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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2. 13. 금요일

부편집장 죽지않는돌고래 





1. 


2013년 12월 6일 오후 7시 44분, 필리핀 112 이동활 대표로부터 문자.



"김규열 선장 오늘 아침 사망"



나는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2. 

 

2010년 12월 18일, 메일 한통. 발신인은 프랑스 외인부대 출신 조광현. 자신이 살인누명을 쓰고 필리핀 마닐라 감옥에서 5년간 형을 살았고 오늘(12월 17일)에야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한국에는 '필리핀 가정부 살인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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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현 사진>



어떻게 죄 없는 외국인을 5년간 가두어 놓을 수 있는가. 한국 정부는 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는가. 당시의 나는 이런 의문을 가질 정도로 멍청했다. 


필리핀 현지에 있는 그와 인터뷰 날짜를 잡았다. 12월 22일 밤부터 23일 새벽까지 통화, 억울한 한국인이 한명 더 있다 했다.


그리고 김규열이라는 이름을 들었다.


지난 3년의 시작이다.




3. 

 


2010년 크리스마스 이브 새벽, 조광현씨의 무죄판결을 도왔던 구정서씨로부터 김규열 선장이 필리핀 마닐라 교도소 6호 감방 안에서 썼다는 편지 스캔본을 전해 받았다. 마약 밀매의 누명을 쓴 사람이라 주장했고 당시의 정황을 상세히 서술해 놓았다. 그가 감옥에 들어간지 1년째(2009년 12월 17일, 필리핀 마약단속청 직원들에 의해 강제구금)라고 쓰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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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현씨는 지난 5년간 필리핀 마닐라 교도소에서 병들거나 굶어 죽어나간 사람을 16명 보았다 했다. 자신이 지낼 방을 사야하고 그러지 못하면 복도에서 자야하는 필리핀 마닐라 교도소. 복도에서 덮을 박스떼기 한장도 돈으로 사야하는 곳에 자신과 같은 한국인이 있다 했다.


필리핀 마닐라 교도소로 전화한지 서른 번 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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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열은 실제 존재하는 사람이었다.  




4. 


첫 기사 후, 사람들은 외교통상부 게시판을 도배했고 주필리핀공화국 한국대사관에 메일을 보냈다. 대사관은 하루 만에 공지를 내걸었다. 필리핀 사법당국에 접촉해 공정한 재판을 '요청'했다고. 생필품을 지원했다고. 


대사관이 무언가 하는 줄 알았다. 당시의 나는 그런 걸 믿을 정도로 멍청했다.


김규열 선장에게 하루빨리 그 내용을 전하고 싶었다. 116번 통화를 시도하고 그럴 수 있었다. 그는 여전히 무죄를 주장했다. 살려달라 했다.


1월 5일, 외교통상부가 공지를 올렸다. 교도소 관계자에게 김규열 선장이 필요할 경우엔 언제든 자유롭게 한국대사관에 접촉할 수 있도록 '협조'해 줄 것을 거듭 '당부'했다고. 주필리핀 대사관 영사가 교도소를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건강상태, 애로사항 및 인권침해 여부 등에 대해 점검하고 생필품도 지원하였다고.


외교통상부가 무언가 하는 줄 알았다. 조금은 무언가 하는 줄 알았다. 


1월 6일을 기점으로 타 언론사에서 김규열 선장 건을 다루기 시작했다. 방송 3사에서 자료를 요청하기 시작했다. 많은 기자들이 최선을 다했다.




5.


재판은 더디게 진행됐고 나는 그 과정을 쓸 뿐이었다. 한국 상황을 틈틈이 김규열 선장에게 전했다. 통화가 뜸했던 어느 날, 선장은 자살을 시도했다. 그는 필리핀 마닐라시 교도소 4000여명의 수감자 중 단 한 명의 한국인이다. 수감자들은 김규열 선장에게 가장 더러운 일을 시켰고 이국의 여타 수감자와 달리 대사관에서 아무런 보호를 해주지 않는 그를 무시하고 구타했다. 그렇게 불법 구금 2년이 다가오고 있었다.


물밑에선 많은 일들이 있어나고 있었다. 필리핀 교민사회에선 수많은 갈등이 있었고 그 갈등은 불신이 되었다. 힘이 하나로 모이지 않는 수많은 이유가 있었다. 기사로는 다 쓸 수 없는 내용이었다. 함부로 써서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 


2011년 11월 18일, 오후 4시 30분경, 우여곡절 끝에 702일간의 억울한 옥살이를 한 김규열 선장이 보석공판으로 석방됐다. 보석 허가는 무죄의 가능성이 높은 이에게 허용되므로 모든 것이 끝났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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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몸을 찾은 김규열 선장과의 통화는 길었고 그만큼 즐거웠다. 교도소에서 통화할 때는 받는 사람인 김 선장도 돈을 내야했는데 이제는 전화도 한번에 되고 김규열 선장도 돈을 내지 않아도 되었다. 


