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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가 쌓이면 귀를 뚫었다. 피가학적인 걸 즐기는 성적취향은 아닌데(절대 아닙니다) 나에게 고통을 주면 평화가 찾아온다. 정신적 고통이 육체적 고통으로 승화되는 느낌이랄까. 울고 싶어서 뺨을 맞았더니 놀라서 눈물이 쏙 들어가더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마음 같아선 눈썹도 입술도 혀도 뚫고 싶지만 현실세계를 사는 사람인지라 애꿎은 귀에 피어싱을 늘려가는 것으로 정신머리를 지켜내곤 했다. 하지만 잦은 빡침, 혹은 임계치가 낮은 뇌세포가 화를 불렀던 모양이다. 포워드 헬릭스(Forward Helix)까지 뚫으니 귀에 빈 자리가 없다. 귀에만 피어싱이 11개니 이것만 없어도 몸무게가 1kg는 덜 나가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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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워드 헬릭스. 여기 뚫으면 중독자 마냥 손을 떠는 자신을 만날 수 있다.


귀에 살보다 피어싱 면적이 넓다는 걸 깨닫고 나면 ‘이제 피어싱은 안 되겠다’는 의외로 건설적인 생각을 한다. 이젠 피어싱 말고 다른 걸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그다지 건설적이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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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날드 치즈버거 악성개인팬의 타투


비건설적인 생각의 끝은 타투다. 스트레소 해소 혹은 현실도피로 다자이 오사무처럼 약도 하고 바람도 피우고 술도 먹을까 했지만 역시 현실을 살아야 해서 말았다. 아니 핑계다. 스트레스는 받겠다, 타투는 해보고 싶겠다. 속된 말로 아다리가 맞는다.


충분한 고민(5분입니다) 끝에 하기로 했다. 고작 500원 동전만 한 거 하는 건데 다 조오까라지...



타투 전에 생각할 것들


크게 할-그러니까 등이라든가 어깨 같은 데- 생각이 없었다. 타투가 처음이기도 했고, 멋모르고 크게 했다가 후회할 것 같기도 했고, 살이 잘 찌는 체질이라 호랑이가 돼지가 되는 불상사를 겪을 것 같았다(10kg 넘게 찌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그림이 정교할수록, 크기가 커질수록, 색이 많이 들어갈수록 가격 또한 비싸지니 돈도 많이 들 테고. 


별 고민 없이 500원 동전 크기의, 일명 ‘미니타투’를 하기로 했다.

*미니타투: 손, 팔, 귀, 발, 쇄골, 골반 등에 하는 작은 크기(작게는 손가락 한 마디에서 크게는 손 크기)의 타투. 정교함이 생명인 ‘이레즈미’와 다르게 단순화하는 경우가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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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연님은 무려 다섯 군데에나 미니타투를 했다


위 기사에 나온 것처럼 미니타투엔 의미를 담는 편이다. 만 나는 딱히 의미를 담진 않았다. 크게 생각하고 사는 편이 아니기도 하고, 둘만 한 의미도 딱히 없었다. 크흡.


타투를 하기 전에 정해야 할 것엔 세 가지가 있다. 하고 싶다는 마음만 있으면 셋 중 무엇을 먼저 정해도 상관없다.


- 타투이스트

- 부위

-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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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새기는 것들
레터링 (글자) / 꽃, 나무 / 동물 / 해, 달, 별, 행성 / 별자리 / 특별한 문양(‘하쿠나마타타’ 등)
↑이것들을 섞어서 하기도 함


‘부위’부터 정했다. 남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 해야 한다는 강박과 살이 찌는 부위는 절대 안 된다!, 는 마음에 발등이나 복사뼈에 하려고 했다. ‘하려고 했다’는 건 마음이 바뀌었다는 건데, 가서 바늘대기 전까진 마음껏 바꿔도 된다.


