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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1. 28. 화요일

물뚝심송









나름대로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싸움들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익숙해졌다 싶지만, 이런 싸움이 벌어질 때마다 느껴지는 황당함은 여전하다. 도대체 왜 이런 싸움을 해야 하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기 때문이다. 왜 이러는 걸까?

 

기본적인 흐름은 이렇다.

 

지난 대선과정에서 문재인 후보 진영과 박근혜 후보 진영에서 같은 공약을 건 경우는 그리 흔치 않은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기초단체 선거에서 정당공천제를 폐지하겠다는 것이었다. 왜 그런 공약이 나왔는지는 차차 따져보기로 하자.

 

그런데 선거가 끝나고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취임하자, 새누리당은 기초단체 선거에서 정당공천제를 유지하겠다는 쪽으로 입장을 바꿔 버렸다. 민주당은 공약을 지키라고, 즉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라고 주장을 하고 있고, 새누리당은 그렇게 못하겠다고 버티고 있는 중이다. 거기에 안철수 의원 진영까지 가세를 해서 정당공천제는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는 중이다.

 

도대체 누가 옳은가? 정당공천제가 뭐길래 폐지하라 마라 안 된다 된다 설왕설래가 오가는 것일까?

 

어차피 공직선거법을 둘러싼 법 개정은 여야 모두 합의하기 전에는 통과되기 어렵기 때문에 정당공천제는 폐지 되기 힘들 것이다. 그냥 하던 대로 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뭐하러 이런 기이한 논쟁을 이어가고 있는 것일까? 그냥 샅바 싸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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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주장들

 

물론 이것 말고도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의 룰을 둘러싸고 나오는 여러가지 제도들이 있긴 하다. 그러나 그들 중 대부분이 별로 실행될 가능성이 안 보이는 제 논에 물 대기 식의 제도들이다.

 

대충 살펴보면, 새누리당이 주장하는 것은

 

- 정당공천제 유지

-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

- 광역단체장 2선 제한

- 특별 광역시 구의회 폐지

- 광역단체장, 교육감 러닝 메이트 제도

 

등이다.

 

정당공천제 유지는 그렇다 치고, 오픈 프라이머리 방식의 경선 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은 전적으로 새누리당 후보들에게 유리한 방식이다. 아무래도 동원력은 모든 야당들이 새누리당을 따라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광역단체장 2선 제한이야 뭐 누가 봐도 박원순 서울 시장 같이 유력한 야당 출신 광역 단체장을 막기 위한 주장이다.

 

구의회 폐지 건은 나름 일리가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건 다시 얘기하기로 하자.

 

그리고 광역단체장, 교육감의 러닝 메이트 제도는 대표적으로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 등의 소위 진보 교육감들을 견제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예 대놓고 교육감 선거를 없애 버리자는 주장이니, 이 제도는 절대 동의하기 힘들다. 아마 통과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현재 교육감 선거제도는 이른바 “교호투표제”라고 해서 기호 순서도 없애버린 복잡한 방식으로 결정되어 있다. 설명하자면, 투표용지에 각 후보들이 1,2,3,4 기호도 없이 좌에서 우로(기존의 다른 투표 용지들은 세로 순으로 후보들이 나열된다.) 나열되게 되는데, 이 순서 역시 투표구에 따라 뒤섞어 놓는 방식이다. 아마 이 부분은 두고두고 부정선거 시비에 시달릴 수도 있는 취약한 부분이 아닌가 싶다.

 

어찌되었거나, 새누리당의 주장도 크게 다른 것은 없다. 그저, 여태껏 해 오던 대로 하자는 주장일 뿐이다. 이길 자신이 있으니까...

 

실제로 이번 지방선거는 대략 민주당이 패배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 그대로의 룰을 가지고 치른다면 말이다. 각종 여론조사의 결과도 그렇고, 박근혜 정권이 그렇게 욕을 먹고 있어도 절대 올라가지 않는 민주당의 정당 지지율도 문제가 된다. 따라서 민주당은 살짝 판을 흔들어줄 필요가 있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정당공천제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좀 곤란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실제로 민주당이 지금 주장하는 지방선거 관련 내용들은 대략 아래와 같다.

