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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쿵 쿵 쿵

2013-12-16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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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딴지 추천12 비추천0

2013. 12. 16. 월요일

이즈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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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지 않는 수많은 소개팅 그녀들처럼 잊혀진 가을을 밀어내고 겨울이다. 오늘은 겨울. 꺄아. 나는 가을을 좋아했다. 올 가을까지는. 이제 나는 겨울이 좋다. 겨울을 좋아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 수십 년이 걸리다니. 이래서 내가 연애를 못하나보다. 솔직하지 못해서. 맞아. 난 솔직하지 못해. 가을이 좋았던 이유는 많았다. 좋아하는 이유에 ‘좋아하는’ 대상이 묻혀버렸다(살면서 느낀 것을 문장으로 옮기면 너무 추상적이고 하나마나한 소리 같긴하다. 다 내 실력이 부족한 탓이겠지. 아쉬워). 쌍소리 나올 정도로 차가운 겨울이 좋음을 비로소 받아들였다. 이게 사는건가.


기분이 좋지 않거나 일이 꼬이고, 사람관계가 복잡해지고, 사고라 불릴 정도의 업무상 차질이 생겼을 때, 어디에 있건 ‘바닥’을 향해 내 머리 아낌없이 까부시겠다는 간절함으로, 털지 않고 흔들어 담배재를 떨어내며 스트레이트 두, 세 개비의 담배를 힘 없이 피워 버릴 때가 있다. 10년 째 같은 회사를 다니며 쌓은 경험치로 보건데 어떤 상황에서든 바닥은 언제나 있다. 다만 그 때가 언제인지, 바닥에 이른 정확한 접촉 시점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 그러다 자연스럽게 다시 올라간다는 것.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임으로 이것에서 위로받으면 안된다는 것. 시간이 모든것을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는 것. 고통의 원인이 아닌 고통 그 자체에 집중하기 때문에 인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하지만 그 순간이 너무 힘드니까 조금이라도 빨리 바닥을 확인하고 싶은 건 여전하다는 것. 이 현상에 대해서도 할 이야기가 많지만. 아무튼.


아무튼 모든 건 다 지나간다. 다만 더 큰 놈은 아직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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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문장이 나를 이곳에서 버티게 한다. 이 말을 직장 후배에게 한 번 해준 적이 있는데 제발 그런 얘기 하지 말라며, 지금도 힘들어 죽겠는데 더 큰 놈이 있으면 자기 죽는다고 제발 그런 이야기 하지 말라고 하더라. 그게 아니고 내 말은 말이야 하고 설명해 주려 했지만 그 친구 눈을 보고, 표정을 보고 그만두었다. 그래. 지금이 최악이야. 곧 좋아질꺼야 라고도 말하지 못했다. 그냥 알았어. 라고만 했다. 근데 정말 설명해주고 싶은데 말이야...


이 따위 저 따위 생각을 하며 회사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섰다. 문이 열려 타고 내릴 때 손에 든 스마트폰에서 얼굴을 들지 않는 편이다. 문 열린 엘리베이터 바닥을 보고 내 발 디딜 공간이 있는지 확인한 후 올라타거나 휙 돌아 계단을 이용한다. 가끔 운이 좋아 텅 빈 엘리베이터라면 문이 완전히 닫힌 걸 확인한 다음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생각도 접고, 양 어깨는 최대한 멀리 이완 시키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딱딱한 근육 조금 풀어주며 흐어으하아 마음껏 한숨을 쉬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호사를 누리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사내 인구밀도도 높고 각층 사람들의 이동 빈도도 상당히 높은 편이라 엘리베이터는 항상 누군가를 실은 채 운행중이다. 이 좁은 엘리베이터 바닥 만큼이나 요즘 내 속은 밴댕이 속이다. 딱히 요즘뿐일리가... 아무튼 요즘 매우 밴댕밴댕 하다가 사망할까 두렵다. 정말 암에 걸려 죽을 것 같다니까.


그런데 이 엘리베이터가 이번 달 부터 짝수층에서만 선다. 아. 짜증나. 에너지 절약한단다.


그리고 실외 계단에서 담배 피는 것도 지난 달부터 금지되었다. 홀수 층에서 일하는 내가 짝수 층에서만 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왔다갔다 하면서 1층 외부 주차장에서 담배를 피워야 한다. 아 진짜로...


