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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영동군에 살았던 어린 시절, 버스가 다리 난간을 넘어 겨울 강에 빠지는 사고가 있었다. 사고가 나는 순간 굉음을 들었다. 뉴스에 나오는 큰 사고였다. 버스에 탄 수 십 명이 사고 현장에서 숨졌다. 통 창문이 좌우로 열리는 시내버스가 아니었다. 그 사고 이후로 유리창을 깨기 위한 망치가 버스에 걸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뉴스에서 사고원인을 뒷자리의 승객과 대화를 하던 운전기사의 실수로 이야기했다. 버스운전사에게 쓸데없는 말을 시키지 말자는 계몽운동 비슷한 멘트를 들었다. 그 시절 쌀밥을 먹으면 각기병이 걸린다고 혼식을 하라는 교육이 행해졌었다. 지금 생각하면 시스템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축소시켜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하려는 좋은 게 좋은 해결 방안이었다.


노면 결빙이나 차량 점검문제 혹은 기사에게 주어진 시간의 촉박함 따위의 시스템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 문제를 덮으려면 개인의 잘못으로 끝내는 편이 좋다. 사고 당사자 개인의 과실로 야기된 죽음은 사망 피해보상액 산정에도 적용을 받는다. 기사에게 주어져야 할 몫에서는 귀책사유로 인한 부분을 까고 승객들에게 주어져야할 보상 협상에서는 죽은 기사 개인의 책임을 강조했을 것이다.


반월 도금단지에서 일하던 분의 이야기다. 함께 일하던 동료가 용액이 담겨있는 가마에 빠졌다. 테두리에 손을 짚고 건너편에 있는 물건을 잡으려다 미끄러져 머리부터 빠졌다. 고온의 산성용액에 빠지면서 순간적으로 기절한 걸 병역특례가 보고 소리를 질러 가마에서 사고자를 꺼냈다. 같이 일하던 형님은 잠깐 정신이 든 피해자와 대화를 하고 냉수로 용액을 씻겼다.


인근병원으로 갔다가 화상전문병원으로 옮겼다. 화상환자에게는 위험이 찾아오는 주기가 있다. 병원에서 이야기하던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환자의 죽음을 알리는 의사는 초등조치를 탓했다. 1차병원에서 기도를 확보하기위해 목을 짼 것과 가마에서 끄집어낸 상태에서 냉수로 용액을 씻어낸 것이 실수였다.


기도 확보를 위해 목을 짼 1차병원 의사에게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모르겠지만 산성용액을 세척한 형님에게는 멱살잡이와 격렬한 항의가 있었다. 그때 멱살잡이를 당하다가 허리를 다쳐서 회사를 한 달간 쉬었다고 오랜 억울함을 이야기했다. 화상환자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해 대처에 부족했던 자책보다 망자의 가족들에게 원망을 혼자 받았던 서러움이 크다.


사망자는 사고 전날 밤 술을 마셨다. 귀책사유가 되어 보상금의 30%가 깎였다. 보상금으로 받은 7천 만원은 가족과 형제들에게 이리저리 나눠지고 여자가 어린 아이 둘을 데리고 살기가 어려웠을 거라는 추측으로 이야기가 마무리 됐다. 경찰수사는 피곤했고 어린 병역특례는 사고자를 떠민 거 아니냐는 추궁과 유도심문을 거칠게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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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곳에서 패턴을 발견한다. 지난 정권에서 개인적 일탈로 정리하고자 했던 수많은 사고들과도 공통점을 찾는다. 지키려는 게 시스템인지 시스템내부의 요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장기적인 시각으로 현명한 방법은 아니다.


당시 버스 사고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있었다. 위기의 순간에 한 사람만은 유리를 깨고 얼음 위로 탈출에 성공했다. 버스가 얼음 위에 떨어지고 가라앉는 순간 텀이 있었던 것 같다. 살아남은 남자의 이름이 강유일 씨였다. 이름에 어떤 운명이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의 말이 갖는 힘이 있는 것 같았다. 그 시절의 방송환경을 생각하면 그 이름이 본명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말에 깃드는 힘을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옥편을 찾았다. 돌림자를 쓰지 않고 아버지가 고등학교 은사님께 부탁받아 지었다는 이름을 확인했다. 분명 새벽 별같은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으로 알았었는데 은사님께 노안이 있었다. 별을 뜻하는 자는 쉬워서 틀리지 않았는데 새벽으로 알고 잇던 글자가 이상했다. 부수를 찾아 확인한 글의 뜻은 '큰 북' 혹은 '쇠북'을 뜻했다. 아 내 이름이 위인전의 위인들처럼 하늘이 지은 것은 아니어도 삑사리였다니 어린마음에 상심이 컸다. 우울해졌다.