 

- 정당공천제 폐지

- 여성명부제 도입

- 투표연령 하향 조정

- 투표시간 연장


여성명부제(기존 비례대표 정당명부를 여성명부로 대체하는 것)는 정당공천제 폐지의 보완책일 뿐이다. 그리고 투표연령 하향 조정은 바람직한 일이기는 한데, 굳이 지금 그걸 문제 삼아야 할 필요가 있을지 궁금한, 그러니까 꼭 지금이어야 할 필요는 없는 주장일 뿐이다. 투표시간 연장 문제는 공허한 얘기다. 이미 부재자 투표 제도가 개선되어 “사전투표제”가 만들어졌다. 전국 어디서나 미리 신고할 필요도 없이 신분증만 확인되면 자신이 속한 지역구의 후보자들이 기재된 맞춤형 투표용지를 즉석에서 발급받아 투표할 수 있다. 그것도 주말 끼어 이틀씩이나 주어진다. 아침 여섯 시부터 오후 네 시까지 무려 열 시간씩 이틀이다. 즉 20시간의 투표 시간이 더 주어지고, 그것도 자신의 동네까지 갈 필요도 없는 사전투표제도가 도입되었는데, 투표시간을 연장하자는 주장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의미가 있는 주장은 단 하나, 기초단체 정당공천제를 놔둘 것인가, 폐지할 것인가 단 하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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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진영에서도 괜히 끼어들어서, 정당공천제 폐지와 함께 정당 기호 순위제를 폐지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건 너무 속보이는 주장이다. 자신에게 불리한 제도니까 없애 달라는 것인데, 정당 기호 순위제는 정당의 의석 수에 따른 순서이므로 과연 폐지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정당정치는 나름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 민주적인 제도이며, 그 제도 속에서 다수당이 빠른 기호를 받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상당수의 유권자들이 정당의 기호를 보고 후보자를 선택하기 마련이다. 이건 신생 정당의 입장에서는 진입장벽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정당정치의 차원에서는 당연한 프리미엄이다. 기존의 선거에서 최다 유권자의 선택을 받은 정당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기 때문이다.


그걸 없애자고 주장한다면, 나중에 안철수 신당(“새정치신당”이라는 이름으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당명을 이렇게 정하면 십 년 뒤에도 신당일텐데 어쩌려고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오래 할 생각이 없다는 뜻인가?)이 의회 다수당이 되어서도 이 정당 기호 순위제를 하지 말자고 주장할 생각인가 하는 질문이 가능하겠다.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논란이 되는 주제 중에 생각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단 하나, 정당공천제 폐지 여부다. 그렇다고 꼭 다른 주제들이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행정구역 개편의 문제


문제의 발단은 바로 이 지점이다. 우리나라 지방 의회의 구조가 이원화되어 있다는 것. 여기에서 모든 비효율과 잡음이 발생한다. 행정학적인 관점에서도 광역단체와 기초단체가 상하로 나뉘어 있는 이 제도는 매우 비효율적인 것으로 간주된 지 오래다. 그런 이유로 인해 꽤 오랫동안 이원화된 지방자치단체의 구조를 일원화 하기 위한 연구와 시도가 있어왔다.

 

바로 행정구역 개편이다. 이 문제는 심지어 박정희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노태우 시절에도 심도있게 논의가 진행되기도 했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 시절에도 거의 시행할 수 있는 단계까지 연구가 되기도 했다. 대략 핵심적인 내용만 간추려 보자면, 조선왕조 내내 이어져 내려온 “도”의 개념을 없애는 것이다. 그리고 전국을 50개에서 100개 정도의 “광역”(물론 지금의 광역 개념에 비하면 그 규모가 현저히 작아진다.)으로 나누고 해당 광역 밑에는 그냥 “동” 규모의 분류만 남겨두게 된다. 이 새로운 지역 분류만 완성되면 지방자치단체의 구조가 일원화 된다.

 

즉, 광역단체장과 광역의회만 존재하면 된다. 대신 그 숫자는 훨씬 많아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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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뭐 이런...

