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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1. 02. 목요일

논설우원 파토









<파토의 쿡찍어 푸욱>은 


시급한 현안에서부터 해묵은 숙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치, 사회 관련 문제를 다루는 코너임다.


과학 잡설 <호모 사이언티피쿠스>와 교대하면서 격주로 연재되니


 많은 사랑 주시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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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


<파토의 쿡찍어 푸욱> 1. 공포의 마스터플랜
<파토의 쿡찍어 푸욱> 2. 그들은 왜 변절했을까



 

 

 

 

 


원래 이 코너는 정치 사회 등과 관련된 두루뭉술한 이야기들을 다루려던 게 목적이었는데, 여러 정세가 하도 급박하게 돌아가다 보니 지금은 당장의 정치 현안에 대한 심각한 글만 쓰고 있다. 담부터는 좀 다른 분위기로 가보고 싶은데 그게 내 맘대로 되는 건 아니지 싶다.

 

암튼, 그래서 오늘도 그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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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토요일, 우원은 다른 몇만 명의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서울광장의 집회에 나갔다.

 

머 딱히 취재 목적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기자 입장이 있다 보니 본 행사를 보고 있는 것보다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상황 확인하고 사진도 찍고, 실시간 트윗도 한다는 생각으로 갔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나름의 역사적, 상징적 의미가 있는 집회라는 느낌과 기대도 있었다. 철도 민영화라는 국민적 관심사가 걸려 있고 또 민주노총이라는 거대하고 강력한 조직이 중심이 돼서 ㅂㄱㄴ 퇴진을 외친다는 점에서, 이 시점부터는 지금까지와 좀 다른 국면이 펼쳐지지 않겠나 여겼던 거다.

 

머, 아래 사진들에서 보듯 일단 기자 짓은 어느 정도 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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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 중인 전투경찰들. 한 녀석이 꼬나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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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벽 세우다가 접촉사고 낸 경찰버스덜.

국민세금은 이런 데 낭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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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침탈의 가능성이 있어서 상황 확인하러 간 경향신문사 앞.

쟤네들 외에 우원 뒤쪽과 좌우에도 경찰이 꽤 깔려 있었다.

 

 

하지만 역사성과 상징성의 측면에서는기대와 달랐고 이건 우원만 느낀 건 아니었을 거다. 일단 물리적으로 차벽이 너무 공고하게 세워진 데다가 경찰의 전략도 잘 짜여져서 서울광장 집회가 끝난 후에는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청와대로 행진하는 게 목표라고 했지만 그걸 성사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도 없었던 거 같고, 고작 동화면세점 앞 사거리에서 시위대는 꼼짝달싹하지 못한 채 멈춰 있다가 해산했다.

 

오해 말자. 우원은 그래서 우리가 청와대로 뚫고 들어가 ㅂㄱㄴ를 끌어내야 했다는 따위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당연히 그래서도 안 된다. 하지만 지난 1년 간의 갑갑함 속에서 이번 만큼은 뭐라도 좀 다른 모습을 기대했던 상당수 참가자들에게, 이 집회는 되려 현재 우리가 빠져 있는 한계를 더욱 명확하게 드러낸 계기가 아니었나 싶은 거다.

 

본 코너 1회에서 지적했듯이 지금 이 나라는 이런 집회나 시위를 어느 정도라도 효과적으로 수행할 리더십이 없는 상태다. 재야는 사라졌고 학생 운동은 실종됐고 야당은 눈치만 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노조, 특히 ㅂㄱㄴ 퇴진을 주창하겠다던 이번 민주노총 집회에는 어느 정도 기대감이 있었던 건데, 막상 벌어진 모습은 이전과 별 다를 것이 없었다.

 

과연 토요일 오후에 서울광장에 모여 구호 좀 외치고 차벽 있는 곳까지 걸어가는 것을 ‘총파업 결의대회’ 라고 칭할 수 있을까? 정권퇴진을 논하며 싸우려면 옛날 노태우, 전두환 때처럼 제대로 싸우던가 아니면 아예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지, 이건 잘해 본들 ‘10만 국민이 뿔났다’ 운운하고 끝나는 정신승리용 회합일 뿐, 뭐냐는 거다. 현 정국 하에서 어떤 이해득실을 따져 가며 이번 집회가 기획됐는지 우원은 모른다. 허나 이런 식이면 민주노총과 철도노조 체면 살리는 것 외에 어떤 실제적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지 않을까.