그냥 위에서 누군가 '해!' 하면 '넵!' 하고 그 외 사람들은 '어?' 하며 레밍스 라이크 줄줄이 담배를 피러 1층 바닥으로 내려간다. 말을 너무 잘들어. 누군가는 이참에 금연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건강 생각해서 걸어다닌단다. 이 분들 언제부터 이렇게 긍정적이었는지. 이렇게 착하고 긍정적이다가 나라 잃으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 요즘 나라가 안으로 밖으로 탈탈 털릴 것 같아서 말이지. 아마도 이 착하고 긍정적인 사람들은 만약 나라가 털려 어떤 형식이 되었든 나라를 빼앗긴다면, 새 나라에서 새 국민으로 새 애국자되어 잘 살면 되지 할 테지. 나도 그럴려나? 누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개긴다고 했냐. 말 졸라 잘 듣더만. 내 말만 안들어. 짜증나게.


아 그리고 가끔 외부 교육일정이 잡혀 평소에 대화를 잘 나누지 못하던 동료들과 만나 이야기를 하다보면 뜻밖의 내 소식을 접하곤 한다. 대부분 나를 그 착하고 긍정적이며 끝까지 회사 다니고 시스템에 잘 적응하는 사람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입을 반쯤 흐아 벌리고 이걸 그냥 그렇다고 해야하나 아니면 아니라고 설명을 해주어야 하나 하다가 그냥 '저 그렇게 착한 사람 아니에요' 하고 만다. '돈 없어서 다니는 거에요' 라고. 그러면 그들의 반응은. '아닌데? 너 착한 새끼 맞는데? 이 재수없는 새끼야' 하는 연한 눈빛을 주고 받으며 다른 대화 주제로 얼른 넘어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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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착한 사람 아닌데요?


아무튼 그날도 그렇게 별 생각없이! 기분나쁜 오만 잡생각을 하며 8층에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를 6층에서 잡아 올라탔다. 처음 보는 여자가 한 명 타고 있었다. 안 쪽 구석에 기대어 서있어 나는 오른쪽 문 바로 뒤에 섰다. 담배, 라이터를 주머니 안에서 돌리며 만지며 하고 있는데, 그 때 소리가 났다.


'쿵'


'쿵'


'쿵'

 

뒤를 돌아보았다. 실례가 될 줄 알면서도 소심하게 뒤돌아 봤다. 심하게 구석에 서 있다 싶던 여자가 머리를 엘리베이터 벽에 박는 소리였다. 쿵 쿵 쿵.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처 박고 있어서 예상보다 길게 쳐다 볼 수 있었다. 음... 담배라도 하나 피고 가라고 권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니면 한 숨이라도 좀 쉬지 그래. 아니면 욕이라도 좀 하던가. 커피 한 잔?

 

담배라도 하나 피고 갈래? 한 숨이라도 쉬던가. 차라리 욕을 해버려. 이렇게 마음 속으로 말을 낮춰 말하는 대상은 정장 차림의 눈 질끈 감은 머리결 좋은 그 여자이기도 했고, 그녀와 비슷한 처지의 누구이기도, 그리고 11년 전? 12년 전?의 나이기도 했다.


'땡~'

 

1층에 도착했다. 나는 내려서 외부인 출입 금지 라고 써 있는 문 속으로 쑥 들어갔고, 그 여자는 로비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세상으로 걸어나갔다. 나갔겠지 뭐. 다시 돌아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말았다. 긴 복도를 걷다가 뭐하러 내려왔는지 의도적으로 까먹고 그냥 담배를 피러 밖으로 나갔다. 방금 그 여자가 밀고 나간 유리 현관문을 나도 열고 나갔다. 아침에 출근하며 보았던 안내지는 아직도 붙어 있었다.


[면 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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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 마련된 계곡에서나 경험해봄직할 바람이 불고, 하늘에서 비나 눈이 떨어지면 막아줄 것 하나 없는 흡연공간에서 담배불이 안 붙어 몇 번이나 부싯돌질 하다 필터에 침이 그윽하게 베일즈음에 겨우 불을 붙여 얕게 한 번 빨고 숨을 헐떡이며 내 병신 같은 면접의 역사를 하나씩 둘씩 떠올렸다. 그 여자에게 이야기 해주고 싶었다. 니가 망친 오늘의 면접. 그거 아무 것도 아니다. 아직 더 큰 놈은 오지 않았다니까...