이미지 출처 링크



이렇게 되면 기초단체의 개념 자체가 없어진다. 서울로 치면 서울시라는 개념과 “구”의 개념이 모두 사라지고, 서울 자체가 여러 개의 광역으로 나뉘게 된다. 경기도 의왕시의 경우에는 경기도라는 개념과 의왕시라는 개념이 모두 없어지고, (아마도) 안양,과천,의왕,군포 등의 인접한 시 들이 통합되어 하나의 광역으로 묶이는 개념이 될 것이다. 그러면 그렇게 통합되어 신설된 광역에 광역장과 광역의회만 있으면 된다. 안양시장, 의왕시장 등의 자리는 다 없어지고, 각각의 시의회 역시 다 없어진다.


이렇게 된다면, 새누리당이 주장하고 있는 몇몇 광역에 구의회 폐지는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구의회 폐지에 앞서, “구”라는 단위 자체가 없어지니까 말이다.


이렇게 되면 좋겠다. 행정구역도 명확해지고, 현대적인 기술적 행정이 가능해진다. 아마 이에 맞춰 전국 국회의원 선거 지역구도 다 변화할 것이다. 바로 이 문제로 인해 이 행정구역 개편 문제가 전혀 진도가 안 나가는 것이기도 하다. 지역구 개편 얘기는 국회의원들에게는 진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무서운 얘기다. 기득권 유지에 심대한 차질이 생기니 서로 합심하여 얘기를 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러한 변화가 당장 이루어질 정도로 손쉽지 않다. 아마 몇십 년 동안 이루어지기 힘들다고 본다. 그 때까지 우리는 광역의회 기초의회 문제로 싸워야 되고, 기초단체 선거에서 정당공천제를 하네 마네 하는 지루한 싸움을 지속해야 한다. 힘들고 귀찮아도 말이다.



기초단체 선거의 현실

 

그렇다면 대체 왜 기초단체 선거를 두고 이런 왈가왈부가 이어져야 한단 말인가? 당연한 얘기다. 광역 차원은 좀 나은데, 기초단체 수준에서 민주주의가 아직 제대로 정착이 되지 않았다. 지방의 조그만 소도시들, 그런 곳의 단체장이나, 기초의회의 실정을 보면 진짜 한심한 수준이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해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를 비하할 의도는 전혀 없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기초단체장은 대부분 위에서 내려 꽂힌다. 정당공천제의 폐해일 수도 있는 부분이다. 전문 관료 출신이거나, 정치 지망생들이 끼어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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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왕시 같은 곳은 시 전체가 하나의 지역구보다도 작다. 의왕은 과천과 묶여서 하나의 지역구를 이루고 있으니, 의왕·과천 지역에는 지역구 국회의원 한 명에 시장이 두 명이 존재한다. 안양 같은 지역은 시장 하나에 지역구 의원이 셋이다. 이런 곳은 시장의 권력이 좀 더 세진다. 어찌되었거나, 기초단체의 단체장 선거 과정에서는 해당 지역의 지역구 국회의원의 입김이 엄청 세게 작용한다.


시장이야 또 그렇다 쳐도 시의회의원(광역자치단체가 아닌 기초자치단체의 “시”를 말한다. 경기도, 서울시 등은 광역자치단체며, 의왕시, 안양시, 종로구, 노원구 등은 기초자치단체다. 따라서 서울 같은 대도시의 독자들은 이 내용을 읽을 때 “구청장, 구의회, 구의원”으로 고쳐 읽으면 이해하기 쉽다.)들의 출마에는 해당 지역의 지역구 의원의 입김이 절대적이다.


그러다 보니 최악의 상황에서는 공천 헌금이 문제가 될 정도다. 정당의 공천을 받아 출마하는 과정에서 이미 불법이 저질러진다는 뜻이다. 공천 헌금이 오갈 정도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해당 지역의 정치인의 권력 구조는 매우 혼탁하게 구성되기 마련이다. 이런 식으로 정당이 공천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 너무 부작용이 많다는 점이 ‘정당공천제 폐지’의 주된 근거로 작용한다.


문제점이 그 뿐일까?


