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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최저임금(시간당 7,530원)에 대한 반발이 만만치 않다. 특히 언론들이 앞다투어 쏟아내는 우려와 선동에 가까운 조직적 반발은 쉽게 간과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미 결정된 걸, 저들이 발버둥 쳐봐야 버스는 지나갔다'라며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정말 끝난 것일까?


나는 최저임금 인상이 결정된 후에도 수그러들지 않는 언론의 반발을 보여 참여정부 시절 종합부동산세를 떠올리게 되었다. 최저임금과 종부세. 묘한 기시감이 드는 두 정책을 복기해 보자.

 

 

하나, 사회적 공감대 속에서 출발한 정책

 

평범한 월급쟁이가 20년, 30년을 모아도 집 한 채 사는 일은 쉽지 않은 현실, 세상에 저렇게 많은 아파트가 있는데 나는 집 한 채 없다는 세살이의 설움, 반면 투기를 통해 평범한 이들의 20, 30년 치 소득쯤은 부동산 매매차익으로 가볍게 챙기는 부익부 빈익빈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 참여정부는 부동산의 보유세를 통해 조세 정의를 실현하고 더불어 집값 상승을 막고자 했다.

 

2003년 참여정부의 종합부동산세 정책 발표 당시 국민적 공감대는 확실했다. 정부가 발표한 종부세 과세 대상은 극히 일부 부동산 부자들로, 전 국민 중 겨우 2% 였고, 2003년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주택보급률은 101.2%나 되었으나, 다주택 소유자들에 의해 무주택가구는 전체 가구의 50.3%였으니 정책지지도는 높을 수밖에 없었다.

 

최저임금 역시 마찬가지다. 현 정부 출범 이전의 총선에서도, 19대 대선에서도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확실했다. 정치경제적으로 끝까지 반대진영을 고수했던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후보조차도 1만 원의 최저임금 공약을 내놓았으니 사회적 공감대가 확고했음은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

 

 

둘, 역전을 노리는 기득권과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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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부동산세는 2005년부터 시행됐으나 정부의 희망찬 예상과 달리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다. ‘세금폭탄’이라는 마타도어가 기득권 언론을 통해 대량 생산됐고, 집도 없는 사람이 집권여당에 전화를 걸어 종합부동산세에 항의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이를 모자란 인간이 벌인 촌극쯤으로 치부하지만, 언론은 그만큼 집요하게 종합부동산세를 공격했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던 것이다.

 

“건설사들의 신규주택공급량이 대폭 줄어들 것이기에 집 없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칠 것이다.”


“종합부동산세는 이중과세이다.”


“은퇴해서 간신히 집 한 채 갖고 있는 가난한 이들(?)은 어쩌란 말인가?”


“종합부동산세 때문에 부자들이 돈을 쓰지 않아서 경기가 나빠질 것이다.”

 

당시 언론들이 종합부동산세를 공격하며 쏟아낸 말들이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호도하고,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미래의 일을 무책임하게 쉽게쉽게 예측해 내면서 인과관계에 대한 설명도 소상히 달지 않았다. 어쨌든 세금을 좋아하는 국민은 없다는 절대명제가 자신들의 감언이설에 날개를 달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으리라.

 

그 중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것이 “은퇴자의 집 한 채에도 세금을 부과하다니!” 라는 프레임이었다. 간신히 집 한 채라고 했으나 6억 원 이상의 집이 종부세 과세 대상이었으니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의 물가를 생각하면, 언론들이 대중의 동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작심하고 단어선택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정도의 부를 축적했다면 비싼 버블 지역을 떠나 새로운 거처를 마련하고도 남는 현금으로 노후를 보낼 수 있었고, 살아 있는 동안 이 집만은 반드시 갖고 있고 싶다면 충분한 자산가지치를 인정받아 역모기지론을 활용할 수도 있는 부자 은퇴자들, 전 국민의 채 1%도 안 되는 은퇴자를 위해 언론은 한없는 동정과 사회정의를 외치는 투사가 되어주었다.

