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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예능 PD가 되고 싶었다. 내 또래까지의 언론고시 준비생들은 아마 다들 그랬겠지만, MBC는 모든 언시생들이 제일 가고 싶어하는 직장이었다. 뉴스, 드라마, 예능 무엇 하나 최고가 아닌 게 없던 보기 드문 곳. 그곳이 처참하게 망가졌다. 보기 드물 정도로 고꾸라졌다. 방송국에서 최고의 콘텐츠를 만들어야 할 기자와 피디, 아나운서들은 거리로 나왔다. 무한도전을 보지 못했던 6개월간의 파업이 끝나고, 그 후는 잘 모르겠다. 무한도전이 돌아왔고, 망해가기를 잠시 멈췄던 MBC는 다시 망했다. 거리로 나왔던 기자와 PD, 아나운서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서서히 MBC를 끊었다. TV를 잘 보지 않으니 MBC는 오늘도 무사히 망해가고 있다는 걸 확인할 방법은 파업 이후 방송에서 잘 보이지 않던 아나운서가 MBC를 퇴사하고 프리선언하는 연예 뉴스를 들을 때뿐이었다. ‘김장겸은 물러나라' 소리는 눈과 귀에서 멀어지며 1만 광년 거리로 아득하게 사라지던 MBC에서 들려온 최초의 외침이다. 그 소리를 따라 상암 MBC에 도착했다. 대학교에 가기 전에는 논스톱으로 대학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었고, 그 후에는 직장에서 만나고 싶은 선배였던 김민식 PD는 손에 셀카봉을 들고 페북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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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지니어스 / : 김민식 PD)



인 정말 뵙고 싶었어요. 우선, 논스톱은 왜 그렇게 만드셨어요? 실제로 가보니까 다 구라던데.

 그때 시청자 게시판에 대학생들이 글을 남겼어요. 요즘 대학생들 삶이 얼마나 힘든 줄 아냐. 청년 실업 40만의 시대에 취업 준비, 토익 공부, 학점 관리 하느라고 논스톱에 나오듯이 대학 생활 못 한다. 그런데 그렇게 대학생활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저녁에 20분 쉬려고 TV를 틀었는데 그 안에서도 취업 준비하고 토익 공부하고 괴로워하고 있으면 보는 사람들 삶에 낙이 어딨겠나, 우리는 그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TV 안에서만큼은 조인성이 박경림을 짝사랑하는 판타지를 만들었어요. 대신 그걸 항상 대사로 썼었죠. 청년실업 40만의 시대.

 

인 친구들이랑 얘기하면 다 논스톱에 속았다고 그랬거든요. 조인성 한 명도 없다고.

 

 장강명 작가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 중간에 논스톱 얘기가 나와요. 지금 기자님이랑 똑같은 얘기를 해요. 대학 가면 논스톱 같은 현실이 펼쳐질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지금이라도 사과드립니다(ㅋㅋㅋ).

 

인 아닙니다. 그래도 약간 보상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ㅋㅋ). 



딴따라 PD는 왜 랩을 했을까


인 요즘은 논스톱 같은 작품 안 만들고 뭐 하면서 지내세요? 파업 이후에 MBC 소식이 잘 안 들렸던 것 같아요.

 

 지난 1년 반 동안은 주조정실이라고 하는 곳에서 TV 송출을 했어요. 그 과정에서 MBC 뉴스를 오래 시청하다보니까 폐해가 좀 심해서. 스트레스가 좀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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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을 기점으로 뚝 떨어진 MBC 뉴스데스크 시청률은 최근 5%를 넘지 못하고 있다.

MBC는 뉴스데스크의 '차분한' 시청률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출처 - 중앙일보(링크)



인 교화되거나 하는 효과는 없던가요?

 

 MBC 뉴스가요, 재밌긴 해요. 생각해보세요. 뉴스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해야 할 뉴스를 안 하잖아요. 최순실 얘기, 탄핵 뉴스 이런 걸 안 해요. 그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 이들은 되게 창의적으로 노력을 해요. 덕분에 온갖 해외 토픽이라든지 말도 안 되는 근육 뉴스를 내보냈죠. 그렇게 송출실에서 1년 반 일하다가 페북으로 ‘김장겸 물러나라’ 한 후에 대기발령났고, 원래 회사에선 징계를 하려고 했는데 여론이 안 좋을 것 같으니 심의국으로 발령을 냈어요.

