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2015. 07. 03. 금요일

소리지기









아침 9시 반이 막 넘은 시간. 깨어있은 지 20시간이 지났다. 10분만 기다리라던 노무사는 30분이 지나서야 사무실 건물 앞에 등장했다. 중국에 있는 한국인이 많이 사는 동네인지 한국에 있는 중국인이 많이 사는 동네인지 헷갈리는 대림역 근처, 매우 낡은 빌딩의 한 구석에서 그를 만나 좁은 사무실에 들어갔다.


나는 1월에 회사와 체결한 근로계약서를 내밀며 노무사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애써 서울말을 쓰려고 하지만 강한 남쪽 지방의 어투가 묻어나오던 그 노무사는 잠시 내가 작성한 계약서를 살펴보더니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한 5분 지났나. 그는 내가 받을 수 있는 법정 최저임금을 계산해내는데 실패했다.


hands-462298_640.jpg


놀란 내가 다시 한 번 상황을 설명했고, 그는 다시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계산할 때와 비슷한, 어쩌면 조금 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는 내가 받아야 하는 정당한 최저임금을 계산해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이 받으시던 월급하고는 좀 차이가 있긴 하네요. 근데 왜 이렇게 계약서를 쓰셨어요. 잘못된 걸 알았으면 쓰시지를 말았어야지.”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는 묵묵히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미친놈 보듯 하는 노무사의 사무실을 나왔다.


지금으로부터 약 7개월 전 나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나름 안정적이라 생각했던 직장이 하루아침에 사라진지 2년이 지나, 신입으로 들어가기는 애매하고 경력으로 쓰기엔 부족한 나이였던 탓에 취업의 한파를 온몸으로 맞고 있었던 때였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 위해 6개월 동안 왕복 4시간 거리의 폴리텍 대학을 다니기도 하고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도 했으나, 예기치 않은 상황들로 인해 다시 거리로 나와야 했다. ‘몇 억을 준다면 이명박의 좆을 빨 수도 있다’는 허지웅의 글이 이해가 되던 때였다.


그 때 나에게 동아줄 하나가 내려왔다. 그 동아줄은 분명 썩은 동아줄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저거라도 잡아야 했다.


저녁 7시에 출근해 아침 7시에 퇴근하며, 2일 일하고 하루 휴식하는 일자리였다. 대신 주말과 명절 등 공휴일에 상관없이 계속 돌아가는 방식이며, 연봉은 1,800만 원이었다.


우선 보고가는 <근로기준법>


제17조(근로조건의 명시)


① 사용자는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에 근로자에게 다음 각 호의 사항을 명시하여야 한다. 근로계약 체결 후 다음 각 호의 사항을 변경하는 경우에도 또한 같다. <개정 2010.5.25.>


1. 임금
2. 소정근로시간
3. 제55조에 따른 휴일
4. 제60조에 따른 연차 유급휴가
5.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근로조건


② 사용자는 제1항제1호와 관련한 임금의 구성항목·계산방법·지급방법 및 제2호부터 제4호까지의 사항이 명시된 서면을 근로자에게 교부하여야 한다. 다만, 본문에 따른 사항이 단체협약 또는 취업규칙의 변경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로 인하여 변경되는 경우에는 근로자의 요구가 있으면 그 근로자에게 교부하여야 한다.


제55조(휴일)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1주일에 평균 1회 이상의 유급휴일을 주어야 한다


제56조(연장ㆍ야간 및 휴일 근로) 사용자는 연장근로(제53조·제59조 및 제69조 단서에 따라 연장된 시간의 근로)와 야간근로(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사이의 근로) 또는 휴일근로에 대하여는 통상임금의 100분의 50 이상을 가산하여 지급하여야 한다.