 

참으로 웃긴 일이었다. 폐지를 줍는 노인들이나 자신의 집을 팔고 국민연금을 대출로 돌려서 자식들 뒷바라지를 하는 노인들에게 언론이 그리 큰 관심을 보였다면 어땠을까? 대한민국은 아마 세계가 칭송하는 노인을 위한 나라가 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최저임금 인상 이후 언론들이 보여주는 행태는 어떤가? “재계 경쟁력 약화 우려”, “껑충 뛴 최저임금 라면, 치킨값 상승 부채질”, “최저 임금 인상에 자영업 타격”, “9급 공무원 임금이 최저임금보다 낮다.” 등등의 기사가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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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조선일보>

 

기가 찬 일이다. 운동화 만들고 양말 짜서 팔던 시절에 장시간 조업에 졸음을 참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바늘로 콕콕 찔러가며 성장한 대기업들이, 대리점에 밀어내기 해서 가맹점에 갑질해서 돈을 번 기업들에게 아직도 언론은 과거 자신들이 돈에 굴종하던 부끄러운 행태를 기억 못 하고 여전히 면죄부를 발행하기 바쁘다.


그뿐인가? 불합리한 임대차로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등극해 자영업자들을 착취하는 것을 묵과했던 언론은 갑작스레 자영업자들에게 그간 숨겨온 무한한 애정을 내놓고 있다. 사실 확인을 안 했는지 하고도 꼼수를 찾아낸 건지 실제 급여가 아닌 공무원 급여의 일부인 본봉 금액 하나로 최저임금을 깎아내리기 위해 침소봉대한다.

 

언론들은 “이번에도 우리가 이긴다. 우리는 패배를 모른다.” 자기최면을 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셋, 종합부동산세의 현재와 최저임금의 미래

 

종합부동산세는 앞서 기술한 언론의 대대적인 활약(?)에 힘입어 애초와 달리 세대별 합산 기준이 개인별 합산으로 변경됐다. 이는 부동산이란 것은 개인이 갖고 있는 현금이나 주식과 달리 세대원들의 자금이 모여 만들어진다는 사회계층 이동을 막고 혈족 간 부의 공여와 대물림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또한 세대원 별로 부동산을 쪼개서 세금을 회피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원래의 취지가 크게 훼손된 것이다.


거기에 더해 이명박 정부에서는 장기보유자 공제, 고령자 공제 등을 추가해 더더욱 종합부동산세를 더 섬세하게 무력화시켰다. 결국 참여정부에 2조 원대의 세수가 거둬들여지던 종합부동산세는 이명박 정부 들어 1조 원대로 줄어들며 대략 1조 원의 세금이 매년 감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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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참여연대

 

참여정부의 진보적이고 사회개혁적인 경제정책 중 하나인 종합부동산세가 이렇게 언론에 집중포화를 맞으면서 대중들은 “좌파는 경제에 무능하다.”라는 거짓명제를 자신의 머릿속에 소중히 갈무리하게 했다. 이로써 이명박 정권의 탄생에 언론이 큰 기여를 했음은 종합부동산세의 탄생과 훼손의 과정, 그리고 현재에 관심이 깊었던 이들에게는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최저임금 논쟁에서 기득언론의 반발에 무릎 꿇게 될 겨우 맞게 될 최악의 미래를 상상해 보자.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말 많고 탈 많은 자영업의 위기에서 그 시작점이 있다. 우선 벌써 시작했어야 할 자영업 구조 조정이 불가능해진다. 이번 최저임금 논란에서 언론이 슬쩍 최저임금 인상의 피해자이며 또 가해자로 제 입맛대로 끼워 놓은 자영업자 중엔 상환이 불가능한 부채를 짊어지고 있는 소상공인들이 많다. 정부는 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즉시적인 대책으로 돈과 시간이 드는 법원의 개인회생이나 개인파산이 아닌 소상공인 융자자금의 탕감을 시행하고 업종전환이나 재취업의 기회를 지원해야 한다.


