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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1. 29.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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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겨울, 한 편의 애니메이션이 거센 흥행의 눈보라를 일으키는 중이다. 지금까지 300만 가량의 관객을 불러모은 디즈니의 <겨울왕국>이 그 주인공이다.

 

 

"애걔, 천만 관객 시대에 고작 300만 갖고 무슨 설레발?"

 

 

이라 혹자는 말할지 모르겠지만 실사영화면 몰라도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전혀 상황이 다르다.


역대 애니메이션 국내 흥행 TOP10 순위를 우선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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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의 <쿵푸팬더 2>가 '고작' 500만 가량인 거 보이지?


실사영화들의 흥행순위가 천만을 넘나들 때에 국내에서 애니메이션 흥행은 아직까지 저 정도가 마지노선이라 해도 무방하다.


사실, <쿵푸팬더>정도나 되면 그래도 여유 있게 극장을 골라가며 영화를 즐길 수 있지만 유명세가 덜한 작품이라면 전국의 극장을 샅샅이 뒤져서 하루에 몇 번 안 되는 상영시간에 맞춰 찾아가지 않으면 구경하기 힘든 작품도 많다. 그마저도 극장에서 두 주 정도나 버티면 다행이다. 그런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겨울왕국>은 현재 다른 영화들을 모두 제치고 당당히 박스오피스 1위의 자리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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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런데 저 맨 위의 역대 애니메이션 흥행순위 목록에서 뭔가 이상한 점 발견 못했나? 다시 한 번 자세히 들여다보시라.


그렇다. 월트 디즈니의 작품이 단 한 편도 없다. 게다가 대부분 <드림웍스>의 작품들이 흥행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국내 흥행에 한정된 이야기지만 만화영화의 명가이자 고향이라 불려도 손색없는 디즈니의 이름값이 별 다른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단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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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박스오피스 모조

 

 

전 세계 흥행을 놓고 보더라도 10위권에 디즈니의 작품은 <겨울왕국>이 개봉하기 전까진 <라이온 킹> 한 작품뿐이었다는 사실은 꽤 충격적이다.


본인이 어린 시절, 그러니까 90년대에만 해도 '디즈니'라고 하면 사람들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극장으로 달려갔었다. <인어공주>와 <알라딘>, <미녀와 야수>, 그리고 <라이온 킹>까지. 당시 디즈니는 내놓는 작품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마법처럼 홀려놓았다.


그런데 갑자기 뭐가 잘못됐을까? <포카혼타스>, <노틀담의 꼽추>와 같은 작품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예전만큼 뜨겁진 않았고 <헤라클레스>와 같은 작품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도 못했다. 마치 '디즈니'란 이름에서 마법이 사라진 것만 같았다. 무대를 동양으로 옮긴 <뮬란>은 서구적이고 전형적인 디즈니의 여주인공 상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였지만 벗어난 궤도를 원래대로 되돌리기엔 무리였다.


디즈니가 주춤하는 사이 픽사는 컴퓨터 그래픽으로만 만들어진 <토이 스토리>시리즈와 <벅스 라이프>등을 내놓으며 완전히 새로운 개념을 관객에게 선보였다. 드림웍스에서도 역시 3D 애니메이션 <개미>를 내놓았다. 시대가 바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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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 쇄신을 위해 디즈니가 노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고전적 이야기에서 벗어나 <아틀란티스>와<보물성>에는 SF적 요소가 가미되었고, 최신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사용하는 기술적인 시도도 이루어졌다. <릴로와 스티치>는 외계생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과감함(?)도 선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은 결과적으로 대중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고, 디즈니 역시 방향성을 뚜렷하게 잡지 못한 채 한동안 난항에 빠진 것 같았다. 관객들은 <슈렉>과 <니모를 찾아서>와 같은 3D 애니메이션에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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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슈렉>은 당시 주춤하던 디즈니를 대놓고 조롱하는 듯한 갖은 패러디 개그를 펼쳐놓았는데, 드림웍스의 설립자이자 <슈렉>의 제작자인 제프리 카젠버그가 디즈니에서 사내불화로 인해 퇴사했던 과거의 앙심을 유머로 풀어낸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절대 1인자로 군림하다시피 했던 디즈니에게 <슈렉>의 대 흥행은 뼈아프게 다가왔으리라.


이어서 20세기 폭스 같은 영화사들도 질세라 <아이스 에이지>와 같은 작품을 배급하고 워너브라더스 등 제작사들이 너도나도 3D 애니메이션을 내놓기 시작하면서, 애니메이션 시장은 완전히 3D 경쟁체제로 돌입했다.


