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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염색공장에서 처음 만났던 친구와 같은 공장에 다닌다. 지금도 나쁘진 않지만 예전엔 훨씬 괜찮은 녀석이었다. 물론 장점이 없는 사람은 없다. 단점이 장점을 가리거나 시대와 장소에 맞지 않는 장점을 가진 사람이 있을 뿐이다.


밤을 새는 야간조 근무 때 동갑내기라는 이유만으로 말을 트고 카페인을 나눴다. 주어진 생산량만 맞추면 주간 근무보다는 시간 여유가 있었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공통점으로 가까워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공장에서 주야간 교대를 해야 하는 평범한 가정사를 알게 되었다.


흔한 이야기였다. 아버지가 빚을 남기고 일찍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형제들에 서운한 감정이 있고, 빚을 갚기 위해 형은 남의 땅을 빌려 몸이 으스러지도록 일해야 했다. 몸이 부서져라 일하던 사람들은 영양 상태, 적절한 휴식, 유전, 관절 내구도에 따른 개인차가 존재하지만 결국 몸이 부서진다. 그에 대한 마음의 빚으로 나중에 어머니와 할머니를 형 대신 모셨다.


사람을 계산하지 않고도 친해지는 시기의 막바지였다. 일 년 조금 후 주야간을 벗어나겠다며 친구가 회사를 옮긴 다음에도 인연을 이어갔다.


친구의 고종 사촌동생이 알만한 연예인이었다. 팬들이 보내온 선물들이 처치 곤란했다. 다른 친척들은 은근히 나눔을 바라는 눈치를 보였다. 원래 잘사는 집이니 찾아가면 후한 인심을 쓴다. 그게 불편해서 자신의 형제들은 고모님 댁을 찾아가지 않는다고 했다.


비빌 언덕이나 바람막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었다. 그런 친척이라도 있으면 삶이 조금 덜 고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는 낫지만 높은 분들이 보기에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경제 형편이었다. 자신의 삶과 친척의 부를 분리하는 모습에 잠깐 든 마음이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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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좀 더 쌓여 가족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어머니가 삶으로 보여준 훈육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다시 조금 부끄러웠다. 그래도 출발선이 훨씬 뒤쪽에 있었던 것 치고는 티 안내고 잘 사는 중이라고 스스로를 다독거렸다.


친구가 결혼식 사회를 부탁해왔다. 십 만원을 주고 예식장에서 주례를 샀다. 신혼여행은 강원도로 해서 해안로를 따라 처가를 다녀오는 것으로 했다. 입덧하는 아내를 데리고 나타나 AS를 요구했다. 아기가 먹고 싶어 한다는 꽃게 찜을 먹였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다니던 공장을 그만두었다. 임금이 연봉성과제로 바뀐 공장에서 나이 먹은 노동자들의 미래를 보았다. 아이들을 키워낼 자신이 없다고 했다. 장사에 도전했다. 슈퍼를 시작한 처음 한 달은 정신이 없었다. 뭐든 처음은 힘들고 버거운 법이다. 간난아이와 아이엄마가 힘들어했다. 큰아이는 어머님이 돌봐 주기로 했다.


그 즈음 나도 염색공장을 그만두고 백수가 되었다. 잠시 도움을 주기로 했다. 작은 구멍가게지만 일이 많았다. 쌀 배달을 하고, 서툴고 바쁜 부부를 대신해서 우는 아이의 기저귀를 확인했다. 부부가 일을 얼추 익히고 시 외곽으로 가게를 옮겼다. 어느 업종이나 초보자에게 친절하지 않다. 처음 인수한 가게는 들이는 품에 비해 매출이 없었다. 지나고 보니 인수할 때 지불한 물품 대금에 비해 빈 상자가 많았다. 수업료가 좀 쌨다.


한 달 조금 일을 도와주면서 나는 장사에 재능도 적성도 없음을 깨달았다. 친구에게 끝없이 이익률을 따져야하는 일을 하지만 십 원짜리는 되지 말라는 당부을 남겼다. 다시 각자의 삶을 살았다. 간간히 만나고 밥을 먹고 넋두리와 위로를 주고받았다. 하층민의 삶이 별반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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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아침 여섯시에 가게 문을 열고 밤 열두시 넘어 셔터를 내렸다. 운이 좋아서 먹고 살 만큼은 장사가 됐다. 망해서 길바닥으로 내려앉는다는 두려움은 없었던 것인지 그 사이 애를 하나 더 낳았다. 안산시에서는 세 자녀 가족에게 공영주차장 세 시간 무료 등의 혜택을 준다. 전기세도 조금 깎아준다던가


365일 가게 문을 닫는 날 없이 십여 년을 보냈다. 다행이 망하지 않았고 사치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교육비정도는 모았다고 했다. 운이 좋았다. 그보다 열심히 살아도 운이 없으면 무너지고 재도전의 기회를 얻지 못하기도 한다. 스스로도 작지만 시작에 비해 성공했다고 느낀 것 같다. 성공의 원인으로 인식하는 습관은 공고해진다. 상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상인은 이익으로 세상을 보고 타인의 행동 원인을 이익에서 찾는다.


아이들 훈육도 상인의 방법이다. 도덕과 종교로 훈육하는 사람들과는 다르다. 무언가를 원하는 아이들의 요구에 거래조건 혹은 단서가 붙는다. 아이들은 공짜는 없다는 걸 배우고 무언가를 얻기 위해 다른 무언가를 제공해야한다는 걸 체득한다. 어머님의 훈육방식이었던 근면 헌신과는 조금 다르다.


