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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1. 17. 금요일

독투불패 onesixth









벼락치기로 근근히 시험만 헤쳐나왔던 학창시절이었다보니, 어떤 책을 읽더라도 늘 충격에 휩싸이게만 된다. 새삼 그렇게 성적으로 모든 것을 평가했던 학교가 고마워진다. 하라는 시험공부는 안 하고 이상한 책이나 읽는다고 두들겨대지만 않았더라도 이렇게 뒤늦게서야 고전들을 뒤져보며 충격에 빠지지도 않았을테고, 그만큼 삶이 재미없어졌을지도 모르니까. 아, 씨바, 별 게 다 장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별로 중요치는 않지만 그 이상한 책의 정체는 레마르크의 "개선문"이었다. '만화 and/or 게임 and/or 이성교제 and/or ... ≠공부'라는 수식에서 예외를 기대하다니, 돌이켜보면 정말이지 순진했던 것 같다.

아무튼 그러다보니 모든 지식은 한 줄이었다. 아담 스미스 하면 '보이지 않는 손'이었듯, 루소하면 '자연으로 돌아가라'였다. 어쩌다 귀동냥으로 <에밀>이라는 책이 있다더라, 교육사의 첫 장에 어김없이 등장한대더라 정도나 듣게 되었을 뿐.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 사는 데에 아무런 영향도 없고, 진지 넘치고 근엄한 선생님이나 엄격하고도 자상한 아버지 같은 사람이었겠지라는 정도로만 갈무리해두고 있었다. 대충 개요를 보아하니 연령별 맞춤식 교육가이드인가 보네, 뭐 그런 생각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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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아시는대로 <에밀Emile ou de l'education; 원제; 에밀 혹은 교육에 관하여>은 가상의 인물 에밀의 성장기이다. 마치 철수와 영희처럼 읽는 이에게 친근감이 들게끔 선택된 이름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다 싶었는데... 어원이 좀 심상치가 않다. 경쟁하는, 비교할 만한 등의 뜻을 지닌 라틴어 aemulus로부터 왔다고 한다. 아마도 <에밀>을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이 에밀이라는 이름부터 이해해야 할 것 같다.

경쟁 속에서는 필연적으로 모든 것을 압도하는 사적인 이해가 모두에게 미덕의 가면으로 악덕을 미화하는 것을 가르친다. "나의 행복을 위해 다른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그들의 행복을 희생하도록 하라. 모든 것이 나한테만 유리하도록 하라. 나의 고통이나 배고픔의 순간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필요하다면 다른 모든 사람을 고통과 가난 속에서 죽도록 하라.


- 장 자크 루소 지음, 김중현 옮김, "에밀", '제4부 도덕과 종교 교육-열다섯 살에서 스무 살까지', 한길사, p.568

<에밀>은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보다 약 15년이 앞선 1762년 프랑스에서 출간되었다. 프랑스혁명까지는 아직 35년이 더 남아있었고, <국부론>편에서도 잠깐 언급했듯 이 때는 방탕과 무책임으로 악명 높았던 루이 15세의 통치기였다. 연이은 전쟁(1733년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 끝나고 2년 후 1740년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사실상 18세기판 1차세계대전, 그래서 유럽사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전쟁으로 평가받는다; 끝나고 8년 후 1756년 7년 전쟁, 사실상 18세기판 2차세계대전, 규모로는 1차세계대전보다도 더 컸다고 한다; 끝나고 12년 후이자 루이 15세가 사망한 바로 다음 해인 1775년의 미국독립전쟁, 고만해 이 미친 놈들아!)으로 나라재정은 거의 파탄상태. 영국의 지배층이나 프랑스의 지배층이나 그딴 거에 신경쓰지 않기는 마찬가지. 화려한 옷차림과 우아한 품행에만 온통 관심을 쏟았던 귀족들이 그저 민중의 아이돌 노릇으로 인생을 즐기고 있었던 와중에도 심각한 위기는 닥쳐오고 있었으니...

바로 '신분=재산'이라는 등식이 더 이상은 성립하지 않게 된 것이었다.

