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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에서의 하루

 

어떤 사람은 일과시간 내내 변호사 접견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영어 사전을 들여다보겠지만, 교도소의 '평범한' 일상은 귤만 까먹으며 보내기에 제법 빡빡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반강제로 샤워실로 향한다. 줄을 서서 짧은 시간 안에 샤워를 하고 다시 줄을 서서 처방 약을 받은 후, 간호사 앞에서 약을 먹고 입을 벌려 확실히 약을 복용했는지 확인받아야 한다. 다시 줄을 서서 각자의 건강상태에 적합한 식사를 받고, 공동 식탁에서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는다. 식사 후 커피 한 잔은 없다. 카페인이 들어간 음료는 못 마시고 설탕 역시 한정적으로 받아서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라운드에 나가서 즐길 수 있는 시간은 짧다. 다시 정해진 시간에 유닛으로 다시 들어와서 그룹 치료에 참여하고, 법정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기본적인 지식을 익힌 후에는 법정으로 돌아갈 준비가 됐는지 확인받는다.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면 필요한 게 제공되는 호화스러운 생활 같지만, 공짜로 주어지는 삶은 없다.

 

내가 고를 수 없는 무작위 타인들과 같이 써야만 하는 공간에서 자고 일어나야 하는 삶은 어떨까. 같이 방을 쓰는 사람뿐일까. 그들의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칠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을 치료할 치료 팀을 고를 선택권도 없으며 사생활이 거의 보호되지 않는다. 방을 같이 쓰는 건 물론, 화장실 문은 항상 열려 있다. 방문은 닫을 수 있지만, 방에 난 작은 창을 통해 언제든지 누군가 그들을 들여다볼 수 있다. 매일 하는 식사의 메뉴와 하루 일정은 시설이 만들어낸 스케줄일 뿐이지 개인의 선호도를 고려한 것이 아니다. 사육에 가까운 삶은 호화스럽지 않다. 물론 가끔은 일반 교도소에 수감되고 싶지 않아서 정신병이 있는 척하는 수감자도 있다. 그 경우에는 검사와 관찰을 통해서 꾀병이 밝혀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트라우마 : 수감자들은 모두 환자다


꾀병 환자가 아니라면 이런 시설에 수감되어 있는 수감자들은 대부분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는 끔찍한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을 경우에 생길 수 있는 증상인데 예를 들어 전쟁, 고문, 자연재해 등의 심각한 사건을 통해 공포감을 느낀 후 사건 이후에도 공포감을 재경험하는 정신질환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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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수감자는 어린 시절 부모님이나 가까운 이웃에게 성적 학대나 가정 폭력을 당했을 수도 있고, 친인척이나 친구가 눈앞에서 죽어가는 장면을 목격했을 수도 있다. 세월호 참사를 직접 겪지 않았어도 거의 모든 대한민국의 국민이 트라우마에 시달린 경우를 생각해볼 때, 반드시 직접적인 경험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트라우마는 겪을 수 있다. 트라우마는 사건의 크기 문제가 아니라 개인에 따라 받은 충격의 크기 문제이므로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은 경험도 다른 이에게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직원들은 수감자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은 사건과 비슷한 자극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 수감자들의 병력과 병증에 유의하고, 과거사를 확인하기도 한 방법이다. 그때와 비슷한 환경이나 행동 하나가 수감자들을 자극하여 트라우마를 재생산(re-traumatizing)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자들이 나를 공격한다

 

수감자들은 트라우마로 언제 날카로워질지 모르는 상태다. 게다가 정신건강 상태는 병증과 환경적인 요인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이런 원인들 때문에 공격성을 띠게 되는 시기가 있는데, 공격성은 발동이 걸리는 시기 → 단계적으로 확대, 악화 → 정점 → 단계적으로 감소 → 회복 단계를 거친다. 공격성에 자극을 받고 시작이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게 몇 가지를 꼽자면 첫 번째는 시설에서의 행동강령을 준수하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다. 이것은 주로 겪는 것은 처음 들어 온 수감자들이다. 자신이 가진 자유의 한계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서 통제나 규율에 대해 반항을 하다가 공격성을 보이는 경우다. 교도소 신입이 아닌 일반 수감자의 경우 처방약이 바뀌었을 때 공격성을 보이기도 한다. 사람에 따라서 약의 효능이 느리게 나타나거나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공간이 침범당했을 때 주로 분노한다. 프라이버시가 백 퍼센트 보장되지 않는 환경이라 ‘내 것’을 지키려는 노력은 일반적인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보다 훨씬 높다. 개인이 소지할 수 있는 물품에 한계가 있다거나 자신의 사소한 것이 침해를 당하면 프라이버시에 대한 높은 욕구가 좌절되어 분노하는 것이다. 가끔은 가족이나 친지를 만난 이후에 상태가 악화되기도 한다. 수감자들의 공격성 스위치를 켜는 원인은 많다. 그래서 우리는 수감자들의 공격성을 감소시키는 교육을 받는다.