제17조는 근로 시 가장 기본적으로 작성해야 하는 근로계약서를 말한다. 제55조는 주휴수당이라고 부르는 유급휴일에 대한 부분이다. 1주의 소정근로시간(일하는 시간)이 15시간 이상 일시, 계약서상에 명시된 근로시간을 모두 개근하였을 경우에 청구할 수 있다. 제 56조는 각종 수당에 대한 부분이다. 2015년 기준으로 볼 때, 22시부터 06시까지 근로를 할 때는 최저임금 5580의 50%가 부가된 8370원을 지급해야 한다. 또한 기본 근로 8시간 외에 추가 근무, 즉 연장 근무 시에도 같은 조건인 8370원을 지급해야 한다. 8시간 미만의 근로를 하기로 계약되어 있는데 그 이상 근무를 시킬 시에도 적용할 수 있다. 5시간을 근무하기로 했는데 7시간을 일했다면 2시간분에 대한 초과 수당 청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휴일에 근무를 할 때도 휴일 근로 수당이 따로 책정된다.


다만 이 조건은 상시 근무자가 5인 이상 되는 근무지에만 해당된다. 또한 이 조항에서 말하는 ‘휴일’은 공통적으로 우리가 인식하는 주말이나, 명절이 아니라 계약서상에 휴일로 지정된 날에 근로를 했을 때를 말한다. 필자처럼 2일 근로 1일 휴식으로 주말이나 명절 없이 돌아가는 식으로 계약을 했을 시에는 적용되는 휴일근로는 5월 1일 노동절뿐이다. 주 5일 근무로 계약이 되어 있을 때에 공휴일이나 주말에 근로를 했을 시에만 청구가 가능하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야간 12시간 근무를 시키며 연봉 1,800만원을 제시하다니 사장의 말을 들은 나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사회생활을 갓 시작할 때 받았던 연봉을 30대가 되어서, 그것도 야간 일을 하면서 받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장은 나를 꽤 마음에 들어했고, 연봉 협상만 잘 되면 내일이라도 바로 근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노동.png


결국 나는 1,800만 원보다는 높지만 여전히 야간수당까지 더한 임금에는 못 미치는 연봉을 제시했고, 우리 둘은 합의를 보았다.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더 이상 집에서 눈칫밥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보단 씁쓸한 마음이 더 들었다. 나는 너무나 지쳐 있었다.


그렇게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되었다. 마음 같아선 다 까버리고 싶지만 자세한 업무 내용을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업무 특성상 ‘24시간 내내 누군가는 사이트를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것’만은 말할 수 있을 거 같다.


사람의 몸은 참 신기하고도 재미있다. 어차피 자는 시간만 맞추면 낮에 자던 저녁에 자던 문제없을 거 같지만, 우리의 몸뚱이는 그런 식으로 계산할 수 있는 기계가 아니라 피와 세포가 숨 쉬는 생명이다. 새벽일을 시작하고 나서 제일 먼저 느낀 것은 몸의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틀 간 24시간을 밤에 일하고 나서 하루 동안 이틀의 피로를 푼다. 이론상으론 그럴듯해 보이지만 하루 종일 쓰러지듯 잠에 취해도, 아침에 잠을 자고 저녁에 2시간 정도 활동 후 다시 새벽에 쓰러지듯 잠을 자도, 피로는 풀리지 않았다.


일을 시작한지 6개월 째, 체중이 10kg 이상 증가했다. 몰아서 잠을 자느라 하루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할 때도 있었고, 음식을 먹더라도 새벽에 먹었다. 당연히 소화기가 엉망이 되었고 소화제를 달고 살았다.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변할 때 보름 정도만 고생시키던 알레르기 비염은 여름인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어느 날은 혈변을 매우 심하게 보았고, 어느 날은 코피가 나는데 한 시간 동안 멈추지 않아서 진지하게 119를 부를까 고민한 적도 있었다.


그런 나에게 사장은 늘 ‘보상’을 이야기 했다.


“지금 고생하는 거 안다, 하지만 나중에 다 보상해 줄게”


나도 바라봐야 할 것은 현재 쥐는 돈보다 경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힘들지만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점점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각오는 한 일이었지만 야간에 12시간을 꼬박 일해야 하는 이 일은 심각한 체력의 소모를 가져왔다. 멍한 상태로 아침에 퇴근해서 애써 잠을 청해도 몸은 피곤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빨리 자면 오전 11시, 늦게 자면 2시 정도에 잠이 들어서 2~3시간도 못 자고 허겁지겁 출근하곤 했다. 두 명이서 함께 일을 할 때는 그나마 괜찮았다. 너무 피곤하면 잠시 이야기 하고 30분 정도 눈을 붙일 수 있으니까, 하지만 혼자서 일을 할 때는 그런 사치조차 누릴 수 없었다.


