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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2. 27. 금요일

산하








나도 안녕 못하겠다.


오늘 나는 매우 안녕치 못하다. 한파가 몰아쳐 주말까지 춥다는 예보를 들었기 때문이다. 스키나 타러 가는 일이 아닌 다음에야 날선 추위에 나들이도 삼갈 법한데 이번 토요일 시청 앞에 나가 오들오들 떨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오금이 저린다. 세상에 이런 안녕치 못한 일이 있나. 

 

촛불은 손톱 하나 녹이기에도 모자란데 내복에 덧양말을 준비해야 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심히 안녕치 못하다. ‘참 별 꼴이 반쪽이다. 안 나가면 될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나가고 싶어 나가는 것이 아니다. 나가야 하는 의무감이 들어서다. 머리 수 하나라도 보태야 할 것 같은 위기감이 이 안녕치 못함의 주범인 것이다.

 

사실 나는 이 추운 겨울 그렇게 애써 시청에 나가지 않아도 될 사람이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요구에 동의하지 않는다. 적어도 현 대통령이 51.6 퍼센트의 지지로 선출된 대통령으로서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못 잡아도 국민의 반 정도는 지지하는 후보자였고 투표와 개표 상황에서만큼은 부정이 개입하기 어려웠다고 보기 때문이며 국가기관 선거개입의 책임은 현직이 아닌 전임 대통령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나는 안녕치 못하다. 12월 28일 서울 시청 앞으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어 추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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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적인 정당성을 가지려면 자신이 선출된 선거에 국가 기관이 개입하여 국가 예산을 쓰고 정보요원들이 설쳐 댄 정황에 대하여 누구보다 분노하고 전모를 확실히 파헤쳐 책임자를 엄벌해야 한다.

 

‘내가 시킨 게 아닌’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시켰는지를 밝히는 것’이 대통령의 임무이며, 이를 완수하지 못할 때 대통령의 헌법적 지위는 무너질 수 밖에 없다. 또 이는 이 나라를 떠받들고 있는 몇 안되는 기둥 중의 하나인 선거에 대한 신뢰 상실로 이어진다.

 

이 일이 정말로 유야무야된다면 장차 어느 무골충이 선거 결과에 승복할 수 있단 말인가. 그 뒤의 막장을 우리는 어찌 감당해야 한단 말인가. 그래도 우리가 안녕할 수 있겠는가?

 

바로 그래서 나는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하야가 아니라 5년 뒤 퇴임을 위해, 이정현 대변인이 자랑하는 바 ‘자랑스런 불통’의 통뼈를 부러뜨리기 위해 12월 28일 집회에 나가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하야가 아니라 안전한 5년과 미래를 위하여.


그런데 날씨가 춥다. 왜 춥단 말이냐. 안녕치 못하게.

 

또 한 번 나는 시청 광장에서 개 떨 듯 떨지 않아도 무방한 사람이다. 공기업 노조의 방만한 경영과 대기업 정규직 노조들의 무책임함에 감정이 무지하게 많다. 이른바 철밥통이라 불리우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그 철밥통의 두께를 덜어 연대(連帶)라는 이름의 용광로에 넣지 못한다면 종국엔 그 철밥통을 언젠가는 철저하게 빼앗기게 되리라고 믿고 있다.

 

원래 사람은 배 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 법이고 철밥통에 배 아파하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그러나 나는 12월 28일 시청 앞으로 간다. 철도 노조 역시 공기업 노조로서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많지만 그리고 공기업의 성격상 밑 빠진 독이라고 하더라도 어떻게든 그 구멍을 줄여야 할 의무가 있겠지만, 그 해법이라고 제시된 것이 사유화의 전초라고밖에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고 철도가 사유화된다는 것은 상상하기 싫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정도 이슈였다면 굳이 동태가 되기 위해 시청 앞 광장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머리 속에 일종의 경보벨이 울린 것은 지난 일요일의 민주노총 참사 때였다.