 

그래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역시, 이런 식으로는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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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가는 인도와 횡단보도마저 막은 차벽.

시위대의 진로, 시민들의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차단됐고

집회에 참가한 우원조차 전체 규모를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랬던 우원도 철도노조가 이렇게 빨리 손들고 파업을 풀 거라고는 차마 생각 못했다. 정권 퇴진을 외친 지 불과 이틀 만이다. 국회 소위원회 결성이 조건인데 이거야말로 체면 치레 외에 아무 의미도 없다. 소위원회에서 어떤 논의나 결의를 하던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거나 본 회의에서 날치기하면 일을 할 수도 안할 수도, 법을 만들 수도 없앨 수도 있다. 이미 수서 KTX 면허가 발부된 상태에서 국회 소위 따위로 보장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단 말씀이다. 비록 노조가 면허 취소 소송을 냈지만 요즘 분위기에 받아들여 질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렵고.

 

거기에 대검은 수배된 노조 지도부를 여전히 사법처리 하겠다고 하고 노조에 대한 징계와 손해배상 소송도 철회하지 않는다는데, 일이 이런 식으로 가면 철도노조 지도부만 붕괴되고 민주노총, 나아가 시민의 무력함만 다시 한번 확인되는 결과다. 이 분위기에서 9일과 16일에 이어진다는 민주노총의 ‘총파업’ 집회는 과연 열리는 건지, 열린다 한들 일반 시민들의 호응과 참여를 기대할 수 있으며 정권에의 경고 효과는 있을지 심히 의문스러울 수 밖에.

 

그래서 이 김빠지는 상황을 이해하려다 보니 자꾸 아래의 한 단어가 떠오르는 거다.

 

...쫄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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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 계단 전경들 옆에서 홀로 촛불들고 있던 여성분.

광화문 사거리를 통과해 여기까지 진출한 유일한 시위자

 

 

우원은 저 단어를 통해 노조의 특정 인물이나 관련된 일부 개인을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그럼 무슨 말을 하려는 거냐.

 

막연한 상상과는 달리 ‘쫄지 않음’은 개인의 선언이나 결의를 통해 구현되는 데 한계가 있다. 우리들 대부분은 유관순, 안중근, 윤봉길이 아니다. 영화 ‘변호인’에서 생생하게 묘사된 고문 장면에서 보듯 인간 개개인은 실제적인 영육의 괴롭힘 앞에 처절하도록 무력하다. 따라서 공권력과, 특히 지금처럼 서슬 퍼런 정권과 정면으로 싸우기 위해서는 우리들을 쫄지 않게 만들어 주는 보다 크고 넓은 바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런데 이제 그 바탕이 사라져 있다. 김대중, 노무현 두 정부를 지나면서 우리는 그런 것이 다시 필요하지 않을거라 여겼다. 특정한 사안에 대한 문제제기 정도 있으면 있는 거지, 다시 전면적 민주화 투쟁을 하거나 정권퇴진 운동을 염두에 두게 될 거라고는 차마 생각하지 못했다. 민주화는 이미 달성된 것이고 이제부터는 그걸 조금씩 더 발전만 시키면 되는 거였기 때문이다. 허나 실제로는 우리 시민들은 고 노대통령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깨어있지도 못했지만 조직돼 있지는 더더욱 못했다. 그래서 이렇듯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가 무너지게 놔 두고 만 거다.

 

한편 노조는 지난 정권의 고사 전략으로 많은 타격을 입었고, 특히 쌍용차가 어떻게 되는지를 몇년 동안이나 실시간으로 지켜봐 왔다. 77일간의 파업과 희망버스 등 이어진 여러 일들에 대해 여기서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만, 결과적으로 해고로 의한 자살 등 24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고 많은 해고자들이 여전히 복직되지 않고 있으며, 최근에는 노조에 46억 원의 손해배상 선고가 내려진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철도노조든 민주노총이든 대놓고 극우화를 표방하는 이 정권과 전면전을 벌일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답은 부정적이다. 노조원들의 해고와 체포, 그리고 이어지는 비극적 후유증을 책임지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건 개인적인 쫄음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지만, 여전히 쫄음인 것도 사실이다.