1년 혹은 2년만 버티자고, 출근하는 사람이 가득한 지하철 안에서 혼자 퇴근을 하면서 늘 생각했지만, 이런 상황이니 법에 보장된 수당도 못 받고 일한다는 사실에 하루하루 불만이 심해졌다. 당장 사장실에 쳐들어가서 제대로 된 수당을 지급해 달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몇 번을 꾹 참았다. 어차피 단기적으로 보고 들어온 회사가 아니다. 조금만 참자, 조금만.


하지만 커다란 댐은 작은 구멍에서부터 무너진다는 말처럼, 나와 사장의 갈등은 의외의 곳에서 터지고 말았다. 회사에서 새로운 직원이 들어오면 무엇을 먼저 해줘야 할까? 당연히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배정하고 컴퓨터와 같이 업무에 필요한 도구를 지급해야 한다. 그리고 기본 문구랑 이름표, 명함 등도 지급해야 한다. 문제는 나는 입사 후 3개월이 다 되어가도록 자리와 컴퓨터만 배정 받았을 뿐, 나머지 것을 전혀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entrepreneur-696976_640.png

정말 이게 다라고?


처음에는 시작하는 회사라 이런 체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구나 싶었다. 하지만 주간에 일하는 다른 직원들의 자리에는 문구와 이름표를 제대로 붙여줬고, 나는 그걸 보면서 이건 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장에게 이름표와 명함을 제작해 달라고 여러 번 요청했다. 사장은 처음 몇 번은 ‘깜빡했네. 미안, 빨리 처리해줄게’라고 했지만 가면 갈수록 그런 게 뭐가 중요하냐며 화를 냈다.


예전에 즐겨보던 한 잡지를 보다 놀란 적이 있다. 기자들이 한 달의 소회를 밝히는 ‘편집부의 말’ 같은 코너에 편집장부터 말단 기자까지 출판사를 비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모든 실무진들이 출판사와 틀어질 대로 틀어진 상태였고, 이미 해당 인원들은 독립해서 새로운 잡지를 만들기로 했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편집장부터 말단 기자까지 자신이 가진 가장 위험한 무기인 펜을 휘두른 것이다.


그 중에 가장 인상적인 내용은 바로 ‘밥’과 관련된 불평을 늘어놓았던 부분이었다. 해당 출판사의 사무실 근처에 있는 식당은 죄다 엉터리 식당뿐이고, 웬만하면 그냥 먹을 수 있는 중국집마저 국내 최악의 솜씨라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다른 기자들의 불평 내용은 솔직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 기자의 식사에 관련된 불평은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솔직히 그때는 ‘뭐 이런 거 가지고 이렇게 불평이냐’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다녔던 사무실은 IT업계를 중심으로 여러 사업체가 몰려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이런 곳의 특징은 각 건물마다 식당이 잘 자리잡고 있어서 밥 먹을 걱정은 별로 안 해도 된다는 거다. 하지만 야간에는 이곳이 모두 술집으로 변해, 나 같은 사람은 식사를 해결할 곳이 마땅치가 않다. 처음에는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어찌어찌 해결했으나 이것도 한계가 있다. 결국은 고민 끝에 직접 밥을 해먹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인터넷에서 1인용 밥솥을 구매해서 사무실에 놓고, 쌀과 반찬을 챙겨오거나 구매해 식사를 해결했다. 나는 사장이나 이사가, 야간에 고생하는데다 밥도 직접 해먹는 걸 보고 반찬이라도 구해주거나 빈말이라도 고생한다고 어깨를 두드려 줄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은 정확하게 이랬다.


“네가 사무실에서 밥을 해먹으니 지저분 해진다, 웬만하면 해 먹지 말고 식사비 월급으로 나가잖아. 그걸로 사 먹어라.


