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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변명

2014-01-16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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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1. 16. 목요일

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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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 밀교의 사술을 익혀 방중술에도 능한 요승 신돈이 나오는 궁중여인들의 암투와 영욕을 그린 역사 소설이 있다. 다른 소설에서는 공민왕에게 노국공주와 꼭 닮은 반야에 제 씨앗을 심어 괴이한 약초를 태워 정신이 혼미한 공민왕에게 동침을 시키기도 한다.


왕씨가 아닌 우왕과 창왕을 폐위시킨 이성계 집단은 고려를 지우고 조선을 세운다. 신돈의 민생정책과 기득권 배제 정책은 나라를 망치는 정책으로 기록 된다. 권문세족에 강제로 재산을 빼앗기고 노비가 된 사람들을 자유민으로 풀어주고 권문세족의 자제들이 별다른 이유 없이 관직에서 승진이 빠른 것을 막고자 승진에 근속연한 규정을 지키려 한 것들이 요승이 나라를 말아먹으려고 요망한 짓을 한 것으로 기록 되었다.


그가 노비의 몸에서 태어난 창녕사 절터 부서진 주춧돌의 정 자국은 신돈을 증오 했던 권문세족들의 증오심을 잘 표현해준다. 그들이 남긴 글을 토대로 요승 신돈이 등장하는 역사소설이 쓰여 지고 시대에 따라 이야기가 덧붙여진다. 있는 사람들이 더하더라는 말은 선후가 바뀌어야 옳다. 이익에 더 독하고 집요한 사람들이 있는 상태를 대물림한다.


노무현이란 이름도 그렇게 만들어질 것 같았다. 재임 시절에도 고졸 출신 대통령을 경멸하던 야당 대변인의 독살스런 증오를 기억한다. 어느덧 기득권 세력으로 편입된 민주화 세력들의 불편함도 느껴졌었다. 운동권의 학벌 좋고 똑똑한 분들의 질시도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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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임 중에도 주류 일간지에서는 모든 사회불안과 부조리의 원인을 노무현 탓으로 돌렸다. 그 시절에는 뒤로 자빠져서 코가 깨져도 언론에 따르면 대통령 때문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이후 비극적 죽음의 소식을 들려줄 때까지 사냥개처럼 집요한 기득권과 언론의 공격이 있었다.


부고를 전하는 신문 만평마저도 잘 가라는 비아냥으로 손바닥 그림을 그려 놓았었다. 권력과 기득권을 함께 누리기를 갈망하는 언론인들의 솔직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더 갖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쥐 생식기만한 특권이라도 빼앗긴 원한은 집요하고 끈질기다. 아버지의 원수는 형편 되는 대로 갚지만 제 돈 떼어먹힌 원한은 사생결단으로 갚고 말겠다는 소인배들의 의지와 집념이다. 한겨레와 경향도 청와대 기자실 고정석을 없애는 문제에 조중동과 매 한 목소리를 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이후에도 모든 것이 노무현 탓이었다. 얼어붙은 대북관계도 노무현 탓, 경제문제도 노무현 탓, 천안함 침몰도 노무현 탓으로 돌리고 정작 책임져야할 사람들은 승진을 했다. 어떤 이들에겐 그 분들이 승진을 한 것도 노무현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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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임기가 끝나고 박근혜 정부가 2년차를 맞이했는데도 아직도 친노 종북 세력 때문에 나라가 이지경이라는 우국지사들이 떼로 몰려다닌다. 그냥 이건희 회장님의 말대로 좀 솔직해졌으면 좋겠다. 공짜 밥과 고기를 당당하게 먹고 싶어서 그런 거라고 말이다.


국정원이 우수회원을 초대해서 시계와 자긍심을 하사하는 인터넷 싸이트의 젊은 인재들은 죽은 노무현 대통령을 비하하는 방법을 창조적으로 전파한다. 소수와 약자에 대한 증오감을 저열하게 표현하는 와중에 틈틈이 노무현을 모욕한다. 노무현을 모욕하는 틈틈이 사회적 약자들과 김대중 전대통령을 비열하게 조롱한다. 보다 비열하고 기발할수록 창조 경제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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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프렌차이즈 카페 직원의 일베 인증. 메모장에 쓴 문구는 '표현과 사상의 자유'다


백 번을 우기면 진실이 된다는 일본의 속담을 믿는 친일파들은 공중파 뉴스에도 노무현 비하 그림을 내어보낸다. 노무현 비하 싸이트를 이용한다는 의혹이 있는 연예인들은 수긍도 부정도 하지 않고도 방송출연이 원활해진다. 힘 있는 자들이 뒤를 봐 준다는 생각인지 패악질이 나날이 한계를 벗어난다.


