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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유전자 분석 리포트를 꺼내 놓고 이야기하기 전에, 한 단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유전자라는 것이 아직 일반인에게 다소 생소한 개념이다 보니 유전자만 분석하면 우리가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나 혈액형별 성격 분석, 태음인/소양인 등의 체질 분석, MBTI 식의 성격 분석 등이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척도인 것처럼 여겨지고, 물이 답을 알고 있다는 고대 신화에서나 나올 듯한 신기한 내용의 책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서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유전자 분석은 까딱 잘못하면 절대 궁극의 체질, 혹은 성격 분류법으로 오인될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현대판 우생학을 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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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이런 거 믿는 사람이라면 유전자 분석을 하기 전에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자

인간 군상이 이 정도로 분류 되고 말거라고 착각하는 것은 45억년 진화의 역사에 대한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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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적도 있었다

시험장 반입 금지품 목록에 물도 들어가야 할 기세


Afbeeldingsresultaat voor 혈액형별 성격 

소개팅 자리에서 이딴 거 물어보는 상대와의 관계는 진지하게(외모를 보고) 고민해 보자


그래서 왜 유전자 분석이라는 것이 어려운 일이고, 무엇이 불가능하고 무엇은 가능한지, 그 한계와 위험성 등에 대해서 한 번 짚고 넘어가는 것은 필수적이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사용하는 기술이 어떠한 한계점을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배경에서 이런 분석 서비스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인지에 대한 정황적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


지난 글이 '유전자'에 관한 글이었다면 이번 글에서는 유전자의 '분석'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이 바닥도 강호의 영웅들이 난립하고 흥망성쇄가 꽤나 흔한 춘추전국 시대이다. IT 기술 발전의 속도는 유전자 분석 기술 발전 속도에 비하면 코웃음이 나오는 수준이다. 지금은 나름 진시황 같은 놈이 나타나서 평정하려고 하고 있지만 또 위태위태해 보이기도 하고, 일등은 못할 거, 이등이라도 확실하게 하자며 가는 놈도 나오고 아주 다이나믹한 산업이다. 어디 가서 이런 스토리 듣기 쉽지 않으니 유전자 분석 서비스의 구매를 고려하기 전에 천천히 한번 읽어 보자. 재미없지는 않을 거다.




도서관 마을 개념의 확장


지난 글에서 설명한 도서관이 있는 마을의 비유를 조금 더 확장해 보자. (혹시 기억이 나지 않으시는 분이라면 지난 글을 돌아가서 다시 한번 읽고 오시길 바란다) 


지난기사

유전자가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자 (링크)


마을들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개가 같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이렇게 모여 있는 마을들은 결국 한 도시를 구성한다. 그리고 이런 도시가 또 여러개가 모여서 나라를 형성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가정하자.


재미있는 것은, 이 나라에서는 어느 도시, 어느 마을의 도서관을 찾아가서 책을 빌려도 항상 똑같은 책을 볼 수 있다. 한 나라 안에 있는 모든 도서관은 동일한 장서를 보유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 이유인 즉슨, 온 나라의 마을과 도시는 최초 단 한 개의 마을에서 퍼져 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즉, 한 개의 마을이 열심히 커진 다음에 인구가 너무 많아지니까 사람들이 분가해 나가면서 그 최초 마을의 도서관에 있던 책을 모조리 동일하게 복사해 나갔고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도시와 나라가 발생한 것이다. 물론 책을 복사하는 과정에서 실수도 조금 있었기는 했지만, 큰 무리 없는 범위 내에서 이 나라의 모든 마을은 거의 완벽하게 동일한 도서관을 보유하게 됐다.


각 도시들은 특정한 산업에 최적화 되어 있는데, 예를 들어 구미는 핸드폰(혹은 반신반인의 우상화 사업), 파주가 책 만드는 산업, 전주는 음식점 사업에 특화되어 있는 것과 비슷하다. 한 도시에 여러개의 마을들이 협력해서 그런 도시 규모의 산업 단지를 만든 것이다. 하는 일은 다른데 도서관은 모두 같다 보니 각 도시 마다 빌려가는 책들이 다르다. 그래서 어떤 도시에서 어떤 책은 아무도 읽지 않는 반면, 또 다른 책은 너덜너덜해지도록 읽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물론 진짜로 너덜너덜해진다는 말은 아니고)


과학자들은 어떤 마을이 어떤 산업에 최적화 되어 있는지를 보통 그 마을에서 나오는 포스트잇의 종류와 양을 분석해서 파악한다. 일반적으로 한 번 특정 산업에 최적화된 도시는 다시 다른 산업으로 최적화 되는 게 불가능하다. 단순하게 생각해 봐도 구미를 좌익 도시로 만드는 건 불가능해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Afbeeldingsresultaat voor 구미시 박정희 추모 

