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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하이트 진로에서 필라이트(Filite)라는 이름의 새로운 술을 출시했습니다. 그리 즐겁지 않은 경험이 될 것임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맥주나 유사 맥주에 대한 호기심이 절 놔주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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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생소한 구분, 기타주류



'발리'나 '아로마 홉' 같은 단어를 잘 보이게 늘어 놓아 언뜻보면 맥주인 것 같지만, 제품 껍데기 어디에도 맥주, beer 또는 발포주 같은 단어는 적혀있지 않습니다.


광고와 보도 자료 등을 통해서는 "신개념 발포주"라고 홍보하고 있지만 필라이트의 유형은 기타주류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국내 주세법상 발포주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런고로 국내 최초 발포주라는 소리도 사실 거짓말입니다. 국내 생산 맥주 중에 일본으로 넘어가면 발포주의 딱지를 붙이게 될 제품은 차고 넘치니까요.

 

주세법 시행령(2016.02.05-26952호의 3조 4항)에서는 맥주의 기준을 



맥주의 제조에 있어서 그 원료 곡류 중 엿기름 사용중량은 쌀·보리·옥수수·수수·감자·전분·당분 또는 캐러멜의 중량과 엿기름의 합계중량을 기준으로 하여 100분의 10이상이어야 하고, 맥주의 발효·제성과정에 과실(과실즙과 건조시킨 과실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을 첨가하는 경우에는 과실의 중량은 엿기름과 전분질원료의 합계중량을 기준으로 하여 100분의 20을 초과하지 아니하여야 한다.



고 하고 있습니다. 필라이트에 일정 비율 이상의 과실이 들어가지는 않음을 고려한다면 이 제품에 사용된 맥아의 비율은 10%가 안됨을 알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보도자료에서도 10%이하로 적고 있습니다. (40~50%정도로 적고 있는 기사들도 있지만 그런 건 그냥 가볍게 무시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홍보를 하기 위해서는 뭐든 가져다 붙여야 하는 입장에서 "기타주류 신제품 출시"같은 문구를 사용하지 못함은 당연한 일일테니 뭐든 가져다 붙여야 할텐데 유사 맥주라고 부르는 것도 웃긴 일일테고 그나마 쓸만한게 일본 주세법상의 발포주였으리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국내법상 발포주라는 개념이 있든말든간에 최상의 선택인 것 같긴 합니다. 주세법상 맥주에 적용되는 세율은 72%이지만 필라이트는 기타주류이므로 30%를 적용받습니다. 낮은 세율을 적용받는 것과 전분 등에 저가 원료를 사용했을 것을 감안하면 가격이 싼 것도 아니고 비싼 것도 아닌 묘한 느낌이지만 넘어가기로 하지요.


참고로 이 제품의 맥아 비율이 10%가 안되는 점을 고려했을때 굳이 발포주로 구분해 본다면 제3발포주(일본 주세법상 맥아비율 25%미만)에 해당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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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셉1: 만 원에 12캔 


상당히 특이하게도 홍보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만원에 12캔"입니다. 실제로 대형마트에서 330ml제품이 800원대 초반이더군요. 이거 하나 사겠다고 마트까지 가기는 좀 그랬던 관계로 저는 동네 편의점에서 500ml 제품을 1600원에 샀습니다.


맛, 향, 스타일의 장점을 각종 구라를 섞어가며 내세우는 것이 아닌 닥치고 "싸다!"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오히려 신선하군요. 좋은 패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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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셉2: 녹색 코끼리


왼쪽의 녹색 코끼리가 필라이트의 마스코트입니다. 무슨 의미일지 감이 전혀 오지 않습니다. 진짜진짜 무슨 생각으로 녹색 코끼리를 마스코트로 삼은 건 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생각나는 건 벨기에의 맥주 브랜드인 데릴리움에서 사용하는 핑크 코끼리(우측 이미지)입니다. 데릴리움과 핑크뿌우가 과음에 이은 "섬망"을 나타낸다면 하이트진로와 그린뿌우가 나타내는 건 무엇일까요. 마시는 순간 느낄 "좋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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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맥주가 아닌 관계로 스타일을 구분할 필요는 없겠지만 굳이 어떤 느낌인가를 따져본다면 어드정트 페일라거에 가깝다고 해야겠군요. 보다 정확하게는 물탄 페일라거의 느낌입니다. 페일라거에 물을 탄 것에 가까울지 물에 페일라거를 탄 것에 가까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언듯 맥주처럼 보이는 붉은 빛 도는 금색 외관에 거품은 크고 성긴 편입니다. 거품은 빠르게 사그라들어서 표면에 남은 하얀 포말만이 그가 존재했었음을 알려줍니다.


마시기 전에 잔에 코를 박아넣고 향을 빨아들여봅시다. 홉에서 기인했을 허브향이 주입니다. 단내도 조금 느껴지네요. 전체적인 향이 약하고 그마저도 금새 사라져서 자세히 느끼긴 어렵습니다만 적어도 불쾌한 느낌은 나지 않습니다. 다행이에요.


