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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나는 행정실무사다. 2012년 3월부터 시작했으니 만 5년 되었다. 중학교 공무원 대체직으로 들어가서 고등학교 행정실과 교무실에 있다가, 작년부터는 초등학교 교무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파업에 동참하지 않은 것은 이런 저런 변명이 있지만, 결론은 비겁해서다.


비루한 핑계가 있긴 하다. 내가 근무하는 초등학교 교장은 관내에서도 유명한 독특한 정신세계의 소유자다. 나 하나 파업에 참가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남은 교직원들. 대부분 노동조합에 가입되어 있지만 ‘파업’이란 단어만 들어도 부들부들 떠는 순박한 분들이다.


“아무개 쌤 그렇게 훌쩍 파업 가버리면, 우리들까지 고달프다고.”


애절한 눈빛에 마음이 약해졌다. 그렇게 정당한 노동자의 권리를 포기했다.

 

파업 당일. 출근하자마자 미숫가루를 타라는 지시를 받았다. 다른 조합원들은 땡볕에 고생하는데, 교사들 먹을 미숫가루를 타고 있는 내 자신이 한심했다. 자발적 노예의 비참한 최후였다.


미숫가루.jpg

 

 

파업에 참석 못한 죄책감을 삭히고자 딴지에 관련 글을 올리려고 했다. 대중 여론이 썩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준비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개인의 욕망을 집단의 위력으로 드러내는 것이 추해 보이긴 하다.

손가락질은 자제 부탁드린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이고, 그런 걸 다 떠나서, 원래 욕망을 드러내는 건 추하게 마련이다.

추하다고 비웃다 보면, 본인 스스로도 자기 검열할 때가 올 수 있다.

욕망을 드려는 순간, 이건 추하니까 하면 안 돼..

이러면서 욕망을 억압하는 것이 내면화 될 텐데, 그러면 속상하잖아.

 

얼개까지 잡고 쓰지 않았다.

 

배울 만큼 배울 성인들이 특정 사안에 대한 의견 개진은 자유 아닌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파업을 찬성할 수도, 반대 할 수도 있다. 지 맘이다.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도 이런 반대를 통해 배운다. 요구를 관철 시킨다는 것이 예상보다도 더 만만치 않다는 것을. 따끔한 비판이 폭풍 비난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다. 억울하고 아프겠지.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오감으로 고통을 체험하면 다른 약자 혹은 누군가의 정당한 외침에 감정 이입하는 능력치가 상승하지 않을까.


이렇게 머릿속으로 정리를 했지만, 나는 쿨 하지 않다. 우아하고 점잖은 문체로 포장해도, 결국 행정실무사인 내가 쓴 글에는 파업 반대 주장을 향한 불편한 심사가 흐를 것이다. 묘한 자격지심을 기본으로 하는 ‘비주류성 선민의식’와 더불어.

 

행정실무사 L은 지난 10년간 파업 찬반 투표에 빠짐없이 참석하여 굳이 반대에 표를 던진 올곧은 양반이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찬성을 했다. 집회는 참가 안 했다. 그것까지는 차마. L이 파업에 찬성한 이유는 단순하다. 20년 넘게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한 번도 정규직인 적이 없었으니까. ‘무기계약직은 정규직’이란 한마디에 이분은 파업 찬성자로 돌아섰다.


L은 어마어마한 실력자다. 교육감 표창도 여러 번 받고, 다른 학교에서도 업무를 배우러 찾아온다. 경기도 전체 학교를 통틀어서 다섯 손가락에 드는 관련 업무 전문가다. L이 기능직 공무원으로 전환될 기회가 있었다. 1997.1.1 <공무원전환 특별법>에 의해 동료들은 기능직공무원이 되었다. L은 가슴 아픈 가정사 때문에 부득이하게 잠시 학교를 그만 두어야 했다. 6개월 후에 복직했을 때 L은 여전히 비정규직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당시 동료들은 일반직 공무원으로 전환되어 7급 공무원으로 살고 있지만, L은 오늘도 비정규직이다.

