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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응 기간이 얼추 끝났다. 어딘가에 소속되든 새롭게 사회화 과정을 거치게 마련이다. 이번 직장도 그랬다. 단순 노동이라지만 업무의 흐름을 인지하고 흐름에 뒤처지지 않게 숙련도를 올렸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성향과 관계를 파악해야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와 위치도 안착시켰다.


그 과정이 어렵고 힘들면 대체적으로 대우가 좋다. 대우가 좋은 조직은 구성원들의 충성도가 높다. 사회화 과정의 난이도가 높을수록 충성도가 높다는 연구도 있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인과관계를 받아드리고 싶은 보통의 인지체계는 보상과 충성의 선순환을 받아드린다.


조직 충성도가 높은 사람들은 사회화과정에서 입력된 충성심을 길게 가져간다. 퇴직한 조직구성원들을 임의적인 조직으로 묶어 충성심을 더 길게 유지시키기도 한다. 충성의 대상으로 조직과 권력을 혼동하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그렇다. 혈연집단이나 종교집단보다 느슨할 것 같은 이익집단에서도 그런 현상을 발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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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하위계층이 모여 있는 공장에서 대단한 재사회화 과정이 필요하진 않다. 상대적으로 박한 급여가 사람들을 걸러내고, 급여에 비해 노동 강도가 알차다. 당연히 서로에 대한 소속감이 느슨하다. 그 와중에 완장질로 자존감을 고양시키고자 하는 사람이 꼭 있다. 상급자에게 허리가 유연 할수록 만만한 하급자에게 완장질이 심해지는 걸 보면 손상된 자존감을 보상받고자 하는 욕구로 보인다.


잠깐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보기 힘든 건설현장 노동자들처럼 성으로 서로를 지칭하는 사람들을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들을 생일을 핑계로 불러 모아 순대 국밥을 먹었다. 두 달에 한 번 정도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각출로 비싸지 않은 밥을 먹고 돈을 걷어 믹스커피를 샀다. 두 시간에 십분 주어지는 휴식시간에 보온물병에 담아온 온수에 커피를 나눠마셨다.


협업과 분업의 과정에서 조금 더 힘든 자리, 궂은 자리에서 일할 용의가 서열에 대한 굴종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원치 않았다. 세상엔 개돼지의 삶을 사는 사람도 있다. 개와 돼지들은 생존과 생식의 본능으로 산다. 개들의 서열인식체계에서 선의는 굴종의 표시가 되기도 한다. 동등하거나 상위라고 인식해야지만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 체계가 활성화 된다. 몇 번의 으르렁거림이 있고 서로에 대해 암묵적인 선이 생겼다.


무채색의 노동 교화소 같던 분위기가 조금은 사람 사는 곳 같아졌다. 서로 조금 사정을 보아주기도 하고 웃으며 대화를 한다. 그 전에도 대화는 있었지만 웃음보다는 서로에 대한 빈정거림이 더 많았다. 반대급부를 주지 못하고 이들을 쥐어짜 생산할당을 맞춰야하는 중간관리자는 난폭한 욕설로 분위기를 잡았었다. 맥락 없는 질타에는 서로를 변호하기도 한다. 몇 번 반복되자 화를 내고 욕을 하는 빈도가 줄었다.


정말 나쁜 놈들은 스스로 땀 흘리는 일을 하지 않는다. 주어진 역할에 극단적으로 심취한 사람이 완장질에 꼼짝하지 못하는 막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통해 극으로 치닫기도 하지만 시작부터 최악인 경우는 없다. 처음 소심한 완장질에 쩔쩔 매는 사람들이 주는 쾌감이 중독이 되면 한도를 넘는다. 평생 아랫사람으로만 살아오던 사람들이 종종 그런다. 누구나 처음 겪는 쾌락에 정신없이 빠져들고 중독되는 경험이 있다. 심각한 사람은 정신과진료를 받아야 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자연스럽게 극복한다. 그런 경우와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톨스토이의 세 가지 질문은 아직 유효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현재.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대하고 있는 사람. 가장 중요한 일은? 그에게 선을 베푸는 것. 마지막질문의 답이 과연 정답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사람마다 선의 기준이 다르고 시간이 지난 후에 선과 악의 자리가 바뀔 수도 있다. 자연이 내린 최상의 결론은 선의에는 선의로, 악의에는 악의로 대응하는 전략이다. 먼저 대할 때는 선의로 대하고 악의로 보답하는 사람에게는 합당한 응징이 주어져야 한다. 선의로 대하는 경우보다 악의로 대하는 경우에 보상이 크다면 약간의 자기희생도 거부하는 악의만이 창궐하고 공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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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림카본에서 구사대와 맞서 싸우다 폭행으로 검찰 수사와 벌금형을 받았다던 조씨가 급하게 휴가를 냈다. 아내가 죽었다. 문상이야기를 하자 올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미 이혼한 상태고 가도 환영받지 못하지만 아이들 때문에 발인까지 보고 온다고 했다. 목소리에 물기가 있었다.