 

인 그럼 요즘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세요?

 

 심의국 사무실에 앉아가지고 드라마랑 예능 프로그램 심의해요. 사실 뉴스를 심의하고 싶어요. 뉴스나 시사교양 심의를 하면 제가 다 불방이라고 건의를 할 텐데, 그런데 저한테는 그런 기회를 안 주더라구요. 아침에는 일찍 와서 피케팅부터 시작하고요. 오늘(금) 저녁처럼 <돌아오라 마봉춘 고봉순> 집회를 하면 거기에도 가서 공연하고 피케팅하고 그래요. 사실 전 어느 때보다도 회사를 위해 열일하고 있는데 회사에서 너무 안 알아주는 게 좀 섭섭하죠. 지난번에는 숨을 헐떡이며 랩도 했는데.

 

인 아 네.. 그 랩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제가 랩을 차-암 모르지만, 충격받았어요.


 

https://youtu.be/7GTowGjQlYk

노약자, 임산부, 어린이도 봐도 됩니다만 보고 날 욕하는 건 안돼


 

김어준의 파파이스 이후, 김민식 PD는 거의 모든 (제정신인) 매체와 인터뷰를 해왔다. 나올 얘기들은 다 나와버려 인터뷰를 포기할까 했을 때, 충격적인 랩 동영상을 봤다. 거의 포기했던 인터뷰를 가능하게 했던 건 팔할이 동영상이다. 김민식 피디는 진심이 전해졌으면 하는 랩이었다고 하지만, 슬프게도 진심만 전해졌다.

 


인 페북 라이브도 그렇고, 요즘은 인사위원회가 끝나자마자 후기가 기사로 뜨더라구요. 지난 5년간은 이런 기사를 거의 못 본 것 같은데, 싸우지 않았던 건가요?

 

 왜 5년 동안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 이러냐고 그러는데, 사실 그 5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에요. 2012년에 그렇게 미친 듯이 싸운 후에 이 안에서 회사가 망가지는 걸 계속 봤잖아요. 저는 블로그나 뉴스타파, 피디저널 통해서 글을 쓰면서 계속 짖어댔거든요. MBC 이건 좀 아니지 않냐. 다만 그동안은 MBC 문제를 크게 부각시킬 수 있는 계기가 없었어요. 그래서 나뿐만 아니라 싸우고 있던 MBC 사람들이 열패감을 많이 가졌죠. 웹툰 그렸다가 해고된 권성민 PD를 포함해 많은 기자들이 징계받았어요. 저는 그동안 조심스럽게 싸워왔는데 지금은 절박해요.

 

인 그래서 페북 라이브를 하신 거군요. 주변에서는 그걸 보고 뭐라고 하던가요?

 

 줄타기하는 심정이에요. 사실 줄타기를 하긴 하지만 지난 5년에 비해서는 되게 세게 하고 있죠. 파파이스라든가 맘마이스라든가. 특히 맘마이스에서는 세게 얘기했거든요, 작정하고. 이걸 보고도 징계를 하지 않으면 이 사람들은 정말 밸도 없는 거 아닌가 할 정도로 되게 세게 했는데, 아무 반응이 없어요. 주변 사람들이 저보고 묻더라고요. “솔직히 쫄리지 않냐. 너도 인간이니까 그런 데 가서 인터뷰하면 쫄리지 않냐.” 그런데 전 쫄리는 거보다 그걸 보는 쟤들은 얼마나 약오를까, 얼마나 기분 나쁠까 생각하면 기분이 통쾌하더라고요.

