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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1. 29.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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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상당히 춥네요. 이런 겨울에는 속이 뜨끈해지는 스타우트나 윈터에일을 마셔야 하는데 사둔 것이 없어서 필스너를 마시고 있습니다. 냉동만두라도 있으면 좋을 터인데 냉장고를 열어 보니 눈에 보이는 게 초콜릿이라 필스너에 초콜릿이라는 뭔가 어색함이 물씬 피어나는 조합으로 겨울밤을 보내네요. 그래도 맛있으니까 필스너를 마셔봅시다.



필스너(pilsner)



체코 필젠 자츠.png



1838년 어느 날 체코 수도 프라하의 서쪽에 위치한 플젠(Plzen)의 한 광장에 많은 시민들이 운집하게 됩니다. 플젠 시민들은 촛불대신 맥주가 가득한 배럴을 들고 와 광장 한가운데에서 맥주통을 박살을 내버립니다. 이날 광장 바닥을 타고 흘러 하수구로 사라진 맥주가 5L이상이었다니 500mL 한 잔씩 돌리면 만 명이 넘게 마실수 있을 정도로 상당한 양이었습니다. 세계 맥주사에 길이 남을 맥주시위가 일어난 이유는 단 하나, 맛없는 맥주좀 그만 만들라는 메시지를 관료들에게 전하기 위함이었다고 하니 과연 현재 1인당 맥주소비 세계 1위를 자랑하는 체코인의 조상답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군요.


 


 2010년 1인당 맥주 소비량..jpg


위엄쩌는 체코의 맥주사랑

(2010년 국가별 1인당 맥주소비량-기린 음식 생활 문화 연구소)




촛불이 광장을 밝히건 말건 라따뚜이께서 청와대 뒷산에서 아침이슬을 들었다는 구라를 치건 말건 크게 달라지는 게 없는 우리네 사회와 달리 당시 체코의 관료는 깜짝 놀랐나 봅니다. 어쩌면 자신들도 맛없는 맥주를 견딜 수가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쨌거나 보다나은 맥주를 만들기 위해서 체코 양조가들을 모아 시민양조장인 Mestansky pivovar(시민의 술)를 새로 만들고 독일 바이에른 출신의 양조가 Josef Groll(요세프 그롤 1813-1887)을 초빙하게 됩니다.

요세프 그롤은 뮌헨식 라거 양조법을 기반으로 하여 필스너 지방의 몰트(malt-엿기름, 맥아)와 보헤미아 자테츠(Žatec) 지역의 자츠(Saaz)홉을 이용한 새로운 맥주에 대한 연구를 이어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1842105일 새로운 맥주를 만들어내니 이것이 바로 필스너가 되시겠습니다. 필스너라는 단어에는 플젠의 것, 플젠 지역의 맥주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하니 지역 특산품이 세계를 장악하는 기쁨이 어떠할 것인지 궁금합니다. 안동소주가 세계적인 술이 되어서 외국인들이 안동이라는 말만 들어도 간이 떨려오는 날이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지만 뻘생각이니까 그만 접고 하던 얘기 마저 합시다.

 

Josef_Groll.jpg


Josef Groll(요세프 그롤)

필스너의 아버지


 

이 필스너는 황금빛 라거 맥주”의 시초입니다. 지금이야 대부분의 라거 맥주가 황금빛으로 반짝반짝하는 세상이고 맥주를 머릿속에 그려보면 보리가 넘실거리는 풍경의 그 황금빛 물결이 생각나겠지만 이때까지의 맥주들은 어두운 빛을 띠고 있었다고 합니다. 필스너의 시대가 열리고 나서야 금빛 찬란한 맥주를 마시게 된 것이지요. 황금빛의 필스너 맥주가 새로이 등장했을 때 소비자들에게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무언가는 거부감을 줄 수도 있었을텐데 맥주광인 체코인들에게는 맥주의 외형에는 딱히 편견이 없었나 봅니다. 오히려 맛도 뛰어나고 색도 멋들어진 새로운 맥주에 열광하게 되었고 이 플젠식 라거는 지역을 벗어나 세계 맥주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흐름의 시작을 만들게 되었지요. 이후 필스너 맥주가 세계로 뻗어나가게 되자 "필스너라는 단어는 더 이상 하나의 플젠 맥주를 뜻하는 게 아닌 하나의 맥주 스타일을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되어버렸습니다.