내 이름은 모두 잠든 새벽하늘을 밝히는 별이 아니구나. 새벽이 아니라 소가죽 북이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둥둥둥 울리는 북소리가 밤에 빛나는 별하고 어울리지도 않았다. 소리가 나려면 일단 맞아야하는 북도 싫었다. 삶이 주는 시련에 몇 번 얻어맞고 생각해보니 이름과 크게 다르게 살아온 것 같지도 않다. 그 할아버지가 며칠간 고민하며 지은 이름이랬다.


필요에 의해 목적을 가지고 인터넷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름을 지어야했다. 태백산맥의 김범우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물론 현실의 나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래도 경계에서 고민하던 모습을 이해했다. 사실 아리랑을 먼저 읽었고 작가가 그려낸 삶의 궤적이 소년시절 인생관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완성된 인간형인 송수익은 살면서 도저히 닿지는 못할 것 같았다. 고민하는 김범우 정도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범우라는 이름으로 몇 년간 글을 올렸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처음의 필요와 목적은 의미를 잃었다. 조정래 작가는 정치를 시작한 안철수에게 이 시대의 김범우, 송수익 같은 사람이라는 찬사를 바쳤다. 내 눈에는 감내할 수 있을 만큼의 손실만 감내하는 합리주의자로 보였는데 직접 만나본 작가의 눈에는 김범우와 송수익이 보였나 보다.


허락받고 쓴 이름도 아니지만 김범우라는 닉을 사용할 수 없었다. 제법 긴 시간 동안 온기와 문답을 주고받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절하기도 그랬다. 글을 통해 난잡한 생각을 정리하기도 했고 트라우마로 맺혀 있던 응어리를 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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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이 한 말에 대해 강박증이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 반가웠다. 나도 조금은 그런 면이 있다. 사람이 모든 말을 지키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가끔씩 스스로가 한 말에 구속됨을 느낀다. 친구들과 가족들과 막일을 하는 동료들과 사용하는 말투가 조금씩 다르다. 상황에 따라 음담패설을 킬킬거리기도 하고, 공격적으로 날선 어투를 사용할 때도 있다. 때로는 단순히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빈말을 하기도 한다. 생각 없이 내뱉고 혹시 상대에게 상처를 남겼을까 걱정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말에 마음이 담기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 말에 구속이 된다.


글은 말보다 선명하고 오래 남는다. 그래서 여전히 부족하지만 글을 쓸 때 조금 더 진중해진다. 어쩌면 그간에 쓴 글이 삶에 역진방지장치같은 역할을 해 주었는지 모른다. 착각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보다 조금은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느낀다.


사물이나 현상을 지정하기 위해 단어가 만들어진다. 이름을 안다는 게 사물이나 현상을 이해한다는 건 아니다. 이해를 위한 기준점이나 이정표는 될 수 있다. 때로는 프레임을 만들기 위해 이름을 부여하기도 한다. 그렇게 부여된 이름에 종속되기도 하고.


평범할 범에 어리석을 우를 남겼다. 스스로 아무리 과하게 점수를 주려고 편파적 채점을 해도 열중 하나에 불과하다. 두뇌 형성이 마무리되지 못한 아이들과 뇌세포들이 소멸해가는 노인들을 제하더라도 대한민국에서만 백 만 명은 나보다 우월하다. 특정부분에서는 약간의 우월감을 느꼈던 사람들에게서도 수시로 스스로의 부족함을 보게 된다.


토해냈던 글을 다시 읽으면 부끄럽다. 아직 뻔뻔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삶이 주는 시련에 감정이 마모되고 마음이 강팍해지면 부끄러움도 모르게 된다. 안도와는 별계로 부족함과 한계도 명확하다. 척박한 땅에서도 자라는 식물의 성장기와 비슷하다. 진행형이라서 그나마 의미가 있다.


덧>사료의 가치가 큰 종범 실록 7권이 새롭게 발굴되었다. 그러라고 지은 이름은 아닐텐데 국정농단의 종범이 되었다. 주범이 아니라서 다행일지 안종범인 게 안타까울지 모르겠다. 뛰어난 학식과 재주가 아깝고, 그가 자라난 토양이 그렇게 부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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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