이제 마셔봅시다. 중간 정도의 탄산이 입안에 들어오며 청량함을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뒤를 이어 적당한 씁쓸함과 떫은 맛이 스치고 지나가네요. 일견 맥주인 듯 느껴지는가 싶었지만 곧 모든 것은 스러지고 물 맛이라고 해야할까 그냥 액체만이 남습니다. 그나마 끝부분에 찝찝한 산미와 쇠맛이 살짝, 그리고 약간의 끈적임이 남았네요. 뭐랄까요. 맥주 맛 알콜음료?


맥주 맛을 기대하고 마신다면 크게 실망하겠지만 큰 기대 없이 많은 것을 내려놓고 발포주임을 감안하면 생각 외로 나쁘지 않습니다. 맥주인듯 모양새를 꾸민 맛이 기묘하게 껍질로써 형태를 유지하는 느낌이랄까요. 달걀 껍데기에서는 맥주 맛이 나는데 내용물에서는 물 맛이 나는 느낌입니다. 신기한 건 그다지 화가 나거나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맥아 10%로 이 정도를 만들어내면서 맥아비율 70%일것으로 추측된다는 하이트는 왜 그따위로밖에 만들지 못하는 것인가를 묻고 싶어집니다.


가성비라는 것이 소비자의 욕구를 어디까지 커버해줄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가벼운 맥주 맛 알콜 음료라 생각하고 치맥 정도를 즐기려는 소비자에게는 생각 외로 괜찮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맥아비율 10% 이하에 전분으로 나머지를 메꿨을 제품치고는 그리 싼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하이트나 카스보단 싸니까요.


앞으로 내 돈 주고 사마실 일이 또 생길까. 자문해 보았지만 아마 없을 것 같습니다. 글을 읽고 계신 분께 도전을 권하지는 못하겠지만 혹여 드실 일이 생기거든 가능하면 차게 드시고 뭐든간에 안주와 함께 드시길 바랍니다. 안주는 자극적이고 맛이 강한 것이 좋겠군요. 술맛이 과하게 심심하다 싶으시면 소맥용으로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참고1

글을 읽고 '일본 주세법상 맥아 비율이 높은 맥주는 고오급 레스토랑이고 발포주는 분식점같은 것이구나'는 생각이 드실 분을 위해 첨언하자면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보통 맥주와 발포주의 구분 기준을 사용된 맥아의 비율만으로 생각하는데 일본 주세법에는 맥아의 비율에 대한 기준문구 뿐만 아니라 맥주의 부재료로 보리(발아하지 않은), 쌀, 옥수수, 수수, 감자, 전분, 당류로 제한하는 문구도 있습니다. 맥아의 비율을 67%이상으로 유지한다고 해도 법에 열거되지 않은 부재료를 첨가하는 경우에는 발포주(이 경우에는 제1발포주)로 분류되는 것이지요. 고수씨앗이나 오렌지 껍질이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벨지안 화이트, 소금이 들어가는 독일 고제같은 경우는 일본에서는 원하든 원치않든 발포주로 구분되게 됩니다. 맥아 비율이 현저하게 낮아지는 제2,3발포주의 경우라면 '유사 맥주'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법에 명시되지 않은 부재료의 사용으로 맥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니 " 発泡酒 "라는 문구만으로 맥주의 질을 섣불리 판단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발포주와 신장르에 대한 이야기는 잉여력이 쌓이다못해 흘러넘치는 날 언젠가(편집부 주: 엄청 읽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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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도 꽤나 유명한 맥주인 그 호가든도 일본에서는 발포주로 분류됩니다.

 


*참고2

지난 2월 말 당시 권한대행이던 황씨 주재로 투자활성화를 위한 11차 무역투자진흥회의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주세법상 맥주원료, 첨가물 이외의 재료를 사용한 수입맥주가 기타주류로 분류되는 경우가 있고 낮은 세율을 적용받는 경우가 있음이 지적되었습니다. 그 개선방안으로 주류의 원료 및 첨가물을 확대하는 것이 제시되었고 녹말이 포함된 재료나 귀리, 호밀, 고구마, 메밀, 밤등이 함유된 맥주도 제조가 가능하게 하겠다고 관련부처에서 밝혔습니다. 


뭔 소리냐면 현재 기타주류로 포함되는 맥주 또는 유사 맥주들을 맥주의 범주로 포함해서 더 많은 세금을 받아드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주류세를 낮춰주겠다는 말은 언제쯤이나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법안과 관련하여 기준이 어디까지 확대될지는 모르지만 그대로 법이 개정된다면 일본 주세법상 발포주( 発泡酒 )나 신장르( 新ジャンル )또는 제3맥주( 第3のビール )로 분류되는 것들도 우리나라에선 맥주로 대접받을수도 있겠군요(지금도 일본 발포주가 우리나라에선 맥주지만...). 물론 이젠 황씨가 나가리가 된 상황이라 그때의 개선방안이 그대로 법제화되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반대로 지난 12월, 일본에서는 2020년까지 맥주의 세율은 내리고 발포주와 신장르에 적용되는 세율은 올려서 모두 동일한 세율을 적용하겠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일본의 맥주 가격은 조금 더 싸지겠군요. 부럽다.

 

 

 

제품 구입에 필요한 금액을 협찬해주신 내 지갑에게 감사합니다





편집장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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