맥주하면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나라인 독일에서도 곧 필스너 스타일이 시장을 잠식해 들어가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독일 양조회사들이 자신들의 맥주에 pils라는 문구를 쓰게 되자 플젠지역의 양조업계는 독일 법원에 해당 문구를 쓰지 말 것을 요구하는 소송을 걸게되고 독일 법원이 필스너의 원조가 플젠인 건 맞지만 이미 하나의 스타일을 뜻하는 고유명사화 되었으니 제한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놨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북경 사는 칭칭씨가 어느날 “칭칭안동소주”라는 걸 만들어서 상표등록을 한다면 안동에서 빡칠 것 같으니 소송을 걸어볼 만도 하다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지는군요.


이렇게 필스너 라는 문구가 대중화되는 시기가 도래하자 1859년 플젠에서는 pilsner뒤에 urquell을 붙이게 됩니다. urquelloriginal이라는 뜻으로 자신들이 원조임을 강조한 상품명인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글쓰기 직전까지 마시던 맥주가 pilsner urquell(체코 발음으론 필스너 우얼크벨 정도라는데 말하기 힘드니까 한국내 상품명인 필스너 우르켈로 합시다.)이지요 훗헷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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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스너 우르켈 50주년(1842-1892) 기념 게이트



필스너-특징

 

필스너는 라거의 한 종류로 한국의 평균적인 라거들에 비해 조금 더 쓰고 진한 맛을 보여줍니다필스너는 크게 체코식인 보헤미안 필스너와 독일식인 저먼 필스너로 나뉩니다. 두 종류는 각기 개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모두 몰트와 홉의 풍미를 풍부하게 드러내며 적절한 청량감과 깔끔한 끝맛으로 기분좋은 마무리를 경험하게 합니다.



보헤미안 필스너(Bohemian Pilsener)


보헤미안식 혹은 체코식 필스너의 가장 큰 특징은 자츠(Saaz)홉 이라고 생각합니다. 체코 최고의 홉이며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홉입니다. 필스너라는 스타일내에서도 자츠홉을 사용함으로써 자신들만의 특색을 갖추게 되는 것이라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자츠홉은 꽃향기와 꿀향, 약간의 스파이시한 향 등 뭔가 복잡한 향을 맥주에 부여하며 4.5%근처의 도수로 강하지 않은 알코올임에도 세면서도 거칠지는 않은 쌉싸름한 맛 그리고 약간의 바디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저먼 필스너(German Pilsner (Pils))


체코 필스너의 양조법을 끌어들여와 자신들의 방식으로 발전시킨 독일식 필스너는 필스너 몰트에 독일산 노블 홉을 사용함으로써 체코 필스너와 비교하였을 때 조금 더 가볍고 상쾌한 느낌으로 약초나 허브 향을 맡을 수 있으며 끝맛에서 드라이한 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체코 필스너에 비해 밝은 색이고 마시기 편한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체코에 비해서 필스너라는 이름이 붙는 범위가 조금 넓지 않나 생각하는데 그 이유로 필스너라고 생각되기엔 상당히 가벼운 느낌의 라거에도 필스나 필스너라는 문구가 붙는 것을 봐선 독일 내에선 기본 필스너 스타일에만 제한하여 사용하는건 아닌 듯 생각됩니다.


*필스너 맥주의 경우 보통 이름 뒤에 pilsner, pilsener, pilsen, pils등이 붙으니 맥주를 고를 때 해당 문구가 있다면 이러이러한 느낌이겠구나생각하시고 고르시면 되겠습니다.

