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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2. 16. 월요일
멀더요원











대부분의 물건은 사용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중고품이 되고 노화가 진행되어 그 자체의 가치가 계속 줄어들게 되어 있다. 아파트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집주인들은 점점 노후되는 자신들의 아파트를 '리모델링'해서 그 가치 또는 가격을 높이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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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델링 개념>


하지만, 리모델링의 비용과 대세 하락하는 최근의 부동산 시세를 감안하면, 집주인에게 리모델링은 그다지 수익성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상황에서도 아파트가 너무 낡아서 리모델링을 꼭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집주인들은 어떻게든 비용을 줄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고안해낸 방법이 '세대수 늘리기'인데, 리모델링을 통해 집이 몇채 더 생긴다면, 그걸 팔거나 임대해서 비용의 일부를 충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그동안 '안전' 등을 이유로, 건물 옆에 짓는 '수평증축'이나 건물 구조를 그대로 둔채 면적을 줄여서 세대를 늘리는 '세대분할'만을 허용해왔기 때문에, 부지면적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수평으로 증축하거나 집을 분할하면 집이 좁아지든가, 하여간 뭐든 좁아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세대수를 늘리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고, 따라서 기존 건물 옆으로가 아닌 기존 건물 위로 증축하는 '수직증축'을 허용해 달라는 민원이 이어졌다.

 

그리고, 지난 2013년 12월 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공동주택 리모델링시 '수직증축'을 허용하는 내용을 포함한 주택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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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경제>

 

이 법에 따라 15년 이상된 15층 이상의 경우 최대 3개층까지, 15층 미만은 2개층까지 수직증축이 가능하게 되었고 세대수도 '수평 또는 별도의 동으로 증축'하거나 세대를 '분할'하는 등의 방법으로만 10%까지 증가시킬 수 있었던 것을 수직증축을 통해 15%까지 증가시킬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4.1 부동산 대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는데, 이런 식으로라도 주택공급을 늘려 서민의 주거를 안정시키겠다는 정부의 노력이 엿보이...기는 커녕 ㅆㅂ 부동산 경기를 어떻게든 떠받쳐보겠다는 의도가 빤히 보이는..뭐 그런 것이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었다는 소식이 나오자 리모델링협회 및 각종 부동산 관련 찌라시 등 그동안 리모델링을 추진하던 쪽에서는 뭔가 대박이 터진 듯한 보도들을 마구 쏟아냈고, 주요 유사언론사들도 '국회가 모처럼 일했다'는 둥 부동산 공급, 부동산 가격상승에 대한 기대감 등을 떠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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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한 부동산 정책, 제도 등에 대해서는 다른데서도 많이 얘기할테니, 여기서는 '수직증축'에 관련된 공학적 부분에 대해서만 써보려 한다.

 

참고로, 일반인들이 '토목분야'와 '건축분야'를 묶어서 '토건산업'이라고들 하는데, 이게 일 자체가 비슷하고 같은 건설업체가 토목과 건축을 모두 하기 때문에 같아 보이지만, 주로 사회 기반시설분야인 '토목'과 민간시설분야인 '건축'은 공공과 민간이라는 측면에서 좀 다르기 때문에 이걸 싸잡아서 똑같이 취급하는 것은 약간은 부적절하다. 뭐, 최근에는 공공이고 민간이고 죄다 국가 운영을 길거리 약장수처럼 하는 인간들에게 놀아나고 있긴 하지만..ㅆㅂ..어쨌든 다르다.

 

아, 그리고 늘 그랬듯 이 글도 좀 길다. 대충 건너뛰면서 읽어보는 것도 좋다.

 

 

1.관련연구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시설물 가치의 감소는 불가피하기 때문에, 일정 시기가 지나면서 리모델링에 대한 수요가 자연스럽게 생기게 되었고 그 비용을 세대수 증가에 따라 '새로 이웃이 될 사람들'로부터 받아내기 위한 효과적 수단인 '수직증축'에 대한 요구는 계속 있어 왔다.

