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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알려진 잘못된 상식과 수많은 오해의 원인을 찾아 올라가 보면, 최초 단어의 정의를 잘못 이해하고 시작한 경우가 많다. 단어의 정의를 확실히 알고 시작하는 것은 모든 공부의 기본이다. 그래서 유전자 검사를 논하기 전에 유전자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먼저 알고 시작하자. 생물학의 많은 개념들은 마치 감자 뿌리와도 같아서 눈에 보이는 한 덩어리 감자를 잡아 끌어내면 또 다른 덩어리들이 같이 딸려 나오면서, 전체의 그림을 쉽게 이해하기 어렵게 된다. A를 이해하려면 B라는 선행 지식이 있어야 하는데, B를 이해하려면 C를 먼저 이해해야 하고, C의 이해를 위해선 다시 A가 필요한 식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한 가지 비유을 생각해 냈다. 생물학의 모든 개념이 설명 되지는 않겠지만, 생물학 알못인 사람은 어느 정도 큰 그림을 잡는 데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 마을의 비유

어떤 옛날 마을이 있다고 상상해 보자. 마을은 강이 흐르고 나무가 우거졌으며 중앙에는 크고 아름다운 한 건물이 있는 중세 유럽의 마을이면 좋을 것 같다. 이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 맡은 일을 하며 마을의 번영을 위해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개인 단위에서 생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마을은 부유하며, 모든 마을 사람들은 마을 관리에 필요한 일만 하거나 일이 없으면 휴식을 하며 보내는 꿈같은 곳이다. (전 주민이 동사무소 직원이라고나 할까)


마을 한복판의 크고 아름다운 건물은 도서관인데, 이 도서관에는 23개의 동일한 서고가 두 개 있다. 즉, 총 46개의 서고가 있지만 실제로는 같은 책을 담고 있는 서고가 각각 23개씩 세트로 두 개가 있는 거다. 그리고 열람실이 있으며, 각 서고에는 책들이 빼곡하게 차 있다. 이 책들은 마을에 관한 모든 정보를 담고 있는데, 마을 사람들의 식생활 및 복식, 집들의 디자인, 건축 자재 등등 마을의 외형적인 것들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전쟁 상황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마을이 회복 불가의 상황이 되면 어떤 절차에 따라서 마을을 폐쇄해야 하는지 등 이 마을의 모든 시시콜콜한 정보부터 마을의 존망을 결정할 중차대한 정보까지 모든 것이 책의 형태로 쓰여져 보관되어 있다. 한마디로 마을의 역사 보관소이자 사령탑이자 청사진이라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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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멋진 도서관을 떠올려 보자


보유 장서는 어마어마한 규모인데, 너무나도 많다보니 가끔은 이 책이 우리 마을에 왜 필요할까 싶은 것도 있다. 대충 우리 마을에 필요한 내용은 3만 권 정도면 될 것 같은데, 왠지 모르게 도서관의 장서는 한 30만 권 정도 되는 것 같다. 혹자들은 이 필요 없어 보이는 책들을 쓰레기 책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어느 책이 절체 절명의 순간에 필요한지는 아무도 알 수 없으니 일단은 모든 책을 다 보관하고 있다. 물론 이 책을 한번에 다 읽어 본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 마을이 사라져 버릴 때까지 한 번도 읽혀지지 않은 책도 있을지 모른다.


또한, 도서관이 목조건물이다 보니 화재에 아주 취약하고, 가끔은 오랑캐들이 들어와서 책에 반달리즘을 가하기도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몇 겹의 철통 보안을 유지하고 있다. 전쟁통에도 팔만대장경 깎고 그걸 목숨 걸고 보호하던 우리 조상들의 지극 정성 부럽지 않을 정도로 모든 마을 주민들은 이 도서관을 중요시 여긴다.


이 도서관은 신기하게도 책을 빌릴 수는 없고 열람만 가능한 도서관이다. 그 이유는 보유 장서들이 워낙 중요한 것들이다 보니 행여나 빌려갔다가 반납하지 않거나, 책이 훼손되거나 하면 큰일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칙적으로 대출은 허용되지 않는다. 도서관 앞에 다량의 포스트잇과 연필을 비치해 놓고, 필요한 책이 있는 사람은 도서관에 와서 원하는 책을 꺼내서 필요한 내용만 골라서 포스트잇에 옮겨 적어서 갈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 마을식 냉면을 만들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이 도서관에 와서 냉면 레시피가 담긴 책들을 찾은 후 필요한 정보들, 즉, 면발 굵기는 얼마로 뽑아야 하며, 메밀과 밀가루의 조합은 얼마로 할 것이며, 육수는 어떻게 넣을 것이며 등등... 이런 정보들만 모아서 포스트잇에 옮겨 적은 후 집에 가져간다.


