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머리가 나빠서 영어를 못하는 게 아니다


지금 현재의 나는 영어를 그리 잘한다고 말할 형편이 못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터지기 직전에 캐나다 이민을 약간 진지하게 고려해본 적이 있는데 캐나다 대사관 홈페이지 들어갔다가 "야, 내가 영어 공부 안한 지가 오래되긴 오래 됐구나." 하고 쓴웃음을 지어야 했다. 모국어도 십 년 넘게 안 쓰면 잊어버리기 마련인데 십 년 넘게 영어 공부도 안 하고 쓸 일도 없었으니 영어 능력이 쇠퇴한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렇지만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어떻게 해야 영어가 되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만약 다시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가급적 안 오기를 바라지만) 예전에 했던 방식으로 차근차근 공부하면 된다. 넉넉잡고 육 개월이면 다시 예전 실력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 역시 대부분의 다른 대한민국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학교에서 영어를 배웠고 꽤 잘하는 축에 속했지만, 그렇게 배운 영어가 미국인과 말하는데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충격을 받은 바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를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영어가 어려워서도 아니고 본인들이 머리가 나쁘거나 노력이 부족한 탓도 아니다. 학교 교육이 공부를 가장한 삽질이기 때문이다.



toeic.jpg



요즘에는 초등학교에서도 영어를 가르치는 모양인데, 아무튼 중고등학교 6년간 정규 교육을 받는다고 가정하자. 올바른 학습법으로 공부한다면 6년이라는 시간은 통역사를 배출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그 긴 시간을 실제 영어와는 무관한 문법이나 배우면서 허비하니 아무리 공부해도 영어가 안 되는 것이다. 과거에 비해 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학교 영어는 거기서 거기이다. 지금도 토익책 들고 고민하는 대학생들 주변에서 숱하게 본다. 본질적으로 바뀐 것이 없다.


일단 이 글에서 나는 직접 경험한 영어 학습법을 알려주고자 한다. 물론 외국어를 배우는 가장 빠른 방법은 외국인들과 생활하는 것이겠지만 그럴 형편이 못 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그렇다고 좌절할 필요 없다. 요즘에는 시중에 좋은 교재가 많아서 그것만 활용해도 얼마든지 영어를 잘 할 수 있다. 


내가 읽어본 가운데 영문법을 잘 정리한 책들이 몇 개 있다. 우선 '영어 약장수 PCMI영문법'이라는 책이 있는데, 나의 영어관을 근본부터 바꿔놓은 좋은 책이다. 아쉽게도 절판된지가 오래 돼서 시중에서 구하기 힘들 것이다. 예전에 영어 때문에 고민하던 학생에게 책을 줬는데 그 뒤로 서점에서 안 팔아서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다. 이 책이 절판되었다는 것이 한국 영어교육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의 내용은 필요할 때 하나씩 소개하기로 한다.


또다른 책은 '애로우 잉글리시'라는 책이다. 영어 약장수는 언어습득 이론에 보다 많은 비중을 두고 있는데 비해 이 책은(시리즈이다) 정말 실전 영문법 책으로 손색이 없다. 그리고 Swan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understanding and using English grammar'시리즈도 괜찮다. 이 책에서 정리한 조동사 활용표를 보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 이렇게 쉬운 조동사를 왜 그렇게 어렵게 공부했지?


영어가 원래 쉬운 언어는 아니었다. 19세기만 해도 대단히 문법적으로 복잡한 구조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영어가 국제 공용어의 지위를 차지하면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영어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불필요한 것들이 사라지고 복잡한 문법이 단순화되었다고 한다. 물론 영국영어는 이보다 더 보수적이긴 한데, 어차피 영국 이민 갈 생각 아니면 우리가 현실적으로 접하는 영어의 대부분은 미국식 영어이다. 간단한 길을 놔두고 19세기 문법 공부시키는 책은 이제 기억에서 지워버리길 바란다.