다음에 정한 건 ‘타투이스트’였다. 커뮤니티에서 추천 받았다(커뮤니티 외에도 포털, SNS, 블로그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엄청 유명한 분들도 있지만 예약 잡기가 힘들 것 같아 포기). 원래 너무 광고 같지만 않으면 대체로 추천 받는 걸 사는 편이다(치아교정도 친구가 한 데서 했다). 좋게 말하면 주변인을 믿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 귀찮아서 미래를 담보로 내놓는다. 물론 마음에 든다는 전제 하에.


추천 받은 타투이스트 분의 인스타그램을 가보니(SNS를 포트폴리오처럼 쓰는 사람이 많다. ‘#tattoo’ ‘#타투’ ‘#(지역명)타투’), 꽃, 나무 등 자연물을 특히 잘 그리는 분이었다. 본인도 그 점을 잘 아는지 자연물을 작업한 사진들이 많았는데, 그걸 보고 있자니 내가 벚꽃을 좋아한다는 게 생각났다.


음, 벚꽃을 그리기로 했다. 한 치 앞도 안 보고 사는 애가 타투할 때라고 계획적일 리 없다.


벚꽃을 하기로 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정확히 어떤 벚꽃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를 알아야 한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랬다. 최순실 수감인의 '크리에이티브 코리아'처럼 멋드러지게 모방을 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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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rry blossom tattoo'라고 검색했어야 했는데...

구글에 ‘sakura tattoo’라고 검색했다. 정말 꽃 같은 것도 있지만 벚꽃을 단순화한 타투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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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일본의 꽃인지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들이 벚꽃을 좋아하는 것도 사실이므로 ‘桜タトゥー(사쿠라타투)’로도 검색했다. 영어로 검색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꽃나무가 더 많은 느낌이다.


아차, 꽃 타투는 보통 꽃 한 송이 혹은 꽃나무를 그린다. 더 이상 무슨 선택지가 있겠냐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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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한 송이 / (우) 줄기


벚꽃나무를 그릴까 했으나 500원 동전보다 커질 것 같기도 하고, 나한테는 한 송이가 더 잘 어울릴 것 같아서 버렸다. 가격의 압박이 무서웠던 것도 굳이 부정하진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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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gram @eiji_tattoo

처음하려고 했던 타투들


벚꽃 한 송이에 색까지 넣는 걸로 결정내렸고, 예약을 위해 타투이스트 분에게 연락했다.


[예약절차]

① 손님: 하고 싶은 부위 크기, 원하는 디자인(앞서 찾은 사진)을 보내줌 / (색의 유무와 부위는 꼭 확정짓지 않아도 됨
② 타투이스트: 비용, 시간 알려줌
③ 날짜 잡기 (도안 만드는 시간과 타투이스트의 스케줄이 있으므로 최소 3일. 나는 예약으로부터 일주일 후에 했다)
④ 예약금 걸기 (미니 타투는 해당되지 않지만, 도안의 크기가 큰 경우 예약금을 걸기도 함. 기만원 수준)


타투하는 당일 혹은 전날에 도안을 보내준다. 원하던 디자인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타투이스트의 개성이 들어있어 만족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보내준 도안을 절대 잃어버린 건 아니다. 암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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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건 아니지만 도안은 이런 느낌.



바늘은 실전이야

예약할 때까지만 해도 발등이나 복사뼈에 할 작정이었으나 그 사이 새로 산 샌들이 말썽을 일으키는 바람에 발등에 생채기가 잔뜩 생겼다. 이 발에 해봤자 예쁘지도 않을 것 같았거니와 멍들고 찢긴 발을 드러내고 다닐 용기도 없었던 지라 2순위로 생각했던 오른쪽 팔목으로 바꿨다(왼쪽은 시계를 차니까). 앞서 말했듯 바늘을 대기 전까지는 부위를 마음껏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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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을 봐버려서 어쩔 수가 없었다.


샵에 10분 일찍 도착해서 작업도 10분 일찍 시작됐다. 다짜고짜 바늘부터 하려나 생각했지만, 가장 먼저 할 것은 컴퓨터 앞에 앉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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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 왼쪽 그림은 샘플 그림 중 하나고, (잘 보이지는 않지만) 오른쪽이 내 도안이다.