 

 

필스너- 추천

 


보헤미안 필스너

 

Pilsner Urquell (필스너 우르켈-체코) - 필스너의 시작. 알파와 오메가. 처음이요 나중이신, 시작이요 끝이신 이는 필스너 우르켈이시라. 붉은 빛이 감도는 황금빛이 아름다워라. 처음 마신다면 약간은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쓴 맛이 특징적입니다. 국산맥주들이 보통 ibu15정도인데 필스너 우르켈의 경우 ibu40정도이니 2배 정도 쓴맛이 강하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혀 가운데를 스치고 지나가는 꿀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인데요. 처음 마셨던 날 혀를 스쳐가는 꿀의 느낌에 '뭐지 이건?'이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깔끔하고 입안에 남는 부담감이 적어서 여러 잔을 마셔도 맛의 감도가 크게 줄어들지 않습니다. 처음 경험할 때 쓴맛으로 인해 거부감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몇 번 더 맛보다보면 나도 모르게 쇼핑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홈플x스의 맥주 할인행사에 등장하면 밀맥주의 파울라너와 함께 빠른 속도로 솔드아웃되곤 하니 싸게 구하고 싶다면 마트의 맥주행사 일정을 미리 파악해두면 좋겠지요.


필스너 우르켈 사의 주장에 따르면 맥주를 투명한 유리잔에 먹게 된 것도 필스너 우르켈 맥주에 의해서라고 하더랍니다. 필스너 맥주의 투명하고 깨끗한 황금빛이 아름다워 투명한 유리 맥주잔에 따라 맥주의 황금빛 색을 감상하며 맥주를 마시기 시작하였다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이니까 크게 신경을 쓸 필요는 없겠지만 필스너가 퍼져나가던 시기와 유럽의 유리산업이 발전하던 때가 맞물린다고 하니 서로 간에 시너지가 괜찮았을 거라는 생각은 하게 됩니다.



필스너우르켈.jpg





Budějovický Budvar (부데요비츠키 부드바르-체코) - 체코 남부 Ceske Budejovice출신의 맥주로 독일어로 budweise(부드바이스)라 불렸다고 합니다. 이름에서 묻어나오듯이 미국의 버드와이저 맥주의 모태가 되는 맥주입니다. Budweise라는 이름 때문에 상표권분쟁으로 세계 각지에서 오랫동안(1907년부터 시작해 아직까지도) 양자 간의 소송이 있었습니다. 버드와이저의 생산기업인 안호이저-부시(최근에 오비맥주를 재인수하기로 했다지요.)는 부드바르를 인수함으로써 분쟁을 해결하려 했지만 부드바르는 거부하였고 분쟁이 이어진 끝에 결과적으로 부드바르와 버드와이저가 수출되는 지역별로 상표권 분쟁에 대한 승패가 갈림으로써 국가마다 이름이 달라지는 특이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8년간의 소송 끝에 부드바르 사가 승소하여 ‘Budweise Budvar’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회사 이야기는 그만하고 맥주 맛을 보면 필스너 우르켈에 비하여 쓴맛이 적고 새콤한 맛이 도드라집니다. 맥주가 부드럽게 입안을 흘러가고 난 후에는 기분 좋은 쌉싸름한 기분이 끝에 남습니다. 개인적으로 필스너 우르켈에서 강한 남성성을 느낀다면 부드바르에서는 여성적인 느낌을 받는다고 하겠습니다.