고대나 중세에서도 신분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척도는 재산이었고, 대체로 신분제도는 재산과 신분을 일치시키려는 경향성을 가지기 마련이다. 당시 프랑스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라서, 귀족들에겐 영지가, 교회에게는 교회령이, 즉 땅이라는 재산이 신분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16세기 무렵부터 굳이 땅이 아니라더라도 재산을 모을 수가 있게 되어버렸다. 공장주, 상인 등의 새로운 부자들이 속속 등장했고, 이들이 비교적 소수였을 때만 해도 법복귀족이라는 지위로 대충 얼버무릴 수가 있었다. 신분제도 유지하고 왕권도 강화하고, 님도 보고 뽕도 따고, 혈통 따윈 상관없이 그렇게 절대왕정의 좋은 시절은 지나가고, 슬슬 세습화되더니만, 이 때쯤에 이르러서는 왕은 쌩까고 그냥 지들 마음대로 법관직도 사고 팔고, 사실상 세습귀족이나 다름없어져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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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개판


비록 신분제가 고착국면에 접어들었다지만 출세는 그렇지가 않았다. 산업자본가들의 숫자도 점점 늘어난 것은 물론이고, 의사나 교수, 변호사 등의 전문직 또한 중류층으로서 한창 각광을 받는 중이었다. 귀족까지는 못 된다고 하더라도 교육만 빡세게 시키면 얼마든지 사회의 존경도 받고 벌이도 그럭저럭 괜찮을 상황. 전문직이니만큼 운만 좋다면 국왕님 용안이라도 한 번 뵐 수 있을 테고, 그러다보면 혹시? 당연히 파리의 부모들이 자녀교육에 전력을 기울였을 거라는 건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

우리는 아이 마음에 드는 일을 하는가 하면, 아이에게 우리 마음에 드는 일을 하도록 요구하기도 한다. 또는 우리가 아이의 변덕스러운 행동에 복종하는가 하면, 아이로 하여금 우리의 변덕스러운 행동에 복종하도록 하기도 한다. 중간이 없어, 아이는 명령을 하거나 아니면 명령을 받는지 해야 한다.

따라서 아이가 갖는 최초의 관념은 지배와 복종에 관한 관념이다. 말도 배우기 전에 아이는 명령을 하며, 행동할 수 있기도 전에 복종을 한다. 또한 때로는 아이가 자신의 잘못을 깨달을 수 있기도 전에, 더 정확히 말하면 잘못을 저지를 줄도 모르는 나이에 사람들은 그에게 벌을 준다. 그런 식으로 일찍부터 어린 마음에 격정-그들은 그것을 자연의 탓으로 돌린다-을 불어넣는 등 사서 고생을 하면서 아이를 고약하게 만들어놓고는, 아이의 그 고약함을 한탄한다.

아이는 그런 식으로 부인들 손안에서 그녀들의 변덕 및 자신의 변덕과 투정의 희생물이 되어 6~7년을 보낸다. 그러고는 이런저런 것을 아이에게 가르친 뒤, 즉 아이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이나 그에게 아무 소용도 없는 것들로 아이의 기억을 채운 뒤, 자신들이 생기게 한 편견들로 본성을 질식시킨 뒤, 그들은 그 인위적인 존재를 다시 가정교사의 수중으로 밀어넣는다. 그 가정교사는 벌써 완전히 형성되어 있는 인공의 배아를 발육시키는 일을 완성하는데, 그 아이에게 자기 자신을 아는 일, 자기 자신을 활용하는 일, 사는 법을 배워 행복해지는 일만 제외하고 모든 것을 가르친다.

- '제1부 신체의 자유를 구속하지 않는 양육-유년기의 에밀', p. 81-82


가장 잘 산 사람은 가장 오래 산 사람이 아니라 인생을 가장 잘 느낀 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백 살이 되어 무덤에 묻혔지만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죽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은 젊어서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적어도 그때까지 삶을 제대로 살았더라면.
- p.71


(그러므로)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시키면서 아이에게 온갖 종류의 사슬을 채워, 그가 맛보지도 못할 이른바 그 행복이라는 것을 미래에 안겨준다는 미명 아래 아이를 불행하게 만드는 그런 야만적인 교육을 도대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설령 그 교육이 목적에서는 온당하다고 생각할지라도, 견딜 수 없는 속박에 복종하며 그 각별한 보살핌이 자신에게 꼭 유익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이 마치 죄수처럼 끊임없는 노역에 처해진 불쌍한 아이를 바라보며 어찌 분노가 치밀지 않겠는가?