 

이러한 요구가 민원으로 계속 제기되는 와중에도 정부는 계속해서 수직증축을 반대해 왔는데, 그 주된 이유는 '구조적 안전성을 해친다'는 것과 리모델링이 '자산증식의 수단으로 왜곡될 수 있다'라는 것이었다. 너무나 상식적이게도 노후된 기존 건축물의 위에 건물을 더 짓겠다면 딱 보기에도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느낌일텐데, 관련업계 등 여기저기서 수직증축도 안전하니까 허가해 달라는 얘기들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이에 대해, 2010.12월 정부는 '공동주택 리모델링 세대증축 등의 타당성 연구'를 하게 된다. 아마도, 계속되는 민원에도 불구하고 불안하다는 느낌만으로 반대하는 것보다는 뭔가 확실한 연구자료를 갖고 얘기를 해야겠다고 판단한 듯하다. 어쨌든 연구결과 중 구조안전성 부분의 결론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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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에 버금가는 철거를 하면 구조물에 충격을 주게 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균열 등으로 인해 수명이 감소한다>

 

연구결과는 한마디로, 수직증축은 복잡하고 위험하니까 하지 마라..

 

물론, 구조안전성에 대해서는 전문가들간에도 입장 차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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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안전성에 대한 전문가의 입장 차이>

 

하지만, 정부는 이 연구결과에 따라 아파트 '수직증축에 대해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아마도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기억하는 정부로서 '안전'에 대해서만큼은 무조건 보수적으로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기 때문일 것이다.

 

 

2.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94년 10월 성수대교 붕괴사고를 겪은지 1년도 안된 95년 6월 29일에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502명이 사망하고, 6명이 실종되었으며 937명이 부상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현장은 현재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주상복합아파트가 지어져 있는 곳인데, 아마도 지금 30대 이상의 사람들은 다들 이 사고를 기억하겠지만, 이게 무슨 일이었는지도 모를 청소년이나 20대들도 많을 것이다...(최근의 역사를 드라마에서 말고, 어디서 가르치기나 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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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백화점의 주요 붕괴원인이 하도 많아서 일일히 나열하기도 어려운데 간단히 얘기하면, 원래 '4층으로 허가 받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5층으로 증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병신같은 '구조변경''부실시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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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를 부르는 모든 요소들의 집합 : 건축분야에서는 이게 이래도 되는건지 모르겠지만, 설계와 시공이 아닌 '공사감독'도 같은 회사에서 했군>

 

쉽게 말해, 구조물을 한층 더 올리기로 했으면 기둥을 키우는게 상식일텐데, 기둥을 오히려 더 줄이면서 철근도 빼는..심지어는 기둥 자체를 빼기도 하는, 뭐 그런 병신짓들의 연속이었는데..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역시 건축주의 '탐욕'이었다.

 

원래 삼풍백화점은 사무실 같은 '종합상가'로 설계되어 있었는데 건축주(삼풍건설산업)는 '백화점'으로 변경을 요구했고, 시공사(우성)는 건물 붕괴를 우려해 요구를 거부했다.

 

건축주는 계약을 파기했고, 자신들의 계열사를 불러 변경을 지시했을 뿐만 아니라 아예 1개층을 더 올려서 5층으로 공사를 시행했다.

 

이후, 각종 건축주에게 이익이 될 만한 각종 변경이 계속 발생되어 당초 설계에 반영되지 않았던 예상치도 못했던 물건들이 마구 올라가게 되었고, 결국 건물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붕괴되었다.

 

건물이 붕괴하기 이전에 이미 매우 심각한 균열과 등이 발견되었는데, 균열이 보이지 않도록 '땜빵'만을 하였고..위험 경고에 따라 경영진들은 현장을 빠져나갔다. 물론, 탐욕에 눈먼자들이 그러하듯 백화점은 영업을 계속하라고 지시하면서..

 

이 사건으로 기소된 사람은 25명인데, 건축주였던 삼풍그룹회장은 징역 7년 6개월을 선고받고, 형기를 어떻게 마쳤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출소후 자택에서 살다가 81세에 사망했다. (늙어 죽었군)

 

뇌물받았던 공무원들은 몇개월의 징역, 몇백만원의 벌금, 집행유예 정도를 선고받는 등 '사고의 규모'와 '처벌의 규모'에서 얼마나 정의가 이루어졌는지는 각자가 평가를 해야할 것이고...