정당이 공천을 하고 있어도 기초단체 의회의 대부분은 해당 지역의 ‘유지’들이 장악을 하기 마련이다. 이들은 지역에서 성공한 사람들이며, 재력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재력에서 멈추지 않고 기초의회에 진출해서 권력까지 확보하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확보한 권력으로 지역의 이권 사업에 개입하는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고, 그러다보니 보통의 기초의회에서 결정되는 지역의 이권사업에 대해서는 모든 기초의원들이 정당의 구분을 벗어나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합친다. 그 결과 지역에 주어지는 것은 무분별한 난개발이나 환경파괴다.


즉, 기초자치단체 문제점의 가장 핵심은, 해당 지역에서 풀뿌리 민주주의가 아직 정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역의 토호세력들이 돈으로 좌우해 버리는 정치판이 문제다. 이 문제는 정당 공천 여부로 어떻게 고쳐질 만한 것이 아니다. 자생적인 지역 시민단체들이 성숙해지고, 지역 시민운동가들이 지역 의회에 활발히 참여를 하고, 그들을 지역의 시민들이 지지하고 후원해 주는 그런 민주주의의 발전만이 해결책이다. 쉽지 않고 시간도 많이 걸리겠지만, 이런 대의를 염두에 두고 꾸준히 바꿔나가야 한다.


그런데 왜 지난 대선에서는 양대 정당의 후보가 정당공천제를 폐지할 것을 공약했을까?


지역유지들이 원했으니까. 기초단체 선거에서 정당이 공천을 하지 않게 되면 이 사람들은 해당 지역 국회의원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진다. 그저 동네에서 통하는 자신의 유명세와 평소 조그만 지역 단체들, 바른생활 운동본부, 자유 총연맹, 로터리 클럽, 해병 전우회, 각종 향우회, 또 각급학교 동문회 등을 통해 자신의 부를 과시하고 후원금 팍팍 쓰고 젊은 사람들 모아서 밥과 고기와 술을 사주고 하면 선거에 이길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정당공천제 폐지를 공약하게 된 배경은 이런 지역 토호세력들의 협조가 절실하게 필요했기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또 다른 측면도 있다. 영남과 호남간의 쟁탈전도 관련이 있다. 호남은 기초단체 선거에서 거의 싹쓸이에 가깝게 민주당이 독식을 한다. 그런데 영남 지역의 기초단체 선거에서는 영 힘을 못 쓴다. 분명히 영남지역에도 호남 사람들이 꽤 높은 비율로 자리를 잡고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영남 지역에서는 민정당부터 이어지는 기호 1번의 위력, 새누리당 당명의 위력이 살아있고, 민주당에 대한 반감 역시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영남의 기초단체에 진출하고 싶어하는 지역의 소 유지들은 새누리당의 공천을 못 받을 바에야 아예 정당 마크를 떼고 선거를 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새누리당의 공천을 받지 못한 영남의 지역 토호들이 간혹 민주당에 입당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들의 고민은 과연 민주당이 나을까, 무소속이 나을까 하는 것이기도 하다. 민주당 당내에는 이들의 호소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민주당 측에서도 정당공천제 폐지를 주장하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잘하면 영남지역 기초단체에도 민주당의 깃발이 올려질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한 가닥의 희망이 반영되어 있기도 하다.


이 양쪽의 속셈의 어디에도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코앞의 한 석이 중요한 지방선거를 맞이하여, 요렇게 바꾸면 유리할까, 저렇게 바꾸면 유리할까만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대선이 끝나자 박근혜 후보 진영의 생각은 바뀌게 된다. 대선 과정에서 지역 토호들의 협조는 충분히 받았는데, 이제 지방선거를 앞두고 저울질을 해 보니 아무래도 정당이 공천을 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 생각은 이미 해산해 버린 대선캠프 사람들이나 국회에서 발언권도 없는 지자체 의원들의 생각이 아니다. 기초단체 사람들을 쥐락 펴락 하는 권력을 누리고 싶어하는 국회의원들의 생각이다. 정당이 공천권을 놓아 버리게 되면 당장 지역에서 국회의원들의 발언권은 뚝 떨어져 버린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공약 파기라는 바난을 받으면서까지 입장을 바꾸게 된 이유로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바꾸면 나아지나?