발인이 끝나고 출근한 날 함께 저녁을 먹었다. 신생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자본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이혼이야기는 드물지 않다. 결국 각자의 책임이고, 자신의 삶을 각자 살아가는 과정이다. 그래도, 인연이 닿아 곁에 있고, 입장을 바꿔 보니 위로가 필요하다. 생각보다는 괜찮다. 보호색을 두른 것 같던 약간의 허세가 보이지 않는다. 승림카본 이후 제대로 정착지를 찾지 못하고 떠돌았다. 가능하다면 이 직장에서 마지막까지 버티고 싶다는 말을 한다. 아쉬운 쪽이 손해를 보기 마련이다. 다른 선택의 기회가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인내력의 기준치가 달라진다. 한사람의 처지가 변한 것으로도 그리된다. 55살의 남자가 감내하던 불합리들을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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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을 줄 수는 없지만 잠시 말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 전달된다. 그 감정의 전달이 스스로를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게 한다. 좀 더 발전하면 선민의식이 될 것 같다. 조금쯤은 가져도 될 것 같다. 등대 불빛만큼 환하지 못하고, 촛불만큼 따듯하지 못해도 성냥팔이 소녀와 함게 있던 건 잠깐은 빛나던 성냥불이었다.


말은 서열이기도 하다. 가진 것 없고, 성취한 것이 없으니 삶에서 발언권이 자주 주어지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자신의 상태와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도 거칠고 단순하다. 주고받는 대화는 원숭이의 털 고르기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렇게 온기를 나누고 관계를 확인한다.


위선은 아니다. 그들에게 향하는 선의가 온전하게 순수하지는 않다. 비버가 물을 가두고 수위를 조절하고 숲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스스로가 안락하기위한 노동이다. 확장된 이기주의와 효율적 이타주의사이에 있다.


적응이 어느 정도 되었다는 것은 내가 그들을 이해한 만큼 그들에게도 내가 받아들여졌다는 뜻이다. 점심 식사 후 삼십 분 정도의 여유시간에 먼지구덩이위에 박스를 펴고 앉아 책을 읽는 이질적인 모습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혼동하기 쉬운 일이다. 거의 모든 것을 가격으로 결정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가치는 가격과 비례하지 않는다. 책정 받는 가격이야 최저임금에 수령하고, 인간관계는 제한되지만, 체감하는 삶의 가치는 좀 더 부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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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에 몸이 묶인 스티븐 호킹은 우주를 탐구한다. 정신이 그에 미치지는 못해도 삶을 탐구하고 사람을 관찰하고 나름의 정의로 세상을 판단한다. 책을 읽는 것은 콩나물에 물을 주는 것과 같다. 책장을 덮는 순간 대부분의 물이 흘러내린 것 같아도 콩나물을 자라게 하는 것처럼 생각을 조금씩 살찌게 한다. 문득 돌아보니 인식의 틀이 조금은 확장되었다.


상식적인 예측이 가능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급여가 조금 올랐다. 대통령 하나 바뀌어서 나와 내 직장동료들의 삶이 급격히 좋아진다는 기대는 당연히 없다. 거악과 싸우고 적폐척결을 하다 스러지거나 변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도 않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김하영 요원의 대민 여론전이나 조여옥 대위가 국회위증을 한 선택의 결과가 안과응보의 당연한 수순을 밝기를 원한다.


고문경찰이 없어진 건 이근안씨가 애국의 이름으로 자행하던 고문의 결과가 승진과 훈장을 거듭하는 것이 아니라 감옥에 가는 범죄라는 걸 경찰과 시민들이 실례를 보고 학습한 결과다. 구름 위에 사는 것 같은 국가지도층들이 생각보다 덜 떨어진 사람들이란 걸 충분히 학습했지만 체감하기엔 너무 멀리 있는 존재다. 구치소에 있는 그들의 삶보다도 못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큰 의미를 주지 못한다. 생활인들의 시야에 들어오는 하급공무원의 선택과 결과가 전반적분위기 형성에 오히려 크게 기여한다.


시급제 생산직의 급여는 일당기준이다. 5월 10일 부로 일당 5만 2000원이던 급여가 6만원이 되었다. 함께 일하는 입사 2년차보다 2000원이 많다. 노동에 대한 성실함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분은 좋은데 조금 곤혹스럽기도 하다. 월급이 조금 오른 만큼 늘어난 공제액을 제하면 기본금 수령액이 130이 넘는다. 집사람이 부쩍 노후걱정이 늘었다. 계산상 생존을 위한 소비는 가능하다. 이성적인 지출을 조금 더 해야겠다. 대인관계도 충분히 단조롭고, 소비로 얻는 즐거움보다는 불편함이 크다. 개인을 위한 씀씀이는 정부가 책정한 최저 생계비로도 충분하다.


그런다고 많은 여유를 낼 수는 없다. 월 3만원을 가장 효율성이 좋은 해외 구호단체를 알아보고 가능한동안 지속적인 지원을 할 마음이다. 겨우 그걸로도 살아갈 기회를 얻게 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면 반복되는 노동에 마음이 마모되지 않고, 결국 폐기물이 될 양산품을 만든다는 자괴감에 쉽게 빠지지도 않을 것 같다. 적정기술을 보급하거나 의료 봉사를 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작지만 노동으로 삶을 계속 연명하기에는 충분한 핑계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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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