, 명함 뒤엔 하나 같이 사단법인 이사, 사무국장, 감사같은 직책이 적혀있었다. 다 멀쩡한 회사 같아서 도무지 정체 분간이 안 간다.


확실히 안 건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10년, 도쿄의 환락가 중 하나인 우에노 나카마치도오리(上野 中町通り)에 술집을 하면서였다. 가게를 오픈하자 나를 평소 좋아해줬던 취재원 재일동포 선배들이 축하해준다며 가게를 들락날락거렸다(주: 테츠님은 현재 기자 생활을 접고 동경에서 가게를 운영 중입니다).


선배들이 데리고 오는 손님 중엔 재일동포 출신 야쿠자들이 있었다. 아사쿠사(浅草. 우에노와 가까운 도쿄의 지역)를 비롯해 우에노에서 전설로 통했던 ‘카야마구미(香山組)’의 카야마 3형제 중 막내가 온 적도 있고, 실질적으로 나카마치도오리를 지배했던 야마구치구미(山口組) 계열 고쿠수이카이(国粋会) 산하 노토구미(能登組) 쪽 사람들도 자주 들락날락거렸다(노토구미의 보스였던 마에가와 회장은 팁을 잘 줬다).


‘폭력단 대책에 관한 법률안(이하 폭대법)’에 따라 이런 사람들을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하는데, 야쿠자에 대한 거부감이나 저항감이 없었기에 모두 받아줬다(재일동포 야쿠자들과의 관계 때문에 거절이 힘들긴 하다). 또 술값도 항상 더 내고, 미카지메료(みかじめ料. 보호비 명목으로 매달 갈취하는 돈)를 내라는 말도 안했기에 손님으로 받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자신들은 전통적인 폭력조직이라며 ‘협객(任侠)’이라 불러달라고 했는데, 실제로 매우 신사적이기도 했다).


이들에겐 지역상공회나 회의소 등에 가입돼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폭대법 이후 본격적으로 일어난 현상이다. 원래의 유흥분야에서 먹고 살기 힘들어지자 지역회의소 등에 참여해 일반적인 사회구성원으로 활동하는 폭력조직으로 변신한 것이다. ‘테키야(的屋)’라고 불리는 노점부터 시작해, 라면가게, 술집, 식당 등 가게를 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건설 회사를 만들어 폐기물 처리를 하거나 리사이클 쓰레기 회수 회사를 만들어 지자체와 계약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익을 내 윗선에 상납하는 구조다.


그들은 이권을 위한 인맥을 만들기 위해 동네 축제나 행사에 빠짐없이 참가했다. 울긋불긋한 문신을 한 노토구미와 카야마구미의 후신인 나카무라카이(中村会)가 각각 스미요시카이(住吉会)와 야마구치구미임에도 불구하고 질서를 지키며 미코시(神輿)를 들던 광경이 얼마나 인상적이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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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0px-大人神輿、子供神輿、本社神輿、山車(小田原式本山車).JPG

이, 이게 미코시입니다...
요는 사이 안 좋은 사람들끼리 축제에서 사이좋게 이런 걸 들었다는 말이다



야쿠자들은 이런 활동을 통해 지자체 관계자들과 안면을 트고 지역밀착형 기업형 조폭으로 거듭난다(물론 조폭은 조폭이다. 몇 년 후 야마구치구미 안에서 소동이 일어나 항쟁이 벌어졌고, 이 동네에서도 세 명이 죽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소문은 사실로 밝혀졌는데, 사망자엔 가게에 자주 왔던 고베에서 올라온 10살 위의 형도 있었다. 스시가게에서 늦은 밤참을 먹고 나오다 납치돼 소식이 끊겼는데, 결국 죽었다)


혹자는 이럴 바에야 왜 조폭을 하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다. 자영업이든 뭐든 사회에서 기반을 닦고 살면 되지 않느냐고 말이다. 그런데 그게 안 된다. “형제의 연을 나누면(杯を交わす) 죽을 때까지 간다”는 게 야쿠자의 룰이고, 중간에 관두려면 파문을 당하거나 이쪽에서 절연해야 한다. 손가락 하나쯤이야 자를 수도 있겠지만(그 현장에서는 그걸로 끝나지만) 대부분 보복을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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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노 다케시의 <아웃레이지>는 시도 때도 없이 총이 등장하는 것만 빼면 야쿠자 세계를 잘 보여준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일본 야쿠자 세계에서 파문이나 절연이 어떤 의미인지 충분히 알 수 있을 테다.



아무튼 일본 야쿠자 식의 최근 조직운영, 즉 기업형 사제가 한국사회에 비슷하게 재현되고 있다는 걸 종종 뉴스를 통해 접한다. 수법이 더 다양하다고 느낄 때도 많다. 예를 들어 ‘지방의 전문대 총학생회를 접수한다’는 건 엄청난 발상이다. 요즘의 젊은 조폭들은 칼 쓰고 문신하고 그러는 게 아니라 기업매수/합병을 전문으로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니까.  


개인적으로 억울했을 안철수 해프닝을 접하고 일본의 비슷한 애들이 떠올라 몇 자 끄적여봤다. 참고로 맨 처음 나온 아이들이 속해 있다는 오거리파는 불과 2개월 전, 전주 시내 한복판에서 월드컵파라는 지역 내 조직과 흉기를 든 난투극을 벌였다. 여기나 거기나 느슨한 형태를 띠더라도 역시 조폭은 조폭이다. 




테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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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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