직원들을 향한 수감자들의 공격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충동적인 공격, 둘째는 정신병으로 인한 공격, 그리고 마지막은 계획된 공격이 있다. 계획적인 공격이나 협박에 대한 이야기는 긴 이야기라 나중에 다시 다루기로 하고, 나머지 두 개에 대처하는 방법을 얘기해보겠다.

 

충동적인 공격을 방어하는 직원들의 목표는 수감자들이 그들의 분노를 소멸시키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수감자들의 공격성은 아주 사소한 것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예를 들어 다른 수감자가 지나가다 실수로 툭 치고 간다든지, 과자를 먹다가 자신의 실수로 과자를 떨어뜨렸는데 자신의 실수에 대한 분노를 타인에게 표출하는 경우도 있다. 공격성은 타인을 향한 말일 때도 있고, 물리적인 폭력일 때도 있다. 불시에 일어난다는 공통점을 빼면 원인과 양상 모두 각기 다르다.

 

이런 사태가 발생했을 때, 일단 직원들은 더 큰 폭력 현장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가까이 있는 수감자들을 다른 장소로 이동시킨다. 그리고 흥분한 수감자를 진정시키는 대화를 나눈다. 이러한 현장에 홀로 남아 있다면 무언가를 하는 대신, 구조 신호를 보낸 후 장소에서 벗어난다. 최소한 두 명 이상, 보통 네 명 정도의 인원이 되어야 수감자와 대화를 시작한다. 수감자들의 충동적인 폭력성은 대화를 통해 가라앉는 것이 대부분이다. 얘기를 하다 보면, 그들이 원하는 건 이해와 관심인 경우가 많다. 이해와 관심이 충족되면, 수감자는 대화를 통해 자신의 흥분과 폭력성의 원인이 보잘것없다는 걸 자연스레 인지하고 평정을 찾게 된다.

 

그러나 환자가 정신병 때문에 공격성을 띠게 되는 경우는 따뜻한 대화로 풀리지 않는다. 정신병증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망상과 환청, 환영이다. 망상은 정부에서 나를 감시하고 있다든가, 내가 사실은 백만장자인데 지금 누군가의 음모로 이곳에 갇혀서 내 돈을 다른 사람들이 마음대로 쓰고 있다든가 하는 것들이다. 그 외에는 이곳에서 약을 통해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든가, 누군가가 살수를 고용해서 죽이려고 한다는 잘못된 믿음이다. 만약 그런 환자가 어느 직원을 본인의 살수로 생각할 경우 그 직원을 보고 자기 목숨을 지키기 위해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다.

 

이 경우 직원들은 수감자가 현재 상황을 똑바로 인지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중 "지금 몇 시입니까?""지금 있는 장소는 어디입니까?""현재 대통령은 누구입니까?" 등의 질문이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은 없을 거다. 망상에 시달리는 환자들은 이것에 대해 명확히 대답하지 못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을 자기를 죽이려고 고용된 사람으로 인지할 수도 있고 현재 자기가 있는 곳이 나라에서 운영하는 수감 시설이 아닌 개인적인 감금 시설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잘못된 믿음은 스스로에 대한 보호 본능과 폭력성을 자극하게 된다. 이때 수감자가 처한 상황과 장소, 그리고 시간 등을 똑바로 인지하도록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의 믿음에는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증명하는 것은 사실을 증명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특수한 곳에는 그곳만의 문화가 있듯이 갇히고 짜여진 공간에서만 생활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들 나름의 문화가 있다. 이들이 만드는 교도소 문화는 그들만의 규칙, 관습, 신화, 금기 사항 그리고 그들만의 고유한 언어로 이뤄진다. 고유한 문화를 가지고 그것을 나름 계승하고 있는 집단이라 그 문화에 살지 않는 직원들이 도리어 이방인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직원들은 이질적인 문화에 살고 있는 수감자들과 협력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사람이 있으면, 교감도 있다


물리적인 위험요소만큼 심리적인 위험요소도 경계해야 한다. 사람이 모인 곳이라 감정이 없을 수 없다. 오히려 불시에, 상시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감정에서 비롯되는 위험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의 영역을 지키려고 한다. 사실 직원이나 수감자나 다 똑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 사이의 교감이 생기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직원들은 그 교감을 의지로 차단하는 일이다.


사회와 교류 없이 우리끼리만 복작거리는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다 보면 가끔 관계가 모호해지는 경우가 있다. 직원들과 수감자들 모두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 절대 생기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없는 일들이다. 예컨대 평소 좋아했던 이상형을 만날 수도 있고, 조금 잘해주거나 자주 마주치다 보면 감정이 쌓일 수도 있다. 