“이걸로 진행해도 될까요?”라는 확인이 한 번 더 오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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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등장한 도안


똑같은 도안을 여러 크기로 복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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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해서 오려내어야 하니까. 타투할 부위에 종이를 대보며 크기를 확정짓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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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번으로 하기로 했다. 500원으로 완전히 가려진다.


크기까지 확정지으면 종이 뒤에 알 수 없는 액체를 바른다. 그 액체의 이름은 알 수 없었으나 기능 하나는 확실히 파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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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박이다. 여기까지 하고 나면 진짜 바늘대는 일만 남은 거다.


약간은 설렘과 약간은 떨림에 눈알만 굴리고 있을 때였다. 목소리가 들렸다.


사실 다른 타투이스트 분이 내가 오기 전부터 어떤 남자 분을 작업하고 있었다. 어깨 쪽에 일명 ‘이레즈미(일본어론 그냥 문신이라는 뜻인데 한국에선 큰 문신으로 통용된다)’를 하는 것 같았는데, 남자 분이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타투이스트에게 묻는 것이었다.


“멀, 었어요?”


그 목소리와 물음이라니. 분명 ‘안 아프다’, ‘하는 지도 몰랐다’는 후기를 보고 왔건만 내가 잘못 알았던 걸까. 아파봤자 피어싱 정도’ 라던 포스팅이 머리를 스친다. 그 후기를 쓴 사람은 아무래도 주요부위에 피어싱을 한 게 틀림이 없다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취향을 절하해버리는 것은 물론, 이내 날카로운 것이 피부에 닿을 거라는 날 것의 두려움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 쪽으로 오세요"라는 말이 이렇게 무섭게 들릴 일인가. 도망치고 싶다던가 엎어버리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머뭇머뭇, 쭈뼛쭈뼛 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뭔가 무섭기 시작하다는 건 그만큼 낙장불입이라는 뜻이다. 타투이스트 분이 이끄는 대로 타투전용 의자에 앉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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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이건 아니고 비슷하게 생겼다. 미용실 의자처럼 눕힐 수도 있고 돌릴 수도 있다.


팔걸이에 오른팔을 올려놓고 비스듬하게 누웠다. 이 때부터 대략 정신이 멍해졌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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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와 바늘 등 도구들. 중간에 찍은 거라 그렇지 원래는 깨끗함.


타투이스트 분이 판박이로 찍었던 도안을 따라 작업을 시작했다. 처음 한 1-2분 정도는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다. 그러니까 1-2분 정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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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중간에 찍어서 그렇지 원래는 깨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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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 때까진 괜찮았다고.
(주변에 묻은 잉크는 다 지워짐)


몇 번이고 색소를 묻혔다가 지웠다 한다. 대략 3분 후부터, 어쩌자고 이렇게 연한 살에 타투를 했을까, 안 아프다고 후기 쓴 애는 꼭 고소할 거다, 색이라도 넣지 말 걸, 알고 보니 벚꽃이 죽음을 의미하는 거 아닐까, 이거 다시 하면 내가 미친년이다, 별 생각을 다 했다. 자세히 볼 여유는 없었다. 눈 뜨고 의식을 잃어서. 몸에 닿는 게 바늘이란 걸 실감했다.


내가 하는 동안 예의 남자 분은 다 끝났는지 자신의 타투이스트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교통사고 나서 깁스하고 다녔을 때 제일 부러웠던 게 멀쩡히 걸어 다니는 사람이었는데, 이제 그 남자가 제일 부럽다. 여드름 압출도 어떻게든 참아내고 (내 기준) 트라거스보다 몇 배는 아팠던 포워드 헬릭스를 뚫는 것도 참았던 난데, 자꾸만 해피 플레이스로 도망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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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으로 안면근육이 열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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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이 차기 시작했다


어디까지나 체감상 5분 정도 지났을 때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을 찍으며 느낀 건 ‘겨우 이 정도 들어갔는데 이렇게 아프단 말이야?’라는 원초적인 감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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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하게 굳은 새끼손가락. 여러분 저게 다 바늘입니다...