 

이 사건 이후 전국의 모든 건물들에 대한 안전 평가를 했는데, 전체건물의 2%만이 보수공사가 없는 상태에서도 안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나머지 98%에 대해 보강공사가 이루어졌는지는 모르겠다..

 

 

3. 신도시 개발


1987년 6월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얻어냈고 대통령 선거를 하게 되었다.

 

당시 노태우의 공약중에는 '주택 200만호 건설'이라는 것도 있었는데, 당시 선거캠프 전문위원은 건설 가능한 물량이 '최대 150만호'라고 했지만, 노태우는 실제 가능성과 상관없이 선거란 원래 그런거라며, 어중간한 150만호 대신에 '200만호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역시 유신잔당들이 선거는 잘한다..좀 배워라 배워)

 

그리고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그 공약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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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년대 초반에 빠르게 만들어진 5개 신도시 : 분당, 산본, 일산, 중동, 평촌>

 

대통령의 임기내에 주택 200만호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은 각종 절차를 무시하며 매우 빠르게 진행되었다. (사실, 최근의 '4대강 사업'이 각종 절차를 가볍게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었던게 그냥 갑자기 그런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늘 그래 왔고 앞으로도 뭐 그다지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당시, 건설부장관은 1년에 과천을 2개 반씩 만들어, 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해서 아파트 투기를 막겠다고 했다. 물론, 그 바람에 노태우 집권 3년 만에 집값이 56% 가량 오르면서 주택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고...(어떤 병신들은 그래도 노무현때만 집값 올랐다고 하겠지)

 

어쨌거나, 그 공약을 무리하게 지키는 과정에서 누군가에게는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구조적으로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한꺼번에 신도시가 건설되면서 자재부족 현상이 벌어졌는데, 레미콘에 사용할 골재가 부족해 소금기가 있는 바닷모래를 사용하기도 하였고, 비슷한 시기에 노태우의 업적인 '중국 등 공산권 국가와의 북방외교'의 결실이었는지, 중국산 저질 시멘트와 부식된 철근도 수입되어 사용되었다. (철근의 경우 아주 약간의 부식은 오히려 구조적으로 유리할 수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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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91년 6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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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91년 6월 27일자>

 

(잠깐! 이 사진, 자세히 보자. 만약, 실제로 불량레미콘을 사용한 부분을 철거했다면 철거된 콘크리트 잔해를 사진으로 보여주는 것이 더 확실한 그림일 것이다. 하지만, 위 사진을 자세히 보면 1층 벽체 거푸집을 철근과 함께 쓰러뜨려 놓았을 뿐 실제로 엄청난 돈과 시간이 날아가는 철거를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런 사진에 속으면 안된다.)

 

공사를 빠르게 진행해야 하는 상황과 자재가 부족한 상황에서 현장에 도착한 자재에 대한 품질 검사를 하고 자시고 할 상황이 아니다보니 품질관리가 제대로 될리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동시에 건설공사가 벌어짐에 따라 숙련공이 아닌 그야말로 '막노가다 인부'가 공사에 참여하면서 부실은 더해졌다. (원래, 공사는 아무나 하려고 해서 그런거지, 숙련된 기술없이 아무나 막하는 그런게 아니다)


그렇게, 우리가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신도시는 건설되었다.

 

 

4. 과정

 

많은 법안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그러하듯, 이번 법안에 대한 얘기들이 하루 아침에 막 나오고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 법안에서 가장 중요한 '수직증축'은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리모델링협회 등을 비롯한 리모델링을 하려는 단체나 업계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던 것이었다.

 

그러던 중 2010년 12월에 위에서 언급한 연구결과가 나와 정부가 수직증축을 반대할 근거를 마련하자, 이에 대해 2011년 11월에 한국리모델링협회는 이 내용을 반박하는, 3층까지는 수직증축을 해도 문제없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마치 이 연구가 대한건축학회의 공식입장인 것처럼 발표가 되어 대한건축학회에서 이를 부인하는 공문을 국토해양부에 보냈는데, 대한건축학회에 따르면, '그 연구내용은 어떤 '건설사'에서 의뢰받아 '특정 리모델링 단지'에 대해 연구한 것이고, 그걸 일반화하는 것과는 별개다..'라는, 당시 국토해양부와 비슷한 입장이었다.