즐거워야 할 시절은 눈물과 체벌과 위협과 속박 속에서 지나간다. 사람들은 그의 행복을 위한다며 그 불행한 아이를 괴롭힌다. 그들은 그 우울한 교육을 통해 자초하고 있는 아이의 죽음을 보지 못한다.

... (중략) ...

미래를 위한 준비, 그것은 어쨌든 어느 날 그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희망에 근거하여 그의 현재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

- '제2부 신체와 감관의 훈련-다섯 살에서 열두 살까지' p.136-138

너도 나도 대학에 몰려들다보니 우수한 인재가 양성되고 바람직한 경쟁이 이루어졌다...면 좋았겠지만, 그 결과는 대학 서열화와 노력의 과잉으로 나타나게 된다. 사실상 아이들의 경쟁이 곧 부모들의 경쟁이었다는 이야기. 어릴 때부터의 조기교육은 물론이고, 학연 지연 있는 연줄이란 연줄은 모두 동원해야 했으니, 당시의 교육이 어떠한 모습이었을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다. 비록 프랑스의 경우는 아니지만, 아담 스미스 아저씨도 어렵사리 옥스포드에 입학해서는, '이거 뭐임, 이게 그 대단한 옥스포드임? 다들 놈팽이에, 우리 동네 학교보다도 못하잖아?'라며 수업은 쌩까고 책만 읽다가 졸업하자마자 스코틀랜드로 돌아가버렸다고 한다. 여담으로 엘리트주의와 대학서열화의 본고장 프랑스의 전통은 1968년의 개혁(68혁명의 영향) 전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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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

아무튼 루소는 이렇듯 신분제와 또 다른 신분제로 점철된 프랑스 사회에 이의를 제기하려고 했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으로 강력한 비판을 시도해보았으나 학벌도 없는 독학자에게 귀를 기울여주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사회계약론'과 '신 엘로이즈'로 연타를 날려보아도 별 소용이 없었다. 국민들이야 굶어죽건 말건 '미안한데 세금 좀'하는 왕과 관료들, 너무나도 뻔뻔스럽게도 당연하다는 듯이 빈자들 사이에서 패션쇼를 벌이는 귀족들, '어려운 건 알겠지만 우리도 살아야지'라며 하나님의 사랑을 십일조로 증명하라던 사제들, 이미 그들만으로도 열불이 터지는데, 지식인을 포함한 중류층마저 '우리도 궁정 안에 들어가고 싶어욤'이라며 자신들의 신분상승만을 꿈꿀 뿐 도통 정신을 못차리고 열심히 기름을 들이부었다. 이 광경은 패션의 아이콘으로 궁정을 누비는 마리 앙투와네트와, 수단과 방법을 불문하고 오로지 궁정사회로의 진입만을 열망하는 쟌느로 대비되는 <베르사이유의 장미>에서도 확인할 수 있겠다. 하긴 굳이 마리 앙투와네트가 아니더라도 창조의 여왕님만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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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 형님, 그런 상황에 제대로 열받으셨다. 디드로나 볼테르 등 당시에 한가닥한다는 계몽사상가들에게마저 무시당하며 점점 미운털만 박혀가는 와중에 1762년 마침내 <에밀>이 출간된다.

당신 자신의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말라. 아이가 보는 악은 당신이 그에게 가르치는 악만큼 그를 타락시키지 않는다. 좋다고 생각하는 관념 하나를 그에게 말해주기 위해 끊임없이 설교하고 도덕주의자인 체하며 유식한 체하면, 기실 당신은 아무 가치도 없는 20가지의 또다른 관념을 동시에 그들에게 주게 된다. 머릿속이 수많은 생각으로 가득 찬 당신은 당신이 그의 머릿속에 야기하는 결과를 알지 못한다.

- '제2부 신체와 감관의 훈련-다섯 살에서 열두 살까지' p.167-168


아이에게 어울리며, 어느 연령대의 사람에게도 가장 중요한 유일한 도덕적 교훈은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말라'는 것이다. 선행을 하라는 교훈조차도 위의 교훈이 앞서지 않으면 위험하고 잘못된 것이며 모순적인 것이 된다. 좋은 일을 하나도 하지 않는 자가 누가 있는가? 모두가 한다. 악한까지도. 그는 백 명의 불쌍한 사람을 희생시켜 한 명을 행복하게 만들 뿐이다. 바로 거기에 우리의 모든 재해의 화근이 있다.