 

‘노량진에서 피땀 눈물 흘리는 공시생들이 불쌍하지도 않냐!’, ‘얼렁뚱땅 학교 취업 되어서 몇 년 일했다고 해서 공무원 시켜 달라고 하지 말고, 너도 시험 봐라.’


수긍한다. 예전에 그렇게 공무원이 되었던 분들이 있었으니까. 교사도 마찬가지다. 친척 어른 중 알음알음 사립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가 나중에 공립 초등학교로 옮긴 분 계신다. 그러니까 예전에는 여러 공공기관들이 좀 어설프게 운영이 되었던 것 같다. 그게 타당하고 옳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시절도 있었다고. 현재도 학교에는 지인찬스로 들어와서 세월아 네월아 회사놀이 하는 분들 존재한다.

 

다만, 세상이 바뀌었다. 일단, 이번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는 공무원 전환이 아니다. 월급 좀 올려달라는 거다. 행정실무사들이 탱자탱자 놀면서 일반 공무원들 수준 급여를 받는 월급도둑이라는 힐난도 있던데, 5분의 1만 맞다. 10년 넘게 근무하신 분들은 9급 공무원 월급과 비슷할 것이다. 초과근무나 야간수당을 받을 일 별로 없다면 대개 연봉은 2000만 원 안팎이다. 이런 저런 수당 때문에 월급이 200만 원 넘는 직종이 있긴 하다.


올 1월에는 교육공무직 일급이 최저임금보다 낮아져서 월급이 최저임금으로 조정되는 사건도 있었다(학교는 3월에 급여가 변경되므로, 2016년 월급이 적용된 1, 2월이 최저임금보다 낮아진 것이다). 작년부터 명절상여금이 연 50만 원에서 70만 원으로 올랐고, 정기상여금이 신설 되었다. 이런 수당이 생긴 것도 얼마 안됐다. 이게 다 투쟁의 결과다.

 

다음은 경기도교육청에서 정리한 교육공무직 급여와 수당 내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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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공무직들이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또 다른 이슈는, 부당한 업무 지시나 당사자의 뜻에 반하는 직종 통합, 권위적인 학교 문화에 대한 항의다. 멋진 선생님들의 노력으로 학교가 많이 바뀐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문화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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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나는 교장 선생님이 드실 물과 교사들이 마실 원두커피를 준비한다. 교무실에서 근무하다 말고 교장 명령으로 겨우내 구근 식물을 심기도 했다. 올 봄에는 엄청난 미세먼지를 마시며 다년생 화초도 심었고. 여름에는 교사를 위해 얼음 동동 매실차, 미숫가루, 기타 등등 대접한다. 주말에 열리는 동문회 행사에 동원된 적도 있다. 부당업무지시 근절 공문이 매번 내려와도 소용없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오해 마시길. 모든 학교가 다 이런 건 아니다. 주변에도 파업은 노동자의 응당한 권리라며, 아이스크림 사주시며 집회 참석을 격려한 교장 선생님도 실존하신다. 내가 다니는 학교가 유별난 거다. 아무래도 학교는 관리자 성향 따라간다. 그게 바뀌었으면 좋겠다. 구태적인 옛날 학교가 아니라, 민주적인 열린 공간을 만들기 위해, 밑바닥 말단 직원들이 움직이는 거다. 행정실무사는 교사들 시중을 드는 하녀가 아니라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노동자니까.

 

다음은 교육청의 부당업무근절방안 공문에 실린 유형별 부당업무 사례다.


이것은 실화다.