당시 디즈니는 아이러니하게도 3D 애니메이션의 최고봉과 같은 픽사의 제작지원과 배급을 맡고 있었다. 절치부심한 디즈니는 2006년에 픽사를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3D 애니메이션 경쟁에 뛰어든다(이미 2000년에 <다이노소어>란 3D 애니메이션을 내놓은 적은 있지만...).


이후 디즈니가 <토이스토리>시리즈의 감독이자 픽사의 리더 격이었던 존 라세터를 총제작자로 기용하여 2008년 내놓은 <볼트>는 전작인 <로빈슨 가족>에 비하면 확실히 픽사의 기술과 색깔이 많이 반영되었다는 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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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은 추진력을 얻기 위해 잠시 웅크렸을 뿐이라는 듯, 디즈니는 서서히 명가의 자존심을 부활시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2010년과 2011년, 디즈니는 <공주와 개구리>, 그리고 <라푼젤>을 연이어 내놓았다. <공주와 개구리>는 전통적인 2D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지만 근 현대를 배경으로 원작동화의 이야기를 완전히 새롭게 재해석한 실험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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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라푼젤>은 3D 애니메이션에 상영 포맷까지 3D로 트렌드를 한껏 의식하여 만들어졌지만, 이야기적 측면에선 오히려 원작동화의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전통적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가까운 작품이었다는 점에서 두 작품의 흥미로운 지점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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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14년 지금, 전 세계에 <겨울왕국>이 돌풍을 일으키는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지금부터 본 잉여와 함께 하나마나 한 분석의 세계로 따라오시길 바란다. 아울러 스포일러도 함유하고 있으니 과다복용은 각자의 판단에 맡기도록 하겠다.

 


 

1. 캐릭터의 매력, 돌아온 공주님'들'

 

디즈니 애니메이션 하면 '공주'로 일컬어지는 여주인공 캐릭터들을 빼놓을 수 없다. 50년대 신데렐라나 백설공주 같은 공주들부터 <인어공주>의 에리얼, <미녀와 야수>의 벨, <알라딘>의 자스민 등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은 디즈니의 얼굴마담과도 같은 존재였으며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남자아이들보다는 여자아이들에게 더 어필할 수 있는 원인이자 인기의 중요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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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의 공식 공주 모임.

 

 

심지어 <겨울왕국>에서는 무려 한 작품에 두 명의 공주가 등장한다. 엘사와 안나가 바로 그 주인공인데, 두 명 모두 개성 넘치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작품의 인기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잠시 이 두 공주님에 대해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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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사

 

 

눈과 얼음을 만들어낼 수 있는 마법의 능력을 갖고 있지만, 어릴 때 동생 안나를 다치게 한 이후 능력을 드러내지 않고 홀로 방 안에 자신을 가둔 채 은둔하며 지냈다. 그로 인해 성격도 자연히 내성적이 되었으며 츤데레차가운 이미지를 풍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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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초기 당시 엘사는 ‘눈의 여왕’의 원래 이야기대로 악역에 가까운, 주인공 안나와 대립하는 인물로 설정되었지만 점점 수정되면서 지금의 이미지로 바뀌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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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엘사와는 달리 긍정적이고 활기찬 성격의 소유자. 엘사의 마법에 다친 이후 언니의 마법에 대한 기억을 모두 잊어버렸다. 엘사가 왜 자신과 더는 어울리지 않는지 이유를 알지 못한 채로 성장해 서로 서먹해진 상태지만, 그럼에도 언니를 원망하지 않고 위험을 무릅쓰고 엘사를 설득하려 설산으로 모험을 떠난다.


엘사가 하얀 피부와 금발을 갖춘 전통적인 디즈니 공주의 모습이라면, 어딘지 덤벙대지만 활발하고 거침없는 안나의 모습은 좀 더 현대적인 디즈니 공주의 모습을 반영한다고도 볼 수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하면 극에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감초 캐릭터들도 빠질 수 없다. <인어공주>의 세바스찬, <라이온 킹>의 티몬과 품바 같은 캐릭터들을 떠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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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왕국>에서는 바로 눈사람 ‘올라프’가 그 역할을 맡았다. 겉보기엔 흔한 눈사람이지만, 눈사람 주제에 여름을 동경하며 따뜻한 포옹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다. 올라프가 여름에 대한 예찬을 늘어놓으며 <In summer>를 부르는 장면은 <겨울왕국>에서 가장 큰 웃음을 선사하는 순간이다.