 

사실 촛불 정국 끝나고, 대통령 탄핵까지 이뤄지고 나니까 세상이 좋아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한편으론, 다 좋아지는데 우리만 이대로 있으면 MBC는 정말 적폐 중의 적폐가 되겠더라고요. 이 와중에 KBS 고대영 사장이 국회 청문회에서 야당 의원이 질문을 했는데 보도본부장한테 그 자리에서 “대답하지 마” 하는 걸 봤어요. 와, 카리스마 짱이다. 완전 상남자구나. 근데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국회의원들이 그 일로 KBS만 적폐 청산의 대상으로 삼으면 어쩌지? MBC는? 그럼 우리 존재감 없는 김장겸 사장은 어떡하나 싶었어요.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우리 사장님은 2012년 대선에서 정치부장을 하면서 대선 보도를 망가뜨렸거든요. 지난 대선 때까지 공로를 세웠으면 3년 사장 임기 채우고 자유한국당에서 공천이라도 받을 분인데, 일등공신이니까. 그런데 이런 분을 두고 사람들은 너무 고대영만 생각하는 게 아쉽더라고요. 나라도 우리 사장님 띄워드려야지. 근데 김장겸은 물러나라 페북 라이브 올리고 나서 우리 사장님이 처음으로 네이버 인물검색에 1위로 올랐어요. 아 다행이다.

 

인 그래도 목표는 달성하셨네요.

 

 그랬죠. 요즘은 KBS 조합원들이 저를 만나면 “아니 저기 이러다가 혹시 MBC만 적폐청산하고 마는거 아니야?” 걱정해요.

 

인 적폐가 워낙 많아서, TO가 많지는 않거든요.

 

 그렇죠. 그런데 앞으로 2~3년을 김장겸 체제 아래서 MBC가 가고 나면, 자유한국당이나 태극기 보수집회 이분들에게는 MBC가 마지막 아성, 보루. 우리가 온몸을 다해 지켜줘야 할 존재가 될 거에요. 지금도 사실은 MBC 앞에 태극기 보수집회가 와요. 와서 “언론장악 규탄한다!”

 

인 MBC 앞에서요?

 

 MBC 앞에서요. 정부에서 특별근로감독관 같은 걸 파견해가지고 MBC 경영진에게 압박을 준다고, 언론장악이다, 이러고 있거든요. 지금도 이런데 이 시기가 길어지면 김장겸 사장은 저들에게 있어서 상징적 아이콘, 보수의 아이콘이자 지못미의 대상이 되는 거죠. 그러니 빨리 해야 돼요. 그걸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일이라도 해보려고 하고요, 뭐든 해보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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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근데 사장 하나 나간다고 해서 해결이 되는 건가요?

 

 새 사장을 뽑는 것은 새 정부 하에서 구성된 이사회가 하게 되는 거니 사장 하나만 바뀌면 달라져요. 많은 분들이 걱정하더라고요. MBC 안에서 흔히 부역자라고 하는, 그 체제를 떠받치고 온 걔네들 어떻게 할거냐고. 저는 걱정하지 않아요. 김장겸 체제를 떠받친 사람들이 견고한 철학과 가치관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거든요. 그냥 MBC 기자가 되고 싶어 경력직으로 들어왔고, 일하고 싶었던 회사가 자기에게 일을 준거예요. 그들 중에서는 분명히 영혼 없이 했던 사람도 있을 거고. 저는 어떤 사장이 오든 이 사람들이 열심히 방송을 할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 안에서 우리가 옥석은 가려야겠죠. 제가 말하는 옥석은, 조합원이냐 아니냐, 혹은 정치적 색깔이 뭐냐가 아니에요. 아주 기본적으로 일을 잘하는 사람에겐 일을 주고, 일을 못 하는 사람에겐 일을 안 주는 것. MBC가 늘 해오다가 지난 5년 동안만 안 했던, 그걸 하면 돼요.

 

인 그런데 지금은 노조가 둘로 나눠져 있잖아요. MBC 노동조합이 있고, 파업 참가자들이 있는 언론노조 MBC가 있고요. 그런데도 그게 쉬울까요? 어용 노조랑 언론노조 MBC에 있는 인원은 어느 정도 차이가 나나요?

 

 지금은 우리(언론노조 MBC)가 무조건 다수죠. 정확하게 저쪽이 자기들 회원 수를 안 까요. 패를 까지를 않아. 일베의 아이콘 김세의 기자가 노동조합 위원장이라는 게 너무 웃기지 않아요? 하하하하하. 더 재밌는 건 대선 이후에 저희 조합원 수가 점점 늘고 있어요. 저희는 두 팔 벌려서 그런 분들 다 환영합니다. 오로지 기존 언론노조 MBC를 약화시키기 위해 회사가 만들고 키워준 노조기 때문에 김장겸만 치우고 나면 그 다음은 저절로 될거라고 생각해요.

