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범우 추천4 비추천0






언론인이라는 직업군에 대해 새롭게 이해했다. 세상 어느 직군에나 있는 소수의 괜찮은 사람들처럼 훌륭한 언론인도 물론 있다. 그리고 대다수는 보통의 다른 직업인들처럼 돈을 벌기 위해 일한다. 혹은 돈을 주는 사람을 위해 일한다. 결국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을 위해 사는 거지만 그렇게 포장한다.

 


press-899477_640.jpg



월급을 주는 사장님을 생각하며 취재하고 편집하고 배열한다. 사장에게 목돈을 지불하는 광고주를 배려하는 건 직장인의 기본이다. 뉴스를 소비하는 소액을 결제하는 다수도 중요하겠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객의 중요도는 지불능력에 따르기 마련이다.

 

스포츠신문에서 사회정의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보수 일간지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공산품을 생산하는 기업에서도 목적대상이 다른 프리미엄 제품과 저가형 제품을 같은 생산라인에서 만든다. 그들이 생산하는 뉴스를 그렇게 이해하기로 했다.

 

어쩌면 사실은 다를지도 모른다. 직업윤리에 충실한 언론인들이 사회 어두운 구석을 비추고 밝혀서 이만큼 세상이 좋아졌을지도 모른다. 자칫하면 목숨을 빼앗길 상황에서도 권력자의 비리를 집요하게 추적한 언론인들 덕분에 이만큼의 권리나마 누리고 사는 걸 수도 있다.

 

때로는 위대한 개인의 삶에 경탄하기도 하고 집단의 위력에 전율하기도 한다. 동해바다가 몇 바가지의 물이 나올까. 다 들어가는 바가지로 한 바가지, 반 들어가는 바가지로 두 바가지. 내가 가진 작은 그릇으로는 세상과 다른 사람을 재는 게 온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인정욕구만큼 가치평가는 본능이다. 사람의 눈동자는 흰자위가 도드라진다. 온통 까만 다른 동물들과는 다르다. 목숨을 건 공방을 생활화하는 동물들에게 시선을 간파당하는 건 약점이지만 사람은 상대에게 흰자위로 자신이 보는 방향을 알려준다. 알아주길 바란다. 그렇게 시선의 방향을 보고, 표정을 보며 감정과 마음을 읽어간다.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백원우 의원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과하라는 고함을 지를 때 두 가지 마음이 있었다. 왜 이제야 소리 지르는 거지 쇼 하는 건가 하는 의문과 그래도 가는 길에 한 명 정도는 저리 해주니 다행이다 하는 마음이었다. 분노와 슬픔을 심장 아래로 눌러 두고 이명박 대통령에게 고개를 숙여 소란을 사과하는 문재인의 얼굴에서 희망을 본 사람도 있다.



35295ed03a450813feae39bb87c49ddf.jpg


 

모든 일을 자기 본위로 치환하는 이명박의 표정은 당황에도 불구하고 제법 당당하고 뻔뻔하였다. 그 옆에 서 있던 한승수의 표정이 오래 남았다. 글 쓰는 사관의 성향에 따르지 않고 영상으로 역사에 기록되는 시대다. 미묘한 껄끄러움과 죄책감이 불편함으로 얽히고 문재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혐오와 원망이 보였다. 오랜 시간 이해 가지 않던 표정을 해고무효 소송을 진행하면서 대표이사의 얼굴에서 보았다. 그런 거였다.

 

경의와 찬탄과 감사는 당사자를 고양시킨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데 하물며 사람이야. 귀에 단말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분노와 멸시도 그만큼의 위력을 갖는다. 악인들조차 선을 위장하고 찬사를 듣기 원한다. 따로 겪어보지 않아도 악으로 지목되었을 때의 시선과 반작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걸 안다. 무시와 백안시는 그 자체로도 무거운 벌이다.

 

여전히 자주 보지는 않지만, 정치 뉴스가 전처럼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다. 정치인들 각자의 목적을 어림잡아보기도 하고 그들의 군집이 추구하는 목표를 헤아려 볼 여유도 생겼다. 뉴스를 편집해서 보내는 사람들의 의도도 어렴풋이 보인다. 그래선지 의원들이 앉아 있는 의자에도 시선이 간다. 나는 의자 만드는 공장에 다닌다.