 

소통없는 업무분장, 일 떠넘기기 : 32.0%

* 선생님들이나 행정직들이 하기 싫고, 귀찮고, 힘든 일을 실무사들에게 배정

* 담당자 협의 없는 일방적 사무분장

* 업무분장이 되어있는데도 일 떠넘기기

* 새로 생긴 업무(예-교육급여)는 상의 없이 교육공무직에서 배정

* 교사들이 하기 싫은 모든 일을 행정실무사에게 상의도 없이 떠넘기기

* 원생들이 먹는 우유배달, 쓰레기분리수거, 은행출장, 도로위 신호수

 

사적 심부름 : 12.2%

* 이동수단 : 출퇴근 카풀, 음주 후 대리운전

* 청소 : 이사할 교장 아파트 청소, 세차

* 개인 과제 : 교장연수 과제, 교장 아내 또는 조카 대학교(원) 과제

* 물품구매 : 담배·스타킹·김밥·라면 구매

* 개인 경조사 : 자녀 결혼식 청첩장 및 감사장 발송, 장례식장 도우미, 가족행사 촬영, 본인 환갑잔치 진행, 본인의 퇴임식을 위해 교사합창단 구성

* 각종 평가 : 사이버교육 평가 대리 응시

* 기타 : 자녀의 공부 자료 복사·제본·코팅·스캔, 명절 안부인사 동영상 제작, 전세집을 알아보기, 자녀 공짜 과외요구, 아파트 수리, 문중 선산 벌초, 구두수선, 이삿짐 옮기기, 개인전시회 준비, 상급자 집안 행사 준비, 연수 대리 참석, 차명계좌 요구

 

권위의식, 독단적 의사결정 : 8.9%

* 매일 관리자 커피타고 마실 물 떠놓기

* 교장선생님 급식 떠놓기

* 새로운 교장선생님이 발령 나자 전교사에게 노래를 연습해서 공연할 것을 강요

* 조퇴할 때 대면허락 받고 인사도 따로 하고 나가야 함

* 출·퇴근 시 교장실에 가서 인사드리기

* 급식 검수 후 당일에 들어온 과일을 접시에 예쁘게 담아 제공

* “나는 너의 관리자니 복종해야해.......”

* 개인적으로 누룽지, 추가 반찬, 고추장 등 요구

 

차접대 등 의전문화 : 6.7%

* 각종회의, 외부 손님 차·다과 접대

* 과도한 차 접대 근절관련 공문을 보여줬더니 앞에서 찢어버림

* 졸업식 날 조리종사원이 대추생강차를 전날부터 끓여놓고 학부모에게 접대

* 간단한 회의를 할 때에도 차·다과 준비 요구

 

인격모독, 인권침해 : 5.4%

* 사무실에서 수시로 고성, 욕설 및 비아냥

* 직급이 낮다고 반말을 함(아무개씨, 아무개야)

* 관리자 앞에 군대식으로 차려 자세로 서라고 함

* 교장이 시키면 아무 말 말고 해라. "옛날에는 집에 설거지도 해줬어. 세상 좋아진 거다."

* 부당한 출·퇴근시간 강요(새벽출근, 밤늦은 시간 퇴근)

* 더럽고, 귀찮고, 힘들고, 위험한일은 시설관리직 업무

* 교직원의 조그마한 실수에도 공개석상에서 면박주기

* 교무실무사는 교감 비서

 

근무시간 외 업무지시(초과근무, 휴일근무) : 4.4%

* 주말에 전화하여 월요일 아침까지 자료준비 지시

* 수당 지급 없이 초과근무 지시.

