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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사람을 곤란하게 하는 말을 곧잘 하는 분이 계셨다. 처음 만났던 날, 내가 결혼을 했는데 아이가 없다는 걸 알고 이유를 재차 물었다. 지겨웠지만 익숙한 질문이었다. 나쁜 의도가 없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웃으며 좋게 대답했다. “그냥 저희들의 인생 계획이 그렇습니다.” 내 부연 설명까지 듣고 나서도 그 분은 마치 못 들었다는 듯 다시 물었다. “혹시 애가 안 생기는 거 아니에요?” 주위에 십 여 명의 다른 동료들이 있던 차였다. 실제로 내 가까이에는 임신이 되지 않아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여러모로 불쾌했다. 초면에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 얼마나 무례한지 도통 모르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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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그 뒤로도 계속 내 사생활과 철학을 문제 삼으며 나를 가르치려 했다. 본인을 따르고,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 상의하라 하셨다. 그러나 내 평온한 학교생활을 짜증나게 하는 일은 오롯이 그 분 때문에 생겼다. 사실 내게는 가장 덜한 편이었고 동료들이 받은 상처가 더 심했다. 그 분이 심리학과 상담을 오랜 시간 전문적으로 공부했다는 사실을 알고 아연실색 했었다. 그래서 내게도 걸핏하면 ‘힘든 일이 있으면 상담하라’고 했던 거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심리나 상담을 열심히 공부한 분들은 각양각색이다. 깊이 있는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본인과 주변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분들이 물론 더 많다. 하지만 가끔 사람을 몹시 불편하게 하는 이들도 발견하곤 한다. 자기객관화가 전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모든 주의와 관심 그리고 비판의 칼날을 남에게만 돌린다. 심리학을 공부한 사람치고는 이상하리만큼 상대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분도 있었다. 아니 타인의 심리는 둘째 치고 본인의 불안마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경우를 보면 ‘이 분이 심리와 상담을 파기 시작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나아가 '사람들이 심리학에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심리학이 몹시 대중화된 요즘이다. 교직 사회는 더욱 그렇다. 심리와 상담을 공부한 교사들이 정말 많다. 일부는 그에 맞는 역량을 보이기도 하지만, 어떤 분들은 본인이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사고방식과 행동을 ‘트라우마’, '자존감', ‘투사’, ‘애착’ 등의 프레임 안에서만 찾으려고 한다. 가끔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함인지, 평가하기 위함인지 모르겠는 질문들을 마구 던지기도 한다.

 

‘어릴 때 선생님에게 큰 상처를 받았나요?’ ‘부모님과의 관계는요?’ ‘가장 마음 아팠던 순간은 언제죠?’ ‘가장 신뢰하는 사람은요?’.... 그러다 하나가 걸려들면 손뼉을 치며 자화자찬했다. ‘아, 그럴 줄 알았는데 역시나 그랬어!’ 라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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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둘째라서 그렇게 비판적이고 반항적이구나! ○○학자가 그랬는데 생애 초기 경험이 어쩌고 저쩌고...긍정적인 사람은 어쩌고 저쩌고...투사가 어쩌고 저쩌고..”

 

답답해서 한숨이 나왔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런 얼치기 심리 도사들이 판을 치기 시작한 건가 싶다. 내가 쓴 글을 읽고 내용에 대한 해석이 아니라, 나에 대한 추측에 열을 올리는 걸 봐도 꽤 당황스럽다. 작가에게 트라우마가 있었을 거라는 둥, 매사 부정적이라는 둥, 마음이 강퍅할 거라는 둥의 말을 들으면 실소가 나온다. 난 정말 평범한 집에서 자랐다. 사랑도 넘치게 받았고 학교에서도 문제없이 아이들과 생활했다. 사실 이런 일은 유쾌하지 않지만 이해는 할 수 있다. 내가 사람을 종종 오해하는 것처럼, 타인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내가 염려스러운 건 다른 지점에 있다. 예전에는 어떤 비판적 관점이나 소수 의견을 표출하면  ‘정치적이다’,  ‘불편하다’, ‘피곤하다’ 고 했다. 요즘은 다르다. 심리학 용어들이 대중화되어서인지 비판한 사람에게 ‘건강하지 않다’,  ‘부정적이다’, '뒤틀렸다', ‘상처가 많다’고 덮어 씌운다. 현상을 바로 보자고 말하면 ‘자존감이 낮다’고 평한다. 지금 이곳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면 ‘투사’하지 말라고 한다. 없는 용기를 쥐어짜 어렵게 말을 꺼내면 ‘찌질하고 자존감 낮은 투덜이’로 전락하고 만다. 차라리 ‘정치적 반동분자’ 소리를 듣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내 주위에는 식별 가능한 폭력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열심히 '비폭력과 평화'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교양과 품위를 몸에 두르고 말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적 폭력과 내재적 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자, 이들은 되레 말을 꺼낸 이가 ‘폭력적’이라며 길길이 날뛰었다. 정상적(으로 보이는) 상태에 내재한 폭력은 지각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교육과 사회의 근본 질서를 흔들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한 심한 적대감을 느꼈다. 이들은 변화를 위해 치러야 할 '실제적 대가'에 대해서는 늘 함구하려 한다. 사회 정의 따위는 늘 위로와 공감으로 퉁친다. 반동분자들에게 재갈을 물리는 방식이 달라졌다. 얼치기 도사들에게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진지하게 강구해 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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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고민하지 않는 교사를 말한다


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






SickAlien


편집: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