어떻게 특화되는지에 따라서 아주 많이 달라진다

이걸 되돌리는 건 아주 힘든 일이다


나라가 계속 커지다 보면 새로운 나라가 생성되기도 하는데, 새로운 나라의 형성은 좀 복잡한 과정이라서 나라 혼자서는 절대 못하고 반드시 다른 나라의 도움이 필요하다. 두 나라의 합의하에 양쪽에서 대표 도서관을 하나씩 내놓고 이 둘을 잘 셔플링 해서 새로운 나라의 첫 번째 마을의 도서관으로 결정한다. 이 새로운 첫 번째 마을은 열심히 일해서 두 번째 마을을 만들고, 두 번째 마을은 세 번째를 만들고... 등등 해서, 도시도 만들어지고 결국 또 하나의 나라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대충 읽으면서 눈치 챘겠지만, 나라는 한 사람을 의미한다. 도시는 우리 몸의 각 장기나 조직을 의미한다. 어느 도시가 특정 산업으로 최적화 되는 과정을 '분화'라고 하는데, 이게 가능한 마을, 즉 아직 아무 것으로도 분화가 되지 않아서 어느 산업을 육성할지가 결정이 안 된 마을, 이게 줄기세포다.


Image result for 황우석 위인전 

누구 덕분에 대한민국에서 줄기세포는 초딩도 아는 단어가 되어 버렸으니 나름 업적이라고 해야 하려나...


위에서 말한대로 한 번 분화되면 다른 세포 조직으로 돌리는 게 무척이나 어려운데 비해, 한 번 돌릴 수만 있다면 인류의 수 많은 불치병 치료의 문이 열릴 수 있다 보니, 이걸 거꾸로 돌리는 기술이 과학자들에게는 인디아나 존스의 성배와도 같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미 이 분야에서 두 번의 전세계적인 사기극과 (한국과 일본이 각각 한 번씩 해 먹었음. 본인들은 아직까지도 결코 사기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공통점도 있음) 한번의 노벨상 수상이 (결국은 일본이 먹었음) 이 분야에서 나왔다.


(여담인데 사실 필자 개인적으로는 stem cell이라는 영어단어의 '줄기'세포라는 번역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말로 '줄기'란 나무 줄기나 물줄기와 같이 길다란 물건을 직관적으로 떠올리게 되는데 비해, stem cell에서의 stem은 나무 줄기라는 뜻 외에도 원천, 기원이나 최초라는 의미 때문에 쓰여진 단어다. 즉, 분화하지 않은 최초의 세포라는 의미의 단어로 바꾸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 이미 초등학생까지도 다 알려진 단어라 언중의 힘을 이제 와서 거스르기란...)


두 나라가 같이 합의하는 것은, 소위 말하는 짝짓기를 하는 것이고 두 나라의 도서관을 섞는 것은 정자와 난자가 만난 후 배아에서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참고로 특정 마을이 오염되거나 혹은 정상으로 돌리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면 국가 단위에서 마을 폐쇄 명령을 내리는 시스템이 있다. 못 고칠 것은 폐기하는 게 전체의 이익을 위해 더 낫기 때문에 갖춘 장치인데, 간혹 이 폐쇄 명령을 거부하고 농성하면서 옆마을까지도 같이 타락하게 만드는 마을들이 있다. 이게 바로 암이다.


지난 글부터 시작되었던 도서관, 마을, 포스트잇, 도시, 국가의 스토리는 여기까지다. (입문 수준의 생물학까지를 꽤 잘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하며 뿌듯해 하고 있다)




가장 오래된 유전자 분석 - PCR(또는 제한효소) 기반 개인 감별


가장 오래된 유전자 분석이자 가장 쉬운 분석 방법이다. 물론 이 쉽다는 방법에 도달하기까지도 위대한 거인들의 발자취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라 이렇게 폄하하듯 말할 수준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지금의 기술력에서 보면 원시시대 기술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두 나라가 같은 나라인지 다른 나라인지를 보는 분석이다. 예를 들어, A라는 나라와 B라는 나라가 새로운 나라를 하나 만들기로 합의해서 각각 도서관 한 개씩을 내놓고 이를 잘 섞어서 C라는 나라를 만들었는데, A 나라가 갑자기 B 나라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왠지 B가 A의 도서관이 아닌 다른 도서관을 섞은 게 아닌가 싶어서. 그래서 A 도서관의 장서와 C 도서관의 장서를 비교해 보는 작업, 이게 전통적인 방식의 친자 감별 유전자 분석이다. 혹은, X라는 책을 길거리에서 주웠는데, 이게 A마을에서 나온 건지 B 마을에서 나온 건지를 확인하는 것도 바로 이 기술을 이용한다. 살인의 추억에서 거짓말을 안 한다던 서류가 바로 이 검사 결과다.


