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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모유수유를 결심했던가? 솔직히 말하면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아이에게 좋다니까, 그게 전부였다. 호주의 병원(편집자 주: 필자는 호주에 살고 있다)에서는 진료를 할 때마다 나에게 수유 계획을 물었고, 모유의 장점을 설명하는 책자들을 안겨주며 모유수유를 푸시했다. 모유는 아기에게 최고의 영양분을 제공한다, 모유가 신생아 면역력을 향상시킨다, 스킨십을 통해 아이와 산모의 유대감이 높아진다, 자궁수축이 촉진되어 산후회복이 빠르다,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젖병보다 위생적이다, 유방암과 난소암 등 여성질환을 예방한다 등등 모유수유를 예찬론은 끝을 몰랐다. 나는 책장을 뒤적거리며 둘째 계획이 없는 나의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아기에게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정도’는. 나는 모유수유를 너무나 얕잡아봤던 것이다.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말하긴 쉽다. 너무, 쉽다. 모유수유의 미덕과 효능은 모르는 사람들도 덮어놓고 찬양할 만큼 범국민적인 차원에서 홍보되어 왔다. 그러니 이제는 모유수유의 고충을 이야기해보자. 모유수유는 팔목, 목, 어깨, 등, 허리 통증을 유발하는데, 생후 약 6개월까지 목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아기를 지지하고 앉은 자세로 짧게는 15~20분, 길게는 40분까지 수유해야 하기 때문이다(중이염 유발 가능성으로 인해 누운 자세 수유는 권장하지 않는다). 위장 크기가 작은 신생아는 조금씩 자주 먹어서 원더 윅스(급성장기)에는 젖 물리기로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분유 보충 없는 ‘완모(완전 모유수유)’를 목표로 한다면 수유의 어려움은 배로 증가한다. 아무도 젖먹이기를 도와줄 수 없는 고로, 산모는 새벽에도 주말에도 꼼짝없이 수유 노동에 매달리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상대적으로’ 가볍고 지속적인 피해라고 말할 수 있다. 모유수유는 적극적인 처방과 관리가 필요한 신체적 손상을 수반하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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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이스트 감염 (칸디다 감염, Thrush)

유두 상처, 칸디다성 질염 병력, 항생제 복용 및 기타 미확인 원인으로 이스트(곰팡이) 감염이 발생할 수 있다. 이스트 감염은 유방 혹은 유두 부위에 발생하며, 가볍게는 단순 가려움에서 도저히 모유수유를 중단해야 할 만큼 격심한 통증까지 정도에 개인차가 있다. 옷에 쓸리는 가벼운 접촉으로도 통증이 유발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수유 직후 쏘거나, 찌르거나, 타는 듯한 고통이 찾아온다고 묘사한다. 유두 갈라짐, 벗겨짐, 변색 등 외에는 가시적 증상이 없어 파트너가 그 심각성을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감염 부위가 아기의 입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아구창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에 이스트 감염이 의심되면 즉시 병원을 찾아 조치를 취해야 한다. 감염 후 곰팡이 증식을 막기 위해서는 시원하고 건조한 유방 환경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실내에서 상반신을 탈의하고 다니는 불상사가 생긴다.


② 유선염 (Mastitis)

생후 3개월 간 수유 기간에 가장 많이 발생하는 유방 조직 감염이다. 모유 과다 분비, 모유 정체(milk stasis), 젖몸살, 유관 막힘, 스트레스와 피로, 유두 및 유륜 부위의 상처를 통해 침입한 박테리아 및 바이러스도 원인이 될 수 있다. 심한 가려움과 홍반, 쏘는 듯한 통증, 가슴 뭉침, 발열, 피로감이 증상으로 나타난다. 치료를 위해 잦은 수유(하루 당 8~12회)와 충분한 휴식이 권장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과제다(2시간마다 수유를 하면서 휴식이 가능할까?). 체내 수분를 젖 생산에 사용하는 모체는 늘 정상보다 건조하므로 다량의 물을 섭취해 수분을 보충해야 한다. 치료 적기를 놓칠 경우 조직이 괴사하면서 농양으로 발전할 수 있다.