이 모든 걸 손으로 옮겨 적어야 하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마을 사람들은 책의 내용을 빼곡히 다 옮겨 적기 보다는 자기한테 필요한 알맹이만 딱 정리해서 적어간다. 주방에 와서는 아까 적어온 포스트잇을 펼쳐 놓고 그 레시피에 맞게 요리를 한다. 만든 음식은 맛있게 먹거나 손님 대접을 하고, 다 읽고 난 포스트잇은 반드시 분쇄기에 넣은 후 재활용한다.


여기까지 꼼꼼히 머릿속에 그렸다면, 당신은 방금 대학교 1학년 일반생물학 강의 2시간 정도를 이해한 거다.



- 비유의 해석

자, 그럼 이 비유에 하나 하나 설명을 달아 보도록 하자.


마을은 한 개의 세포를 의미하고, 도서관은 핵을 의미한다. 도서관 안에 있는 23개의 서고는 염색체를 의미하며, 이 안에 있는 개별 책들이 바로 우리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유전자이다. 이 책이 쓰여져 있는 매체(즉, 종이)를 DNA라고 하고 책에 쓰여진 언어를 시퀀스(Sequence), 혹은 우리 말로는 '염기 서열'이라 한다. 이 언어는 4진수 체계인데, 0, 1, 2, 3 보다는 좀 더 있어보이는 A, T, G, C라는 네 글자로 쓴다. 그래서 유전자라는 책을 열어보면 책의 내용은 AGCTGGCTAGCGGATCGAGCTTGTGGATAGGGAAAAA... 이런 식으로 네 개 알파벳이 주욱 나열되어 있다. 얼핏 보면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이 시퀀스가 어떠한 순서로 쓰여져 있는지를 인간이 화학적/광학적 방법을 이용하여 읽는 과정을 시퀀싱(Sequencing)이라고 한다.


책을 안 빌려주다 보니 대신 포스트잇에 옮겨 적어야 하는데, 이 포스트잇은 RNA다. RNA는 DNA를 포스트잇에 옮겨 적은 것일테니 어차피 이것도 ATGC로 이루어진 4진수 체계이다. 다만 손으로 옮겨적다 보니 'T'대신 쓰기 편한 U로 바꿔 써서(왜 U가 더 편한지는 묻지 말자) RNA의 4진수 체계는 AUGC라는 네 개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 책으로부터 포스트잇에 옮겨 적는 과정을 '전사', 영어로는 transcription(옮기다 라는 의미의 "tran" + 쓰다 라는 의미의 "scribe")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아무런 논리적 해석 없이 내용을 그대로 '복사'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할전 자에 옮길 사자를 써서 전사(轉寫) 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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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 포스트 잇에 옮겨 적는 장면.


포스트잇을 토대로 만든 냉면은 '단백질'이다. 그리고 저런 일을 하는 마을 사람들은 '효소'다. 포스트잇에 적혀진 글귀를 보고서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은 단순 복사가 아니라 그 내용을 이해해고 해석을 해야하니 '번역', 영어로는 translation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살짝 저 위의 예로는 설명이 안 되는 개념이 나오는데, 효소 또한 단백질이다. (마을 사람들이 냉면이었다니!!) 이건 어쩔 수 없다 그냥 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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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색 포스트 잇으로부터 냉면 (위에 초록색 면발)이 만들어지는 과정.


위의 내용을 다 이해하면 좋겠지만, 복잡하다 싶으면 딱 하나만 머릿속에 담고 가자. 유전자는 '책'이다.



- 그렇다면 유전자란

인간의 유전자는 대략 30억개의 시퀀스로 이루어져 있다. 즉, 23개 서고 안에 있는 책들의 모든 글자수를 더하면 30억 글자라는 말이다. 즉, ATGGCTAGCC... 이런식으로 연결된 문자열의 길이가 30억개라는 말이다. 이런 서고가 세트로 두 개가 있다고 했으니, 한 세포 안에는 총 60억개의 DNA가 들어있는 거다. 세포 하나의 크기가 얼마나 작은지를 상상해 보면, 이 DNA라는 물질이 얼마나 컴팩트하게 정보를 보관할 수 있는 물질인지를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여태까지 인간이 만든 그 어떠한 고밀도의 정보 저장 물질도 DNA의 아성에는 명함도 못내민다. 실제로 DNA를 정보 저장 물질로 사용하는데 큰 돈을 들이고 있는 회사는 마이크로 소프트사이다.


관련내용 -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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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날고 기어도 아직 박테리아 한 마리 수준도 도달 못했다.

특히 부피당 밀도, 에너지 효율, 그리고 정보 보관의 안전성 면에 있어서는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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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아저씨라고도 불리우는 하버드대 조지 처치(Church) 박사.