허나 지금의 언론이 조장하는 소상공인과 노동자의 분열과 반목은 구조조정을 공론화하지 못하게 만든다. 지금도 일각에선 최저임금 줄 자본을 갖추지 못했으면 자영업 하지 말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던가? 그런데 정부가 소상공인 구조조정을 위한 부채탕감을 추진한다면 반드시 모럴헤저드의 문제가 대두될 것이고 사회적 분열과 반목은 잦아들지 않을 것이다. 또한 정부는 당장이라도 자영업자들에게 한없이 불리한 상가임대 관련 부동산 법령을 개정해야 하나, 빨갱이 같은 정부가 펼치는 프롤레타리아 최우선의 최저임금이라는 프레임에 갇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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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세계일보>

 

더불어 공정함과 상생 따위는 무시하고 가맹점들을 착취해 배를 불려온 프랜차이즈업계를 혁신해서 공정한 질서를 세우는 것이 현 정부의 시급한 과제임에도, 이미 최저임금 논란에서 언론에 의해 볼모가 돼버린 ‘자영업자의 피해 우려’라는 카드 때문에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프랜차이즈 본사나 오너의 부도덕한 행위에 소비자들이 벌이는 불매운동이 두려워 가맹점주들이 대신 소비자들에게 용서를 비는 세태이니 프랜차이즈협회가 뻔뻔하게도 공정거래위에 자정의 시간을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들은 분명 수많은 가맹점의 도산을 이유로 자신들에게 겨눠진 사정의 칼날에 맞서려 할 것이다. 최저임금 논란에서도 공정시장경제를 위한 개혁에서도 자영업자들은 막다른 곳에 몰린 자본이 정의와 맞설 수 있는 꽃놀이패가 될 수 있다.

 

그뿐이 아니다. 못돼먹은 기업들이 장기고용을 기피하고 중장년층을 내쫓는 바람에 기승전창업이라는 외통수로 내몰리는 강요된 선택에 의해 가난한 자영업자가 된 노동자들이 이제는 더 이상 생겨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 또한 정부의 개혁과제다.


노동자를 도구로 취급해 마치 감가상각이 끝난 기계를 폐기하듯하는 기업의 그릇된 노동관과 고용문화의 개선에도 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아야 하나 최저임금 논란에서 그랬듯 글로벌 경제위기를 핑계로 경제성장률을 핑계로 개혁은 지지부진해질 것이고 우리 사회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절대 일어나선 안 될 일을 예상한 것이지만 이렇듯 우리 산업과 경제는 여러 부문에 연결되어 있어 따로 떼어서 정책의 효용성이나 유불리를 따지기 쉽지 않다. 현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신념과 일관성이 지금처럼 흔들리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면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훨씬 나아진 사회를 맞이할 수도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반대로 현시점에서 분열된 여론으로 시민의 지지를 잃고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단 하나의 정책을 포기할지라도 산업과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끼칠 것은 자명하다.

 

 

우리는 민주정부의 적통을 이어받은 참여정부니까 노통이니까 잘할 거야. 이제 좀 변하는구나. 라는 생각에 한시름 놓았다고 생각하던 그때, 종합부동산세에 대한 반발이 그저 전 국민의 2% 밖에 안 되는 기득권의 욕심과 그들과 한 이불을 덮고 자는 수구 언론의 몽니라고 안심하던 그때를 떠올려 봐야 한다.

 

만약 지금의 최저임금 논란을 어려운 경제 문제라 잘 모르겠다고 넘기거나, 노동자나 사용자나 다 맞는 소리라며 한 푼 쓸데없는 양비론을 현명한 척 집어 들거나, 나만은 그리고 내 새끼만은 최저임금 따위는 신경 안 쓰는 성공한 인생일 거라는 안일한 자아도취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지식인과 학자, 언론들의 갑론을박과 정치빠들, 배배 꼬인 SNS 족속들의 말잔치가 피곤해 더 생각하기 싫더라도 2016년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컵라면 하나를 유품으로 남기고 떠난 청년의 빈소에 국화꽃 하나 올려놓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어 무력감에 눈물짓던 그때를 기억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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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사장이 될 수 있지만, 누구나 경영을 잘 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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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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