노무현을 그린 영화가 개봉되었다. 어떤 영화나 드라마보다 극적일 것 같은 그의 정치 경력이나 죽음으로 내몰릴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담지 못했다. 당연히 영화에서 노무현이란 이름을 사용 하지 않았다. 영화 첫 자막을 통해 영화가 사실이 아니라 허구라고 허구의 나라에서 꾸며진 이야기처럼 포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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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노무현 역을 맡은 배우가 배역을 맡은 후에 시나리오가 끊어졌더란 기사를 읽는다. 시사회장에서 노무현의 부고소식에 손바닥 흔드는 그림을 그렸던 신문사 기자의 질문은 급전 필요했었느냐는,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는 빈정거림이었다.


영화를 보고난 사람들은 감상과 입소문을 남겼고 언론의 호들갑 없이 역대급의 흥행을 한다. 많은 이들이 보았으니 각자의 시선으로 본 많은 이야기들이 다시 만들어진다. 어떤 이는 노무현의 영웅적인 면을 보고 영웅의 비참한 최후를 아쉬워한다. 또 어떤 이는 고문당한 학생의 모습에서 진저리치는 기억에 그 시절 학생들의 순수했던 정의감과 희생을 기린다. 양심선언 뒤 법정에서 끌려 나가는 중위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나아짐과 개인의 인생을 바꿔야했던 수많은 의인들을 기억하며 눈시울을 붉힌 사람들도 있다.


배우들의 연기와 감성적, 대중적으로 잘 짜인 드라마에 점수를 주는 사람도 있다. 각자의 입장과 경험과 기억에 따라 같은 영화를 보는 관점이 다르다. 영화는 무난히 천 만을 넘을 것 같고 영화의 흥행이 다음 선거에 그리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언론과 기득권들의 집중공격에 시달리고 별 힘을 못 쓰는 동안 민주당은 노무현과 금을 그었고 그 금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선명하게 대중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이런 현상을 별로 분석 하고 싶지도 조명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 것 같다. 송변은 송변이고 노무현은 노무현이다. 저잣거리의 천민 아이들이야 녹두장군의 노래를 부른다 하더라도 전봉준은 혹세무민하는 역적으로 일본군에 잡혀 죽임을 당해 마땅하다는 양반 지주님들의 마음인 것 같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어쩌면 노무현은 신돈처럼은 기억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시절에는 글을 아는 사람들이 모두 기득권이었지만 한글이 보급되고 누구나 제 생각을 일기로 라도 남길 수 있는 시대라서 노무현을 기억하는 다양한 시선들이 기록 되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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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훗날 시대의 요구에 맞게 각색되고 윤색되어진다고 해도 지금의 권세가들이 원하는 대로의 이야기로만 전해지진 않을 것 같다. 그 정도 가능성만으로도 인간의 역사가 보다 나아짐을 향해서 나아간다는 걸 느끼게 한다.


밑바닥 출신으로 열등감과 독기를 바탕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성공한 자신을 받아 드려주는 상위계층과 체제에 열성적으로 충성하고 과거의 비천한 출신을 부정하고 자신처럼 성공하지 못 한 열등한 사람들을 경멸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보통의 잘난 분들처럼 그렇게 상류사회에 녹아 하여가를 부르며 살아가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는 그저 살아갈 뿐인 삶의 비겁함을 부끄럽게 한다. 부끄러움은 반성과 변명을 선택하게 한다.


변명을 해 보기로 했다. 거인의 어깨높이에 올라선 사람이 바라보는 거인의 얼굴은 감성적인 좌측일수도 이지적인 우측일수도 있겠지만 거인의 아래서 올려다보면 좌측 궁뎅이나 우측 방뎅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좌측 궁뎅이의 그늘을 고마워할수도 우측 방뎅이의 미끈함을 찬미할 수도 있다.


가운데서 모가지가 뻐근하게 자세히 쳐다봐야 좌측 궁뎅이와 우측 방뎅이가 생식기와 항문을 사이에 두고 자리다툼하듯 씰룩 거리고 있다는 게 보일 뿐이다. 생식을 담당하는 생식기가 중요한 이유는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사실은 항문이 대장이다.


거대하게 부풀어 오르는 생식기에 경외감을 느낄 수도 있고 똥 덩어리가 쏟아져 나오는 항문에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다. 개중 눈 밝은 사람은 생식기와 항문이 괄약근으로 연결되어있다고, 그것 역시 사실은 그게 그거라고 말한다. 정치를 올려다보는 바닥 사람들의 냉소다.


똥 벼락을 맞으면 똥독이 올라 대장균을 숭배하거나 지독한 똥 냄새에 체념해 버린다. 똥침을 놓고 싶어도 사다리 없이 올라가는 길을 모른다. 화는 나지만 더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스스로를 위해 하는 변명이 영 옹색하고 치졸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추하지는 않게 제법 잘 버티고 살고 있는 중이라고 대신 말해줄 변호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비겁한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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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우


편집 :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