12시간 일하는 나에게 회사에서 지급하는 식사비는 10만원이 다였다. 짧은 수습 기간이 끝나고 정식 근로계약서를 쓸 때 내가 사장에게 요구한 것은 딱 하나였다


business-card-586271_640 copy.jpg


“다시 생각한다는 마음으로 연봉은 신경 안 쓰겠습니다. 다만 제 경력도 있으니 차장이나 최소한 대리급으로 직급은 맞춰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장은 나의 요구에 자신이 혼자 결정할 사항은 아니며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볼 테니 하루만 기다려달라고 요청했다. 돈을 더 달라는 것도 아니고 일을 줄여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최소한의 자존심만 맞춰 달라는 요구였지만, 다음날 ‘얼마 전에 들어온 사람들과 형평성의 문제가 있다’며 묵살했다. 참고로 이 회사는 2014년 10월 중순에 창업했고, 내가 계약서를 쓰던 시점은 2015년 1월 말 경이었다. 더 따지고 싶었지만 괜히 싸움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고 사장도 1년만 고생하면 경력을 모두 인정해 주겠다는 말만 계속해서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얼마 전, 4월 정도에 들어온 신입 여직원의 이름표에 대리 직함이 달려있는 것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없는 사이에 혹시 직함 이동이라도 있었던 것인가? 즉시 사장에게 사정을 알아봤다. 사장은 그 여직원이 대외적인 업무를 담당하게 될 것이라 명목상으로 대리 직함을 준 것이라고 답변했다. 그 대답을 듣고 속으로 살짝, 아니, 매우 서운한 감정이 들었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대외적인 업무 때문에 그런 경우는 나도 이전 회사에서 많이 봤으니까. 문제는 그 다음의 사장의 태도였다.


“난 사장이고 당신은 사원이다. 내가 저 사람보고 오늘부터 과장하라면 하는 거고, 대리하라면 하는 거고, 그런 갑다 하고 넘어가면 되지, 당신은 뭔데 이렇게 꼬치꼬치 까불어? 당신은 그냥 내 명령만 받아서 일을 하면 되는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속 둑이 ‘우지끈’ 소리를 내더니 천천히 거센 물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내가 말도 안 되는 조건으로 이 일을 하는 것도 ‘미래에 대한 투자’ 개념이었다. 그래서 나는 사장의 ‘보상’을 믿었다. 아니, 믿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지쳐있었다. 그런데 저 말을 듣는 순간 과연 사장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Untitled-1.jpg


내가 너무 감정적인 건가? 내가 현실을 너무 모르는 철부지인 건가? 잘 모르겠다. 하지만 “XX씨, 미안한데 그냥 이해 좀 해줘.”라고 말만 했어도 나는 그냥 웃으며 넘어갔을 것이고, 지금 이런 글도 적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어머니에게 나의 상황을 대략 말씀 드린 뒤 노동청에 진정을 넣겠다고 한 것은 ‘신입 여직원의 대리 직함 사건’이 벌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어머니의 반응은 대략 이랬다. “웬만하면 그냥 다녀라, 사장도 야간 수당을 제대로 못 챙겨주는 타당한 이유가 있겠지... 요즘 취업하기 너무 어렵다.” 어느 정도 예상한 반응이었으나 씁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어머니 세대에게 야간 수당이, 연장 수당이, 근로기준법이 다 무엇이겠는가?


새벽 근무를 마치고 회사 근처 커피숍에서 시간을 때운 뒤 첫 번째 노무사를 찾아간 것이 맨 위의 장면이다.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주변 노무사 사무실을 둘러보았으나 그 시간에 문을 연 곳은 하나도 없었다. 월요일 아침이 프리랜서처럼 활동하는 노무사들에겐 새벽과 같은 시간대였을까? 아니면 내가 찾아간 대림역 근처 노무사들이 다 이상했던 것일까?


피곤한 몸을 이끌고 구로디지털단지역 근처에 위치한 다른 노무사 사무실을 찾아갔다. 여러 명의 노무사들이 합동으로 운영하는 제법 큰 사무실이었는데 나를 상담하던 젊은 여자 노무사는 내가 아무리 설명해도 나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첫 번째 노무사와 달리 계약서상의 계약이 합당하다는 말까지 했다.


더운 여름날 밤을 꼴딱 새고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구로디지털단지 도로에서 몇 분을 멍하니 서있었다. 내가 법을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첫 번째의 그 불성실해 보이는 노무사 말이 맞는 걸까? 아니면 방금 저 노무사의 말이 맞는 걸까?