Fault와 Mistake는 다르다



캠브리지.jpg



일단 영어공부를 시작하겠다고 마음 먹었으면 제일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 "Cambridge advanced Learner's Dictionary" 영영 사전이다. 기존의 영한사전은 그냥 버리든지, 아니면 낮잠 잘 때 베개로 쓰든지 알아서 하고 반드시 저 사전을 구입하라. 대한민국에서 구할 수 있는 최고의 영어사전이다. 한국인들의 영어실력이 늘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는 무성의한 영한사전도 제법 큰 몫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영어 왕왕왕초보라면 사전 이름에 advanced가 붙지 않은 사전으로 시작해도 좋다. 설명이 좀 더 간단하고 쉽게 되어 있다. 위의 영영사전은 유료 앱으로도 나와있어 스마트폰에서 사용할 수 있다. - 편집자 주)


fault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으면 대략 이런 식으로 뜬다. '잘못, 책임, 결함, 흠, 고장' 조금 큰 사전을 찾아보면 이런 뜻도 나온다. '테니스에서 서브를 네트에 맞추는 것', '사냥개가 냄새를 잃어버린 것' 누구나 이렇게 줄줄이 나오는 뜻 가운데 어떤 뜻으로 해석해야 하는지 몰라 당황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기존의 영한사전이란 영어 단어와 비슷한 한국어 단어를 단순히 나열해놓은 수준에 불과하다. 기초 수준의 어휘를 제외하고는 영어단어 가운데 우리말로 완벽히 번역할 수 있는 단어는 없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그러니까 최대한 비슷한 어휘를 긁어모아놓고 사전이라고 팔아먹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종종 'fault'가 무슨 뜻이냐 하고 물어보면 실수요라고 답한다. 그럼 mistake는 뭐냐? 하고 물어보면 그것도 실수요라고 대답한다. 둘에 어떤 차이가 있냐고 물어보면 그때부터는 당황해하면서 웃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식의 사전은 없는 것보다 조금 나은 정도라 할 수 있다.



fault.JPG

출처 - cambridge.org


fault를 캠브리지 사전으로 찾으면 이런 설명이 나온다. '욕먹어 마땅한 정도의 실수(mistake)' 이거 한 방이면 모든 게 정리된다. mistake는 욕먹을 필요까지는 없는 가벼운 실수를 말하지만 fault는 좀 엄중한 실수이다. It's my fault.를 써야 할 상황에서 oh, my mistake.라고 말하면 지탄을 받게 된다. 본인은 영문을 몰라 하겠지만.


한국에서 접할 수 있는 왠만한 단어는 다 수록되었고 모두 저런 식으로 기본 개념을 설명해주고 있다. 가격도 내가 구입했을 때 삼만팔천원인가 줬던 걸로 기억한다. 좀 올랐더라도 돈 값어치 충분히 하고도 남는 좋은 사전이다.



듣기는 훈련이다


사전이 준비되었으면 이제 본격적으로 영어의 세계에 빠져들어보자. 제일 먼저 해야할 것은 듣기이다. 세상의 모든 언어는 본질적으로 음성언어이다. 문자는 음성을 보조하는 수단이지 음성을 대체하는 수단이 아니다. 당연히 모든 어학의 출발은 듣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간 우리나라 학교 영어교육은 희한하게 듣기만 빼놓고 나머지 모두를 가르쳐왔다. 몰라도 되는 세세한 문법은 깨알처럼 세밀하게 가르치면서도 정작 가장 기본적으로 해야할 듣기만큼은 소홀히했다.


그럼 무작정 듣기만 하면 되느냐. 당연히 아니다. 아무 내용도 모르는 것을 그냥 듣고만 있으면 곧바로 우리의 뇌는 그것을 소음으로 인식해버린다. 영어 듣기 한답시고 하루 종일 AFKN 틀어놓고 살던 영문과 후배가 하나 있었는데 영어는 안 늘고, 그냥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해온 태권도로 먹고 산다. 듣기는 체계적으로 해야한다. 


근처에 좋은 청취학원이 없는 경우에는 시중에 있는 영어 듣기 교재를 구입해야 한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나같은 경우는 처음부터 CNN뉴스로 시작했는데 정말 척추뼈가 오그라드는 느낌이 들었다. 요즘에는 시중에 있는 교재들이 난이도별로 잘 구비되어 있으니 그 중에서 자기 수준에 맞는 난이도를 택하면 된다. 인터넷을 통해 AFKN 청취 강좌를 하는 사이트도 있던데 가격도 저렴하고 할만 하다. 듣기도 토익 단문 듣기처럼 두어 문장 정도 말하는 짧은 듣기는 별 효과가 없다. 적어도 일분 정도 나불대는 내용을 들어야 듣기라 할 수 있다. 짧은 문장을 들으면 무의식중에 우리의 뇌는 그것을 한국어로 번역하려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 문장 듣고 생각하고 한 문장 듣고 생각하고 하는 방법은 별로 도움이 안 된다.



dictation.jpg



가장 효율적으로 듣기를 하는 방법은 받아쓰기이다. 시중의 청취학원을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가급적이면 본인이 테이프와 스크립트를 준비하고 직접 받아쓰기를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영어 받아쓰기의 요령은 다음과 같다.