젖 몸살 (Breast engorgement)

수유부라면 한번쯤 경험해볼 만큼 흔한 증상으로, 아기가 ‘통잠(밤부터 아침까지 쭉 자는 것)’을 시작하거나 수유부가 단유를 시도할 때 나타날 확률이 높다. 유방이 딱딱하게 뭉치고, 가렵고 화끈거리거나 부분적으로 울혈이 생기기도 한다. 숙면을 방해할 만큼 높은 불편을 동반하며, 장시간 수유를 하지 않으면 모유가 흘러나와 옷과 시트를 적시게 된다. 젖몸살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또 다시 잦은 수유, 젖 완전히 비워내기(눈에 보이지 않으니 확인할 방법은 없다), 유축하기 등 엄마의 추가적인 노동이 요구된다. 단유를 시도하는 엄마들은 가슴에 양배추 팩하기, 호박즙이나 엿기름 물 마시기, 카보크림 바르기 등을 병행하며 젖몸살을 견뎌낸다.


④ 유구염 (유두 백반, Milk blister)

배출되지 못한 모유가 유구를 막으면서 유륜이나 유두에 끼는 하얀 물집을 일컫는다. 우유의 과공급, 유방 주변의 압박, 유관 막힘, 잘못된 수유 자세 등이 감염을 일으키면서 발생하고, 마찰이나 상처로 생긴 피딱지와는 다르다. 수유 시 극심한 통증을 동반하며 이스트 감염의 증상으로도 나타난다.


⑤ 피부 가려움 (소양증)

임신가려움팽진구진및판(Pruritic urticarial papules and plaques of pregnancy, PUPPP)은 후기 임산부 혹은 산모의 피부에 올라오는 국지적인 두드러기 병변을 일컫는다. 국내에는 소양증이라는 명칭으로 더 알려져 있는 PUPPP는 팔다리를 잘라버리고 싶을 만큼 극심한 가려움증을 일으키는데, 산모의 경우 모유수유로 면역력이 저하되면서 발생한 알레르기 반응이라거나 수유 과정에서 배출되는 체열이 원인이라는 소견이 있으나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PUPPP가 아니더라도 이유 없는 피부 가려움을 호소하는 산모들은 적지 않다. 수유부 특성상 수분 보충이나 약 처방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에 모유수유를 중단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⑥ 골밀도 저하

모유 생산이 모체의 칼슘을 소모하면서 수유부는 일시적인 골밀도 저하를 겪게 된다. 경미한 사고로 이가 부러지거나 빠지는 등 치아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수유기에는 보충제 복용이 필수적이다. 단유 후에는 골밀도가 수유 전 수준으로 회복되거나 증가한다고 알려져 있으나, 최근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에서는 25개월 이상 모유수유를 한 여성의 폐경 후 치아 상실 위험도가 모유수유 경험이 없는 여성보다 1.83배 이상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링크).