그것이 참으로 좋았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6.

 

보석허가를 받고 자유의 몸이 된 김규열 선장은 필리핀112 쉼터에서 재판을 준비하며 성실하고 충실한 시간을 보냈다.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썼다. 무죄판결을 받고 한국에 가서 이곳의 일을 모두 알릴 거라 했다. 필리핀 112 쉼터에서 그를 지켜보던 이동활 대표의 증언이다. 이 대표는 김규열 선장의 무죄를 확신했다.

 

자유의 몸이 된 약 1년간, 그는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자신의 무죄를 필리핀 법정에서 완전하게 증명하고 귀국하겠다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라는 영사의 말에 



'왜 죄인마냥 내가 몰래 들어가는가. 나는 완전히 무죄를 받고 가겠다'



고 따져 물었다. 고집 센 뱃사람이었던 그는 선례를 남기고 싶어 했다. 아닌 건 죽었다 깨나도 아닌 멍청한 사람이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자신의 지난 기록을 남겨 한국에 당당히 돌아와 모두에게 알리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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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열 선장이 필리핀112 쉼터에 남긴 7권의 일기책> 




마침내 2012년 12월 17일, 김규열 선장은 재판장이 내린 판결에 자유를 찾았다며 떙큐 땡큐를 외치고 고개를 숙였다.


선장은 따갈로그어에도 영어에도 미숙했다. 재판장이 던진 말은 무죄가 아니라 무기징역이었다.  2009년 12월 17일, 마약 단속청이 처음 김 선장을 잡았을 때 주장한 내용이 3년 만에 다시 반복된 것이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15일 안에 항소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영원히 교도소에 있어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됐다.



7.


항소 관련 내용을 김규열 선장의 목소리와 함께 딴지라디오 '그것은 알기 싫다'를 통해 전했다.


김규열 선장을 잡았다고 주장한 피자헛은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가게다. 마약단속청 직원이 엑스터시 10정을 압수했다고 했지만 입증할 현장 증거물은 하나도 없다. 무엇 하나 바뀐 것은 없는데 판결만 뒤집혔다.


필리핀 마약단속국은 김규열 선장의 종신형을 못 박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보였다. 김규열 선장 측 주장과 필리핀 마약단속국의 주장을 비교하면 결론은 종신형, 아니면 무죄 뿐이다.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김규열 선장의 무죄가 확정되면 필리핀 마약단속국의 입장이 난처해진다. 김규열 선장의 종신형이 뒤집어 진다면 필리핀 마약단속국은 외국인을 잡아 몇 년간 억울하게 범죄를 뒤집어 씌운 동시에 폭력까지 사용하게 된 파렴치한이 된다. 공식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어떻게든 김규열 선장의 종신형이 확정되야 자신들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외교적 대립을 감수하며 모험할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되는 일에 불과했다. 한국 정부와 대사관은 해외 자국민의 목숨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 무수한 선례를 남겼다. 하여 적어도 필리핀 마약단속국에 한국인은 그래도 되는 사람들에 불과하다. 그렇게 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되려 알아서 기어주었다.  


김규열 선장 사건 이전에도 필리핀 마약단속국은 수 차례 무고한 한국 교민을 마약범으로 몰아 금품을 갈취했고  필리핀 경찰들이 범죄자들과 공모하여 한국 관광객을 납치해 마약을 구매한 것처럼 몰아간 적도 있다.


한국 정부는 사건이 언론에 크게 이슈화될 때, 잠시, 신경을 쓸 뿐이다. 대사관은 면피를 위해 신경을 쓴다고 한번씩 기록을 남길 뿐이었다. 




8.


김규열 선장의 항소서류는 2013년 7월 24일에야 대법원에 전해졌다. 이동활 대표에 의하면 법원직원의 실수라고 한다. 정말로 실수일 수도, 누군가가 손을 썼다고 해도 이상치 않은 것이 현지의 상황이다.


김규열 선장이 무기징역으로 들어간 이후 유일하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정부' 뿐이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도움을 준다던 김규열 선장의 동향, 지역구 정치인들은 언론에 이슈화될 때 잠시 얼굴을 비추고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음료수 한잔 마시고 간 것이 전부다. 김규열 선장도 정치인을 믿지 않는다 했다.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도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김규열 선장을 취재했지만 꿈쩍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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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김규열 선장에게 할말이 없어졌다. 정부가 움직이지 않는 한 그를 꺼내기 위해선 비공식루트를 이용할 수 밖에 없게 됐다.


필리핀 112이동활 대표에게 물었다.