 

 

 

2. 뮤지컬의 힘

 

'디즈니 애니메이션‘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노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어공주>의 <Kiss the Girl> 이나 <Under the Sea>. <알라딘>의 <A Whole New World>. 미녀와 야수의 <Beauty And the Beast> 같은 명곡들 말이다. 다들 잘 알지?


그간에도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틈틈히 뮤지컬 애니메이션을 제작했지만 90년대 작품들의 아성을 뛰어넘을 만한, 혹은 버금갈 만한 곡들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등장한 <겨울왕국>은 뮤지컬 애니메이션 명가, 디즈니의 명성을 부활시켰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아름다운 뮤지컬 넘버들을 자랑한다.


초반부 어린 안나가 언니 엘사를 애타게 부르며 부르는 <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은 밝고 씩씩한 안나의 성격과 더불어 성 안에서 고독을 느끼는 쓸쓸한 감정이 동시에 묻어나며, 곧바로 이어지는 <For The First Time In Forever>는 수년 만에 성문이 개방되어 설레는 안나의 감정이 잘 드러나는 곡이다.


무엇보다도 <겨울왕국>에서 가장 인상적인 곡은 엘사가 부르는 <Let It Go>다. 그동안 꼭꼭 감춰온 마법의 능력을 모두에게 들키고 만 엘사는 당황하며 쫓겨나듯 성에서 나와 눈 덮인 산으로 도망친다. 북쪽 산 높은 곳에 얼음으로 자신만의 성을 지으며 그녀가 부르는 <Let It Go>는 더는 자신의 감정과 능력을 감추지 않고 혼자서 자신만의 삶을 개척하겠다는 엘사의 의지를 표현한 곡이다.

 




<Let It Go>는 현재 국내 각종 음원 사이트에서 실시간 차트 1위를 찍고 있을 정도로 인기를 자랑하는데, 외국어로 된 애니메이션 주제가가 유행가요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사건이며, 현재 <겨울왕국>이 국내에서 어느 정도의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본인 또한 극장에서 관람한 지 두 주가 다 되어가는 지금도 매일 같이 사운드트랙을 들으며 흥얼거리지만... 더... 덕후는 아니라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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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멜론

 

 

날이면 날마다 있는 일이 아니다.


현재 유튜브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로 를 부른 커버 영상들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궁금한 분들은 ‘Let It Go cover’로 검색해보시길.

 

 


3. 고전으로의 회귀, 그리고 재해석

 

90년대 전성기 이후 새로운 이야기와 형식으로의 변화를 놓고 고민과 실험을 거듭하던 디즈니는 결국 다시 고전으로 돌아왔다. ‘개구리 왕자’를 바탕으로 한 <공주와 개구리>, <라푼젤>, 그리고 ‘눈의 여왕’을 모티브로 한 <겨울왕국>으로 이어지는 작품들로의 변화는 디즈니가 고전적 이야기에 강하다는 것을 다시 증명하는 중이다.


또한 <겨울왕국>은 고전적 서사를 애니메이션으로 옮겨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재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무엇보다 남녀의 사랑을 가장 큰 주제로 삼아왔던 과거 디즈니의 이야기와 달리, 사랑이라는 개념을 포괄적으로 확장함과 동시에 앞으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들이 좀 더 다양한 주제를 표현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너무 많은 스포일러가 될까봐 자세히 적진 않겠으니 모두 극장에서 확인해주시길 바란다.


아울러 시간이 나면 이러한 고전적 서사의 비틀기라는 측면에서 2007년 디즈니가 내놓은 실사영화, <마법에 걸린 사랑>도 참고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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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잉여스럽게나마 <겨울왕국>에 대해 디벼보았다. <수상한 그녀>, <남자가 사랑할 때>등의 개봉작들을 제치고 놀라울 정도로 흥행세를 보여주고 있는 <겨울왕국>이 이번 설 연휴를 기점으로 300만을 넘어 500만이라는 <쿵푸팬더 2>의 흥행기록마저 갈아치울 수 있을지 기대된다.


어린 시절 디즈니의 만화들을 보며 꿈을 키웠던 한 명의 잉여로서, 앞으로도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들이 꾸준히 흥하여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를 응원하고 싶다. 오늘의 잉여일기, 끝.





햄촤

트위터 : @hamchwa


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