 

놀리는 게 아니라, 그 더 큰 놈들을 쓰러트리면서 내가 여기 서 있다. 으하하. 지랄하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위로하는 방식이야. 혹시 너에게 도움이 될까봐서... 그럴 리 없겠지? 기분 나쁘다면 미안. 그런데 더 큰 놈이 있다는 건 자연스러운 거야. 시간이 멈추지 않는다면 말이지. 음. 여전히 기분 나쁘고 누가 있건 없건 머리를 벽에라도 쿵쿵쿵 하지 않으면 참지 못할 만큼 쪽 팔리고 화나고 막 그래? 그럼...

 

내 면접 이야기 한 번 들어 볼래? 그냥 함 들어봐. 뭐 얻으려고 하지말고;;

 


나의 면접 1. (순서상 1. 이 아니라 그냥 기억나는 순서대로)

 

가. 대상 기업 : 중견 기업 (대기업은 아니고 그 바닥에서 30년 정도 버티고 있는 회사)

 

나. 장소 : 거리는 적당하나 교통편이 그지 같음. 지하철 세 번 갈아타고 1시간 20분.

 

다. 형식 : 1:1 단독 면접 (무려 사장님이랑)

 

라. 면접비 : 없음.

 

부제 - 무난했던 나의 첫 경험. 과 비슷한 경험 한 번 더.

 

첫 번째 이야기는 졸업 전 교수님의 추천을 받아 들어갔다가 3개월도 안 되어 때려치고 나온 회사에서의 면접이야. 결론은 절대로 누가 추천, 소개해주는 곳에는 절대 입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야. 아빠나 엄마가 사장님이라면 괜찮아. 형이나 언니, 누나도 위험해. 물론 신입사원에 한해서. 신입사원 공채하는데 누가 누구를 필요로 하고, 그래서 누가 누구를 추천한다? 경력직이라면 어느 정도 말이 되는데 신입사원은 아닌 거지. 아무튼. 뭐. 그 당시 아는 게 있나. 시키는대로 했지.

 

교수님이 추천해주는 곳이라 뭔가 그럴듯한 곳인줄 알았는데 정말 그럴싸한 곳이었어. 나름 기반을 잘 닦은 괜찮은 중견기업이더라구. 꾸준하게 덩치 큰 매출액을 매년 끌어올리고 있었고, 8층 짜리 사옥도 있고, 쉽게 망할 기업은 아니었어. 쉽게 망하지 않는 기업이란 수익이 크게 나지 않더라도 돌아는 갈 수 있는 걸 말하는데, 뭐 돈이 잘 도는 곳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 이 터를 닦는데 인생을 건 할아버지 회사를 감히 다른 사람이 경영하게 할 수 없기에 족벌 경영을 하는 곳이었고, 그래서 직원들을 탕평하게 뽑고 있더라구. 회사 내 라인이 생성되지 않도록 적절하게 지역과 학교를 배분해서 직원을 뽑고 있었고 아마도 내가 다니던 학교의 학과가 순서가 되어 추천 요청이 있었나봐. 그렇겠지 뭐.

 

아무튼 그 회사에서의 면접은 기억이 전혀없어. 들어가서 아주 분위기 좋게 딱히 질문이랄 것도 없는 대화 형식의 면접이었을 뿐이었지. 경쟁률 1:1 면접.

 

그렇게 회사에 무난하게 들어가고 나니 바로 코피 터지더라. 입술은 그 다음주 쯤에 터졌고. 퇴근과 출근 사이의 시간이 대략 6~7시간 정도? 이 사이에 퇴근과 출근을 해야하고, 집에가서 씻고 밥도 먹어야 하며 가능하다면 화장실도 가야하고, 또... 아, 잠도 자야하고. 참, 회식도 하고 말야. 아참! 업무 시작 전에 회의를 하곤 했지. 이곳에서 처음 줄담배를 보고 배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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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인가 노예인가

 

특별한 재주나 아이템이 없는데 아주 수월하게 어서옵셔 하며 나를 뽑아주는 회사는 저질의 인력으로 어쨌든 수익을 꾸준하게 올릴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곳이라고 보면 될 꺼야. 이런 회사가 나쁜 곳일 수도 좋은 곳일 수도 있어. 하지만 이런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조건 좋지 않아.