* 퇴근 이후, 주말에 카톡(단체방), 문자 등으로 업무지시

 

기타 업무 지시 : 21.5%

* 부모상 당해도 특별휴가 5일 쓰기 불편해 3일만 사용

* 학교 워크샵, 회식 불참할 경우 교장선생님과 개인면담

* 퇴근시간이후 기도모임 참여 강요(종교자유 없음)

* 자신이 성희롱 등으로 조사를 받자 탄원서 작성 강요

* 협의회를 빙자한 회식

* 교직원 여행(1박2일) 강요

* 회식 참석 강요, 불참석시 과다업무 지시 및 불이익 발생

* 몸이 아플시 휴직 및 전보 강요

* 자신의 기분을 맞추지 않음으로 인한 사유서 작성

* 회식자리에서 관리자에게 술 따르기

* 실제 시행하지도 않은 일(교육공무직 간담회)에 대해 거짓 서명 강요

 

 

대한민국 직장이라면 누군들 더럽고 치사한 일이 없을까. 위에 열거된 부당업무는 정규직, 비정규직, 학교, 회사 할 것 없는 헬조선의 현주소일 것이다. ‘나는 이런 비루한 꼴 까지 당했다’는 ‘연민 호소의 오류’나, 특정인의 경험담을 근거로 하여 파업의 정당성을 설득하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는 나도 쪽팔린다. 해서, 그간 입 다물고 있었던 거다.

 

울고 싶은 사람 뺨 때린다고, 마침 이언주 의원이 적절한 시기에 만루 홈런을 날려주셨다. 브라보. 이쯤 되면 글 한 편 올리는 게 필진의 도리. 그렇잖아도 입이 근질근질했는데 판 깔렸으니 감성팔이 제대로 한번 해 보겠다.

 

언주언니에게.

 

언니, ‘사적’으로 몇 살 차이 안 나니까, 언니라고 불러도 되지?

 

언니. 난 90년대 중반에 대학에 들어갔어. 언니만큼 뛰어난 재원이 아니어서 서울대는 못 갔지. 그래도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간판은 아니었어. 내내 신나게 놀았어. 캠퍼스의 낭만이 살아 있던 ‘참 좋은 시절’이었거든. 그러다가 IMF가 터졌네. 졸업을 앞두고 과 동기 40명 중 20명은 휴학을 했고, 10명은 사법고시, 행정고시, 7급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으며, 1명은 9급 공무원, 4명은 대학원에 진학했어. 가정 형편이 어려운 5명이 구직활동을 했는데, 그 중 한 명만 중견기업에 입사를 했지. 나머지는 1년쯤 괴로움에 몸부림치다 어찌 어찌 취직들을 했어.

 

남들 다 하 길래 사법고시를 준비했어. 신림동에서 고시 낭인으로 유령처럼 떠돌다 보니, 인간 할 짓은 아니더라. 좋은 머리도 아니고, 끈기도 없고. 2년 만에 관뒀어.

 

마침 벤처기업 붐이 일었거든. 우여곡절 끝에 친구가 다니던 벤처기업에 취직을 했어. 100억 가까이 펀딩 받아서 세운 회사였다던데, 내가 입사할 때는 그 돈 다 날리고 허덕거렸어. 월급을 자주 못 받았어. 밤 12시에 퇴근하고 새벽 5시에 출근하는 날이 많았어. 체력의 한계를 못 느낄 나이잖아. 그렇게 몇 년 근무하다 보니, 뭘 하고 있나 싶더라.

 

작가가 되고 싶었어. 퇴사하고 대학원에 갔어. 시나리오를 전공 했는데, 공모전에 수십 번 탈락했어. 재능도 근성도 없었어. 프리랜서 명목으로 작은 프로덕션 하청을 받았어. 의뢰받아서 밤낮없이 쓴 기획안, 대본, 원고, 기타 등등. 쥐꼬리 원고료는 자주 떼였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경제적으로 어려웠어. 그러던 차에 옛 상사가 독립했다고 연락을 했어. 작지만 건실한 회사였어. 팀장으로 근무하면서 신나게 일했지. 회사 키우는 게 뿌듯했는데, 내 새끼를 키울 여력은 없었어. 둘째 낳고 석 달 만에 복귀했어. 미친 듯이 열일했어. 몸 상하는 줄도 모르고. ‘애 엄마라서 일은 뒷전이다.’는 소리 듣기 싫어서 더 그랬던 것 같아. 급성 폐렴에 걸렸어. 그 해 겨울, 폐렴으로 여럿 세상을 떠났어. 다행히 나는 살았어. KBS뉴스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어. 거절했지. 그게 무슨 자랑이라고.