 

여기에 대해 또 어떤 부동산관련 찌라시에서는 이것에 대해 건축학회가 국토해양부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둥..하여간 리모델링을 하고 싶은 쪽에서 언론 플레이를 열심히들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2012년까지도 수직증축을 반대하던 국토교통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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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년 12월 27일까지는 분명히 허용하기 어렵다고 했잖어...

<http://www.mltm.go.kr/USR/policyTarget/m_24066/dtl.jsp?idx=474>

 

2013년 4월 1일, 박근혜정부의 부동산대책을 발표하면서 '수직증축에 대해 안전성이 확보되는 범위에서 신중히 결정하겠다..' 라며, 그동안의 입장을 바꾸게 된다.

 

요약하면, 2012년 12월 27일부터 2013년 4월 1일까지 몇 개월 사이에, '그동안 일관되게 허용하지 않던 수직증축'에 대한 국토부의 입장이 '당초 연구결과를 뒤집는 어떠한 과학적 연구'도 없는 상태에서, '허용할 수도 있다'는 쪽으로 바뀌었다.

 

아무런 연구나 그럴만한 이유도 없이 정부의 입장이 확 바뀌는 상황..우리는 이명박의 '4대강 사업'에서 이미 경험한 바 있다. 그런데 이명박 시절에도 바뀌지 않던 입장이 왜 갑자기 바뀐 걸까? (물론, 이명박은 4대강에 올인하느라 관심이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과연, 그 몇 개월 사이에 '수직증축 허용은 어려움''쉬움'으로 바뀌는 무언가가 '창조'되기라도 한걸까?

 

모르겠다.


 

5. 착각

 

우리는 '21세기니까...'라는 착각을 자주 한다.

 

어느 건물에 테러리스트가 나타나면 경찰은 어느새 건물 도면을 펼쳐놓고 작전을 구상하고, CSI 같은데서는 모든 실험이 몇분만에 뚝딱 결과를 내놓기도 하며, CCTV 영상을 확대하여 범인의 얼굴을 찾아낼 뿐만 아니라 심지어 가방 속에 뭐가 들었는지 3차원 영상으로 구현해내기도 하는 걸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그거 다 영화에서나 그런거다..현실에선 그런거..아직 없다. 21세기라고 해서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최첨단 기술이고, 뭐 대단한..그런걸 생각하고 있다면, 아마도 당신은 너무 일찍 태어난 것 같다..

 

보통의 경우, 최근 몇년 전에 준공한 공공시설물의 경우도 그 설계도면이 제대로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또한, 설계도면이 있다고 해서 그대로 시공이 되었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그런 경우 공사를 실제로 이렇게 저렇게 했다..를 표시한 준공도면을 찾게 되는데, 준공도면도 갖고 있지 않은 곳이 많다. 게다가..결정적으로 준공도면대로 시공이 되었을 것이라는 보장도 역시 없다.

 

그래서 당시 시공한 엔지니어나 감독한 사람을 찾아서 물어봐야 하는데, 그들을 찾기도 어렵고 찾아도 기억을 못하거나 믿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설계,시공,감리를 그래도 큰 회사들이 하고 국가공무원들이 관리하는 공공시설물의 경우도 이 정도인데, 90년대 초반의 200만호 건설 시기에 건설한 민간시설물이라면 과연 얼마나 잘 관리되었을지 모르겠다.

 

한마디로, 어떤 시설물이 그 도면대로 시공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착각'이다.

 

또한, 많은 엔지니어들 역시도 정밀안전진단을 하면 다 파악되는게 아니냐는 '착각'도 가끔 한다.

 

물론, 정밀 안전진단은 많은 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수직증축을 위해 하는 것이라면 다소 부족한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철근배근의 경우 탐사장비로 철근의 간격을 알아낼 수는 있으나 철근의 규격을 알 수는 없다.

