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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503 씨가 법원에 올림머리를 하고 나타났다. 익숙한 올림머리에서 눈에 익지 않은 왕 머리핀이 걸렸다. 머리빨만큼 중요한 게 아이템빨 이거늘, 수감된 상태에서 소싯적 올림머리 아이템까지 챙길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간만에 박 씨의 올림머리를 보니 두 가지가 인상적이었다.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더니, 3년 넘게 헤어디자이너를 지켜본 박 씨의 올림머리 재현은 꽤나 고퀄이었다는 점. 그리고 저 상황에서도 서울구치소 특가로 1660원짜리 집게핀과 390원짜리 머리핀을 구매해 굳이 올림머리를 갈망했다는 점.

 


교도소는 욕망도 가둔다


정신병원 교도소에서 근무하다보면 503 씨 못지 않은 욕망의 화신들을 본다. 갇혀있는 상황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의 욕망을 더 부추기는 것 같다(물론 박 503 씨가 원래 물욕의 화신이었다는 것은 내가 잘 알겠다). 그래서 교도소에서는 욕망에 대한 규제가 더 심하다. 

 

서울구치소에서 살 수 있는 품목이, 그러니까 수감자들이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우리 교도소에서도 가질 수 있는 물건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 이곳에 들어오는 물건은 우리 교도소가 계약을 맺은 업체에서만 주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자는 물론이고 환자의 가족도 이곳으로 물건을 보내려면 그 업체에서 주문해야 한다. 수감자가 특정 물품을 좋아한다고 해도, 직접 가족이 물건을 사서 부치는 건 불가능하다. 식품을 제외한 모든 물건은 환자 개인의 물품 카드와 차트에 기재된다. 이 목록에 기재되지 않은, 즉 허가받지 않은 물건은 모두 시설의 것이다.

 

이곳에서는 금지 물품을 콘트라밴드(Contraband)라고 부른다. 콘트라밴드로 지정된 물건은 환자들이 살 수도, 가지고 있을 수도 없다. 일반적으로 안전에 위협이 되는 물건, 약, 술, 탈출에 사용되는 물건이 대표적이다. 절대 가지고 있으면 안 되는 물건들 외에 직원들이 지켜보는 동안만 사용해야 하는 물건도 크게는 콘트라밴드에 속한다. 직원이 지켜보는 동안 사용하는 것은 괜찮지만, 이것을 개인이 보관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물건은 슈퍼바이즈드 아이템(Supervised Item)으로 분류한다. 치료 목적으로 사용되는 도구와 물건들이라 생각하면 되는데, 보통 가위, 칼(칼은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자, 크레용, 사인펜, 물감, 구슬, 고무줄 등 미술용품이 많다. 슈퍼바이즈드 아이템을 감시하는 것은 일반 직원이 아니라 치료를 담당하는 직원이어야 한다.

 

모든 물건은 공장에서 포장되어 나온 상태 그대로 환자들에게 전달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일부 물품의 경우 컨트롤드 아이템(Controlled Item)으로 분류되어 해당 환자가 속한 치료팀의 검토가 필요하다. 이런 종류의 물품은 환자가 직접 보관하는 대신 간호사실에 보관해두고 환자가 대여하는 방식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전자제품에 사용되는 코드나 어댑터, 그리고 축구공, 야구공 등의 스포츠 물품이 여기에 속한다.

 


교도소에는 술 빚는 장인들이 산다

 

금지 품목을 다양하게 분류하지만, 아무래도 1위를 꼽으라면 술만 한 게 없다. 대체 어떻게 시설 안으로 술을 가지고 올까 싶겠지만, 술을 꼭 외부에서 반입한다는 편견을 버리는 게 좋다. 특수한 상황은 인재를 낳는 법. 이곳에는 술을 제조하는 야매 장인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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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영화나 드라마에서 술을 제작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명 Pruno 라고 불리는 교도소 자체 제작 술인데, 정말이지 기상천외하다. 이 술을 만들려면 일단 1갤런 용량의 지퍼백을 구해야 한다(그리고 다들 어떻게든 구한다). 지퍼백에 들어가는 술의 재료는 교도소 식사에서 구한다. 가장 흔히 보이는 오렌지 주스를 주재료로, 후식으로 제공되는 종합 과일 캔을 부재료로 넣은 후, 발효를 위해 이스트 대신 빵을 부숴 넣는다. 술을 만드는 데는 설탕도 중요한데, 설탕은 개인별로 제공되는 수가 정해져 있고, 주머니에 넣어서 가지고 나갈 수도 없다.

 

그러나 술 한 모금을 위해 브레인을 풀가동한 환자들 앞에서 이런 규칙은 크게 실효성이 없는 듯하다. 대부분 어떻게든 설탕을 구해 넣더라. 필수 재료를 갖추면, 이제부터는 취향의 영역이다. 밖에서 풀을 뜯어서 넣기도 하고, 상상을 초월한 식료품을 안에 넣어서 마구 부수는 경우도 있다. 재료를 다 넣었다면, 술의 재료가 담긴 지퍼백을 따뜻한 곳에서 발효시키는 일만 남는다 .

 

발효를 위해서 환자들은 따뜻한 곳을 찾는다. 타올로 감싸서 양지바른 곳에 놓고 나뭇잎 같은 것으로 위장막을 치는 게 보통이다. 그게 불가능하면 이불 속에 넣기도 하는데, 발각될 가능성이 높다. 일주일 정도면 발효가 끝나는데, 매일 밤에 품고 자는 장인도 있다. 발효된 이 기묘한 미확인 합성 식품은 술이라는 특성에 맞게 원래라면 짜서 즙을 먹만 먹어야겠지만, 양이 적은 관계로 건더기도 다 먹는 게 보통이다. 먹고 취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건더기에서 술 향기만 나도 만족하기 때문이다. 매일 점호를 하고 수시로 침실과 소지품을 검사하는 가운데서도 이러한 일들이 왕왕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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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뿐 아니다. 유닛마다 불시에 검사를 하다 보면, 대체 이런 건 어떻게 숨겨 들어왔을까 싶은 것들을 보게 된다. 야구 방망이 길이의 쇠파이프, 사냥용 칼, 망치, 등 기상천외한 물건들이 나온다. 물론 이런 물건으로 일을 벌이는 사람들도 있지만, 신기하게도 그저 가지고만 있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물건에 대한 값어치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르고, 그것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의 크기는 물건의 값어치에 따라 달라진다. 아마도 갇혀있지 않았다면 관심도 없었을 흔해빠진 물건을 여기에선 굳이 숨겨서라도 소유하고 싶어 하는 건 아마 그 때문이 아닐까. 이렇게 안과 밖은 다르다. 이곳에서 나가지 못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물건의 값어치와 사람의 욕망이 달라진다. 그래서, 오늘도 환자들은 물건을 숨기고 나는 찾는다. 이 줄다리기는 매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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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인지니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