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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바둑계가 문제가 많은 건 다들 안다. 하지만 문제없는 분야가 어디 있겠는가. 같은 스포츠계만 해도 부정부패가 만연하지 않은가. 어차피 다 문제 있는데 괜히 긁어부스럼 아닌가 생각했다. 어차피 바둑으로 먹고 사는 사람도 아닌데 신경 쓸 필요가 있나 생각도 들었다.


글을 쓰게 된 결심은 모 중견기사와의 술자리 때문이었다. 바둑계 걱정을 누구보다 하는 그였다. 친구이자 중요한 취재원인 그는 한탄했다. 요새 후배들 볼 면목이 없다. 자기야 바둑으로 좋은 시절 누렸지만 애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냐. 머리 좋으니 지금이라도 공부해서 대학 가야 하지 않겠냐. 하루 종일 바둑공부만 하는데 앞으로 프로가 몇 년이나 갈지 모르겠다고 한다. 필자는 그래도 10년은 가지 않겠냐고 했다. 그는 필자를 보며 말했다. 10년이면 프로가 200명 생긴다. 걔네들 어떻게 먹여 살릴래? 보기보다 낙관적인 기풍이라며 칭찬을 해주었다.


그럼 시작하겠다.



사분오열된 바둑계


바둑계가 생긴 이래 가장 개판인 요즘이다.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가 갈라지며 싸우는 거야 뭐 하루 이틀이 아니다. 한국기원하고 대한바둑협회가 싸우는 것도 골치 아픈데 여기저기서 말썽이다. 뭐가 말썽인지 한 번 썰을 풀어보겠다. 첫 빠따는 프로기사다. 매도 먼저 맞아야 아픈 법.



1. 노사초배

올해 열리는 아마추어 바둑대회 노사초배에 프로기사들도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참가비를 내고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프로기사들 시합이 없으니 아마추어 대회에 나갈 수 있게 문호를 넓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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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장하다. 프로기사들이 아마추어 대회에 참가비 내고 참가할 수 있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대체 이게 뭐하는 짓거리인가. 왜 스스로 가치를 떨어트리는가. 프로대회에 아마를 오픈해주는 건 기회를 주는 차원에서 그리고 이벤트적인 측면이 있다. 그런데 아마대회에 프로가 나간다? 그럼 프로가 왜 있나? 아마랑 프로는 엄연히 경계가 있다. 그리고 아마추어가 프로를 대우해주는 이유는 힘든 시험을 통과한 것에 대한 존경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아마추어 대회에 프로가 나갈 수 있게 했다며, 나 잘 했어요. 하는데 정말 분노를 느낀다. 최소한 초청비는 못 받더라고 참가비는 안 내야 할 것 아닌가. 식비랑 숙박 제공해주면 단가? 시쳇말로 먹여주고 재워주면 다인가? 이런 기획을 도대체 누가 냈는지 정말 알 수가 없다.


이래놓고 기사들이 시합 안 나가면 “왜 니들은 시합 만들어 줘도 안 나가면서 대회 없다고 징징거리냐.” 이럴 기세다. 프로가 뛸 수 있는 시합을 만들어 줘야지 프로보고 아마대회를 나가라고 하다니. 치욕도 이런 치욕이 있을까? 아마 쪽에서는 어떤 입장일까?


협회입장에서는 불감청고소원이라. 연구생 출신들도 좋아할 것이다. 1박 2일 동안 하루에 4~5판씩 초속기로 두는 아마대회는 상상을 초월한다. 한국기원의 정숙한 분위기에서 두는 시합장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그래도 도떼기 시장 같은 아마대회장은 비교를 할 수 없다.


상위 랭커들은 이런 시합에 안 나오고 어중간한 쪽이 나올텐데 성적이 좋으리란 보장이 없다. 아마한테 깨지고 이러면 바둑팬 입장에서 프로도 뭐 별거 없네 하고 생각할 거고, 시장판 같은 대회장에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하루에 몇 판씩 두는 모습, 아마한테 지는 모습을 보면 어떤 바둑팬이 프로를 경외하겠는가. 자기 스스로를 천대할 때 남들도 천대한다. 대우받고자 하면 스스로를 먼저 대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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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아마대회 현장, 구경꾼들에 둘러쌓여 있다, 구경꾼들의 얘기가 대국자에게 들린다>


프로면 프로다워야 한다. 아마대회 나가려면 은퇴하고 나가라. 프로가 은퇴하면 아마대회 못 나온다고? 그건 한국기원하고 대한바둑협회하고 협의할 문제다. 살다 살다 프로가 아마대회에 참가비 내고 나가는 시대라니. 조남철 국수가 봤으면 어떤 심정이셨을까.