 

하나 또 소개하자면 유통관련 회사에 입사한 적이 있는데 역시 비슷한 경우였어. 아주 무난한 면접. 심지어 내가 들어가는 공석이 과장이 하던 일이라는 거야. 그러니까 임금은 평사원에 준하며 직은 과장에 임명한다는 건데, 날 왜 이렇게 과대평가 하는거지? 도대체 내 이력서와 5분 짜리 면접에서 뭘 봤던 것일까? 그 회사 두 달 다니다가 나왔는데 하루 정도 쉰 것 같아. 복잡한 이야기인데 간단히 요약하자면 사고쳐서 짤린 과장 자리에 들어가 그것을 해결하는게 임무였는데 못해내면 언젠가는 독박쓰는 거였어. 뭐야 이게. 과대평가가 아니라 그 빵꾸 때울 놈이 필요했을 뿐이야. 이 역시 누군가의 소개로 들어간 곳이었어.

 

무난한 면접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거지. 일단 뭔가 시작이 쉬우면 한 번 쫄아보는 것도 괜찮아.


나의 면접 2. 

 

가. 대상 기업 : 대기업 (생각보다 졸라 큰 놈)

 

나. 장소 : 아 졸라 멀어. 지하철 1시간 40분.

 

다. 형식 : 그룹면접 (10여 명이 한 조로 총 네 개 조가 각 네 개의 포스트를 돌면서 진행)

 

라. 면접비 : 2만 원(권 문화상품권. 하아.)


부제 - 李

 

매우 유명한 기독교 기반(?) 회사였는데, 문제는 그 사실을 면접을 가서 알아챘다는 거야. 물론 그 회사가 기독교와 관련이 있다 정도는 알고 있었지. 그냥 바탕화면이나 아이콘이 십자가 이거나 뭐 좋은 성경 말씀 좀 있고 하는 정도겠지 설마 OS가 기독교 일리가 있겠어? 하고 그 먼 면접장을 자신만만하게 뚜벅뚜벅 찾아 들어갔어.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내가 속한 그룹이 가장 먼저 한 것은 자기소개였어. 종이를 한 장씩 주고 거기에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뭔가를 그리건 쓰건 해서 소개를 하라는 것이었는데, 그 뭐냐 순발력이라던가 창의력이라곤 지금껏 단 한 번도 발휘해 본 적이 없는, 내가! 하기엔 상당히 뻘쭘한 것이었지.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는 3분 짜리 자기소개를 그렇게 외웠건만. 아무튼 나는 뭘 그렸더라? 기억도 안 나네. 상당히 쪽 팔린 기억은 블락해서 스스로를 방어해주는 그런 고마운 시스템이 작동한 것 같기도 하고. 산을 그렸었던가? 아이고. 아무튼.

 

우리 그룹의 첫 번째 면접자가 시작을 했지.

 

“저는 성이 이씨 입니다.”


하면서 종이에 써 놓은 '李'를 들더라.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흥미가 생겨서 목을 좀 빼서 돌아봤지.

 

“여기서 子는 저 자신입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십자가 十 에 못 박히신 예수님 人입니다. 바로 이 모습이 저 자신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하느님을 모시는...”

 

아. 이.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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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 세 음절이 그렇게 딱딱딱 가슴 속에 맺혔던 적이 없지. 아이고. 잘못왔다. 나 여기서 뭐하나. 아무튼 저 분의 창의력은 대단하지? 아니면 그냥 다들 저 정도는 하는 건가? 그리고 다음 면접자도 소개를 하는데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모태신앙 어쩌고... 음.

 

그러다 내 순서가 되었는데 내가 그린 성의없는 나무였던가, 산이었던가 젠장할 그 종이 한 장을 무릎에 두고 차마 들지는 못하고 질문을 했어. 아닌가? 먼저 대충 설명을 하고 면접관이 뭔가 더 할 말은 없냐고 다시 물었던가? 하도 오래되서 기억이 잘 안나는데 아무튼 나는 그래서 질문을 하나 했어.