 

선 자리가 달라지면 바라보는 풍경이 바뀐다. 같은 곳을 보아도 직업이 바뀌면 직군과 관계있는 곳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콩나물 공장에 다닐 때는 슈퍼에서 콩나물을 관찰하더니 의자 만드는 공장에 다닌다고 국회의원들의 등 뒤의 의자에 시선이 간다.

 

야당이라지만 당사에 있는 의자는 국고 지원을 받았을 거다. 아마도 관련 업무를 하는 조달청에서 입찰을 넣고 퇴직 관료 출신의 브로커가 따냈겠다. 브로커 마진을 떼고 생산업체에서 하청을 받으면 설비업자들은 석 당 설치비를 받고 조립한다. 각자의 욕망과 필요와 인간관계를 타고 돈이 흐른다. 추측이다. 대형 종교단체처럼 당비 걷어서 당원에게 생산과 조립을 주었을 가능성도 있다.

 

본다는 게 알게 되는 거고, 안다는 건 결국 믿는다는 건데 그 시발이 되는 본다는 행위가 참 얄팍하고 가볍다고 느껴진다. 한곳에서 같은 방향으로 한평생을 바라본 사람들의 시각을 폄훼하려는 건 아니다. 한곳에 집중하는 만큼 다른 곳을 무시하고 소홀하게 된다. 집중하기 위해서는 다른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 맞는지도 모른다.

 

세상인심이 변화가 빠르다. 언론인 손석희에 대한 평가가 어느새 달라졌다. 삶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것이 아니니 그저 보이는 만큼 스스로의 깜냥대로 판단한다. 엄혹한 시절에 권력에 반하는 노동조합에 이름을 올릴 결기를 갖췄다. 몰라서 용감하긴 쉬워도 알면서 손해를 각오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201407221023257256.jpg



편협하지 않은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보도하기 위해 평생을 보냈지 싶다. 자기 수양과 한쪽으로 쏠리지 않으려는 노력은 강박관념이 되기에 충분하다. 때로는 거리낌 없이 편협해지는 것이 편하다. 스스로 감수한 불편함과 삶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았다. 물론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누구도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경우는 없다.

 

손석희가 MBC를 떠나 중앙일보 방송사로 갈 때 살길을 찾아간다 싶었다. 전여옥도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나름의 자구책을 찾아 나섰다. 정보 접근이 일정 레벨에 도달한 이들에게 박근혜의 증오를 받는 일은 목숨의 위협을 의미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 와중에 시선집중 할 때의 식구들을 챙겨가는 건 선량함과 역량 어느 쪽에 가까울지 생각했다.

 

그가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태도를 보고 어쨌든 살아남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동조합을 만들던 시절과 주주들의 이익을 생각해야 하는 경영자의 입장에서 보는 세상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는 몰라도 사람의 근간을 이루는 성정은 바뀌지 않은 듯했다. 탄핵국면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그 연장선상으로 보였다.

 

권력의 누수와 대한민국 상층부를 이루는 사람들 적당 수의 합의가 없었더라면 보도가 금방 묻혔으리라 생각되지만, 그가 맡은 역할은 작지 않았다. 위험부담 또한 적지 않았다. 문재인 정권에서 그는 정치 권력과 거리를 두고자 하는 듯 보인다. 중립을 지키려는 그의 태도는 높은 지지율을 위험 신호로 인지했을 수도 있다. 노무현 정권의 사람들이 그랬듯 문재인 정권의 인사들이 모두 문재인 같은 인품을 지닌 것도 아니다.

 

행여 그가 자본의 독에 취했을 수도 있다. 변덕이 심한 민중보다는 보상이 확실한 자본 권력이 오히려 믿음이 갈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그가 맡았던 역할을 수행할 사람은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자연을 모방한 인간의 체제도 빈자리를 가만 두지 않는다. 김지하가 지금은 아름답지 않지만, 누구보다 빛나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누리는 민주주의 일부분은 그 시절 그에게도 지분이 있다. 그 정도로 받아들인다.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고 변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에게는 세상이 변해버린다. 의미는 부여하기 나름이다. 사견이다.





지난 기사


범우시선 한 번에 보기 






범우


편집 : 딴지일보 인지니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