 

“하지 말아야 할 것 100가지”를 준 후 너는 자유다라고 하면 누구든 말이냐 막걸리냐 책상을 둘러엎을 것이거니와 세상에 대한민국 파업의 자유만큼 감금된 자유도 드물 것이다. 

 

여름철에 파업하면 이 혹서기에 파업을 왜 하냐고 을렀고 봄에 하면 농번기에 웬 파업이냐고 했고 가을에 하면 태풍 지난 뒤에 무슨 파업이냐고 윽박질렀고 무슨 국가적 행사를 앞두고 이러면 되겠냐고 훈수를 뒀다. 그리고 파업이 일어나면 뭐 끝에 불이라도 떨어진 듯이 공권력 투입부터 하고 봤다. 이번 철도 파업도 그 도식이었다.

 

한때 철도 민영화 반대를 부르짖던 사장은 수천 명을 직위해제하면서 ‘어머니의 마음’을 읊었고 명색 노동부 장관은 “내가 가 봐도 별 수 없었을 것”이라는 한심한 소리나 하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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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그 와중에 ‘원칙 있는 불통’을 자랑스러워하는 정부는 창립 이래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네 대통령 누구도 굳이 진입하지 않으려던 노동계의 심장부에 거침없는 군홧발을 들이밀었다. 민주노총에 들어가기 위해 언론사 건물을 들부쉈고 저항하는 모두를 들어내고 시민들에게 최루액을 뿌려댔다. 한 달 분 재고를 다 뿌렸다던가. 

 

모름지기 원칙이란 너른 바탕 속에서 근원을 이루는 원칙(原則)이다. 즉 그 바탕 위에서 여러 주장이 뒤섞이고 범벅이 된 가운데 최소한의 합의로서 일궈지는 것이 원칙이지 자기 바라는 대로 세운 원칙(願則)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정부의 ‘원칙’이 헌법에 근간한 이 나라의 노동 3권의 자유와 상호 존중과 설득이라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허무는 모습에 경악한다. 이럴 때 정부의 원칙은 뭇 백성의 원망을 사는 원칙(怨則)에 불과하게 된다.

 

파업에 대한 동의와 부동의에 앞서서 먼저 각성해야 할 것은 정부이며, 심판받아야 할 것은 그들의 ‘원칙’이다. 파업에 대한 동의와 부동의를 넘어서서, 나는 지금 가장 큰 힘을 쥔 사람들에게 저항할 수 밖에 없고, 그 저항에 머리 수 하나 보태야 하는 것이다.

 

12월 28일은 박근혜 하야를 부르짖는 사람들도 오겠지만 나는 그 구호 외치면 입을 다물어 버릴 것이고 철도노조의 외침을 ‘자유의 절규’로 듣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12월 28일 나는 갈 것이다. 구호는 다를 수 있고 방향은 다를 수 있고 결은 다를 수 있어도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가 놀랄 만큼 후퇴하고 있음에 동조하는 대열에 머리 수 하나 더하기 위해서. 밤하늘을 수놓는 촛불로 만드는 거대한 옐로 카드(이 정권에 보내는)의 10만분의 1(좀 과하지만 바람은 그렇다.)이 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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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선거 당일날 “선거했니? 안했으면 어서 해라.”라고 독려하면 불법이 되는 세상이 돼 버렸다. “선거하고 놀러 가 이 녀석아!”라고 일갈하면 선거사범이 되는 법이 엊그제 국회를 통과했다. 민주주의는 그렇게 후퇴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불편한 것이라지만 민주주의가 우리 곁을 떠나면 우리는 편리와 불편의 감조차 잃어버리게 된다. 그게 이 추위에 시청에 나가야 하는 이유고, 안녕치 못한 이유다.

 

가장 안녕치 못한 건 모처럼의 휴가에 이런 안녕치 못한 끄적질이나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라가 이 모양인데 뭐 뾰족한 게 있겠냐마는.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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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보리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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