 부드바르..jpg




Staropramen Prague (스타로프라멘 프라하-체코) - 필스너 우르켈과 부드바르가 쓴맛과 새콤한 맛을 드러낸다면 스타로프라멘은 이들의 가운데에 자리하며 고소하고 적절한 쓴맛을 보여주며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무난하다고 할 수도 있고 개성이 적다고 할수도 있겠지만 밸런스가 상당히 괜찮고 마셨을 때 좋은 맥주임을 느끼게 하는데에는 모자람이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스타로프라멘..jpg



 

*국내 맥덕들은 필스너 우르켈, 부데요비츠키 부드바르, 스타로프라멘 프라하를 보통 체코3대 필스너라고 부르곤 하는데 현지에서도 이렇게 부르는지는 모르겠습다. 이 세 개의 맥주는 저마다 지향점이 달라보여서 서로의 맛을 비교하며 마신다면 나름 재미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외다. 정삼각형의 각 꼭지점에 하나씩 배치되어있는 느낌이랄까요.


*일본의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도 괜찮은 보헤미안 필스너라고 생각하지만 원전사고 이후로 일본맥주를 마시게 되었다가 싱싱한 세슘 맛에 중독될까 저어하여 꺼리는 분들이 많기에 추천을 접어두기로 하오.




저먼 필스너


Warsteiner Premium Verum (바르슈타이너 프리미엄 베룸-독일) - 독일 맥주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맥주. '으뜨케 살 그신가' 수없이 돌아보고 고민하게 만드는 책인 유시민 작가님의 어떻게 살 것인가에필로그(335p)에도 살짝 등장하는 그 맥주. 약간의 시큼함과 고소함을 느낄 수 있으며 몰트의 달큰함이 도입부를 훑고 지나가면 홉의 쌉싸름함이 마무리를 합니다. 독일 현지에선 꽤나 인기있다 하던데 한국에서는 그 명성만큼의 인기는 없는 듯합니다. 덕분에 이x트에서 자주 할인행사를 해주니 감사할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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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ombacher Pils (크롬바허 필스-독일) - 부담스럽지 않고 매우 좋은 밸런스를 자랑하는 맥주. 그리 강하지 않은, 하지만 가볍지도 않은 적절함의 표본같은 모습. 과실 향과 벌꿀향이 향긋하게 피어나며 탄산감과 쌉싸름함도 피니쉬가 입안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적절한 수준으로 유지됩니다. 뭐랄까... 저먼 필스너의 기본형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습니다.



크롬바허..jpg


 

Jever Pilsener (예버 필스너-독일) - 저먼 필스너임에도 꽤 강한 맛을 보여주는 맥주. 저먼 노블 홉 특유의 허브향이 잘 살아있습니다. 필스너 우르켈보다는 덜 하지만 개성적인 씁쓸함이 특징적으로 보여지며 초심자에겐 약초약초한 약초향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으니 필스너류를 몇 가지 경험해 본 후 마셔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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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이러니 저러니 해봐야 백문이 불여일음이라고 마셔봐야 그 맛이 어떠한지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아마도 소비자들의 취향이 에일보다 라거에 쏠리기 때문이겠지만 이전에 소개해드렸던 에일 맥주들에 비해서 라거군에 속하는 필스너는 구하기가 쉬운 편입니다. 추천에 올려드린 것들 모두 대형마트에서 구할 수 있으며 편의점에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행사도 자주 하는 편이라 때만 잘 타면 국산맥주와 별 차이 없는 가격에 드실 수 있으니 부담 갖지 마시고 접해보아요. 한국맥주와 비교해서도 같은 라거군이기에 크게 거부감이 들지 않으면서도 ‘음 이거 맛있는데?’라는 느낌을 어렵지 않게 받으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제주도 모처에서는 국내 최초 병입 필스너인 제스피 필스를 팔고 있습니다. 아직은 비싸고 제주도 내에서만 소비되고 있기에 접하기 쉽지 않지만 만날 기회가 생기시거든 즐거운 마음으로 마셔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아직 마셔보진 않았습니다 캿.



뭔가 이번 글은 그다지 즐거운 마음으로 쓰지는 못한 것 같아서 맘에 들지 않지만 외로워서 그런가 보다 하고 이해해주시기 바라며 아직은 추운 겨울 딴지스 여러분 모두 즐거운 음주 생활 이어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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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 zdravi! 

(나 즈드라비! 체코어 건배사-건강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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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보리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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