만약 현재 한 직원이 연인과 헤어졌거나 심하게 다퉈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가정하자. 평소와는 조금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다. 말수가 적어지거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거나, 멍하니 딴생각을 하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보게 된다. 이럴 때 한 수감자가 다가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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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은 "너 오늘 무슨 일 있어?"라고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 이어서 "얼굴이 조금 안 좋아 보여. 잘 안 웃고 멍하게 있으니 걱정돼. 혹시 무슨 일 있는 거야?" 라고 물었다 치자. 직원의 입장에서 하루 종일 아무도 신경을 써주지 않았는데 이 수감자가 나에게 관심을 보이고 안부를 묻는다면, 마음이 조금 움직일 수 있다. 이럴 때 "별일 아니야. 5분 후에 식사 시간이니 준비하는 것이 좋을 거야."라고 딱 잘라 말하고 선을 그어버리면 수감자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나갈 방법이 없다. 그러나 만약 "남자친구와 싸웠어. 그래서 오늘 기분이 너무 안 좋아. 내 남자친구는 왜 자꾸 도박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속상해."라고 말을 한다면 그 말을 들은 수감자는 대화를 이어갈 것이다. "그래? 남자친구가 도박을 하는구나? 남자친구가 혹시 폭력적이지는 않아?"라고 물어봤을 때 "때리지는 않는데 화가 심하게 나면 물건을 집어 던져. 그럴 땐 정말 무서워. 평소에는 친절하고 좋은 사람인데…" 이런 개인적인 대화를 나눴다고 가정해 보자.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 둘은 조금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들것이다. 그것은 수감자의 일방적인 감정이 아니라 직원도 다른 수감자보다 말을 걸어준 그 수감자에게 조금 더 친근감이 들 수밖에 없다. 이런 대화를 하고 며칠이 지난 후에 그 수감자와 직원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또 이어갔다면? 어느덧 친구나 부모님에게도 하기 껄끄러운 얘기를 할 수도 있다. 직원의 입장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흠이 잡히는 것 같아서 하지 못한 말을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사람이 수감자가 되어 있다. 감정을 쏟을 출구를 발견한 직원은 경계를 풀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들어주는' 사람인 그 수감자를 찾게 된다. 물론, 자주 이야기를 나눌 뿐 별 일은 없었으니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어느 날 직원이 껌을 씹으며 일을 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그 수감자가 다가와서 조용한 곳으로 불러낸다. 그러더니 나도 너무 껌이 씹고 싶은데, 껌 하나만 주면 안 되겠냐고 한다. 직원이 수감자에게 외부 음식물을 제공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지만, 생각해보니 '우리 사이'에 껌 정도는 괜찮을 것도 같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껌을 줬다고 가정해 보자. 며칠이 지나고 껌에 관한 것은 다 잊어버렸는데 그 수감자가 직원에게 혹시 담배 한 개비만 줄 수 있냐고 묻는다. 껌은 몰라도 담배는 너무 경계를 넘은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거절한다. 그랬더니 수감자는 네 남자친구가 도박을 하고 폭력적인 사람이라는 소문을 내겠다고 한다. 직원은 소문이 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다짐을 받고 담배를 몰래 가져다준다. 며칠 후 수감자는 담배 한 갑을 구해달라고 한다. 그러면서 '다른 수감자들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둘이 친하다는 걸 다른 수감자들이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담배를 구해주지 않으면 너도 곤란할 거라'는 말을 덧붙인다. 


여기서 판단을 잘 내려야 한다. 남자친구와의 관계가 알려지면 자존심이 상하겠지만, 그렇다고 담배를 한 갑이나 수감자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큰 규칙 위반이다. 이때 적절한 행동은 지금이라도 용기를 내어 수퍼바이저에게 알리는 것이다. 처음부터 자세한 경위를 설명하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약해져 있는 상태에서 수감자의 접근이 있었다는 것을 고백한다. 이렇게 수퍼바이저에게 알리면 아직 더 큰 일이 나기 전에 방지한 것이다. 여러 가지 조치가 취해질 테지만 사직을 해야 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직원이 멈추지 않고 수감자에게 담배 한 갑을 가져다준다면, 요구하는 것들이 점점 커지며 더이상 헤어나오지 못할 상황까지 갈 것이다. 그 후에는 아무리 수퍼바이저에게 사정 이야기를 해도 직장을 잃는 상황을 모면하기 힘들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첫 단계에서 직원은 수감자와 자신의 거리를 지켜야 한다. 수감자들은 자신들의 필요와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어떠한 일도 불사할 자세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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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맥락에서 직원들이 요즘 특히 조심하는 건 SNS다. 마음먹고 신상정보를 털어보려고 하면, SNS에서 사는 집과 가족들 얼굴 정도는 쉽게 얻을 수 있다. 결혼 여부, 아이들 연령, 심하면 여행을 가서 집을 비우는 기간도 알기 쉽다. 인터넷 접속이 불가능한 교도소에서 SNS 걱정을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교도소에서도 인터넷으로 신상 터는 일은 어렵지 않다. 어느 수감자가 직원의 사생활을 알아내겠다 생각하면, 유닛에 배치되어있는 전화로 친구나 가족에게 부탁만 하면 된다. 내 페이스북 친구는 내가 관리할 수 있지만, 그의 친구까지는 내가 관리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SNS에 어디까지 사생활을 공개하는 것이 좋을지 항상 고민한다. 사생활을 공개하고 타인의 관심을 받는 것을 즐기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지만, 누군가는 나의 사생활을 잘못된 의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잊지 않고 지낸다. 교도소에서는 작은 관심이 직업과 안전까지 위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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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인지니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