- p.184

이 책에서 루소는 자신이 창조해낸 인물 에밀의 교사를 자청한다. 그리고 에밀이 태어나고 성장해가는 과정을 통해 자녀교육에 대한 친절하고도 따뜻한 조언을 건네려했던 것이 아니라...


힘들지 않게 선해질 수 있고 덕이 없이도 정의로울 수 있는 그런 나라의 국민은 행복하다! 나쁜 짓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으며 시민들이 부득이 사기꾼이 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불행한 국가가 세상에 있다면, 교수형에 처해야 할 사람은 범죄자가 아니라 그를 그렇게 되도록 강요한 사람이다.


- '제3부 지능과 기술 교육-열두 살에서 열다섯 살까지' p.345-346


사람들은 2천 년 전에 세상 반대편 내가 알지 못하는 어느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죽은 신을 내게 전파하고는, 그 신비를 믿지 않는 사람은 모두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지.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의 권위만을 바탕으로 하여 그토록 빨리 믿어야 한다니, 너무나 이상한 일 아닌가!

- '제4부 도덕과 종교 교육-열다섯 살에서 스무 살까지' p.549

돌직구를 던져대신다. 서문에서부터 '너님들은 날 욕할 거임'이라면서 포문을 열더니, '어머님들~ 에헴'하고 점잖은 척 헛기침을 한번하고는, '너님들이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ㅋㅋㅋ 너님들이 그만큼 똑똑하다고 생각함? ㅋㅋㅋ 그냥 입 다물고 조용히 암말도 하지 않는 게 아이들에게 가장 도움이 될 거임 ㅋㅋㅋ'라는 독설로 책의 전반부를 장식해나간다. 말끝마다 '내 상상 속의 아이가 너님들의 아이보다 훨씬 훌륭하게 자랐음, 어떠심?'이라는 이상한 자랑질로 약을 살살 올리는 건 일종의 보너스.

학부모와 선생들을 향한 통렬한 비판만으로도 모자라, 후반부에 이르면 국가와 종교, 즉 그러한 학부모와 선생들을 양산해내는 당시의 사회체제에 대한 전방위적인 비판으로 이어지게 된다. '교회? 즐. 걔네들 뭐 전도 빼곤 달리 할 줄 아는 게 있나? 파리? 거긴 사람 살 데가 못 돼, 허영 쩌는 속물들만 득실거리는 데임. 법질서? 그 따위 건 다 너님들 억압하려고 만든 거, 그것도 몰랐음?'이라는 식이다. 물론 상당히 과격한 요약이니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하겠다... 만은, 실제 내용에 있어서는 대단히 신중하고도 이성적인 논리전개를 펼쳐나간다...지만은, 안타깝게도 당시 프랑스 사회는 나처럼 무식하게 <에밀>을 받아들였다.

일단 종교계가 열받고, 학계의 비난이 이어지고, 정계가 십자포화를 쏟아붓더니(이게 다 열흘 정도 사이의 일), 세상에 등장한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1762년 6월 9일, 금서목록에 당당히 등극, '저 새끼 종북좌빨(당시의 표현으로는 무신론자. 이런 것도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 있다. 군인이 대세였던 고대의 겁쟁이, 군주가 대세였던 중세의 배신자, 자본가가 대세였던 근현대의 공산주의자 등이 자매품)'이라는 낙인과 함께 루소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틀 후 6월 11일, 경찰에 의해 압수된 <에밀>은 파리의 한복판에서 불태워진다.

간신히 프랑스를 빠져나와서도 암울하기는 마찬가지. 베른에서는 신앙고백을 댓가로 체류허가를 받아야만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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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식의

그런 굴욕에도 불구 3년 만에 다시금 추방당하고, 어찌어찌 영국의 종북좌빨 흄과의 두터운 교분 덕에 런던에 도착하지만, 연이어 그에게 등을 돌려버린 친구들에 대한 배신감 때문인지 채 1년도 안 되어 흄과의 우정마저 파탄을 맞으니. 그야말로 이 한 권의 책으로 루소는 스스로를 새하얗게 불태워버렸다고 밖에는...

