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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1. 06. 월요일

프랑스특파원 아까이 소라








갑오년 새해가 밝은 지 일주일이 다 되어 간다. 새해의 밝은 기운은커녕 한국에서는 점점 흉흉한 소식만이 들려 온다. 이럴 때면 참 속상하다. 외국에 나와 있는 한 사람으로서 거리의 함성에 한 목소리나마 보태지 못함이 안타깝고, 이런 한국에 별로 들어가고 싶지 않은 마음도 굴뚝같다. 적어도 이곳 프랑스에선 최고존엄을 마음껏 욕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가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 한국학을 연구하고 외국의 청소년들에게 한국어 및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입장에서 일말의 자랑스러움마저 사라져가는 요즘... 마음이 참 춥다.


어쨌든 나는 프랑스에서조차 안녕하지 않고, 우리 가족 또한 안녕하지 않다. 이는 비단 레이디가카나 그 정부에서만 기인한 것은 아닐 테다. 이 사회에서 안녕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이번에 프랑스의 대표 신문 <르몽드>에서 한국 사회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2014년 1월 5일 오후 7시 50분 현재 (프랑스 시간), 트위터에는 이 기사에 대한 글들이 마구 돌아다니고 있다. "대서특필"이라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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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은 안녕하십니까" 제목의 2014년 1월 4일자 <르몽드> 기사

사진은 이 기사에 실린 것으로, 지난 2013년 6월 21일에 있었던 대학생들의 국정원 해체 집회 사진



그래서 찾아 봤다. 해당 기사는 인터넷에서는 전문을 볼 수 없는 유료 기사다. 매월 정기구독을 하거나 아니면 2유로를 내고서야 이 기사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아예 2014년 1월 5-6일자 전자신문을 사 버렸다. 그렇게 찾아 보니 "대서특필"이라던 기사는 분명히 실려 있기는 하다. 아마도 내일, 그러니까 2014년 1월 6일 월요일 신문 가판대에서 실제로 팔리는 <르몽드>지 안에서 본 기사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기사 내용 번역 전문. 그런데 우리 좀 솔직해 지자. "대서특필"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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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5일-6일 <르몽드> 전자판 15면에 실린 해당 기사



대서특필이란 무언가? 大書特筆. 네이버에 따르면 "뚜렷이 드러나게 큰 글씨로 쓰다라는 뜻으로, 누구나 알게 크게 여론화 함"이란 의미. 솔까말 어떤 기사를 두고 "대서특필"이라는 수식어를 가져다 쓰려면 1면 정도에는 나와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해당 기사가 실린 오늘자 <르몽드> 신문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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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1면. 머릿기사

 


- "세금, 적자, 경쟁력. 프랑스 경제인연합회(Medef), 올랑드를 말하다"

 

- "스눕독, 펑크(Funk)로 돌아오다"

 

- "인도의 극 민족주의"

 

- TV: "아르테(Arte) 세계대전을 탐사하다"

 

- 오늘: "프랑스 전력청(EDF), 사우디 파트너와 불화" / "타이 환율 2010년 이래 최저" / "학교에서의 독서, 통합의 한 방편"

 

- "아프리카에서의 프랑스: 세계적 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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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 4면. 국제면

 


- "권력 투쟁에 돌입한 힌두교 민족주의자들"

 

- "사헬(Sahel), 프랑스군 재배치"

 

- "터키 대통령 압둘라 귈,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와 대치"

 

- "이집트, 모르시 반군과 경찰 대치 중 13명 사망"

 

- "시리아 북부서 "국경없는의사회" 회원 5명 추방"

 

- "알카에다 관련 조직들 이라크 서쪽으로 세력 확대"

 

- "유럽, 200여 개 도시에서 환경오염시키는 교통수단 접근 제한"



5, 6, 7면. 프랑스. 여기 기사에 한국 기사가 나올리 없으므로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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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9면. 경제면.

 


우선 프랑스 파업 소식 및 머릿기사에서 나온 프랑스 전력청 및 타이 환율 이야기 등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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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1면. 문화면



마찬가지로 머릿기사에 나온 스눕독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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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3면



12면. Styles. 이번에는 소고기 및 샴페인 이야기.


13면. Carnet. 출생이나 세례, 약혼이나 결혼 등 개인들의 소소한 행사부터 회의나 세미나 소식 등 독자들을 위한 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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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5면



14면. 일기예보 및 십자풀이 및 스도쿠 및 TV 프로그램 편성표


15, 16면. 분석 및 토론. 바로 여기에 이번에 트위터에서 "대서특필" 수식어를 달고 잘도 돌아다니는 그 기사가 있다.