 

철도노조의 입장이 이미 집회 이전에 파업철회로 기울어 있었다는 것은, 전날인 27일 사무처장 등 지도부 일부가 민주당사에 들어가서 정부 여당과의 중재를 요구했다는 점에서도 엿볼 수 있다. 노조의 진짜 무기는 태업과 파업 등 노동쟁의지 야당이나 국회의원들이 아니다. 그 무기를 아직 쓸 필요가 없거나 제대로 쓸 수 없다고 판단될 때에만 정치권에 의지하는 거다. 결국 집회의 성과와 상관없이 이미 퇴로를 만들어 둔 건데 쫄지 않고는 그럴 이유가 없다.

 

정말 맞짱을 뜨려고 한다면 민주노총 전체 차원으로 나서서 대한민국을 올스톱 시키는 전 직종에 걸친 장기적 총파업을, 하루 동안 말고, 실행해야 된다. 허나 산하 조직인 공공운수노조의 산하 조직이라고 할 철도노조의 파업에 민주노총이 전 노동자의 사활을 건 싸움을 벌일 수 있을까. 결국은 적당한 선에서 서로 체면치레하면서 이 정도로 물러 서는 것이 유일한 현실적 선택이었던 거다.

 

이게 지금 우리에게 놓인 ‘투쟁’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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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파업, 오큐파이. 집중촛불, 안녕들하십니까, 바보가 꿈꾸는 세상 등

서로 방향과 무게가 다른 단어들이 뒤섞인 집회 포스터.

그런 만큼 구체적으로 뭘 하자는지 알 수 없었고

이틀 후 철도 파업은 철회된다.

 

 

김명환 철도노조위원장은 파업을 종료하며 30일에 발표한 담화문을 통해 “좀 더 명확한 성과를 얻어내지 못한 점에 대해서 아쉬움도 있을 것이지만 최장 기간의 파업을 통해 공공부문 민영화 반대와 민주노조에 대한 국민의 뜻을 모아내고, 이후 철도 민영화에 대한 쟁점을 공론화할 수 있는 사회적 논의 공간을 열어냈다.”고 자평했다.

 

이 말들은 사실이다. 허나 이미 발행된 수서 KTX 면허를 무위로 돌리고 장기적으로 민영화를 막지 못하는 한, 국민을 호구로 보는 이 정권 하에서 ‘국민의 뜻’을 모아내거나 ‘쟁점을 공론화’하는 것만으로는 아무 실제적인 힘도 얻을 수 없다는 점이 문제다. 김재철 사장의 전횡과 MBC 탄압도 지난 정권 내내 공론화 됐지만 그 결과는 지금 보는 바와 같고, 나아가 위헌적 요소로 가득했던 국정원의 선거부정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아니냔 말이다.

 

아직 좀 두고 봐야겠지만 우리 이번에도 막아내지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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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앵커 덕에 시위현장에서 환영받는JTBC.

현재 이 나라 방송 뉴스의 공정성은 손석희라는 스타 방송인의 개인 역량과

그가 몸담은 종편 방송사와의 계약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그나마 있어서 다행이지만 민주국가로서 이 무슨 비참한 꼬라지냐는.

 

 

그래서 우원은 말이다, 이제 새로운 판, 새로운 게임의 룰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껴진다. 진짜로 띵킹 아웃 오브 더 박스 하지 않으면 향후 선거, 파업, 집회, 시위 등 모든 상황에서의 필패로 귀결될 가능성이 너무 크다. 지난 몇년 간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져 오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민주주의 위기의 해법은 제대로 하지도 못할 총파업이나 차벽에 가로막혀 오도가도 못하는 시위보다는 <변호인>에서 찾는 게 맞지 않을까. 다만 변호인을 작게는 친노, 크게는 야권 지지자들의 상호 확인과 단결의 의미로만 받아들이고 활용하려 한다면 지난 총선, 대선에서처럼 실패할 뿐이다. 그야말로 또다시 뻔한 생각과 감정, 행동으로 귀결되는 패배의 방정식을 다시 쓰는 거다.