 

“저는 무교입니다. 먄약 제가 이 회사에 입사를 한다면 여기서 잘 적응하고 생활 할 수 있을까요?”

 

내 옆의 면접자가 꿈틀 하는 걸 느끼는 동시에 면접관 세 명은 고개를 숙이고 각자 그들 앞에 놓인 종이에 뭔가를 적기 시작하더라. 그리고 한 분이 계속 적으며 계속 종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 가능합니다. 전혀 문제 없습니다.”

 

그, 그래?

 

아무튼 그렇게 나머지 세 군데 포스트를 거쳐 2,3만 원 어치 문화상품권을 받아 터덜터덜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곳에서 전화는 오지 않았지.

 

분위기 파악 못하는 건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 없지만, 그래서 내가 연애를 못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구직자는 회사 분위기를 좀 파악하는 센스를 발휘하는 것도 쪽 팔림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할 지도 모른다는... 

 

나의 면접 3.

  

가. 대상 기업 : 대기업 (제대로 대기업) 

 

나. 장소 : 역시 멀다. 지하철 한 번 갈아타고 1시간 30분.

 

다. 형식 : 그룹면접 (다수 대 다수. 면접관 5 : 면접자 5)

 

라. 면접비 : 3만 원(현금. 땡큐)

 

부제 - 우리가 살고 있는...

 

기독교 기반의 회사도 아니고 누군가의 추천이나 소개를 받아 간 곳도 아니다. 대기업이다. 오전에 인적성 검사, 오후에 면접을 보는 온 하루가 걸리는 곳이었는데, 일단 오전에 인적성 검사하는데 진이 다 빠지더라. 지쳐버렸지. 군대가기 전에 하는 거랑 비슷한데 귀신을 본 적이 있는가? 아니요. 사회 부적응자라고 생각하는가? 아니요. 이유 없이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적이 있는가? 아니요. 이런 질문 수백 개를 읽고 답하는 건데, 다 하고 나왔더니 귀신을 본 것 같기도 하고 사회 부적응자가 된 것 같기도 하더라.

 

일단 나와서 그래도 한 고비 넘었다고 나 귀신 본 적 없다고 했다고 뿌듯해 하면서 담배 하나 맛나게 피고, 번쩍번쩍하는 구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밥이 무척 맛있더라. 한식, 양식 구분되있고 자율 배식에 우아. 맛있당. 여기 오면 계속 이거 먹는 건가?

 

점심을 먹고 나보다 먼저 입사했던 학교 동기를 불러 이것저것 면접에 대해서 물어보려는데 이 자식이 어제 술을 많이 마셨다며, 내가 잘 갖는 열등감일지 모르겠지만, 뭔가 좀 낮춰보는 듯한 사회인의 피곤한 눈매로 입을 열더라.

 

“야. 너 술 잘 못하지?”

 

“어. 나 술 안 좋아하잖아.”

 

“그럼 힘들어.”

 

“아 그래?”

 

그래. 그렇구나. 음. 그러고 그 친구는 들어갔고 나는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오후 5시까지 회사 홍보 영상을 보고 또 보고 하면서 기다렸어. 내 이름을 부르질 않아. 사람이 많기도 했고. 그러면서 또 진이 다 빠졌지. 담배 하나 피고 가글하고 편안하게 앉아있을 수나 있나. 초조하게 4시간을 기다리며 진이 다 빠져 그냥 집에 가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 즈음에 날 부르드라. 다섯 명 들어가는 단체면접이었는데 어쩜 그리 다들 생생하고, 이쁘고, 잘 생겼는지. 난 지금 완전 지쳤는데 이 친구들은 생생하다. 내가 봐도 이 친구들 열정이 있고, 적극적이다. 나는 다 지치고 아마도 머리 어딘가는 좀 떠있을 것 같기도 하고. 기다리느라 심심해서 담배를 하도 펴서 입안도 껄쩍찌근하고.