어느 날부터 식구들이 잠든 집에 들어가는 순간과 나오는 시간이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행복해지기 노력했는데 힘든 만큼 행복과는 다른 방향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는 고민을 했다. 행복한 고민이다. 절대빈곤에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은 순간에 급급할 뿐 존재에 대한 고민을 하지 못한다. 국가가 일정규모의 경제력을 달성해야 민주주의 사회로 전환될 수 있는 것처럼 개인도 일정규모의 경제력을 갖추어야 삶의 질을 고민한다.


몇 년전 이제 돈을 조금 덜 벌더라도 주말이 있고 여유가 있는 삶을 갖고 싶다는 말에 그러라고 응원했다. 기왕 사는 거 조금 더 행복해지는 편이 좋다. 슈퍼를 정리했다. 일자리를 알아 보다 십 몇 년 전보다 열악해진 노동조건에 조금 당황했다. 조금 더 눈을 낮추고 대체로 주말은 보장되는 공장에 입사했다.


십여년간 열심히 일해서 놀고먹을 만큼은 아니지만 조금 덜 벌어도 될 만큼의 경제력은 갖췄다. 그 기간 동안 나는 경제관념을 바꿨다. 절대빈곤에 가깝던 시절의 기억을 지우지 못했다. 기준이 높아지지 않으니 욕심을 많이 낼 필요가 없다. 그래도 살기위해서, 기왕 남의 밑에서 돈을 벌어야 할 거면 함께 다니는 것도 좋지 않느냐는 말을 들었다. 나쁘지 않았다.


서로가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처음 모습에서 아주 변하지도 않았고, 용납하지 못 할 정도로 변하지도 않았다. 서로에게 내려앉은 시간이 서로의 변화를 인정하게 했다. 녀석은 부동산으로 자본소득을 창출하라는 모습을 구지 내세우지 않고, 나는 모르는척 한다. 자신의 경제관념으로 이해하지 못할 일을 수년간 하던 나를 제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하려한다. 서로의 선을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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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노무직이지만 월급을 받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생활은 평화롭다. 함께 일하는 미래가 없는 노인들은 과거를 회상하며 산다. 삶이 고정되니 생각이 고정된다. 고정된 생각은 마모된 인식이 주는 마취와 같다. 삶이 어디로 흘러갈지 알지 못한다. 알고 싶어 하는 것 같지도 않다.


새삼 스스로가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대체 불가능한 사람은 없다. 자연은 빈자리를 그냥 두지 않는다. 사람 사는 세상도 그렇다. 전화를 받았다. 힘든 일을 그만두고 새로 생기는 재건축조합의 일을 하며 배워보라는 권유였다. 며칠을 생각하다 거절했다.


평화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기저귀를 갈아주던 친구의 둘째 아이는 육학년이 되었다. 잔업이 없는 어느 날 짐이 많은 하교길에 도움을 청했다. 한 차로 출퇴근을 하다 보니 함께 움직인다. 학교가 있는 마을 아파트 앞 상가건물 과일가게가 문이 닫혀있었다.


둘 다 시선이 그곳에 머물렀다. 아는 눈치다. 집 사람이 다니는 공장을 함께 다니는 분이 그 아파트에 산다. 과일 가게의 남자는 술만 먹으면 여자를 때린다. 선글라스로 멍 자국을 가리고 문을 열 때도 있지만 심하게 맞고 나면 문을 열지 않는다고 했다.


많이 맞았나 보다는 내말에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친구가 어떻게 알았냐며 화들짝 놀란다. 그리고 좀 더 자세한 사연을 들었다. 과일가게 여자에게 딸이 있었고, 그 아이는 중학생이 된 친구의 큰 딸아이와 같은 반이었다. 이혼한 엄마와 살던 딸은 남자의 폭력이 점점 심해져서 다시 친 아빠에게로 보내졌다며 한숨을 쉬며 질문을 던진다. 왜 저러고 살까?


한숨은 엄마와 자라지 못하고 아빠에게 간 딸 아이 친구에 대한 감정이입이다. 가족과 일가친척과 친구에서 딸아이 친구까지는 확장되는 공동체 의식을 느낀다. 그 마음이 민족과 인종을 넘어 확장되는 사람들도 있겠지. 아빠에게 가서도 평탄하기기 쉽지 않을 것을 미루어 짐작하기에 한숨이 진하다. 나는 기댈 곳 없는 소년 소녀에게 본능적으로 마음이 쏠린다. 일단 질문을 받았으니 대답을 한다.


남자는 술을 안 먹으면 얌전하다고 하니 낮은 자존감을 술로 보상 받는 것 같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폭발하는 공격성을 위험부담이 적은 상대에게 향한다. 두 사람 사연이 어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처음은 존재했겠지. 여자를 처음 때리던 날, 여자가 처음 맞던 날, 단호하지 못 했겠지. 한번이 두 번 되고 두 사람이 그렇게 상호작용을 하면서 조금씩 심해졌겠지. 어쩌면 여자에게 더 갈 곳이 없는 지도 모르고, 여자 아이가 있다니 새 엄마가 천사가 아니라면 엄마 인생이 유전되겠지.


삶이 버거운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지켜주거나 바꿔줄 무언가를 의지하고자 한다. 결핍된 환경에서 여자아이들은 바람막이가 되어줄 남자를 찾겠지. 일찍부터.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인식이 덜 여문 상태에서 하는 선택이 성공적일 확률이 좀 더 적겠지. 그런 아이들을 많이 보았다. 그래도 그 아이에게 운이 조금 더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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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다 보니 마음만 있는 선의다. 현실적으로는 표현하지 않는 악의와 다를 바가 없다. 무력감이 쓰다. 면죄부를 사듯 소액기부를 하고, 약자에게 좀 더 관대할 것 같은 정치인에게 기표를 한다 해도 씁쓸함이 가시질 않는다. 그래도, 별 수 있나. 팔 닿는 만큼 챙기고 사는 수 밖에.






범우

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