 

절대 안 나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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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의원 측은 좀 나아질지도 모르겠다. 안철수 쪽에 합류한 지자체 정치인들이 출마해서 뛰는 데에는 유리할 수도 있다. 기호 1번도, 2번도 아닌 안철수의 새정치신당(이건 줄여서 어떻게 불러야 하나?)의 후보라면 당선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정당 기호 없이, 명찰 떼고 붙으면 충분히 승산이 있는 후보들은 꽤 많다. 어차피 지역의 기초단체 선거에서는 유권자들이 거의 저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뽑는다. 거기다가 안철수와 함께 찍은 사진이라도 한 장 곁들이면 정치에 관심이 별로 없는 주민들은 괜히 찍어 주게 될 것이다. 얼굴을 아는 사람이 있으니까. 이걸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퇴보한다.


이제 그나마 진보 계열의 정당 공천을 받고 뛰던 지역의 젊은 진보세력들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그 사람들에게서 진보정당의 간판이라도 없으면, 지역 유권자들의 눈에는 “도대체 저 애송이는 뭔데 출마하고 지랄이야”라는 소리 밖에 못 듣게 된다.

 

평소 산악회네 조기 축구회네 하는 곳에서 사람들 모아놓고 술이라도 자주 사고 관광버스 대절해서 부녀회원들 데리고 놀러 다닌 지역 정치인들은 돈 써서 얼굴이라도 알릴 수 있지만, 지역 시민단체의 운동가들은 그럴 기회도 없다. 돈이 없으니까.

 

여성들은? 거의 출마 자체가 힘들어질 것이다. 정당 간판이라도 있으면 그래도 무슨 여류 정치인 같아 보이지만, 우리 사회 밑바닥에 아직도 두텁게 깔려 있는 여성 비하 심리는 선거 때 분명히 작동을 한다. 저 아줌마는 집에서 밥이나 하지 무슨 출마야.. 이런 소리가 이곳 저곳에서 나온다. 지역에서 시민사회 운동에 헌신을 하고 수도 없는 일들을 해온 여성 운동가들 역시 똑같은 취급을 받게 된다.

 

즉, 지역 토호 세력은 이제 국회의원 눈치도 안 보고 마음껏 활개를 칠 토양이 만들어지는 것이고, 젊은 운동가들은 지역의회 근처에도 못 가보게 된다. 그렇게 선거판이 바뀌어 버리면 그 선거판을 통해 만들어진 의회는 훨씬 더 급격하게 보수화되어 버리고, 이권사업에 혈안이 된 의원들만 득실거리는 비즈니스 센터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기초의원들이 단체장의 목덜미를 잡고 흔들게 된다. 자, 이제 우리도 마음껏 개발이나 해 보자, 또는 어디 지자체 재산 중에 팔아 먹을 거 없나.. 이렇게 되는 것이다.



맺음말


정상적인 싸움이라면, 새누리당이 정당공천제를 폐지하자고 주장을 하고, 민주당이 반대를 해야 하는 싸움이다. 그게 대선 한 번 거치면서 이상하게 서로 공약을 하더니, 새누리당이 정당공천제를 유지하자고 그러고, 민주당은 무슨 빌미라도 잡은 양 폐지를 주장하는 거꾸로 된 싸움판이 벌어졌다. 거기다가 안철수 진영까지 끼어서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폐지를 주장한다. 안철수 의원이 지방자치단체 운영과 지역의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심도있는 견해를 가지고 있지 못할 것이라는 의심이 부쩍 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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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 10월 지방자치 선거 관철을 위한 단식투쟁을 마친 뒤

병원으로 옮겨지는 당시 평민당 김대중 총재 - 동아일보 자료사진



우리 사회가 지방자치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을 싸워 왔던가에 대한 역사라도 한 번 다시 돌이켜 보시길 권한다.


중요한 것은 이번 선거 한판에서 예상되는 각 정파의 손익계산서가 아니다. 좀더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발전시킬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런 심도 있는 고민의 흔적은 찾아볼 수도 없는 이런 싸움판이 왜 지속적으로 벌어지는지, 나는 정말로 이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아쉽다. 이래서는 정말 곤란하다.


가뜩이나 선거 전망도 우울한데, 우울한 얘기를 하나 더 보태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알기 싫은 얘기들을 우리들이 더 많이 알수록 우리 사회는 그나마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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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뚝심송


편집 :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