 

그렇게 기억나지 않는 의례적인 면접이 지나가고 있었다. 다들 나보다 훨씬 답을 잘했다. 말도 조리있고 힘있게, 이쁘고 설득력있게, 그렇게들 다 잘해나갔다. 어쩜... 그럴수록 나는 더 위축되고 더 쭈그러들었고. 거의 단답형의 질문이고 그랬다. 들어갈 때부터 아 난 또 안 되겠구나 했는데 면접이 시작되니 아 정말 안 되겠구나 싶더라구. 그냥 가만히 앉았다가 나오자. 자포자기. 다른 친구들은 다들 주거니 받거니 하고. 내 옆에서 면접을 봤던 이쁜 여인은 심지어 아이디어도 내놓았다. 당시 막 뜨고 있던 뭐지 그거? 방 만들어서 막 꾸미고 아바타 만들고 하던. 아 그거 뭐드라...  싸이월드! 그래. 그 아바타의 아이템을 회사 상품으로 도토리를 어쩌고 막 하고 막 이런 이야기를 막 하자 면접관들은 흐믓하게 끄덕끄덕. 나도 오아 이쁜데 똑똑하고 말도 잘하고. 아 난 정말 병신처럼 보이겠네. 하아. 그리고 뭔가 나한테 질문이 하나 들어왔는데 기억이 안나는거 보면 역시 병신 같은 답을 했음에 틀림이 없지.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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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면접이 끝나고. 하아. 마른 입술을 거친 혀로 적시며 머리를 숙이고 나갈 준비를 하는데 그런 내가 불쌍했는지? 저기 이즈딴지씨는 뭐 더 할 말 없어요? 하면서 면접관이 내게 추가 질문을 했다. 아니 그냥 이제는 좀 쉬고 싶어요.

 

“네. 없습니다.”

 

“흠. 그럼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은 뭔가요? 책 좋아한다고 써 있네. 좀 말해봐요.”

 

“네.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쓰레기 같은 세상’입니다.”

 

내 옆에 앉은 이쁜 여인이 예전의 그들과 비슷하게 움찔하는 걸 느꼈지. 내 앞의 세 면접관은 웃으며, 아무튼 다들 웃으며 끄덕끄덕 하더라고. 아마도 (ㅋㅋㅋ 아나 이색히가 진짜 ㅋㅋㅋ) 이거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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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 원제는 <side effects>이구요. 우디 알렌 글을 묶어놓은 산문집인데. 이게 아저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제목처럼 뭐 꼭 그런 게 아니라 이 양반들아, 아 정말. 하아... 재미있어? 잼나? 그럼 웃어야지. 에이. 정말. 그렇게 면접을 마치고 나갔어.

 

“수고하셨습니다.” 꾸벅.

 

그렇게 면접장을 나왔더니 같은 그룹을 이루었던 사람들이 안 가고 모여 있었다. '우리 이것도 인연인데 저녁이라도 먹고 헤어집시다'라고 잘생기고 진취적인 남자가 이야기 하고 있었어. 물론 나한테 하는 이야기는 아니고 어찌 네 명이 좀 둥글게 모여서 있었던 것 같기도 했고. 어색하게 그 동그라미를 스윽 지나가는데 그 이쁜 여인은 나를 좀 돌아보더라. 나를 보는 시선이 느껴졌어. 힐끔. 내가 들으면 어쩌나 하는 그런 힐끔. 에이 감히 어찌 내가. 그렇게 그들을 지나쳐 밖으로 세상으로 걸어 나왔어. 마지막 공채였고. 더 이상 접수한 원서도 없었고. 그렇게 그해 마지막 면접을 망쳤지. 날도 춥고, 통 넓은 양복바지가 바람에 이러저리 휘이휘이 다리를 감싸는데 어찌나 내 스스로가 못나보이던지 말이야. 담배재를 털지 않고 바람에 흔들어 떨어내며 힘 없이 담배 피는 걸 아마도 처음 해봤던 날이기도 했던것 같기도 하고.

 

나의 면접. 보너스. 

 

가. 대상 기업 : 애매한 기업

 

나. 장소 : 가깝다. 버스 타고 20분.

 

다. 형식 : 단독면접 (일 대 다수. 면접관 7이상? 졸라 많았음 : 면접자 1)

 

라. 면접비 : 3만 원(현금. 땡큐.)