 

- "한국은 안녕들 하십니까?"

 

- "디유도네, 새로운 인종차별적 증오의 폭로자?"

 

- "아프리카에 태양을 파는 남자"



국제 면에라도 나왔다면 "대서특필"이라는 표현을 그저 귀엽게 바라볼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이다, 15면이다, 15면. 심지어 일기예보랑 TV 프로그램 편성표 다음에 나와 있다. 솔직히 신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나는 그런데?"라 하면 할 말 없다만...) <르몽드>가 정론지 중의 정론지이고 그 공신력이 세계적인 것은 맞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서특필"이라는 수식어를 쓰는 것은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하면, 본질적으로는 조중동에서 자기들이 필요한 부분만 쏙 빼서 본 글의 요지와 전혀 상관 없이 맥락은 무시하고 자기가 써먹고 싶은 대로 활용하는 것과 그다지 다를 것 없지 않나 싶다.


사실 이런 오바질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솔까말 필자, 가만히 있으려 했다. 입을 다무는 게 실체도 확실치 않은 '우리' 진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서 그랬다. 그런데 좀 찔리더라. 그래서 이제껏 다물어 왔던 입을 좀 열어야 겠다. "대서특필"이라는 수식어와 비슷한 맥락에서 "유력지", 혹은 "유력언론"이라는 표현 또한 잘 생각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여기서 "유력"이란 영향력이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 그런데 도대체 발행부수가 얼마나 되어야 이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것일까에 대한 기준은 없다. 따라서 자신의 입장과 관점에 따라 조중동도, 딴지일보도 얼마든지 유력지가 될 수 있는 것. 하지만 적어도 어떠한 언론을 영향력이 있다고 이야기하려면 그 사회에 속한 성인 구성원들의 대부분이 그 존재만큼은 인식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먼저 2013년 1월 11일 한국의 '부정선거 의혹'을 보도했다며 "유력신문" 수식어와 함께 한참 트위터를 장식하던 프랑스의 <아고라복스(AgoraVox)>에 대해 잠시 이야기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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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한참 이 트윗이 돌아다니면서 다음 아고라에서는 도대체 이 듣도 보도 못한 <아고라복스>를 유력신문이라 하는 게 말이 되냐는 갑론을박이 펼쳐졌었고, 여기에 대한 결론은 그래도 유력 인터넷 언론이 맞다 정도로 난 것 같다. (관련 링크) <아고라복스>는 2005년 만들어진 인터넷 기반의 일간지다. 전문 기자가 있는 것은 아니고 자원봉사자, 말하자면 시민기자들의 글로 채워지는 언론이다. 2009년 4월에는 4만여 명이 시민기자로 등록되었고, 2011년에는 7만여 명으로 빠르게 증가하였다. 구글 뉴스에서도 <아고라복스>의 기사를 지원하고 있으며, 2005년, 독일의 국제방송국 도이체벨레(Deutsche Welle)에서는 <아고라복스>를 "최우수 프랑스 언론블로그"로 선정한 바 있다.


그래서 문제다. <아고라복스>가 한국의 부정선거 의혹을 다룬 것은 맞다. 그리고 한국에서 그 제보가 간 것도 맞다. <아고라복스>가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같다. 하지만 그 정체성은 아직 "언론 블로그"에 머물러 있으며 일반적인 프랑스인에게 <아고라복스>에 대하여 물어보았을 때 그 존재여부를 아는 사람들이 너무나 적었다. 이를 과연 "유력신문"이라 보아도 되는지에 대한 판단은 우선 독자에게 맡긴다.


이번에는 기사 내용 인용에 대한 문제. 한국 상황에 대해 기사를 실은 <레제코>, <렉스프레스>, , <르몽드> 등의 프랑스 언론에 "유력"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에 대해서는 그 어떤 이견도 없다. 다만 이 기사들을 소개할 때 붙는 "경악할 불법 관권 부정선거"라는 표현, 참 거슬린다. 어떠한 기사를 언급하고 따옴표를 붙일 때는 그 기사 내용을 인용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혹시 트위터를 하는 독자들은 눈치 챘는지 모르겠으나 프랑스 언론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언론에서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이를 소개하면서 항상 따라 붙는 표현이 바로 이 "경악할 불법 관권 부정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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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악할 불법 관권 부정선거"라는 표현

언급하는 언론도, 기사도, 시간도 다른데 참 주야장천 외신보도마다 나온다.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과연 트위터에서 이래 저래 굴러다니는 이 기사들이 정말로 이 표현을 담고 있는지 한번 살펴보도록 한다. 다른 나라 말은 나는 잘 모르겠고 딴지 프랑스특파원답게 프랑스 기사만 몇 개 함 디벼볼란다.