 


MBC의 꿈은 딴지일보다


인 사장을 치우면 퇴직자도 다시 돌아오게 될까요?

 

 그렇죠. 해직자들은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데, 판결이 나오면 회사 정상화랑 상관없이 무조건 복직하게 돼 있어요. 원래는 벌써 들어왔어야 돼요. 왜냐하면 해고무효소송에서 우리가 이겼거든요. 근데 회사가 항소했고, 고등법원에서 해고 무효라고 다시 확인시켜줬어요. 근데 그때 걔들이 뭐라고 했냐면 법원의 좌경화, 요즘 판사들의 의식 구조 좀 문제 있음, 이렇게 말했어요. 전 그렇게 생각해요. 얘들이 진짜 우파라면... 보수 우파가 뭐예요. 법과 원칙을 존중하는 게 보수 우파잖아요.


인 만일 그때까지 사장이 안 나가면 해직자들은 또 자기 일을 할 수 없도록 다른 부서로 발령을 내는 건가요?


 맞아요. 뉴스타파 맨 처음에 만든 이근행 피디가 있어요. 선배는 복직해서 들어왔는데 제 바로 옆 방에서 일했어요. 저는 그나마 공중파 TV 주조정실이었는데, 선배는 DMB 주조를 시키더라고요. 그래서 작은 화면을 보면서 일했거든요. 나는 이근행 선배를 DMB 주조로 몇 년을 굴리는 걸 보면서 얘들은 해고자들에 대한 기본 예의가 없는 애들이구나, 생각했어요. 최승호나 박성제, 정영하, 이용마 이런 사람들도 다시 돌아오면 유배 보낸 다음에 소송하라고 하겠죠. 어차피 그동안 괴롭힐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이분들이 오시기 전에 김장겸을 몰아내는게 우선이라 생각해요. 사장님 먼저 쫓아내고 해고자들 복직할 때 정문에 나가서 같이 만세를 외치면서 뜨겁게 재회하는게 저의 꿈이에요.


인 만약 그게 안 되면 어떻게 하실 건지...


 그럴 수도 있어요. 사실 사장 임기 끝나는 것 보단 복직이 더 빠를 수 있거든요. 대법원 판결이 나면 되니까. 그럼 저는 돌아온 분들을 모아서 다시 장렬하게 이제...


인 이제 막 복직했는데요?


 슈퍼스타들이 오셨으니까. 다시 이제 저와 함께 또 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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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사장 귀가시키기에 성공할 수도 있죠. 마침내 사장님이 퇴진하면, 뭔가 퍼포먼스를 하실 거에요? 가시는 길에 꽃이라도 뿌려야죠.

 

 그쵸. 퍼포먼스를 할 수도 있고요. 그것보다도 사장님이 가시면 저는 지난 5년간 지고 있던 마음의 빚을 좀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아요. 2012년 170일 파업을 하고 우리가 복귀할지, 계속 싸울지 총회를 했는데 아나운서 조합원들이 찾아와서 절대 복귀하면 안 된다고 그랬어요. 왜냐하면 이대로 올라가면 저들이 어마어마한 탄압을 할 건데, 가장 쉬운 대상이 아나운서들이거든요. 방송 경영, 기자, 기술 이런 쪽은 일이 크게 바깥으로 티가 안 나요. 그런데 아나운서는 프로그램 하고 있는 것에서 빼버리면 바로 타격이 오죠. 그리고 아나운서들이 우려했던 게 지난 몇 년간 현실이 됐어요. 다들 너무 힘들어했고,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너무너무 미안했거든요 집행부로서. 2012년 집행부로서 내가 싸워서 졌고, 그걸로 인해 조합원들이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인 그래서 보도국에 있지 않은 분이 이렇게까지 맨 앞에 서서 싸우는 건가요? 방송국이 망가졌을 때 보도국에 비해 드라마나 예능은 타격이 없을 텐데도 이렇게 앞장서서 싸우는 이유가 궁금했어요.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ㅋㅋㅋ). 보도국에 있는 이용마 기자가 제 입사 동기인데 남들은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데 나는 친구 따라 유치장도 가보고… 그런데 원래 MBC는 조직문화가 끈끈해요, 우리끼리. 사주가 있는 기업도, 공무원 조직이 아니란 말이에요. 주인 없는 회사라는 것 때문에 사원들끼리 주인의식이 강해요. 아마 재벌들이라면 되게 좋아했을 거예요. 온 직원이 내가 사장인 것처럼 밤새워서 일하니까. MBC 직원들이 실제로 그랬어요. 저 역시 회사에 대한 고마움과 동료들 간 끈끈한 게 있었기 때문에 네 일, 내일이 따로 없었어요. 이런 회사 분위기가 제일 컸다고 생각해요. 제가 이렇게 싸우니까 사람들이 “저기는 오죽 망가졌으면 저렇게 철없어 보이는 딴따라 피디까지 나와서 싸우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주변에서는 요즘은 “야, 기자나 시사교양 피디보다 네가 하는 게 더 효과가 있어 보여” 라고도 해주고요…… 이 인간들이...