 

그래서 몇개의 시료를 채취하여 확인을 하는데, 수직증축을 목표로 한다면, 아주 많은 시료를 채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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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근 비파괴 탐사하면 나오는 그림..저따구로 나오니 철근 규격을 알 수가 있나..>

 

구조물 기초 파일의 경우...이건 어떤 크기의, 어떤 재질의, 파일이 얼마만큼의 깊이까지, 어는 정도의 간격으로 박혀있는지 정확히 확인할 방법은 아직 없다.

 

이러한 경우 해당 구조 검토서에는 '발주처에서 제시한 준공도서에 따르면' 정도의 조건을 기술하여 자신들이 '면피'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런데, 이게 수직증축을 염두에 두고 하는 작업이라면..준공도서처럼 모두 제규격대로, 제위치에, 설계했던 그 재료로 만든 파일이 박혀 있다고 가정하는게 바람직한가? 아니면, 파일이 몇개나 빠져있다고 가정해야 할까? 그건 알 수가 없다.


요약하면, 안전진단을 하면 모든 것을 알아낼 것이라고 믿는 것도 역시 '착각'이다.

 

결론적으로, 많은 엔지니어들의 경험상 실제로 시공한 사람이 아니라면, 땅속은 파봐야 알고, 구조물은 깨봐야 안다는 것이 상식이다.


이 배경지식을 갖고 정부의 입장을 보자.


1) 정부는 신축 당시 구조도면이 없으면 기초파일 상태파악이 어렵기 때문에 수직증축을 허용하지 않겠다면서 신축당시의 구조도면 만을 인정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것은 앞서 얘기한대로, 도면이 있어도 도면대로 시공이 되었는지 확인이 불가능한 부분이 분명 있는데도 불구하고, 신축할때 도면이 있으면 그 도면대로 정확히 시공되었다고 '착각'하겠다는 얘기로 들린다.

 

2) 정부는 안전진단을 2번 할건데, 주민이 살고 있을때 육안검사, 비파괴검사 등의 1차 안전진단을 하고 주민이 이사한 후 내장재를 철거한 상태에서 2차 안전진단을 추가로 하겠다고 했다.


 

이것만 보면 안전진단을 2번이나 하니까 괜찮겠구나...라고 '착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1차 안전진단을 하고 "3개층까지 올려도 되겠습니다"..라고 해서 주민들이 다 이사갔는데..내장재 다 뜯어내고 2차 안전진단 했더니..구조물이 개판이라 1개층을 올리는 것도 어렵다고 하면..그럼 건축주들이 "아..그렇군요..안되겠네요..아쉽지만 할 수 없죠"하고 다시 들어와서 아무 일 없이 내장재 붙이고 벽지 바르고 살게 될까? ㅎㅎ


우리는 이미 온갖 수단을 동원해 '대운하 4대강 사업'을 저지른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2번의 안전진단을 통해 안전을 확보하겠다는 얘기는 왠지 2차 안전진단을 하게 될 누군가가 완공이 되기 전에 멕시코나 필리핀 어딘가에 거처를 새로 마련하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다.

 

뭐 어쨌거나 기초파일, 콘크리트, 철근 등이 도면대로 시공이 되어 있다고 가정하긴 했지만 안전진단을 2번이나 한 결과 수직증축이 가능하다고 '착각'된 어떤 아파트가 있다고 치더라도..위험요소는 또 있다.

  

최근 지하철, 대형구조물 등으로 인해 많이 낮아진 서울시 지하수위는 지반침하, 특히 부등침하를 유발할 수도 있으므로, 지반조건이 신축하던 때와 같을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그것 또한 '착각'이다.

 

그 밖에도, 911테러시 세계무역센터(WTC)는 폭발이후 발생한 '화재가 (단열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철골구조를 약화시켰다'는 점도 감안하면, 불량 철근으로 지어졌을지도 모를 건축물의 저층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어떻게 될지도 모르겠다.

 

 

6. 결론

 

만약, 90년대 초반의 200만호 건설 시기에, 파일 자재가 부족해서 파일을 좀 많이 빼먹은 기초공사 위에, 불량골재가 섞인 콘크리트를, 녹이 많이 슨 철근으로 보강한 어떤 아파트가 있는데, 그 주변에 지하철이 마구 들어서서 지하수위가 급격하게 낮아진 상태에서, 3개층 증축을 했다고 가정해보라. 그 주변을 지나고 싶으신가?