 

먼저 자기 소개를 하고. 전공 관련 질문을 막 해대기 시작하는데, 반백수 생활 1년에, 전공과 전혀 상관 없는 곳에서 계약직으로 일을 하고 있다가, 그러니까 막 복사의 달인이 되려는데 면접보라고 해서 '아, 네' 하고 갔기 때문에. 전공에 대한 기억이 날리가 있나. 겨우겨우 최대한 틀린 답을 내놓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대답을 하고. 그리고 갑자기 영어 면접을 한단다. 여, 영어? 아... 누군가 내게 영어로 질문을 했다. 기억이 나지 않는 뭔가를 단문장으로 대답했다. 뭔가를 더 기다리는 눈치. 기억이 나는 마지막 나의 말은 'That’s all.’ 음.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

 

그리고 뭐 이런 저런 예의상 하는 시간을 보내고, 한 분이 내게 질문을 했어.

 

“이즈딴지 씨. 만약 당신에게 이 회사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이직을 제안하면 회사를 옮기시겠습니까?”

 

잉?

 

“네, 물론입니다.”

 

음... 그리고 이어지는 순서로 영어로 된 문서를 읽고 바로 해석해서 말하는 것을 하고 나니, 마무리에 접어들고 있었어.

 

“이즈딴지 씨. 아까 내 질문을 잘 이해 못한 것 같은데 다시 같은 질문 할게요. 당신이 이 회사에 입사를 했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 더 좋은 조건으로 이직 제안을 한다. 하면 회사를 옮길 건가요?”

 

아 정말...

 

“네. 만약 돈을 포함해서 더 좋은 조건을 제안하는 회사가 있다면 저는 바로 옮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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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말해봐

 

당연히 떨어졌다. 그리고 계약직을 하던 곳에서 계속 일을, 복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전화가 왔다.

 

 

“이즈딴지 씨?”

 

“넵.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지난번에 면접 보셨던 곳 기억하시죠? 그 회사입니다. 지금 현재 대기 1순위 이시거든요. 혹시 다른 곳에 취직하셨나요?”

 

“아뇨.”

 

“아. 네. 그럼 내일까지 어디어디 병원가서 신체검사 받아서 오세요.”

 

“네?”

 

“아. 한 분이 입사를 취소하셔서요. 신체검사서 받아 오시면 됩니다.”

 

“넵. 감사...”

 

합니다 하기도 전에 전화는 끊겼고. 아무튼 그래서. 나 이렇게 이곳에 들어왔어. 알고보니 얼굴 모르는 학교 1년 후배가 입사를 포기해서 내가 들어갈 자리가 생긴 것이고. 그래서 나는 동기들보다 입사일이 3일 느려.

 

면접. 아무튼 나의 면접은 이랬어. 면접 볼 필요도 없는 회사의 면접만 무난했고 나머지는 다 쿵쿵쿵 이었지.

 

그리고 10년이 지났네. 딱 10년. 이제 20여 일만 지나면 딱 10년.

 

뭔가 씁쓸해. 뭐가 문제일까. 나는 이곳에 들어오기까지 참 많이도 빙글빙글... 그리고 지금은 이곳에서 나가려고 발버둥 치고 있어. 아무도 모르게. 하는 거라곤 로또는 사는 거 말곤 현실적인 게 없긴 하지만.

 

지난주 목요일인가, 신입사원들이 우르르 사무실로 들어와 인사를 하더라. 빨리도 뽑았네 싶더라. 갑자기 이 친구들이 불쌍해지는거야. 얘들아 여기 장난 아니게 비합리적이고, 업무 강도 졸라 쌔고, 스트레스 만빵에다가, 10년 차인 난 말이지 정말 소리치고 싶은 거 손으로 막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야.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게, 그게 아니라니깐!


하지만, 

 

하지만, 이건 작은 놈이지. 더 큰 놈은 아직 안왔으니까. 일단은 정말 다행이야. 진심으로 축하해. 일단 최소한의 결핍은 사라져야 뭐라도 하지. 잠이 쏟아지면 어디서든 누워 잠을 자야 배고픈지 알고, 배를 채워야 옷차림이 얇다는 걸 알고, 두꺼운 옷을 걸치면 앉아 쉬거나 누워 잘 수 있는 지붕 덮인 공간이 없는 걸 알고...