 

그럼 어째야 되냐? 모른다. 하지만 힌트는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변호인 흥행이 600만 명을 돌파했다. 그럼 그 600만은 전부 지난 대선에서 ㅂㄱㄴ 아닌 문재인을 찍은 사람들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한편 2009년 노무현 빈소를 찾은 수백만 명은 전부 문재인을 찍었을까? 그 역시 아니다.

 

왜냐면, 세상은 이런 식이다. 아줌마들이 찜질방에 모여 침 튀겨가며 철도노조와 파업 욕을 실컷 하고 있다. 그러다 갑자기 그 중 한 사람이 “변호인 봤어?”하고 물어본다. 그러면 다른 아줌마들이 “봤지, 짠하대...”하고 고개 끄덕거린다. 그러던 사람들이 며칠 후에는 관광가서 박정희 동상 보고는 “아이고, 그래도 따님이 대통령 되셨으니 다행이제”하면서 다시 짠한 마음을 갖고 돌아오는 거다.

 

이것이 대다수 국민들의 현실이고, 이렇게 보면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첨예한 진영 논리가 실은 얼마나 허구적 요소로 가득 찬 건지 알 수 있다. 사실 사람의 감정이라는 건 대개 이런 형태로 움직이지, 일부에게만 명료한 정치적, 사회적 기준을 따르지 않는다. 그리고 논리보다는 이런 감정이 사람의 생각을 이끌어 간다.

 

그런즉, 변호인을 보러 오는 수백만의 국민들, 노무현이 그들에게 상징하는 바들, 변호인과 ㅂㄱㄴ에게서 공히 느끼는 그들의 짠함, 민주주의와 인권, 정치, 진보, 사람사는 세상, 행복 등. 이제는 기존의 진영 논리를 넘어 이 비슷한 듯 다른 듯한 낱실들을 어떻게 엮고 풀어 내느냐를 고민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이다.

 

어떻게 하면 저 재료들을 퍼 담을 용광로를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끓는 쇳물을 어떻게 욕망과 무한 경쟁이 아닌 공감과 공존이라는 형태로 빚어 낼 건가. 그리고 그걸 어떻게 보편적인 형태로 만들어 위화감이나 적대감 없이 찜질방에서 계란 까먹는 국민들에게 풀어 놓을 건가. 이런 것이 앞으로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 -굳이 안철수 뜻하는 거 아님 - 의 과제가 되어야지 않냐는 거다.

 

이게 마, 답답함 속에 찾아온 2014년 새해 벽두에 우원이 스스로와 열분들에게 던져보는 고민이다. 반드시 이겨야 하기에. 하지만 50%의 국민들을 적으로 만들지도 않아야 하기에.

 

 

 

 


 

 

추신 : 글을 마칠 때 쯤 안철수의 박정희 묘역 참배 뉴스가 들어왔다. 이 양반은 작년 대선 출마 선언 때도 참배를 했지만,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따님 당선 이후 1년간 5공 이래 유래없는 반민주 탄압으로 유신 회귀의 본질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중간에서 오락가락하며 어설프게 타협하는 것과 더 큰 비젼 속에 아와 피아를 녹여내는 것은 전혀 다르고,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지나친 조심스러움이나 기계적인 공평함은 아니다. 뭔가 잘못 짚고 있는 것 같다.

 

 

추신 2 : 서울역 고가에서 분신한 이남종씨가 끝내 숨졌다. 와중에 경찰과 언론은 플래카드를 걸고 구호를 외치고 유서를 남긴 그의 ‘실제 자살 이유’를 따로 찾고 앉았다. 확고한 주장과 소신 속에서 이를 드러내고 결행한 분신을 어떻게든 호도하려는 저들의 비겁함이 어처구니 없지만, 동시에 이 일 또한 ‘떨치고 일어나는’ 추동력으로 작용되지 않을 이쪽의 현실도 할 말은 없다. 우리는 이제, 분신하는 ‘모씨’들만 있고 전태일은 나올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고인은 대단한 용기를 가진 분이었다. 존경심과 함께 명복을 빈다.








파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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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