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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배움의 터전입니다. 그래서 '학교'라는 공간의 모든 것은 그 자체가 교육이고, 또 반드시 교육이어야 합니다. 안전수칙, 생활예절, 인성교육, 환경사랑 실천과 교과수업 모두가 학교라는 공간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어야 하고, 모든 구성원이 그 가치를 실천하는 것으로 교육은 이루어지고 이어지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몸소 실천하지 않는 교사의 가르침은 공허하고, 권위의식이 존재하는 교실의 민주주의란 그저 교과서 속 글자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학교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요소의 대분류는 간단합니다. 학생, 교사, 행정직원이 전부지요. 조금 더 세분화하면 예전에는 학교 회계직이라 불렸던 학교 비정규직들이 일반 비정규직과 교육공무직으로 나뉘고, 행정직원은 행정실장과 주무관, 그리고 급식실 직원들로 나뉩니다. 교사 역시 정규직 교사와 계약직 교사로 구분되고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구성원들 중 어느 하나도 학교에 필요하지 않은 역할은 없다는 것입니다. 필요하지 않은데 국가가, 교육청이, 그리고 학부모가 괜한 급여 지급하면서 학교에 모셔두고 있을 필요가 없겠지요.


급여의 무게가 다를지언정, 역할의 중요성이 갖는 무게는 결코 다르지 않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학교의 대내외적인 일을 관리하는 관리자와 학생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는 물론이거니와 학교 시설을 관리하는 주무관, 교사의 업무를 분담하여 교사가 학생 교육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을 돕는 교육공무직원들과 다양한 학교 회계직원, 학교의 모든 식구들의 맛있고 건강한 점심을 책임지는 급식실의 영양사와 조리사/조리종사원, 그리고 깨끗한 교내 환경을 위해 쉼 없이 청소하고 정리해주시는 위생담당직원까지. 그 어느 하나도 쓸모없는 역할이 없고 그렇기 때문에 쓸모없는 사람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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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전 정말 어이없는 기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국민의당 이언주의원이


"솔직히 조리사라는 게 별 게 아니다. 그 아줌마들 그냥 동네 아줌마들이다. 옛날 같으면 그냥 조금만 교육시켜서 시키면 되는 거다. 밥하는 아줌마가 왜 정규직화가 돼야 하는 거냐?"


라고 했다는데 하도 어이가 없어서 실소조차 나오지 않더군요.


어딘가 낯익은 모습이었습니다. 저들이 저러는 거야 한두 번 보아온 풍경은 아니지만 그래도 왠지 강한 기시감이 들어왔습니다. 아, 조리사나 조리원이나 청소노동자나 그들에겐 그저 그 정도의 존재일 뿐이라 생각하면 김태흠이란 이름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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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들 무기계약직 되면 노동 3권이 보장된다. 툭 하면 파업할 건데 어떻게 관리하려고 그러냐. 또 그렇게 되면 산별노조,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하고 협상해야 되지 않나. 이런 복잡한 부분이 있는데 30년 넘게 큰 문제 없이 진행되어 온 부분을 왜 바꾸려 그러느냐“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국회 청소노동자들의 목소리에 대한 그의 화답과 이언주 의원의 이야기는 너무도 닮아있습니다. 어느 것이 더 냄새나는 말인지 가리자면 사흘 밤낮을 지새워도 모자를 지경입니다. 국민의 노동 3권이 보장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나, 엄연히 존중받아 마땅한 누군가의 직업을 비하하는 이나, 그 마음에 군내 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그와 같이 자신의 짧은 소견으로 누군가의 가치를 논하자면 대한민국 국회의원 까짓거 별거 아니라고, 그 아줌마 아저씨들 모두 그냥 꼬장 부리는 꼰대들이라고, 정치 선진국 같으면 그 따위로 했다간 진작 주민소환당했을 것이라고 저 역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언주 의원의 그러한 인식, 직업의 귀천을 나누는 사회의 시선 등은 우리 아이들에게 유해환경입니다. 아이들의 교과서엔 이 사회가 지향해야 할 아름다운 가치들인 평등, 공생, 나눔, 배려, 사랑과 인성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저런 밑도 끝도 없는 차별의식과 우매함을 마주하고 있는 우리는 어쩌면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의 눈과 귀를 막아야할지도 모릅니다. 학교 인근의 러브호텔보다, 등하교길의 불량식품 노점상보다 훨씬 더 극악한 유해환경이니까 말이지요.

 

저는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육공무직원, 즉 교무행정사입니다. 합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즐겁고 보람 있는 일이라서 좋아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조금씩 천천히 많은 상황들이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더 좋아지기 위해 필요한 나의 역할은 없을까 고민하며 지내고 있는 학교비정규직입니다. 그 와중에 이언주 의원의 저 말을 듣고 '내가 조리사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안타까운 안도와 비정규직 설움의 도화선으로 삼을 가벼운 분노조차 느껴지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오직 이런 생각만이 듭니다. 저들은 무얼 배웠던 걸까? 그들이 배운 교과서 속 가치 역시 지금과 다르지 않았을 텐데. 어찌 그 교육과정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을 저들의 생각이 저토록 저열하고 저급할 수 있는지 알 것 같기도 모를 것 같기도 한 그런 생각만이.