 

인 몰아주기 하나 봐요.

 

 몰아주기에요. 이왕 버린 몸이라서.

 

인 그런데 왜 이렇게 즐거운 방식으로 싸우시는 건가요? 투쟁이나 싸움이라고 하면 뭔가 진지하고 막 소리도 지르고 그래야 할 것 같잖아요.

 

 그거밖에 몰라요. 집회 가보면 백기완 선생님이라든지 투쟁 오래 해보신 분들은 그대로 하시는데, 저는 그런 걸 안 해봐서 몰라요. 김어준 총수도 자기만의 화법대로 하잖아요. 그걸 딴지일보 만들면서 계속 연습해 온 거에요. 쫄지마 씨바!처럼. 자기 스타일대로 해야지 안 하던걸 할 수는 없어요. 전 20대 때 제일 좋아했던 것이 노는 거라, 지금도 그래요. 어떻게 더 웃길 수 있을까. 요즘은 그런 즐거움을 인사위 회부 메일을 받을 때마다 느껴요. 이번엔 그럼 내가 가서 뭘 할까. 어떻게든 재미나게 하고 싶어요. 내가 재미나게 해야 사람들이 그걸 재미나게 볼 것 같구요. 잘해서 다시 딴지일보와 MBC가 같은 급에서 공정언론을 놓고 경쟁하는 구도로...

 

인 저희는 조선일보가 있어가지구 MBC가 낄 자리가 없어요. 이 정도 가지고는 택도 없거든요. 그런데 예전에는 ‘재미나는 싸움'을 조합원들이랑 같이 하셨잖아요. <MBC 프리덤>도 그렇고, <마지막 파업>도 그렇고. 조합원들이랑 같이 뭔가 하실 계획은 없나요?

 

 저는 이제 집행부가 아니구요. 새로운 싸움은 새로운 세대가 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해요. 언제까지 제가 2012년에 했던 것처럼 MBC 프리덤을 만들겠어요.

 

인 아, 요즘은 개인플레이 중이시군요?

 

 또 하나, 제가 연출로서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 중 하나 때문이기도 해요. 거기에 출연했던 사람들이 다 나갔어요. 회사 입장에서는 보면 다 나오잖아요. 채증을 안 해도 셀프로 채증을 한 거나 마찬가지니까. 등급 매기기 되게 좋았던 거에요. 얘는 A급 전범이고 얘는 B급 전범이야, 그게 됐던 거죠. 그래서 누군가를 출연시키는 것에 대한 상처가 있어요. 혼자라도 최선을 다해서 하려구요. 그러니 50대 래퍼로 나가서 랩이라도 해야 되고…

 

인 랩은 하지 마시죠(단호). 어쨌거나 그땐 MBC 프리덤 같은 것 덕에 김재철 이름은 알았고, 지금은 김장겸은 물러나라 때문에 김장겸 이름이라도 아는데, 그 사이는 기억이 없어요. 찾아보니 김재철과 김장겸 사이에 두 명이나 있었더라고요.

 

 김종국하고 안광한이죠. 사람들이 잘 몰라요.

 


사장놈, 아니 사장님 월드컵(feat.갓현진)


인 넷 다 MBC 파괴자겠지만, 누가 제일 나쁜 놈인지는 잘 모르겠거든요. 그래서 사장님 월드컵을 해볼게요. 주옥같은 사장 중에 누가 제일 나쁜 놈인지 토너먼트로 하고요, 이유도 간단히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우선 김재철과 김종국 둘 중엔 누가 위너인가요?