정신이 확 들었어. 둘째가 아직 ‘엄마’소리도 못할 나이었거든. 이렇게 훌쩍 가버리면, 우리 둘째는 평생 ‘엄마’소리 한번 못하겠네 싶더라. 중간 관리자가 된 여성은 선택의 기로에 서는 것 같아. 일과 가정을 전부 완벽하게 해내는 슈퍼우먼도 있지만, 나는 그런 깜냥이 아니야.


‘아이’를 택했어. 되게 거창하네. 그런 건 아냐. 새벽 별 보고 출근해서 애들 잠들면 퇴근하는 인생을 더 이상 살기 싫었어.

 

넋두리가 길었지.

여기까지야. 내가 행정실무사가 된 까닭.

 

언니. 학교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거침없는 요구와 관련하여 여러 관점과 논의 지점이 있을 거야. 언니도 뭔가 맥락이 있어서 한 얘기지? 적어도 일하는 여성이자 엄마인 언니는 ‘경력 단절 여성들의 사회 참여’문제를 한 번쯤 고민했다면 좋았을 텐데.


‘여성문제’로 한정시키라는 게 아니야. 언니도 ‘워킹맘’인데 조금이라도 공감하는 부분이 없었냐는 질문이야. 하긴. 언니는 최고 학부를 졸업하고 그 어렵다는 사법고시를 통과하여 누구나 선망하던 변호사가 되었으니, 자부심이 대단할 거야. 언니 지인 중에는 나처럼 발동동 20, 30대를 보낸 친구들은 별로 없겠지. 끼리끼리 논다고, 내 주변에는 나랑 비슷한 궁상떠는 친구들이 많네.

 

얼마 전에 수학교육과를 나온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어. 결혼을 일찍 한 친구야. 학생 때 굉장히 똘똘했거든. 가정주부로서도 똑소리 났지. 별명이 살림의 여왕이야. 남편은 건축회사 부장. 큰 부자는 아니지만 먹고 사는 데 어려움은 없어.


최근에 친한 학부모네 집에 변고가 생겼데. 남편은 대기업 과장이고, 피아노를 전공한 아내는 전업주부였어. 어느 날 남편이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진 거야. 평소 지병도 없었는데, 그 즈음에 야근이 많았데. 남편은 더 이상 가장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아내는 생계를 위해 집에서 피아노 레슨을 시작한 거야. 할 줄 아는 게 없으니까.


친구는 그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다가 결심했데. 더 늦기 전에 밖으로 나가야겠다. 친구 남편도 워커홀릭이거든. 사람 앞일 아무도 모르잖아. 남편의 짐을 나눠 가져야 한다는 자각이 든거지. 이 친구. 갈 곳이 없더래. 수학교육과 나와서 임용고시 좀 준비 하다가 시집갔거든. 이 나이에, 임용고시를 다시 준비할 수도 없고. 기간제 교사를 하려니, 경력 없는 중년 아줌마를 뽑아줄 학교가 없겠지. 행정실무사 자리 여기 저기 알아봤는데, 그것도 쉽지 않더래. 요즘에는 행정실무사 되기 힘들거든. 교육감 채용으로 바뀐 이후에 이래저래 절차가 복잡해졌어. 지인찬스는 진작 끝났어.

 

나만 해도 무기계약직 될 때까지 엄청난 시련이 있었지. 면접에 몇 번을 떨어졌는지 몰라. 붙은 분들 보니까 학력이 후덜덜 하더라. 가방끈 긴 행정실무사들 많아요. 사정은 비슷해. 90년대 중 후반, 혹은 2000년대 초반 학번의 여성들. 제법 회사에서 인정받지만, 애 낳고 나면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결국 회사 포기. 애 좀 키워놓고 나면 할 수 있는 것이 한 개도 없지.