아마대회에 프로들이 나올 수 있다면 아마 측에서도 프로대회 오픈을 요구할 것이다. 그럼 프로랑 아마는 무슨 차이가 있는가? 왜 스스로 가치를 떨어트리는지 모르겠다.



2. 누구를 위해 기사회는 존재하는가?

프로기사회라는 조직이 있다. 작년 이세돌 탈퇴사건으로 한창 세간에 주목을 받았으나 프로기사회의 손빼기 작전으로 김이 새버린 사건이 있던 곳이다. 이세돌 탈퇴사건을 복기해 보면 비용처리도 안 되는 친목단체에 불과한 기사회에 내 상금을 줄 수 없다. 이것이 이세돌의 주장이고, 그동안 관행이며 기사들의 복지를 위해 쓰는 돈이다. 조훈현, 이창호도 가만히 있었는데 왜 너만 난리야? 이게 기사회 입장이다.


기사총회에서 토론이 있었으나 결국 이세돌 기사회 탈퇴는 한국기원에 물어봐야 한다는 기적의 논리로 유체이탈 증상을 보인 곳이다. 이게 왜 기적의 논리냐 하면 이세돌 휴직사건 때는 기사회에서 투표해서 징계 통과시켰는데, 지금은 한국기원에 물어봐야 한다? 이상한 조직이다. 뭐 한국기원도 지금은 손 놓고 있다. 그렇게 한국기원 이사회에 안건으로 올라와 내린 결론은 이세돌이랑 기사회가 대화를 통해 풀어보라고 하는데 한심한 일이다.


기사회는 기사들의 권리와 이익을 지켜주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다. 그런데 세계최강의 기사 이세돌을 못 지켜주는 기사회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켜주지는 못할 망정 스스로 징계한 기사회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당시 이세돌 징계에 찬성한 기사들은 그럴 자격이 있을까? 바둑계 평생 후원자를 상대로 억대 바둑판을 사기를 친 기사. 바둑단체 공금을 횡령한 기사. 기사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기사는 모두 쉬쉬하며 제 식구 감싸기에 바쁘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세돌 징계에는 추상같았다. 그 기세가 마치 장판교 장비처럼 장엄했고, 5천 결사대로 나당 연합군을 맞이하는 계백장군처럼 결연했다.


이세돌 탈퇴사건으로 말이 길어졌다. 이세돌이 탈퇴하려고 하는 그 기사회는 대체 뭐하는 곳인가? 기사들의 친목도모와 권익을 위해 힘써야 하는 곳 아닌가?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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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기사회장이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

기사회장 선거에서 양건 기사회장은 여러 가지 공약을 내세웠다. 그 중 구단제와 교육에 중점을 두고 공약을 작성했다. 그리고 기사들의 정체성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임기의 4분의 3이 지나간 지금 얼마나 공약을 이행했을까? 국내 가장 큰 KB바둑리그의 구단제 움직임이 있는가? 전혀 없다. 교육사업에 중점을 둔다고 했는데 올해 기사회에서 교육 관련 자금지원이 끊기거나 대폭 축소된 걸로 알고 있다. 한 게 없다면 유지는 잘 했는가? 이세돌 탈퇴사건은 아직도 처리가 안 되었다. 전대 기사회장부터 추진한 기사회 사단법인화 사업은 마무리되었는가? (기사회가 친목단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금액을 보유하고 있고 세금 문제가 걸려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법인화 하려는 사업) 결국 한 게 없다. 기사들의 정체성을 강화하겠다고 하면서 프로보고 아마대회 나가라는 것은 대체 무슨 말인가?


얼마 전 한국기원에서 프로기사 징계에 관한 규정이 새로 바뀌어 전파되었다. 수뇌부는 기존에 두루뭉술한 부분을 명문화 했다고 말하지만 기사들 입장에서는 "이건 맘에 안 들면 아무 때나 징계한다는 뜻이네?"로 받아들였다. 문제는 이런 내용을 회의할 때 양건 기사회장도 참여하였는데 정작 일이 불거지자 자신은 잘 모른다는 식으로 얘기하며 기사들에게 모여서 기원에 항의해보라는 식으로 얘기했다.