Afbeeldingsresultaat voor salvador dali dna test


지난주에 나온 소식인데 살바도르 달리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나는 바람에 이미 죽은 달리와 DNA 검사를 해 보기로 했단다. 진짜 딸이면 어마어마한 재산을 물려받을 듯. 달리의 재산은 현재 스페인 정부가 보유하고 있다. 달리는 살아 생전, 자신이 발기불능이라서 다행이라고 주변인들에게 이야기 한 바 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3주 걸린단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24시간 서비스 했을 거다. (원문 링크)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부자도 있고, 죽고 나서도 고생인 부자도 있다. 부관참시도 아니고 이게 뭐여. 돈 때문에...


이건 모든 장서를 다 일일이 비교할 필요는 없고, 몇군데만 잘 뽑아서 비교해 봐도 꽤 높은 확률로 알 수 있다. 그래서 "어느 어느 책의 어느 부분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라는 확인 전용 유전자들이 따로 존재한다. 이때 비교해 보는 부분들을 '마커(marker)'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런 특징적인 마커들의 집합을 유전자 패널, 혹은 진 패널(gene panel)이라고 부른다. PCR이라는 한 40년 된, 하지만 생물학의 역사에 있어서는 인류가 불을 발견한 것 만큼이나 대단한 기법을 이용하여 이 마커들을 분석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원리만 알고 기본적인 장비만 있다면 중학생 정도만 되어도 할 수 있는 방법. 보통 아래 이미지처럼 빛나는 막대기들의 패턴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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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 하나 잘못 주워 인생 꼬여버렸던 우리 프로도 형님. 자기 DNA로 이미지 만들어 주는 어떤 회사의 홍보 모델로 섭외가 들어와 저렇게 들고 계신다. 생물학을 아는 사람이 보면 참 빵터지는 사업 모델, 마케팅을 아는 사람이 보면 참 기발한 사업 모델, 내가 보기엔 세상은 넓고 눈 먼 돈은 많다는 걸 보여주는 모델이다.




유전자 분석의 대량 생산화 - 마이크로 어레이(Microarray) 기반 분석


마이크로어레이란, 아주 조그마한 칩 (보통 새끼손톱보다도 더 작은 사이즈)에 수 백만 개 가량의 다양한 DNA를 고밀도로 얹어 놓은 것을 말한다. 지난번과 이번 글에서는 설명하지 않았는데, DNA는 '상보성'이라는 특성이 있어서, 자기와 반대되는 짝을(A는 T를 C는 G를) 순식간에 찾아가서 결합하는 성질이 있다. 이것을 이용해서 발견하고자 하는 DNA에 반대되는 시퀀스를 칩에 올려 놓고 알고자 하는 샘플의 DNA를 그 위에 뿌려서 붙는 놈과 붙지 않는 놈을 구별해 내는 방법인데, 이 단계까지만 와도 꽤 많은 정보를 얻어낼 수 있다. 워낙 작은 면적에 수많은 DNA를 얹어 놓다 보니 한 번에 읽어낼 수 있는 데이타의 양이 꽤 많다.


나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기술이고 대량화가 가능하다 보니 가격적인 측면에서 어마어마한 이점을 가지고 있다. 개인 유전자 분석 서비스로 가장 많이 대중화 된 회사인 23andme라는 회사에서도 아직까지 이 기술을 이용한 유전자 분석 서비스를 제공한다. 현재까지 나온 기술들 중 이미 알려진 마커를 분석하는 용도로만 본다면 가성비 최고의 기술이다.


Afbeeldingsresultaat voor DNA microarray 

대충 이렇게 생긴 녀석이다

 

Afbeeldingsresultaat voor DNA microarray 

왼쪽 같은 기계에 넣고 카메라로 읽으면 오른쪽 신호등 같은 색들이 나오고,

이 빛 시그널을 신호로 전환하여 그 수치를 읽는다


위의 두 가지 유전자 분석법은 이미 2000년대에 거의 기술적인 정점에 도달했던 기술들이다. 그런데 왜 그 당시에는 유전자 분석이 지금처럼 일반인들에게까지 다가오지 못했을까. 그런 바로 분석할 컨텐츠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눈치 챈 사람도 있겠지만, 위 두 가지 기술은 이미 우리가 무언가를 이미 알고 있을 때, 즉 위에서 간단하게 언급한 '마커'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때, 그것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확인하는 방법이지 새로운 마커 자체를 개발하게 해 주거나, 혹은 어떤 유전자라는 책 몇 페이지에 이러이러한 문장이 쓰여져 있는가? 라는 질문에 예/아니오로 대답을 해 줄 수 있는 기술이지 그 문장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기술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 한계점에 돌파구를 제공한 것이 다음에 설명할 '시퀀싱'이다. 사실 최초의 시퀀싱은 PCR보다도 더 먼저 개발됐다. 한 명의 천재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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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분석 서비스에 대해 알아보자

유전자가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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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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