 

 김재철 vs 김종국에서는 김재철이 위너죠. 김재철은 일단 MB와 끈끈한 인연도 있었고, 우리가 170일 파업하면서 김재철에 대한 법인 카드에 대한 거라든지 온갖 것을 찾아냈는데도 버텼잖아요. 그 점에서 위너죠. 사실 김종국 사장은 사람들이 이름도 몰라요. 듣보에요. 근데 김종국 사장은 파업 같은 걸 어떻게든 봉합하려고 하긴 했었어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인 그나마 나았다?

 

 부끄러움은 알았다고 생각해요. 배현진이 중간에 뉴스데스크 앵커를 그만둔 적이 있어요. 2013년인가 2014년에. 김종국 사장 시절이었는데, 이 양반이 뉴스데스크를 어떻게든 살리고 싶은데 시청률은 점점 떨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배현진을 놔두고는 해결이 안 되겠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배현진이 파업 중간에 배신의 아이콘이었잖아요.

 

인 그 명언 남겼죠. 촘촘한 경계 어쩌구.

 

 맞아요. 그 되게 이상한 멘트를 하고, 또 노조원이 폭행을 했다고 그런 글을 게시판에 올리고. 시청자들이 MBC 뉴스데스크를 안 보게 된 건 뉴스의 얼굴인 배현진에 대한 비호감 이미지도 크다고 봤거든요. 그래서 배현진을 앵커에서 뺐어요. 그리고나서 김종국 사장이 잘렸죠. 김재철 사장의 잔여 임기를 하고, 원래 제대로된  본인 임기를 하다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인 그 정도면 최소 갓현진 아닌가요.

 

 그 사건을 보고 사람들이 MBC 사장보다 배현진이 힘이 세구나, 그랬어요. 김종국 사장은 그래도 약간의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배현진이 뉴스데스크 앵커로 나오는 게 부끄러웠을거라고… 많은 사람들이 김재철이나 김종국이나 안광한이나 도긴개긴, 오십보백보라고 하는데 저는 오십보백보 내에서도 그래도 좀 차이는 있다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이번에 영화 <공범자들>에 김재철, 안광한, 김종국 다 나오거든요. 근데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을 때 김종국 사장은 빠져있어요. 최소한의 부끄러움은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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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그럼 안광한 vs 김장겸은요?

 

 안광한 vs 김장겸이라...이게 어려워요. 백중지세거든요. 안광한은 바지사장이고 김장겸은 막후실세로 있었는데 하필 사장되자마자 대통령 탄핵되고 끈 떨어진 양반이거든요. 안광한과 김장겸이라...이거 호각세네요. 그래도 저는 안광한이 더 나쁘다고 봐요.

 

인 왜요?

 

 <공범자들>을 보고 나면, 제 말을 더 이해하실지도 몰라요. 사장이 되고 나서 김종국 사장이 내쳤던 배현진을 다시 앵커로 만들었어요. 그리고 임기 내내 조합원들을 어마어마하게 탄압했었죠. 뉴스포차에서 안광한 사장님의 캐릭터에 대해 말했었는데, 이 분은 컴플렉스 덩어리에요. 예전 MBC 사장들이랑 다르게 안광한은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 듣보였거든요. 자기 입사 동기나 또래 피디들이 다들 MBC의 스타 피디, 스타 기자가 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여기까지 온거죠. 사장이 되자마자 MBC의 모든 스타 피디, 스타 기자, 스타 아나운서를 물먹였어요. 예를 들어 한학수 피디는 MBC 시사교양이 만들어낸 최고의 피디인데 그런 사람한테 뜬금없이 스케이트장 관리를 시키는 거예요. 오상진이나 문지애처럼 스타 아나운서들이 그래서 많이 나갔죠. 다들 일잘하던 사람이었는데. 그렇게 끈질기게 조합원들을 괴롭히던 안광한이 끝판왕이라고 생각해요.

 

인 마지막으로 김재철과 안광한 중에 제일 나쁜 놈을 고른다면요?

