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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하나와 한나

2013-12-1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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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2. 12. 목요일

독일특파원 타데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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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나 의원의 발언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다. 그에 대해서 비판도 있고 응원도 있고 반대쪽 뿐 아니라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사람이 뇌가 있고 입이 있고 뚫린 입이라면 지가 하고 싶은 말 하고 사는 삶이 민주주의라 배웠고 지금껏 그런 줄 알았다.


그녀는 정치인이기 때문에 미리 판단하여 사리분별있는 언행을 했어야 한다는 말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다만 정치인의 그것보다 인간의 권리가 우선한다는 명제 하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했다고 의원 제명이 어쩌네 저쩌네 하는 것은 분명 오바도 한참 오바다.


그런데 요즘 한국의 분위기를 보면 꼭 그런 것은 아닌가 보다. 반대쪽의 분위기가 너무 살벌하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장하나 의원의 주장을 지지하는가 아닌가 하는 문제와 별개로, 한 개인의 발언에 너무 심하게 몰아 부치는 정부 여당과 청와대의 반응을 보자니 등골이 움찔 움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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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사과~



장하나 의원 사태를 보면서 한나 아렌트가 생각이 난다. 단순히 이름이 비슷해서 그런 거다. 게다가 최근에 영화도 나온 요즘 이번 사건을 보니 한나 아렌트가 문득 머리를 스쳐간다.


이 유대인 출신의 아줌마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Eichmann in Jerusalem) 이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야기하는 당시 논란이 되었던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은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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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이면 이쁜 젊은시절 사진으로~



아돌프 아이히만이라는 나치 전범이 있었다. 그는 악질 중의 악질로 평가되었고 전쟁이 끝나기 직전 신분을 숨기고 여기저기 숨어 다니며 해외를 전전하다 끝내 아르헨티나로 도주한다. 거기서 이름도 바꾸고 후에 몰래 가족도 불러오고 허름하게나마 집도 짓고 오손도손 한 백 년 살려는 찰나 이스라엘 정부에 의해 체포되고 만다. 이스라엘은 아이히만의 납치가 자신들이 한 일이 아니라고, 단지 개인의 일탈이라고 잡아 떼지만 ‘어디~ 씨알도 안 먹힐 소리~’가 되고 만다.


여차 저차하여 이스라엘로 소환된 아이히만은 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되는데, 이 곳에 한나 아렌트가 나타나 재판을 기록하고 보도한다. 반 유대주의에 의하여 독일에서 프랑스로, 그 곳에서 또 나치 수용소 생활을 하고, 그 후 어찌 저찌 목숨을 부지해 미국으로 망명한 그녀는 당시 이미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교수가 되어 있었다. 그런 그녀가 이 재판을 보며 뭔가 이상한 거다. 아무리 봐도 진정한 악마로 보여야 할 아이히만이 그녀에겐 그저 ‘생각이 없는 한 인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처럼 보이고 만 것이다.

 

나치 집권 당시 아이히만은 유대인을 열차로 실어 학살수용소로 보내는 일을 도맡아 했는데 그런 피도 눈물도 없어야 할 인간이 그녀의 눈에는 당시 나치의 명령을 따르던 인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런 놈으로 보였던 것이다.

 

결국 그녀는 미국에 돌아와 ‘뉴요커’ 잡지에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 기록을 5회에 걸쳐 싣게 된다. 후에 이 기고문이 책으로 엮여 나온 것이 유명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다. 그리고 이 기사는 한나 아렌트를 아주 가루가 되도록 까이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한나는 아이히만이 가지고 있는 ‘악의 평범성’에 대하여 이렇게 정의한다. 배움이 짧은 그는 생각이 깊지 못하고 사고의 능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허풍과 허세로 점철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고의 능력이 없으니 언어적 능력 역시 바닥이고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인물이 바로 아이히만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가 쓰는 나치식의 언어가 너무 상투화되고 고착되어 있어서 그와 제대로 된 이성적 대화가 불가능 하였으며, 따라서 그는 자신의 행위가 타인에게 어떠한 의미와 결과를 가져오는지 전혀 모르는 인물인 것이다.

 

당시 아렌트는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한 인간이, 자신이 '절대 악'이라고 믿었던 그 나치의 앞잡이가 얼마나 평범한가에 대한 그녀의 경험은 그를 통해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평범하다는 저 말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저 우리의 삶에 자주 보이는 내 이웃 같은 평범함부터 사회에 넓고 깊게 퍼져있는 인간의 평범함까지 모두 포괄하는 넓은 의미의 평범성, 그것이 바로 우리가 누군가 한 사람을 악으로 규정할 때에 꼭 같이 생각해 봐야 하는 ‘악의 평범함’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이 '악의 평범함'의 근원은 아이히만의 ‘무지’에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그에게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아이히만은 죽음의 문턱에서도 아니 죽은 후에도 자신이 잘못한 일은 없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자신 스스로 신념 혹은 명령을 받들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스스로도 한 명의 소시민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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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중 아이히만은 반문한다.

"그렇다면 내가 맡은 일을 불성실하게 처리했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사람들은 경악했다.

"당신이 하는 일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알고도 아무런 가책을 느낄 수 없다는 말이오?"


아이히만은 답한다.

"만일 내가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것으로 인해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것입니다.”



한나 아렌트가 그를 ‘악의 평범함’으로 인식하고 있는 반면에,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그를 히틀러 못지않은 악마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언행은 차갑고 냉철한 나치의 그것이었으며 그의 태도에서는 양심의 가책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 볼 수 없는 파렴치한 악마의 그것이었다.