다른 걸 다 떠나서 누가 맞는지부터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바로 관악 노동지청으로 달려갔다. 근로계약서를 건네고 내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하자 노동지청 주무관은 모든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해 냈다. 그는 계산기를 꺼내 정상적으로 내가 받아야 할 수당과 주휴수당까지 포함 된 월급을 계산해 냈고, 근로감독관이 조사를 해봐야겠지만 계약서의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ㅅ혼.jpg


주무관의 말에 힘이 난 나는 바로 뒤에 있는 진정서를 작성해서 담당 공무원에게 제시했고 담당 공무원은 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고는 바로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진정서가 접수된 사실을 알렸다.


전화 건너의 사장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나 담당 공무원의 대답으로 그가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대략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내가 계약서에 사인을 했으니 뭐가 문제냐는 태도로 일관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주장은 해당 공무원에 의해 원천 봉쇄 되었다.


“아무리 계약서에 사인을 했더라도 법정으로 정해진 최저임금 그리고 보장된 수당 등을 더했을 때 받아야 할 금액보다 계약서의 적시된 금액이 적을 시 그 계약은 자동적으로 무효가 됩니다, 곧 근로감독관의 소환장이 발송될 겁니다.”


지난 6월 29일, 나에게 배정된 근로감독관에게 출석하여 진술서를 작성했다. 진정서에 실수로 ‘최저임금 미지급’이라고 적는 실수를 하는 바람에 근로감독관에게 나의 상황을 설명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해당 근로감독관은 진술서와 취하서를 동시에 나에게 내밀었다. 인터넷에서 근로감독관이 취하서를 주기에 그냥 적었더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모든 게 끝나버렸다는 이야기를 몇 번 봤지만 실제로 경험하니 정말 황당했다. 왜 취하서를 지금부터 주냐고 살짝 항의하자 멀리서 오는 분(필자는 성남에 살고 조사받는 곳은 구로디지털단지에 있는 노동지청이다)이라 편의를 위해 그랬다고 둘러댔다. 당연하겠지만 돈을 다 받아내기 전에는 절대로 취하서를 쓰면 안 된다.


정확한 계산법으로 이런 금액이 나온다는 수식까지 적고 나니 진술서가 두 장이나 필요했다. 해당 근로감독관이 나의 수식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고 나니 조사하는데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이제 사장은 노동지청에 출석해서 조사를 받아야 한다. 아마 지금쯤 소환장이 발부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잘 풀린다면 임금체불 금액이 확정되고 ‘언제까지 지급하겠다’라는 확언을 받는다. 그리고 해당 금액이 나에게 들어오면 상황은 종료. 그 이후 나는 임금 체불 확인원을 해당 근로감독관에게 받고 실업 급여를 신청하면 실업급여 대상자가 되어서 고용보험 수급일에 따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no-585302_640.jpg

놉! 조사는 다메요


문제는 사측이 조사를 거부할 시 벌어진다. 계속해서 사측이 조사를 거부할 경우 나의 주장이 확정되고 근로감독관은 사장을 처벌하라고 검찰에 통보한다. 이 경우엔 민사를 통해 돈을 받아내야 한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법률 구조 공단에서 임금 체불자는 무료나 최소한의 금액만 받고 민사를 처리해 주기 때문이다.


받아야 할 돈을 못 받았다는 나의 주장이 확인만 된다면 나는 돈을 받아낼 수 있다. 문제는 두 번째 상황의 경우 시간이 조금 걸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돈을 받아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7월 1일까지만 일을 하고 다시 백수가 됐다. 나의 결정과 싸움에 응원을 보내는 사람도 있지만 걱정을 하는 사람도 많다. 특히 빙하시대를 연상케 하는 취업 한파에 스스로 지옥으로 뛰어드는 거 같아서 나 또한 마음이 편치는 않다. 하지만 바꾸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다.


싸우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다.


참고로 사장에게 진정서를 넣은 이후 계속해서 문자를 보내고 29일 날 조사를 받은 이후에도 관련 문자를 보냈지만 현재 지금 상황까지 아무런 답이 없는 상태다. 









 소리지기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