통계 다시 읽기


전 국회의원 장하나 씨가 최근 한겨레에 기고한 글 ‘누가 우리 아이들한테서 엄마 찌찌를 빼앗았나(원문링크)’를 읽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글에서 장하나 씨는 “정부와 의료계와 산업계가 모유 수유에 훼방을 놓는다”는 의심을 ‘한국은 분유 권하는 사회’라는 결론으로 확장시키는데, 문제는 ‘2015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실태조사’ 통계 결과를 분석하는 시각이다. 글쓴이는 한국 산모의 생후 1시간 이내 초유 수유 비율이 18.1%에 불과하며, 생후 1주까지 23.9%에 그쳤던 완모 비율이 퇴소 후인 2주차부터 50.1%로 급등한다고 지적하면서 (필자가 생각하기에) 낮은 완모율의 혐의를 조리원과 병원에 돌린다. 나는 이처럼 통계 수치를 들이대며 ‘더 열심히 완모해야 한다’고 육아 여성들을 채근하는 논조에 상당히 회의적인데, 첫째로는 한국의 완모율과 혼합(모유+분유) 수유율이 중-고소득 국가와 비교했을 때 결코 낮지 않으며, 둘째로는 이 숫자들에 신생아 수만큼이나 다양한 분만 후 상황과 산모의 컨디션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그 목표가 혼합수유를 배제한 ‘완모’라면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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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학술지 ‘란셋(The Lancet)’에 발표된 논문 ‘Breastfeeding in the 21st century: epidemiology, mechanisms, and lifelong effect(2016)’에 따르면 2012년 기준 모유수유 경험이 있는 한국 영유아는 전체의 88%에 달하며, (혼합을 포함한) 모유수유율은 생후 6개월에 61%, 생후 12개월에 46% 수준을 방어한다. 이는 설문조사 대상이 된 고소득 국가 27개국 가운데 프랑스(63%-23%-9%), 이탈리아(86%-46%-19%), 영국(81%-34%-0.5%), 미국(79%-49%-27%)을 웃도는 수치이며, 특히 12개월 유아의 모유수유율은 오만(95%)과 일본(60%)에 이어 상위 3위를 차지한다. 모유수유를 강권하는 호주에서도 92%에 달하던 초유수유율이 6개월에 이르면 56%, 12개월에는 30%로 감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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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모유수유 현황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보자. 대한의학회 학술지 ‘Journal of Korean Medical Science’지에 실린 논문 ‘Trends of Breastfeeding Rate in Korea(1994-2012): Comparison with OECD and Other Countries’(2013. 11)에 따르면 1994년 이후 꾸준히 상승세를 기록하던 한국의 완모율은 2009년 정점을 찍고 2012년에 살짝 주춤하는 경향을 보인다. 2012년의 완모율 하락은 혼합수유의 확산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데, 혼합수유까지 통계에 포함하면 3개월 영아 모유수유율이 약 75%를 웃돌아 최고 기록을 경신하기 때문이다(이것도 ‘완모가 아니기 때문에’ 유효하지 않다고 말할 것인가?). 또한, OECD 회원국들과 비교해도 한국의 완모율은 큰 낙폭없이 꾸준히 유지된다. 한국처럼 육아 친화적이지 않은 나라에서 자랑하는 발군의 모유수유율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이 숫자들은 ‘1년 모유수유’라는 장기 과제를 달성하기 위한 엄마들 개개인의 의지와 노력으로 일구어낸 성과이며, 사회가 ‘모성’에 가하는 압력의 무게를 암시한다.



완모라는 모성 신화


출산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은 종종 ‘아기를 낳으면 자연스럽게 젖이 나온다’고 오해하지만, 모유가 분비되는 시기와 양은 모체에 따라 다르다. 임신 후기부터 모유가 흐르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출산 직후 2~3일 간은 아주 적은 양의 유즙만 나오고, 삼사 일 내내 가슴 마사지를 하고 빈 젖을 물려가며 눈물로 매달려야 겨우 젖이 돌기 시작하는 몸도 있다. 초신생아는 출생 첫날 7ml, 이틀 째 15ml, 삼일 째 38ml, 7일 차에 65ml(평균치)를 겨우 섭취할 만큼 아주 적은 양의 우유를 필요로 하는데도 공급이 수요를 좀처럼 따라가지 못한다. 아기는 배가 고파 계속 잠에서 깨고, 엄마는 한두 시간마다 수유를 한다. 이것이 생후 1주차 혼합수유율이 높은 이유다. 산후조리원은 신생아 돌봄 교육을 제공하는 동시에 엄마의 빠른 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공간이다. 짧은 간격으로 ‘수유콜’을 받으면 엄마가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 없기 때문에 밤 시간대나 모유 공급이 부족한 아기들에게 분유로 보충을 시켜주는 것이다.