'김규열 선장을 꺼내기 위해선 얼마가 필요합니까'



약 3천에서 5천. 교도소에서 누구보다 김규열 선장을 자주 접촉했던 이상배 목사가 가능한 모든 루트를 알아보고 나온 계산이라 했다. 


비용 중 상당부분은 필리핀 재판부와 검찰에 바쳐야 할 돈이다. 필리핀 재판장에서 돈이 가장 주요한 수단으로 작용한다는 것은, 그냥, 사실이다. 돈이 있으면 재판도 빨라지고 서류도 빨라진다. 형도 줄어들고 죄도 없어진다. 그렇게까지 해서 사람을 꺼내는 것이 옳은 일이냐, 정당한 절차를 거쳐야 하지 않느냐는 구름 위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런 돈을 위해 다시 한번 공개적으로 모금을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모금 청원은 언제나 구설수를 낳았기에 이제는 선뜻 나서는 사람도 없었다. 누가 퍼뜨렸는지 알 수 없는 김규열 선장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들도 계속 흘러나왔다. 모두 확인했지만 증거가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확신할 수 있는 건 분명 어떤 사람들은 그가 교도소에서 영원히 나오지 않길 바랬다는 것이다.


물밑에서 움직이는 사람들 모두가 김규열 선장에게 희망고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기다리라고. 잘 될 거라고.


그의 가족들은 김규열 선장을 도울만큼 넉넉치 못했다.




9.


무기징역 후, 중죄인만 복역한다는 문틸루빠 교도소에서 김규열 선장의 건강은 악화일로였고 2013년 11월, 뇌출혈로 쓰러졌다. 교도소 내 병원에서 제대로 돌보아주는 사람 없이 누워있다 12월 6일, 억울함을 풀지 못하고 떠났다.


김규열 선장의 자유는 2700만원이었다. 2009년 12월 17일, 마약 밀매 건으로 필리핀 마약단속청이 그를 잡았을 때 그를 풀어주는 대가로 부른 액수다.


2700만원이 있었다면 경찰에게 그렇게 맞지 않아도 되었고, 수년간 교도소에 있지 않아도 되었고, 영양실조가 되지 않아도 되었다. 이가 빠지지 않아도 되었고, 한쪽 귀에서 고름이 나오지 않아도 되었고, 자살시도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4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쓰지 않아도 되었고 , 뇌출혈로 쓰러지지 않아도 되었고, 반신불수의 몸이 된 채 누구하나 봐주는 사람없이 이국의 교도소에서 홀로 죽지 않아도 되었다.


2700만원이 없었기에 국가가 필요했다. 죽는 순간까지 무죄라고 주장했기에 국가라는 것이 필요했다. 언론에서 취재한 내용을 근거로, 필리핀 8선 의원까지 이 재판이 옳지 않다고 녹화된 화면을 가지고, 필리핀 대사관에서, 외교통상부에서, 단 한번만 필리핀 사법당국에 공식적으로 밀어붙여 주었다면, 수많은 격무와 모자란 인원에도 불구하고, 요식행위가 아니라 단 한번만 공식적으로 강하게 밀어 붙여 주었다면 풀려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이에 분노한 언론인 누군가가 다시 한번 김규열 선장의 죽음을 떠올리게 해준다면 외교통상부와 필리핀 대사관은 또다시 비난 받을 것이다. 대사관도 각오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알고 있을 것이다. 시끄러운 한 순간만 넘기면 지금처럼 계속 일해도 아무 문제 없다는 것을.


공중파에서 좀 더 시끄럽게 만들어준다면 아랫 사람 중 한 명 정도는 징계를 받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또다른 김규열 선장이 나올 것이다.


딴지일보 해킹으로 지난 기사 대부분이 날아갔고 몇 년이 지나면 이 고집센 뱃사람을 기억해 줄 사람이 없기에, 지난 3년간 김규열 선장에게 희망고문을 반복한 멍청이 중 한 명이 여기에 기록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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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 김규열 선장은 필리핀 마약단속청 직원과 짜고 자신을 '셋업'한 인물로 추정되는 인물에 대해 마지막까지 말하지 않았다. 선장은 확실치 않은 사람을 함부로 말할 수 없다 했고 그것이 그의 성격이다. 허나 교도소 내에서 조차 어떻게 될지 모를 상황에서 '그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컸던 것으로 추정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추정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추정에 불과한 '그 사람'에 대한 제보는 아래 메일로 연락 부탁드린다. 


ddanzi.news@gmail.com

 




 



부편집장 죽지않는돌고래

트위터 @kimchangkyu

Profile
딴지일보 편집장. 홍석동 납치사건, 김규열 선장사건, 도박 묵시록 등을 취재했습니다. 밤낮없이 시달린 필진들에게 밤길 조심하라는 말을 듣습니다. 내게도 다 생각이 있습니다. 가족과 함께 북극(혹은 남극)에 사는 것이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