 

 김재철은 비호감 이미지가 강해서 그렇지 그래도 알고 보면 되게 귀여운 면이 있어요. 처음에 낙하산 사장으로 왔을 때 사원들이 출근 저지하니까 이런 말을 했었어요. “내가 방송을 제대로 못 하면 사원들이 저를 돌에 매달아서 한강에 버리세요.” 아니, 사장이 뭐 저런 수준 이하의 말을 하지 싶잖아요. 나서서 자기의 약점을 드러내는 사람이었어요.

 

인 인간미라도 있었던 것 같아요. 못됐는데 모자란 형…

 

 인간미라도 있었는데. 안광한은 뒤에서 조용하게, 끝까지 괴롭히는 타입이에요. 최악의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인 안광한이 최악의 사장이었다면, 이 끝판왕 사장이 있던 동안 왜 MBC는 잠잠했던 걸까요?

 

 그만큼 안광한이 악랄했기 때문이죠. 양치대첩처럼, 환경 보호하자는 말하면 사람이 날아가잖아요. 조금이라도 꼬투리가 있으면 바로바로 날려버렸기 때문에 뭐라도 싸울 발화점이 없었어요. 하려고 하면 바로 날리고…

 

인 그때는 피케팅도 없었던 건가요? 아니면 알려지지 않은 건가요?

 

 아니요. 그때도 계속 했었는데, 바깥에 안 알려진 것뿐이에요. 그리고 보시는 분들도 열심히 싸운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처절하게 발버둥 치는걸 찾아서 깊이 들여다보기 힘드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차피 MBC 이제는 망가졌으니까, 하고 넘기는 거죠. 피로감이 있었으니까. 열심히 싸우다가 뚝 끊겨버린 것처럼 보여서 어쩌면 많은 분들에게 실망을 드렸을 수 있어요. 그래도 2012년에 가장들이, 4-50대 생활인들이 6개월 동안 월급 안 받고 싸웠고 그 결과로 해고되고 부당전보를 받았다면, 그 자체로 그 싸움에 대해서는 의미를 갖고 조금 더 지켜봐 주셨으면 해요.

 


MBC가 제 첫사랑이에요


인 얼마나 걸릴 것 같으세요. 사장이 나가기까지.

 

 책에도 썼는데, 항상 hope for the best, expect the worst. 최선을 희망하고 최악을 각오하고 살아요. 내일 당장이라도 사장은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처음에 ‘김장겸은 물러나라’ 외치고 대기발령됐을 때만 해도 회사에서는 저 하나만 자택 대기 시키면 조용해질 줄 알았거든요. 근데 얼마 전에 양치대첩 기사가 올라오면서 배현진과 양윤경 기자가 같이 인기검색어에 올라왔었어요. 사장이 제정신이라면, 버틸수록 그런 내부 사연들이 많이 나올 거라는 걸 알 거예요. 자기가 MBC 오너도 아니고, 결국 사장 임기는 정해져 있거든요. 그런데 제 소망은, 사장 임기를 절대로 다 채우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거에요. 그렇게 되면 이걸 위해 해직을 각오하고 싸워온 사람들의 열패감이 너무 커지거든요. 그래서 대중이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해요. 바꿀 때가 되었는데, 여기서 몇 년 더 죽어간다면, 그게 정의로울까… 그간 싸워온 사람들이 받은 상처를 조금 어루만져 줘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되게 감사하게, 그 시기가 오고 있다고 느껴요. 지난 몇 번의 인터뷰를 한 후에 집회를 나가보면, 이 더운 여름에 MBC 앞까지 와서 출근길 피케팅을 해주는 분들도 계시고, 그런 점에서 안에서 싸우던 사람들과 시민들의 만남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기자님처럼 관심을 갖고 물어봐주는 분들도 있고요.

 

인 MBC는 약간 예전 남자친구 같은 느낌이 있어요. 그 사람이 결혼을 했는데 되게 이상한 사람과 결혼해서 정말 이상한 삶을 사는 거예요. 그래서 보면 짠하고 마음이 안 좋고 그런 게 있어요.