 

그래. 돈 벌어야지. 그 곳이 어디든지. 여기라면 허접한 나지만, 그래도 니가 겪을 그 거지 같은 일 나도 겪어봐서 아니까(?) 하면서 공감 해줄게. 같이 욕해줄게. 아 씨바 그거 졸라 힘들지? 근데 나도 상황을 좋게 개선하지는 못해. 능력도 힘도 없으니까. 하지만 거지 같은 짓을 너희들에게 하지는 않을게.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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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물론 이곳이 최선은 아니야. 그럴수가 없지. 일단 이곳으로 직장이 확정된 너에게는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의 위로를 해줄 거야. 입사에 실패한 너에겐 (기회는 없겠지만)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의 부러움을 조금 보이고 화이팅을 해줄 것이고. 둘다 미안하니까.

 

나는 이렇게 지랄맞게 들어온 이곳에서 이번에는 이곳을 탈출하기 위해서 무단히도 스스로를 괴롭히고 말도 안되는 시도를 해보다 엎어지고 지랄도 좀하다가 돈도 까먹고 그랬지. 그러다 겁을 좀 먹었어. 그랬더니 이렇게 10년을 이 한 곳에 있었다.

 

아무튼 말야. 난 곧 떠날 꺼야. ‘곧’이 10년 후가 되면 20년 후가 되면 정말 난 망한 거겠지만 말이지. 언젠가는 반드시 떠날 꺼야. 떠날 꺼라고!!!! 이 쓰레기 같은 세상 난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음. 내가 여기서 이러면 안되지.

 

아참. 우르르 물려와서 인사한 너희들 중 한 명은 딱 내 부서 막내로 들어온단다. 아주 딱 망한 거야. 야근 졸라많아. 9시에 끝나는 야근인줄 알면 상처받아. 9시는 그냥 야근밥 딱 먹고 담배 피면 그냥 9시 되는 거야. 주말에도 가끔은? 출근 해야돼. 휴일근무수당 올리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장난 아니다. 그야말로 너의 인생에서 시간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게 해주는 곳이 될꺼야. 고...고맙지? 그리고 잘해야 본전 이라는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이 문장을 구사하게 될 꺼야. 깊이 있게. 잘하는 건 그냥 본전이야. 당연한 거라고. 잘못하면? 아주 좆때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야. 회사 생활 빨주노초파남보 아니다. 그레이 스케일이야. 흰색 회색 조금 더 어두운 회색 조금 더 어두운 회색 그리고 모든 값이 0인 검정색. 이렇게 구성되어 있단다. 아무런 ‘일’없이 그냥 ‘일’만 하는 날이면 정말 행복한 날인 거지. 어때. 이래도 들어올테냐? 그래. 들어와라. 어서와라. 반갑다. 아직 더 큰 놈은 오지 않았으니까 걱정말고, 일단 작은 놈 잡고 이단 힘내자. 화이팅!

 

아. 그리고 말 없이 주는 일 넙쭉넙쭉 하는 선 굵은 아직은 어린 친구가 하나 있는데 아침부터 인터넷 뱅킹을 하고 있는 거야. 어디 급하게 돈 보낼 데 있어? 묻자 아뇨. 학자금 대출 때문에요. 하더라구. 아. 씨바. 학자금 대출. 학자금 대출 상환 기간이 끝나 이율이 7%로 올라서 4% 대 대출로 갈아탔단다. 진짜 뭐냐 이게. 어? 이게 뭐야 진짜. 천천히 하라고 하며 나도 그 옆에 앉아버렸지. 클릭 몇 번 하니까 일단 학자금 대출 잔액은 0. 새로 받은 대출은 어떻게 갚으려구? 물으니 1년 짜리 정기적금 하는 게 있는데 그거랑 조금 더 모으면 1년 정도면 다 갚는단다. 허이구... 하며 등을 두들기자 멋적게 웃더라. 아. 씨. 그 표정을 보는데 왜 내가 미안한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래서 내일 족발 사주기로 했다. 그 친구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친구들 대충 모아서. 아씨. 내가 왜 그랬지? 하필 연말이라 송년회로 생각하더라. 돈 좀 깨지겠어. 아. 아닌데. 그냥 바, 밥 먹자고 한건데... 음. 그래. 내일은 그냥 뭐 막 먹고 막 마시자. 돈 좀 쓰지 뭐. 나 로또 될 건데 뭐. 그리고 떠날 건데 뭐. 있을 때 좀 쓰지 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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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보니 엄청 기네. 정말. 이게 다 외로워서 그런 거, 맞네, 맞어... 하아.

 

 

 

 


 

 이즈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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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