행정실무사 중에 그런 여성들 많아. 전수조사는 안 해 봤지만, 국회의원 요구자료 한번 해봐. 교육공무직 나이, 학력, 경제 수준 등등. 

 

친구가 전화로 물었어.


“내가 조리실무사 하는 건 어떻게 생각해?”


교육청 홈페이지 구인란 보니까, 조리실무사를 뽑는 학교는 제법 많더래. 다른 직종에 비해서. 나는 말렸어. 급식실이 얼마나 힘든 곳인지, 봐서 알거든.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 행정실에 근무한 적 있어. 기숙사 때문에 급식실은 365일 중, 2주일만 빼고 3교대로 돌아가더라. 새벽 5시부터 일과가 시작해. 학생과 교직원 합치면 1600명이 넘었는데, 국을 조리할 때 삽으로 노를 젓더라고. 장관이야.


에어컨이 설치되었다지만, 여름 급식실은 찜통이야. 정신세계 독특한 영양교사가 부임 된 적 있었는데, 샤워실도 못쓰게 하고, 여사님들이 고추장 훔쳐 갈까봐 가방을 뒤지더라고. “경상도 아줌마!” “전라도 아줌마!”이렇게 부르면서, 매일 자기 방 청소시키고, 그 바쁜 점심시간에 본인은 ‘클래식 FM’틀어 놓고, 여사님들에게 밥 심부름시키더라.

그 급식실에, 고학력 조리실무사가 계셨거든. 우연히 알게 된 거야. 반포에 있는 유명 여고를 나와서, in 서울 대학 심리학과를 졸업하셨더라고. 어떤 사연으로 시골 고등학교 조리실에 서식 중인지, 나는 몰라. 그냥 그런 분들도 있더라고. 언니는 그다지 관심 없겠지만. 아참, 그러고 보니 그 조리실무사님 언니랑 동갑이네.

 

여하튼, 내 친구는 여전히 구직 중이야. 행정실 대체직 자리라도 들어가겠데. 솔직히 걱정이야. 평생 마나님으로 살던 내 친구가, 세간의 시선을 견딜 수 있을까. 그건 친구의 몫이니까. 나는 그냥 멀리서나마 격려할 뿐이야.

 

언니. 내 친구 같은 누군가의 자랑스러운 딸이자, 자상한 아내이자, 다정한 엄마가 용기 있게 도전할 수 있게 좀 도와줘. 세상 사람들이 다 언니처럼 엘리트는 아니잖아. 그 자리까지 올라가기 위해 언니 정말 많은 노력을 했겠지. 실력도 지구력도 재능도 없는 내가 언니랑 똑같은 결과물을 바라면 도둑 심보지. 나도 염치는 있어.

 

언니의 열정과 집중력에 박수를 보낼게. 부디 현재의 지위와 겉모습만으로 사람 인생을 통째로 퉁치지는 말아줘.

 

노오오오오오력이 부족해서 비정규직이 된 건 아니야. 그런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어.

 

언니 주변에는 없겠지만, 지인의 지인 중에는 나 같은 부류가 수두룩 할꺼야. 아참, 언니가 잊었나 본데, 언니가 선거 때 표 달라고 고개 숙인 유권자들 중에는 엄청 많을걸.

 

이만 쓸게.

언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문정희 시인의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을까’로 마무리 할게.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을까 / 문정희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을까

저 높은 빌딩의 숲, 국회의원도 장관도 의사도

교수도 사업가도 회사원도 되지 못하고

개밥의 도토리처럼 이리저리 밀쳐져서

아직도 생것으로 굴러다닐까

 

크고 넓은 세상에 끼지 못하고

부엌과 안방에 갇혀 있을까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





셀러킴


편집 :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