기사들이 기원 측에 항의하자 기원 관계자 중 1명은 회의 당시 기사회장이 오케이 한 사항인데 왜 그러냐. 모든 기사에게 다 물어볼 수도 없는 내용이고, 기사회장이 기사회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냐. 라고 반문하여 기사들에게 실망을 주었다. 양건 기사회장은 기사들의 반발을 예상 못 했으리라. 설사 예상치 못 한 반발이 있더라도 본인이 자리한 회의에서 통과가 되었으면 이건 사실 별 게 아니다. 과대해석하지 말라, 라고 하던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으면 나는 반대했지만 다수결에 밀렸다. 대신 기사들이 나서서 반대해줘라. 라는 액션을 취해야 하는데 마치 몰랐다는 식의 반응은 리더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한다.


양건 기사회장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까는 게 아니다. 필자는 양건 사범에게 기대를 한 사람이었다. 평소 기원 수뇌부의 행정에 반대의견을 활기차게 개진하며 개혁적인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줬다. 물론 그런 와중에 연구생 사범이라든가. 각종 기원 이권에 관여하는 걸 봤지만 먹고 사는 문제는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양건 사범이 그저 임기 내에 기사회 사단법인화만 해줘도 할 일을 다하는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프로기사회 회장인지 한국기원 사무총장인지 대한바둑협회 회장인지 알 수 없는 행마를 한다. 남은 임기 동안이라도 마무리 잘 하고 퇴임하면 좋겠다. 기사회장 선거에 2번 떨어지니 사람들이 동정표로 많이 찍어줬는데, 한 단체의 수장은 불쌍하다고 찍어주면 안 된다. 아버지, 어머니 총 맞아 죽었다고 불쌍하다고 대통령 찍었다가 나랏꼴이 어떻게 되었는가. 일 잘하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일 잘하는 사람이 없는 게 문제지만) 그리고 무슨 일을 하는지 감시하는 역할도 필요하다. 견제가 없으니 자기 하고 싶은 거만 하지 않는가.



4. 프로암리그

이거는 대체 왜 기사회가 추진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양건 기사회장은 이걸 왜 하는지 모르겠다. 프로기사 2부 리그인 퓨처스도 흥행이 안 되는데 어쩌자고 이런 걸 만드는지 이해가 안 간다. 하긴 시니어리그도 운영하는 걸 보면 정말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한창 현역인 기사들 시합보다 시니어들 시합이 더 많다니 소가 웃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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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기사회의 수장이라면 2부 퓨처스리그 흥행과 3부 리그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왜 아마추어랑 같이 하는 프로암리그를 만드는거지? 이건 대한바둑협회에서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면 한국기원이 튕겨야 하는 일 아닌가? 프로기사회의 회장이 대한바둑협회가 할 일을 왜 하는가? 더구나 아마최강인 내셔널리그 선수들도 참가를 못 해서 정말 이도저도 아닌 아마추어들이 나올 텐데 대체 뭐하는 건지 모르겠다.


프로기사회장이 왜 대한바둑협회가 하고 싶어 난리치는 일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프로의 가치가 점점 떨어지는 일 아닌가. 올해가 임기 마지막인데 프로암리그를 만들어서 운영위원회의 한 자리를 하려는 건 아닌지 조심스럽게 소설을 써 본다. 임기가 얼마 안 남았으니 자리 마련하려는 걸로 밖에 안 보인다. 임기 끝나고 그의 행마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바둑계의 문제는 자기 좋을대로 하면서 이게 다 바둑계를 위해서라는 대의명분을 포장하는 것이다.


프로기사회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친목단체 정도가 한계다. 바둑 뿐만 아니라 이외 세상을 두루두루 아는 사람이 운영해야 하는데 그런 기사는 인지도가 없다. 인지도가 있는 기사는 바둑만 알지 세상물정을 모른다. 인지도가 있어야 기사회장을 하는데 그런 기사는 바둑 외에 능력이 없다.


프로기사는 결국 자격증에 불과한 시대로 갈 것이다. 지금처럼 은퇴는 안 하는데 대책 없이 프로만 뽑으면 결국 이름만 프로가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시기를 프로기사들 스스로 앞당기려 하고 있다.


다음은 한국기원에 관해 쓰겠다.






김곤마


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