여기서 한나 아렌트는 같은 논지로 ‘악의 평범함이 과연 그에게만 있는 것인가’를 반문한다. 그를 납치해 오고 그에게 온갖 혐의를 뒤집어 씌워 악마로 내모는 법정에 대한 비판 뿐 아니라, 한 인간이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데 그에게 가혹한 형벌을 내린다고 이 사회의 문제가 풀릴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맘 속에 있었으리라 본다. 그녀는 그를 이스라엘 법정이 아닌 국제 사법재판소에 회부하기를 요청하고, 더불어 당시 나치 치하에서 동포들이 잡혀가는데 협조까지는 아니어도 일정 정도 방관한 유대인 지도자들에 대한 비판도 그녀의 글에 싣는 대담함을 보인다.

 

바로 이 사건이 한나 아렌트를 미국 사회와 이스라엘의 유대인 사회에서 조국과 민족을 배신한 또 하나의 반역자로 만드는 데 일조한다.

 

일부 지식인들과 한나의 친한 지인들조차 그녀가 법정에서 정의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않고 철학 수업에서나 들을 법한 이야기나 한다고 비난하였으며 그녀의 사무실과 잡지사에는 엄청난 항의 전화가 쏟아 졌다고 한다.


물론 후에 그녀는 명예를 회복하고 (당시 대학에서 쫓겨날 뻔한 위기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유명 교수가 된다.


한나 아렌트의 이야기를 보면 전체주의 속에서 한 인간이 어떻게 사고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아이히만을 통하여 잘 드러난다.

 


그의 말은 언제나 동일했고, 똑같은 단어로 표현되었다.


그의 말을 오랫동안 들으면 들을수록, 그의 말하는 데 무능력함(inability to speak)은 그의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inability of think), 즉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과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음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그와는 어떠한 소통도 가능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거짓말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말(the words)과 다른 사람들의 현존(the presence of others)을 막는, 따라서 현실 자체(reality as such)를 막는 튼튼한 벽으로 에워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中에서




장하나 양승조 의원에 대한 새누리당의 반응을 보며 아이히만을 떠올린 것은 필자의 논리적 비약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민주당 두 의원에 대한 청와대 ‘대변’인의 혈압이 걱정될 듯한 격앙된 반응과, 새누리당의 다 함께 손잡고 국회에서 ‘쟤들 좀 국회에서 내보내 줘용’식의 시위를 보고 있자니, 자못 저들이 전체주의의 그들과 무엇이 다른가 싶은 생각이 든다.


처음 김무성 등에서 출발된 NLL관련 이슈부터 지금의 양승조 의원 관련 이슈까지 저들은 컨텍스트가 아닌 텍스트만을 읽으려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고 본다.


저게 그들의 정말 악의적인 짜깁기일지 아니면 아이히만과 같은 생각의 무능력인지는 확신이 서진 않는다.


하지만 마치 괴벨스의 입을 빌린듯한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정치인들이 마이크 앞에 선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치의 그것과 너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 뿐만 아니라, 저들의 행위는 악의가 아닌 자신이 믿는 신념이 너무 확고해 보인다는 점이 필자로 하여금 미래를 비관적으로 볼 수 밖에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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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위기를 성공으로 이끄는 선전이야말로 진정한 정치 예술이다."


-요세프 괴벨스-

 


게다가 파리에서 시위하던 교민들에게 ‘복수니 뭐니’ 하며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 뭔 병~이라는 말이 자연스레 튀어나오도록 만들던 김진태의 ‘민주주의 과잉’ 발언을 보고 있자니 저들이 정말 유신을 넘어 히틀러의(파시즘) 전체주의를 꿈꾸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이히만과 같은 ‘평범한 악’으로써 맹목적 충성을 하는 그들을 전체가 지켜주진 않는다. 삽질이 하나 씩 추가될 때마다 '쓰고 버리고', '쓰고 버리고'를 반복하며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꼬리 자르기를 계속 하고 있기에, 반대 측(민주당)에서는 바로 그 잘려나간 꼬리를 절대적 악으로 인식하여 비난하기 바쁘다. 하지만 이미 잘려나간 꼬리 비판해서 무얼 하나...


이명박 정부 시절 많은 진보적 언론 매체나 사람들의 입에서 MB와 그 측근들을 사리사욕에 눈 먼 인간들로 판단하고 논평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번 정부에 들어와서는 경제적 이익보다 이데올로기가, 정파적 이익보다는 충성이, 야당과 시민사회보다는 종북 좌빨로 그 언어가 점점 변해가는 것을 보면서, 저 윗선의 기획은 그 밑의 수많은 아이히만에 의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자신의 개인적 발전을 도모하는 데 각별히 근면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는 어떠한 동기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적인 것이 아니다.

 

그는 상관을 죽여 그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살인을 범하려 하지도 않았다.

 

이 문제를 흔히 하는 말로 하면 그는 단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는 어리석지도 않았다.


그로 하여금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결코 어리석음과 동일한 것이 아닌) ‘순전히 생각 없음’이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中에서




한나 아렌트의 표현을 빌려 저들에게 묻고 싶다. “너 안에 아이히만이 살고 있지 않느냐?”


그리고 민주당에게도 묻고 싶다. 과연 당리당략이라는 허울 아래, 부정선거는 맞지만 대선 불복은 아니라는 이런 앞뒤가 맞지 않는 그 논조 속에 마치 나치시대의 유대인 지도자들과 같은 사고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뱀발


뉴스를 보고 있었다. 앞에 쓴 문제에 대해서 냉정한 판단력으로 득실과 분석을 하는 이성적인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난 그냥 승질이 난다. 언론이 이런 식이라는 것에 승질이 나고, 국민의 세금을 처받는 으르신들이 저런 식이라는 것이 승질 난다. 두번 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앞으로도 계속 이럴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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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얼하나~

내일도 노긍정의 정신으로 졸~라!








독일특파원 타데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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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