 

 그 말 너무 좋은데요. 나도 사실 그렇게 생각해요. 사람들이 그래요. “너 왜 안 나오냐. 드라마 피디니까 프리랜서로 tvN이나 JTBC 드라마를 해도 되잖아.” 실제로 지난 몇 년 간 콜도 있었고요. 그런데 MBC는 내 첫사랑이고 심지어 나는 결혼 생활도 했단 말이죠. 십몇 년을 잘살았는데 갑자기 어디서 이상한 양아치가 나타나서 앞으로 얘는 내 마누라라면서 데려갔어요. 이혼한 것도 아닌데. 근데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저 사람 떠났으니 새 사랑을 찾아야겠다 할 수는 없잖아요. 기다리고, 이 사람을 다시 데려와야지. 저는 데려와서 다시 잘 살고 싶어요. 진짜 MBC가 국민들에게 다시 예전처럼 사랑받으면서 기쁨주고 사랑받는, 아 물론 이건 SBS 로고지만(ㅋㅋㅋ), 옛날에 그랬듯이 만나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기회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되게 감사하게도 촛불 시민 여러분이 이걸 만들어주셨죠. 회사에서는 저를 퇴직할 때까지 드라마 연출 못하게 하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까 보수 장기 집권 플랜대로 반기문이 되었으면, 진짜 그럴 수도 있었거든요. 그러니 이런 좋은 기회를 만들어주신 건 촛불 시민이에요. 마침 새 정부가 언론 개혁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고, 방통위 새로 취임한 이효성 위원장도 그렇고. 이런 좋은 기회가 왔을 때 첫사랑과 다시 만나서 사랑을 불태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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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정상화가 되면 뭐 하고 싶으세요?

 

 저는 조용히 살고 싶어요 정말로.

 

인 연출을 하셔야 하잖아요 어차피.

 

 그렇죠. 근데 사장이 바뀌고 MBC 정상화 된다고 해서 제가 바로 드라마를 연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너무 오래 쉬었어요. 그래서 저는 MBC가 정상화 되면 조용히 드라마국 사무실 한 곳에 찌그러져서 드라마 대본 읽으면서 세월을 기다리고 싶어요.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연출가로서 정점을 논스톱과 함께

 

인 너무 일찍 찍었나요?

 

 너무 일찍 찍었다. 그때 정말 만나면 좋은 친구였죠. 시청자들에게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확 받았어요. 그런데 그 맛을 못 본 사람들이 많아요. 지난 5년간 MBC 내부에서 좋은 뉴스와 방송으로 그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MBC 채널 이미지가 너무 망가져서 사랑을 받지 못했어요. 나는 이미 누려봤기 때문에 이제 후배들에게 그걸 누리게 해줄 수 있는 선배가 되고 싶어요. 지금 그걸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김장겸을 치우고 정상화를 하는 거고, MBC 정상화가 되면 난 정말 뒤에서 조용히 골방 늙은이처럼… 아마 후배들이 열심히 나서서 내조의 여왕보다 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겠죠. 그걸 흐뭇하게 보면서 쟤들 참 좋겠다, 생각하겠죠. 그러다가 나도 다시 논스톱 같은 걸 만들 수 있으면 다행이고, 안 돼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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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가 신입사원을 모집하면, 그걸 알려주는 건 주변 사람들이었다. 예전엔 MBC도 신입사원을 뽑았고, 작은 줄자막을 보고 나에게 연락하는 사람들이 매번 있을 정도로 MBC 채널을 보는 사람이 주변에 많았다. 그 소식을 듣지 못한 게 벌써 5년, 노조를 망가뜨리려고 MBC가 신입사원을 뽑지 않은 기간이다. 언젠가부터 TV 아래 지나가는 작은 줄자막은 늘 경력 채용 공고였고, 그 기간 동안 MBC를 챙겨 보는 사람도 적어졌다. 지난 11일 보도국 취재기자들이 제작중단에 돌입하자, 회사는 이틀 연속 경력기자 채용 공고를 냈다.

 

그런 MBC에서 신입사원을 모집한다는 건, 그때야말로 비정상이 정상으로 돌아온 그런 신호일 거다. 5년간 보지 못한 신입 공채 채용 공고 줄자막을 보게 되면 몇 년 만에 헤어진 연인을 만난 묘한 기분일 것 같다. 그래도 공익을 위해서, 김민식 PD의 랩보다는 ‘MBC 신입 사원 공개 채용’ 줄 자막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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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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