 

삼풍백화점은 무식한 건축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탐욕'에 모든 상황이 절묘하게 빨려 들어가서 발생한 사고다.

 

이번에 국토교통위원회를 통과한 주택법 개정안이, 아파트로 돈벌어 보려는 집주인 집단들의 '탐욕'의 시발점이 될 것 같은 느낌이다. 뭐가 어떻게 빨려들어갈지는 모르겠다.

 

물론, 예전에는 지금보다 더 높은 안전율을 가진 약간은 무식한 설계였기 때문에 기존 아파트가 실제 하중에 비해 '매우 크게' 시공되어 있을 수도 있고, 상가건물처럼 수십톤짜리 하중이 들어올 일은 별로 없다.

 

하지만, 어떤 안개가 짙게 낀 벼랑이 있다고 치면, 그 벼랑의 끝이 어딘지도 모르는 채로, 그 벼랑 끝으로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간 느낌이다..

 

한마디로, 이번 법안으로 인해 '건축물이 지금에 비해 덜 안전해질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법안은 국회에서 만드는 것이지만, 수직증축의 인허가는 시장, 군수, 구청장이 하게 된다. 따라서, 이 법안이 만들어진 후 발생하는 사고에 대한 모든 책임은 다 허가를 내 준 지자체장이 지게 될 것이다. 사고가 생긴다면 그 시기에 정부를 구성한 세력에게 책임을 물으려고도 할 것이다. 누군가는 노무현 때문이라고 하거나, 북한의 테러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 법안을 누가 열심히 추진했는지와 상관없이...

 

도대체, 어떤 인간이 개썅노무새끼가 이딴 법안을 추진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평촌동, 평안동, 귀인동, 호계1~3동, 범계동, 신촌동, 갈산동 등 90년대 초반에 지어진 아파트가 잔뜩 몰려있는 '안양동안을'을 지역구로 하시는 '심재철의원'은 다음번 선거때도 당선되실 것 같다..씨발

  

지난 2013년 4월 24일 방글라데시의 라나 플라자(Rana Plaza) 라는 건물이 붕괴되어 7월까지 사망자수 1129명이 집계되었다. 그 이전까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삼풍백화점의 기록을 넘어선 최악의 사고로 기록되었는데, 이 사건에서도 사고 발생 전부터 대피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출근하도록 지시한 놈들에 의해 피해가 매우 커진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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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탐욕과 모든 악조건들이 이 땅에서 다시 한번 '그랜드 크로스'를 이루는 날은 정말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날은 1994년에게 응답하라고 했더니, 1995년이 아무도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응답하는, 그런 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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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븐(se7en) 중 Greed, 탐욕. 어차피 인간의 탐욕은 끝도 없다(사진의 인물은 본 요원과 별로 비슷하지도 않은데 이 짤을 자꾸 쓰게 되네)>

 

 

추가


지금 저 위에 언급되었던 동네에 산다고 해서 혹시라도 지금 당장 긴장하고 그럴 필요는 별로 없을 것이다.

 

원래 설계라는게..하중의 불확실성, 현장시공의 불확실성 등을 감안해서 실제로 발생할 무게보다 훨씬 크게 해놓는게 보통이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구조물이 붕괴될 조짐은 한참 전에 미리 나타나기 때문에 피할 시간은 주어지게 마련이다.

 

아마도 수직증축을 추진하려는 인간들은 그걸 믿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참고자료

  

1. 의안정보시스템(주택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

 

2. 정책브리핑(실록 부동산정책 40년 "어중간하게 150만호가 뭡니까") 

 

3. 뉴스핌(리모델링 수직증축 문답 풀이 

 

4. 오마이뉴스('수직증축 불가'보고서 묵살...안전 강조한 대통령 맞나 

 

5. 공동주택 리모델링 세대증축 등의 타당성 연구(국토해양부, 2010.12)

 

6.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의 원인에 대한 재조명 (안홍섭 군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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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나이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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