우선 일 분 정도 되는 길이의 기사 한 꼭지를 그냥 듣는다.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처음에는 무의식 중에 들리는 내용을 우리 말로 번역하려 할 것이지만, 쉴틈 없이 연이어 쏟아져나오는 속사포에 그 습관은 허물어지게 된다. 끝까지 한 번 들었으면 무슨 내용을 들었는지 정리해보고 한 번 더 듣는다. 이런 식으로 대략 세 번 정도 전체적으로 듣는다. 그리고 이제는 한 문장씩 들으면서 받아쓰기를 한다. 중간에 잘 못알아듣는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만 반복해서 듣는 것은 무방하다. 나중에 깨달을 것이다. 어차피 모르는 것은 백 번을 들어도 모른다는 것을. 정 안 들리는 부분이 있으면 비워놓지 말고 자신이 들은 대로 한글로라도 적어놓아라. 내가 들은 발음과 실제 발음이 어떻게 다른지 확인하는 것도 중요한 공부이다. 이렇게 끝까지 받아쓰기를 하면 아마 녹초가 되어 있을 것이지만, 힘내서 이번에는 스크립트를 읽어보면서 내가 받아쓴 것과 실제 말한 내용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확인해본다. 


끝까지 안 들렸던 부분은 직접 읽어보면서 머리 속에 새겨놓는다. 억지로 외우려고 할 필요 없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보면 저절로 습득된다. 나같은 경우는 아무리 들어도 'within crisis of'로 들리는 구절이 있어서 '위기 안에서? 이게 뭔 말이야?'하고 이상해 했다가 나중에 확인해보니 'with increase of(증가 추세에)'라는 것을 알고 with와 다음 단어의 접두사 in-을 그냥 한 단어처럼 붙여서 읽어버리는구나 하고 깨달았던 것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이렇게 검토가 끝났으면 이번에는 다시 테이프를 틀고 스크립트를 보며 똑같이 따라 읽는다. 읽기도 세 번 정도 반복하는 것이 적당하다. 읽기도 중요한 게 이렇게만 읽기 훈련 해도 나중에 대화할 때 거의 저절로 말이 나오다시피 입이 열리는 효과가 있다. 이 모든 과정은 대략 한 시간 정도 소요되는 것이 적절하다. 이게 꽤 힘든 훈련이어서 처음부터 의욕만 앞서서 긴 시간을 투자하면 얼마 못가 포기하게 된다. 만약 한 시간보다 짧게 끝났다면 본인 수준보다 쉬운 교재를 택한 것이다. 좀 난이도를 올릴 필요가 있다. 한 시간에는 턱도 없다면 의욕이 너무 앞선 것이다. 난이도 낮춰라.


영어는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훈련하는 것이다. 트레이닝의 개념으로 접근해서 기능을 익힌다는 마음으로 반복훈련해야지 공부처럼 책 파고들면 성공할 수 없다. 박지성 자서전을 백날 읽어봐야 한 시간 동안 공 차는 것보다 축구 실력이 늘지 않는다. 한 문장이라도 더 듣고 읽어봐야 영어가 느는 것이다. 위와 같은 방법으로 몇 달 훈련하다보면 어느 순간 길에서 들리는 영어 광고 같은 것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는데 똑똑히 들리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 현상이 발생하면 본인의 영어 내공이 쌓이고 있다는 증거로 여기면 된다. 육개월 정도 훈련하면 미국인과 대화하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을 것이고, 일 년 정도 하게 되면 나처럼, 뭐 내가 통역사 될 것도 아닌데 영어공부 더 할 필요 있나? 이런 생각이 들게 될 것이다.


듣기와 함께 읽기도 병행해야 한다. 아무래도 받아쓰기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많은 단어를 습득하고 문장을 접하기 위해서는 읽기를 병행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읽기의 요령은 다음 글에서 말하고자 한다.






도비공


편집 : 딴지일보 인지니어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