우선 <레제코>. 이전 기사들을 통해 몇 번 이야기했지만 <레제코>는 프랑스의 유일한 전국 경제일간지이자 경제지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좌파에 해당하는 언론. 트위터에서 돌아다니는 한국 국정원 관련 <레제코> 기사는 2013년 10월 23일의 "오늘 밤의 아시아: 국정원 트윗에 의해 엉망이 된 한국의 대통령직"이란 기사다. 현재 이 기사의 원문은 더 이상 무료로 제공되지 않으므로 번역본 링크 붙인다. 찾아보시라. 이런 표현, 없다. 덧붙여 이 "오늘 밤의 아시아"는 그냥 신문의 작은 한 꼭지다. 매일 나오는 것도 아니고, 보통 여러 소식들을 단신으로 보도한다. 그러니까 이 기사를 소개할 때 "대서특필"이란 붙여서는 안 되는 수식어.

 

<RFI>. Radio France Internationale, 한국어로 대강 프랑스 라디오 국제 방송국 정도? 프랑스의 공영방송국이고 2008년 현재 전세계 3억 5천 6백만 명의 청취자를 보유한 세계적 라디오 방송국. 한참 트위터를 떠다니던 의 기사는 2013년 10월 24일의 "한국 대선 조작 혐의를 받고 있는 한국 국정원". 원문링크 기사에서는 "'아랍의 봄'이 인터넷이 한 국가의 민주화에 기여하는 면을 보여준다면 이번 한국의 (필자 주: 국정원 선거 개입) 사례는 인터넷이 잠재적으로 대중의 여론을 보다 교묘하게 조종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라고까지 평가하고 있으나 "경악할 불법 관권 부정선거"라는 표현은 솔직히 없다. 그리고 하나 더. 가 라디오방송국인 바, 본 기사는 인터넷에서만 접근이 가능하다는 사실. 프랑스에서 신문들의 발행부수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한국에 비하여 그 정도가 그리 심각하지 않으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실제 종이 신문을 보고 있음을 감안할 때, 의 인터넷 기사들이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을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말하자면 이들 기사들이 2012년 12월에 있었던 한국 대선 과정에서 국정원이 개입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 맞다. 그리고 국정원뿐 아니라 여러 정부 조직의 개입 역시 있었으며 이를 밝혀내는 과정에서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지를 말하는 것도 맞다. 아마 이 기사를 접하는 프랑스인들은 경악할 것이며 민주주의 국가라고 믿었던 한국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확실히 하자. "경악할 불법 관권 부정선거"라는 워딩,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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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악할 만한 불법 관권 부정선거인 것은 맞다

다만 그들의 워딩이 아닌 것을 그런 것처럼 포장하지는 말자.

 


글을 적어 내려가다 보니 필자가 찬물을 끼얹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살짝 된다. 개인적으로 이들이 왜 이런 과장된 표현을 쓰는지 이해가 안 되는 바도 아니다. 하지만 현재 한국 사회에서 SNS는 개인의 소소한 일상을 보여주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지만 어떠한 정보를 공유하고 전파하는 역할을 보다 크게 지니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보를 담고 있는 트윗들이 다소 과장되어, 그 과장이 '사실'인 것처럼 전파된다면 그로 인하여 파생하는 부작용에 대한 책임은 도대체 누가 지게 되는 것인지. 그로 인한 피해는 사실 우리 모두의 것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더 크다.


어찌 어찌하여 딴지의 프랑스 특파원(이라 쓰고 노예 혹은 글 자판기라 읽는다.)을 맡게 된 바, 한 번 써 봤다.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지는 말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하자.

 

"오버 좀 하지 맙시다!"




 

편집부 주 


<물건너 언론 분석 특집 관련기사>


[알고나 까자 - 언론과의 싸움(독일) <1>]

[알고나 까자 - 언론과의 싸움(독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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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특파원 아까이 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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