모유가 언제 분비되기 시작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완모를 고집하다 보면 신생아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 출산 후 4일째였다. 집에 왕진해 아기의 발뒤꿈치에서 혈액을 채취해갔던 미드와이프(조산사)에게 전화가 왔다. 아기의 황달 수치가 높아 집중치료실에 입원해야 한다는 소식이었다. 젖이 나오지 않는 것이 분명하고 아무것도 먹지 못해 말라가는 아기의 입술을 보여 발을 동동 구를 때, 호주의 미드와이프들은 나를 완모시키기 위해 ‘괜찮다’, ‘잘하고 있다’는 독려에만 집중했다. 결과는 탈수성 황달이었고 상황을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단지 유두혼동(유두와 인공 젖꼭지를 동시에 접한 아기가 둘 중 하나를 거부하는 반응으로, 모유수유 중단이라기보다 혼합수유 중단의 원인이 된다.)이 두렵다는 이유로 며칠 내내 빈 젖을 물리면 이 같은 돌발상황의 가능성도 감수해야 한다. 광선치료실에서 기저귀 차림으로 손발을 떨며 우는, 안대 씌워진 아기를 보며 나의 미련함을 얼마나 탓했던가? 이러나 저러나 황달 치료를 받고 나면 하루 이틀 간은 분유 수유를 해야 한다. 이를 ‘완모 실패’라고 불러야 할까? 1주 차의 비교적 낮은 완모율은 조리원이나 병원 탓이 아니다. 2주 차나 되어서야 슬슬 수유량이 맞춰지기 때문이라고 보는 쪽이 더 합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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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유수유를 해본 엄마들은 편안하게 아기를 안고 젖을 먹이는 어머니 상이 어느 정도 환상임을 안다. 한국 엄마들은 지금까지 ‘지나치게’ 잘해왔다. 너무나 많은 의무와 중압감 아래 불가피하게 모유수유를 중단하며 좌절하는 엄마들, 분유수유를 하며 스스로를 ‘나쁜 엄마’라고 자조하는 엄마들이 숱하게 보인다. 모유를 먹이지 못해서 아이가 잔병치레를 했다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정서가 현재까지 끊이지 않고 전승된다. 나는 오히려 산모들이 조금 힘을 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시점에서 누군가는 어머니들이 밭 매면서 7남매를 젖 먹여 키우던 시절을 찬양하려 하겠지만, 과거에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귀족이나 부유층은 유모를 고용해 대리 모유 수유를 시켰다. 고대인, 중세인, 근대인도 모유수유가 너무나 많은 시간과 정신력, 체력을 소모하는 중노동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현대 여성이 유독 나약하고 과거의 여성들이 강인해서가 아니라, 언제나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할 수 있는 과제였는데 가난 때문에 선택권을 갖지 못했던 것뿐이다.


한국은 ‘분유 권장하는 사회’라기보다는 양방향으로 엄마들에게 불친절한 나라다. 온갖 홍보와 연구를 통해 모유수유를 강력하게 권장하면서도 수유부를 위한 환경 개선은 제자리걸음을 걷는가 하면, 분유수유를 하는 엄마들은 ‘모유가 좋다던데…’라고 중얼거리는 제3자들 틈바구니에서 모유수유로 모성을 증명하라는 압력에 시달린다. 외출 시 모유수유가 어려운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래서 분유는 시도 때도 없이 턱턱 살 수 있도록 ‘권장’되고 있을까? 백화점, 편의점, 소규모 마트에는 아주 적은 종류의 분유가 입고되어 있거나 그마저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분유 구입을 온라인이나 대형마트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분유가 똑 떨어졌는데 그 날이 마침 대형마트 휴무일이라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물론 글에서 지적된 문제들 - 독박육아, 출산휴가 제도 비활성화, 모유수유 교육 미비, 수유 공간, 유축 시설 및 공간 부족, 고가의 사설 유방 마사지 등 - 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한다. 여러 난항에도 불구하고 여건만 된다면 모유수유를 선택할 산모들이 많으니까. 그러나 모유수유에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중요한 만큼 수유 정보와 선택의 자유 또한 제공되어야 한다. 모유수유를 하는 엄마들이 수유실과 유축 공간을 찾아 헤맬 필요 없고, 분유수유 또한 합리적인 결정으로 존중하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모유수유와 분유수유 양자 모두 득과 실이 있음을 공평한 기회로 알리고, 수유 방식을 온전히 당사자에게 맡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손수 만들고 몸에서 짜내는 엄마의 몸 고생에서 육아의 진정성을 찾는 문화부터 사라져야 할 것이다. 모유수유가 아름답다면 분유수유가 아름답지 않을 이유는 뭐란 말인가? 엄마가 행복해야 아기도 행복할 수 있다. 완모하는 엄마만큼 분유 수유하는 엄마도 훌륭하다고. 누군가는 이 말을 해줘야 한다.




탱알

트위터: @taeng_al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