(어디까지나 체감상) 15분~20분 만에 끝났다. ‘안 아프다’는 말은 시간X고통을 평균 낸 거였는지 짧고 굵은 고통이었다. 끝났다는 말에, 으어, 이상한 소리를 내뱉으며 팔을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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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까지 줄 하나 그어져 있던 게 진짜 꽃이 되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예쁘게 나와서 진부한 감탄 같은 걸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정신이었다면.


작업이 끝났다는 말이 제정신이 돌아왔다는 말과 동의어일 리 없다. 타투의자에서 내려와 응접실의 소파로 가는 짧은 순간, 내내 손을 떨었다. 아앗, 추태. 밥을 제대로 안 먹어서 더 힘들었던 건 인정하지만, 어깨에 이레즈미를 하고도 멀쩡했던(끝나고 나서지만) 남자 분을 생각하면 더할나위 없는 부끄러움이었다. 그나마 눈물은 안 흘렸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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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은 10만 원. 나름 알아본 시장가로는 적절한 수준이다. (무색/500원 동전/단순한 타투가 5만 원, 디테일 or 색이 들어가면 6~8만 원. 둘 다 들어가면 10만 원. 타투이스트에 따라, 그림에 따라 15만 원까지도 하는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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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투가 끝나면 ‘세니덤’이라는 타투 메디폼을 붙여준다. 처음보다 빨개진 게 피가 올랐다(피가 오르는 게 정상). 작업 하루 뒤에 한 번 갈아준 뒤에 4~7일 정도 계속 붙이고 있는다(처음에 2-3개를 줌). 이걸 붙이고 있는 동안은 따로 관리할 필요는 없지만 최소 일주일은 사우나, (과한) 운동, 음주 등을 하지 말아야 한다. 사우나나 음주는 좋아하지 않아서 상관없었는데 운동을 못해서 좀이 쑤셨다.


강한 자외선 피하기, 타투 부위 촉촉하게 하지 않기, 긁지 않기(세니덤 안에 딱지가 지는데, 긁다보면 딱지가 떨어지고 딱지와 함께 타투가 떨어질 수 있다) 등 몸에 바늘 댄 후 당연히 해야 하는 일들을 일주일 정도 하다보면 어느 정도 윤곽이 나온다.


타투를 넓게 한 사람은 더 오랫동안 조심해야겠지만, 난 멋대로 일주일이면 됐다고 판단한 뒤 세니덤을 떼어버렸다(살살 굴려서 떼어야 한다. 확 떼면 타투가 같이 떼어질 수 있음). 타투 자리가 하필 손목인데다, 하필 분홍색이라(피딱지 때문에 더 빨개보였다), 꼭 자해한 사람처럼 보였다. 자신의 손목을 보는 게 그렇게 두려운 일인지 몰랐다. 타투까지 했는데 볼 수 없는 건 너무 잔인하지 않나, 결국 세니덤을 떼어버렸고 일주일 만에 마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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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하고 하루 지난 날의 사진


꺄핫, 예쁘다.




몸에 '영구적'으로 남기 때문인지 간혹 몸의 주인보다 타투에 더 의의를 두는 사람들이 있다. 주홍글씨니, 양아치 같다느니, 미래 배우자가 싫어할 거라느니, 할머니 돼서를 생각하라느니. 할머니 등에 호랑이가 있다고 생각하면 힙하고 멋이라는 것이 폭발하는 것을... 비혼주의일지도 모르는데 배우자 얘기를 하는 건 둘째 치고도, 주홍글씨는 누가 만드는 것일까. 정작 앞에서 양아치 짓 하면 아무 소리도 못할 거면서.


타투는 누구나 할 수 있고(아프긴 한데), 쉽게 할 수 있으며(아프지만), 한 뒤에도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아픔은 남는다...). 사회의 반세력이 된 것 같기도 하고 벚꽃레인저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멋짐이란 게 폭발할 뿐이다. 걍 하고 싶으면 하면 된다. 


어차피 흙으로 돌아갈 몸인 것을......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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