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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일본 도쿄를 잠깐 다녀온 적이 있다. 간 김에 오래된 나름의 추억의 장소라 할만한 아키하바라(秋葉原)를 들렀다. 80년대, 90년대의 아키하바라는 전자제품 매니어로서는 빼놓을 수 없는 전 세계 최고의 전자제품 시장이었다. 국내에서는 구경하지도 못할 최첨단 AV기기가 넘쳐나고, 또 그것을 사려는 사람들로 늘 북적대던 그런 동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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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 30년이 지난 지금의 아키하바라는 전자제품 양판점은 다 어디로 갔는지, 거기에는 몇몇 전통의 카메라 양판점을 빼고는 쪼그마한 인형 같은 피규어 샵과 뽑기방, 오락실, 성인 비디오 가게, 메이드 카페만이 성업 중인듯이 보였다. 하기사 일본의 7대 전자업체 전체의 시가총액을 다 더해도 삼성전자 시가 총액의 10분의 일이 될까 말까할 정도라고 하니 일본전자업체의 오늘을 잘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대략 25년 전 삼성전자의 윤종용대표이사가 소니 본사를 방문하게 되었을 때, 카운터파트너로 접대에 나온 소니 측 인사가 대표이사도, 그냥 이사도 아닌 일개 '부장'이었던 걸 생각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이 든다.


사람도 그렇지만 기업도 한창 성장할 때 영양 보충이 잘돼야 하는 건 맞는 것 같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까먹고 있는 지 모르지만 1980년대, 1990년대 우리나라에는 '수입선 다변화 정책'이란 것이 있었다. 이게 뭔가 하면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해 특정 국가로부터의 수입을 제한하는 정책이었다. 말하자면 당시 전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던 일본의 전자제품을 한국에 수입할 수 없게 만드는 정책이었다.


이 정책 덕에 한국의 3대 전자 업체들인 금성사, 삼성전자, 대우전자는 국제적 경쟁력이 전혀 없는 제품을 자국민에게 바가지 씌워서 높은 값에 팔 수 있었다. 첨단 일본제 제품은 밀수업자를 통해서 용산의 뒷골목에서나 팔리던 그런 시절이었다. 마약도 아닌 전자제품이 '밀수'라는 위험 부담이 높고 유통비용이 비싼 경로를 통해서도 소비자에게 팔릴 수 있었다는 것은 당시 국내 전자회사의 제품들이 어느 정도로 바가지를 씌웠는지 짐작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중고등생들의 필수 아이템인 소니나 아이와의 워크맨은 용산에서 '범법자가 되어' 밀수품을 사든가, 아니면 삼성전자나 엘지가 그 회사들로부터 거의 완제품을 수입해서 라벨만 '마이마이'나 '아하'로 바꾼 제품을 수입가의 네 배 다섯 배로 팔아쳐먹는 걸 사는 수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그뿐인가? 비디오레코더가 그랬고, TV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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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지금의 삼성전자가 기록하고 있는 이익에 비하면 그 당시 국내 전자회사들이 그런 식으로 국민들 호주머니 털어서 번 돈은 몇 푼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태아가 한창 성장할 때 필요한 몇 그램 되지 않는 영양분이 출생 후 평생의 체질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듯이, 그 당시 그런 식의 독점적 이익은 국내 전자업체들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였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확보한 내수에서의 이익을 바탕으로 싼 물건만 좋아하는 미국 시장에 손해를 보면서 물건을 내다 팔면서 시장을 만들어 갈 원동력을 만들 수 있었다. 당시 삼성전자나 금성사나 공히 내수 이익, 수출 손해의 사업구조를 갖고 있었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또한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이익으로 만성적자였던 반도체에도 지속적으로 투자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신화가 이건희의 결단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둥의 헛소리를 보면 속이 상할 때가 많다. 오늘날 삼성 반도체의 성장 원동력은 국민들의 희생과 열악한 환경에서도 도망갈 데가 없어서 최선을 다한 반도체 조직원들의 몫이지, 그저 말 몇 마디 던진 경영자의 몫으로 공을 돌리는 건 노예 근성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무려 7개의 전자회사가 하나의 국내 시장을 놓고 경쟁해야 하는 일본 전자업체의 경우에는 내수 시장에서 이익을 기대하기는 난망이었지만, 전 세계 시장을 주름잡던 일본 전자업체로서는 충분한 시장을 갖고 있었다. 엔고가 되기 전까지는. 플라자 합의 이후 엔고에 의한 타격은, 워낙 경쟁력을 갖춘 일본 전자업체에게 다소 천천히 다가왔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이 어느새 치명적인 수준으로까지 다다르고 말았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전자업체가 일본의 전자업체보다 이익을 많이 낸다고 해서 더 좋은 물건을 만들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현기차가 일본의 자동차 회사 못지 않게 많은 차를 수출한다고 해서 비슷한 품질의 지동차를 만들고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자동차나 전자제품이나 우리나라 업체만큼 확실하게 담보를 잡아 둔 시장을 가진 회사는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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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후야 어떻든 오늘 삼성전자가 기록하고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이익률의 의미를 또 다른 편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기업이란 자본과 노동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이익이란 두 개의 요소 중 단지 '자본'의 성과를 나타낸 것이다. 삼성전자에 투입된 '자본'이나 대우조선에 투입된 '자본'이나 그 본질은 똑같다. 두 회사의 노동은 차이가 날지 모르지만, 자본은 똑같은 성질을 가진다. 그런데 대우조선은 무지막지한 손실을 보고, 삼성전자는 막대한 이익을 실현한다면, 그것은 '자본'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의 문제임은 쉽게 알 수 있다. 업종이 달라서 외부 환경이 다른 면이 있다면 같은 반도체 회사였던 도시바 반도체하고 삼성전자 반도체를 비교해도 좋다. 같은 외부 환경에 같은 자본을 가지고 있는데 성과가 차이가 난다면 그것은 오롯이 '노동'의 문제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영업 이익'이든 '순 이익'이든 '이익'은 노동의 성과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성과를 대변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삼성전자의 '사상 최대 이익'을 띄우는 기사를 보기보다는 삼성전자의 '세계 최고 노동 보수'기사가 보고 싶다. 이익은 적당히 평균 자본 수익률 정도에 그치되, 삼성전자 노동자들이 월급을 5천만 원, 1억씩 받고, 성과급을 5억씩 10억씩 받는 그런 기사가 보고 싶다는 뜻이다.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것을 보고 뿌듯하게 느끼는 건 분명 애국심이지만, 일개 기업이 이익을 많이 냈다고 뿌듯해 하는 것은 그 회사의 자본주가 아닌 다음에는 '노예근성'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金氷三


편집 :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