자신의 저서 한 권의 요약본을 HTML코드로 바꾼 후 DNA에 담았다. 

이름은 교회인데 교회가 싫어할 일들만 하는 진정한 이단(?)아.


이야기가 잠시 다른 데로 샜는데, 더 놀라운 것은 이 60억개는 세포 달랑 하나 안에 들어 있는 개수이고, 한 사람의 몸에 있는 모든 세포의 개수는 대략 1012~15개 정도 있다고 추정된다. 30억에 이 숫자를 곱하면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전체 시퀀스의 개수가 나올 것이나 그것은 그리 큰 의미가 없으니 보통 한 세포 안에 있는 숫자를 가지고 이야기 한다.


기본적으로 같은 종의 생명체들은 거의 유사한 시퀀스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자적 유사성이 98.8%라고 하는데, 어떻게 인간과 원숭이가 1.2%의 차이밖에 안 나느냐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총 30억개의 유전자 중 1.2%의 차이는 단순 계산으로 3천6백만개 시퀀스의 차이이다. 이건 어마어마한 차이이다. 이 3천 6백만개의 차이가 인간과 침팬지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전혀 혈연 관계가 없는 두 명의 유전자적 유사성은 대략 99.5%라고 알려져 있다. 즉, 0.5%의 차이가 오늘날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수백만년 이상의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생명의 연속성에 큰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일어난 변이들의 총 합. 그게 대략 0.5% 정도인 것이고, 이게 너와 내가 생김새가 다르고 성격이 다른 이유들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인간은 환경에 의해서도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유전자만 절대적으로 믿으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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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차이 만들어 내는 데에는 0.0000001%의 변이도 필요 없다.


유전자 검사 이야기 하려다 서론이 길어졌다. 결국 유전자는 책이다. 그리고 지구상의 거의 모든 사람들은 동일한 책을 가지고 있기는 하나, 그 중 일부, 극소수의 책에서 철자가 다르거나, 혹은 낙장이 발생했거나 하는 식으로 조금씩 다른 무언가가 서로의 다름을 만들어 내는 원인인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의 수많은 연구를 통하여 어느 유전자의 어느 포지션이 어떤 글자로 쓰여져 있으면 어떤 생김새를 만들어내더라... 하는 것에 대한 정리가 이미 많이 되어 있다. 이 정보를 토대로 내 유전자의 해당 포지션이 어떤 글자로 쓰여졌는지를 읽는다면 (즉, 시퀀싱 한다면) 우리는 우리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유전자 분석의 의의

어차피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데 그 유전자에 뭐라고 쓰여져 있는지를 따로 확인해 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물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요새 매스컴을 많이 탄 유전자 중 하나인 ABCC11이라는 유전자는 그 안에 존재하는 rs17822931라는 포지션의 시퀀스가 AA (비유로 말하자면, 도서관의 두 개 서고에 있는 ABCC11이라는 책의 특정 페이지, 특정 줄에 있는 시퀀스가 둘 다 A)일 경우 젖은 귀지가 아닌 마른 귀지가  나오고, 이 변이를 가진 사람은 땀냄새도 고약하지 않으며 한국인의 99%가 모두 AA라서 한국인은 몸에서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다소 국뽕스러운 기사가 나온 적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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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오늘 아침 만원 지하철에서 나던 냄새는 땀냄새가 아니라 입냄새였나...


이미 귀지가 말라 있으면 내 유전형은 AA일테니 그걸 굳이 유전자 분석을 통해 확인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할 수 있겠다. 이걸 생물학 용어로 표현형(마른 귀지, 땀냄새)과 유전형(AA형)이라고 하는데, 사실 우리가 한 80년의 삶을 살아가면서 모든 표현형을 다 미리 보고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알츠하이머 같은 경우는 그 발병과 유전적 요인의 인과 관계가 나름 잘 밝혀진 병 중 하나인데, 유전자 검사를 통해 본인이 알츠하이머 위험군에 속할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미리 그에 맞는 생활 패턴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고, 또 카페인 대사가 남들보다 안좋은 사람은 과량의 커피 섭취를 자제한다는가 하는 형태로 우리 몸에 맞는 스스로의 관리를 해 줄수 있다.


이 연재에서는 유전자 분석을 독려하지도, 그렇다고 만류하지도 않을 생각이다. 나는 개인적인 궁금함으로 해 본 것이고, 그 결과에 대해서 만족하고 있지만 사람마다 만족도는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어느 사이 우리 주변 가까이에 와 있는 이 신기한 상품(유전자 분석 서비스)을 할때 하고 말때 말더라도 뭔지는 알고 할지 말지 결정하자는 게 이 글의 취지이다. 이후의 글에서는 실제 결과를 보고 한번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연재를 이어 나가면서 궁금하신 사항 있으면 리플로 알려주시라. 아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자세히 설명해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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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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