아마 저들도 어렸을 때 '모순'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교과서의 이야기와 현실의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그 거대한 모순. 사회적 강자에게선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교과서 속 가치가 내 어머니 아버지에게서, 착한 이웃들에게서 발견되고 또 그것이 어떻게 이용되고 조롱되어 왔는지 누구보다 강렬히 느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왜곡된 욕망과 비뚤어진 사회인식을 갖게 되었는지 모르지요. 그래서 교과서의 이야기는 그저 성공을 향한 발판과 계단으로 여길 뿐, 오르고 나면 치우고 싶은 지저분한 흔적 정도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아침입니다.

 

단편적인 사례가 보편적인 상황을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짧게 전할 저희 학교 급식실 식구들의 이야기가 제 논점을 전달하는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꼭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들이 어떤 일을 하고, 학교의 구성원으로서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한 사람이라도 더 아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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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학교 급식실의 세 분 선생님은 학교에서 인기가 참 좋습니다. 자신의 일에 충실하기 때문이지요. 밥과 국과 찬은 늘 맛있고, 그 양이 부족하여 아쉬운 마음이 든 적도 없으며, 그렇다고 무조건 많이 준비해 음식을 버리는 것도 아닙니다. 매일 이뤄지는 식중독 샘플링 검사에서도 문제된 적 없고, 실제 문제가 일어난 적도 없습니다. 때가되면 직무연수에 참여해 업무수행역량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냥 밥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지요. 이렇게만 해도 학교의 구성원으로서의 자신의 역할은 충분히 다 한 것일 텐데, 또 있습니다. 학교 돌보느라 밖에서 고생하고 있는 이들에게 시원한 물 한 잔, 뜨끈한 부침개 한 판 챙겨주시는 분들도 그 분들입니다. 자신이 키운 상추와 채소들 거둬다 상에 올려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도 그 분들입니다. 위생 모자에 마스크, 장갑과 앞치마 챙겨 입느라 누구보다 더울 텐데도 배식하는 중간에 선풍기 돌려 학생들 시원하게 해주시는 분들도 그 분들입니다. 병설유치원 아이들과 저학년 아이들 생선살 발라주고, 앞쪽 김치는 아이들 먹기 좋게 잘라놓았으니 구별해서 담으라고 친절 베푸시는 분들도 그 분들입니다. 오전 내내 뜨거운 불 앞에서 힘들게 땀 흘리고 모두 식사를 마치고 나서야 점심 드시기 시작하시는 분들도 그 분들입니다.


학교에서 제일 고생하는 분들이 그 분들이라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맡은 바 책임을 다 하기 위해 성실히 일하고 계신 모든 분들의 소중함이 바로 그와 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지요.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고를 자의로 쉽게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적어도 그들과 같은 사람에게 '미친놈들', '별 것 아닌 사람' 소리를 들어야 할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 하고 싶었습니다. 뿌리, 줄기, 잎 어느 하나의 역할에 주목하느라 나머지를 잃는다면 식물의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것과 같이, 학교라는 공간에 있는 모두가 행복한 교육공동체를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어느 하나의 역할도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급식실 근무자들이 파업에 나가면 우리 아이들 식사는 어떻게 하냐며 난리인 사람들이, 급식실 일은 보잘 것 없는 일이라 떠든다는 것은 그야말로 모순이 아닐까 합니다.

 


다시금 학교의 본래 의미를 되새겨봅니다. 학교는 배움의 터입니다. 그 배움, 교육이란 교과서에도 있고, 이야기 속에도 있고, 행동에도 있고, 놀이에도 있습니다. 자유와 평등, 그리고 민주주의와 나눔의 가치를 가르치는 데 필요한 것은 비단 교과서만이 아닙니다. 자유와 평등을 존중하는 행동과 민주주의와 나눔을 실천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 학생들은 그 가치를 배울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정치인과 국회, 사회의 병폐와 기득권을 누리는 자들이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의 사례가 되는 그 날이 왔으면 하는, 이루기 힘든 바람을 가져봅니다. '반면교사'의 교훈은 이미 충분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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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주 의원의 트위터에는 '엄마의 마음으로' 야무지고 따뜻한 정치를 하겠다는 각오가 새겨져 있습니다. 보통의 의미에서 우리네 모두의 엄마야 말로 밥하는 아줌마고, 동네 아줌마입니다. 엄마의 역할을 비하하면서 엄마의 마음으로 하겠다는 그 정치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구역질나는 오늘의 아침입니다.






젊은농부


편집 : 딴지일보 인지니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