어떤 공부든지 간에 표현되는 것들의 관념이 없으면 표현하는 기호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언제나 그 기호만 아이에게 가르칠 뿐 그 기호가 표현하는 것을 전혀 이해시키지 못한다. 아이에게 지구에 관한 묘사를 가르칠 생각을 하면서 사람들은 그에게 지도 보는 법만을 가르친다. 종이 지도 위에 있는 도시나 나라나 강의 이름들을 가르치지만, 아이는 그것들이 지도 위가 아닌 다른 어디에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 '제2부 신체와 감관의 훈련-다섯 살에서 열두 살까지' p.193-194


그(자녀)에게 당신의 보살핌을 자랑하는 일은 그로 하여금 그 보살핌을 역겹게 만들 뿐이다. 그 보살핌을 잊는 일, 그것은 곧 그에게 그것을 기억하게 하는 일이다.

- '제4부 도덕과 종교 교육-열다섯 살에서 스무 살까지', p.417-418

<국부론>처럼 <에밀>이 출간된지도 거의 250여 년이 지났다. 교육의 첫 장에서는 언제나 루소의 이름을 확인할 수가 있지만, 정작 <에밀>이 당시의 줄서기식 교육에 대한 강렬한 비판이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듯 하다. 출세의 수단이 되어버린 교육에서 루소는 또 다른 신분제를 발견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이들에게 아무 것도 가르치지 말라고 한다. 교육은 하나의 습관이기에, 아무런 소용도 없는 한 줄짜리 지식들은 물론이고, 그러한 지식들을 가르치기 위해 아이들을 괴롭히고 억압하는 어른들의 태도까지도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제마음껏 들판을 뛰어다닐 수 있도록 내버려두기라도 한다면, 억압과 구속에 저항하는 자유로운 정신이나마 배양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인간이 반드시 지녀야 할 것은 지식이 아니라 양심이라고 확신했으며, 따라서 경쟁이라든지 세론, 통념 등 양심을 해칠 수 있는 어떠한 종류의 부정적 영향으로부터도 아이들을 보호하는 것이 최선의 교육이라고 보았다.

물론 루소는 완전하지 않다. 정작 자신의 아이에게는 지독히도 무관심했다는 인간적인 약점을 비롯, 여성차별이라든지 인종주의, 국가주의에 대한 비판(이건 특별히 좀 언급해두고 싶다. 루소가 두고두고 비판받은 부분은 바로 국가주의였다. 법질서를 비판하면서도 시민불복종을 부정하고, 강압적인 통치를 비판하면서도 강력한 중앙집권을 이야기하는 등, 국가에 대한 그의 관점은 상당히 모순적인 부분이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마도 루소는 자신이 꿈꾸었던 이상국가와 비판의 대상으로써의 현실국가를 분명하게 구분하지 못했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절대왕정이 지배했던 현실에 민주정의 이상을 끼워맞추다보니 그 모양이 이상해져버리고 말았던 것. 아무튼 <에밀>에 대한 국내의 평가에서는 한결같이 여성차별만 이야기할 뿐, 가장 주요한 비판대상인 국가주의에 대한 언급이 없기에 굳이 이렇게 긴 한 마디를 더해본다)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비판이란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는 당연한 이야기를 덧붙여야 하겠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기에 앞서, 왜 가르치는지를 먼저 생각해보라는 루소의 견해는 오늘날에 있어서도 충분히 곱씹을만한 문제이다.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에만 어쩌다 신경을 썼을 뿐, 아이들이 교육 그 자체에서 배우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건 아닐까. 겸손해지자, 가르치려 들지 말자, 양심을 갖자, 어찌보면 고리타분할 정도로 당연한 말들을 18세기 중반의 프랑스 사회는 용인할 수가 없었다. 왠지 현재에 있어서도 그의 생각들은 여전히 색다르게 보이기만 한다.

사려 깊은 사람 앞에서는 모든 인간적 차별은 사라진다.

- p.402

<에밀>이 출간되고 정확히 100년 후, 루이스 캐럴은 아이들이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 책이 없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하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쓰기로 결심한다. 출간된 건 3년 후. 미안하다. 억지로라도 끼워맞춰보고 싶었다. 아무튼,




경쟁을 좋아하세요? 어쩌죠... 경쟁은 당신이 별로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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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