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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4월 18일 미 육군 항공대의 제임스 둘리틀(James Harold Doolittle) 중령이 이끄는 16기의 폭격기가 도쿄를 비롯한 일본의 주요 대도시를 폭격했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에 대한 미국의 반격이었다.


일본 군부와, 국민들에게는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건넸고, 이후 미드웨이 해전의 단초가 돼 주었다.


물론 그 전과를 생각하면, 진주만에 대한 보복으로는 미약했다.


사상자 50여명, 석유저장소, 제철공장, 발전소 등등에 피해를 입혔고, 경 항공모함 류호에도 ‘상처’를 입힌 정도? 민간인의 가옥 피해도 있었지만, 전과에 포함시키기에는 민망한 수준이다. 그러나 이 전과가 불과 16대의 B-25 미첼 폭격기로 이뤄낸 성과라는 걸 고려해야 한다. 아울러 이들의 애초 목적이 실질적인 ‘타격’이 아니라,


“우리도 너희를 때릴 수 있다!”


라는 걸 보여주는 심리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는 걸 생각하면, 꽤 준수한 성과였다. 이 덕분에 미국 국민들의 사기는 치솟아 올랐고, 일본 군부와 국민들은 덴노의 황궁이 적의 폭격 앞에 무방비하게 노출 됐다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여기까지는 둘리틀 폭격대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이다.


둘리틀 폭격대는 일본 본토에 뿌린 건 폭탄만이 아니었다.




불의 도시 ①


1923년 9월 11일 리히터 규모 8.4의 대지진이 일본 수도권을 강타했다. 역사에 관동대지진(關東大地震)으로 기록되는 대 사건이다. 이 지진 덕분에 무고한 조선인과 중국인들은 학살당했고, 박열(朴烈) 열사와 그의 연인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는 악화된 여론을 돌리기 위해 덴노 암살범으로 몰렸다.


어느 정도의 피해였기에 일본 정보는 대역사건을 조작할 정도가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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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기록에 따르면 14만 2천명 이상이 사망했고, 3만 7천명이 실종. 가옥 10만 9천 여채가 파괴됐고, 10만 2천여 채는 반파됐다. 재난이란 표현으론 부족할 정도의 대참사였다. 이 대목에서 주목해 봐야 하는 게 14만 명이 넘는 사망자들의 사망 원인이다. 이들 대부분은 화재로 인해 죽었다. 피해자의 9할 이상이 불로 인해 죽었단 소리다. 어째서 이렇게 됐을까?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게 지진이 일어난 시간이다.


오전 11시 58분. 한참 점심 준비를 하던 시간이었기에 집과 요식업소에서 불을 사용하고 있었다. 안타까운 점은 당시 일본의 거의 대다수 가옥들은 나무와 ‘종이’로 만들어졌다. 불이 잘 붙을 수밖에 없었다. 관동대지진 이전에도 우발적인 사건으로 화재가 발생하는 건 일상이었다.


한 겨울에 밥을 짓기 위해 숯불을 지폈는데, 숯불의 불똥이 흩날리거나 불쏘시개로 사용하던 종이에 불이 붙어 날아가 화재를 일으키는 건 일상다반사였다.


더 놀라운 건 도쿄의 절반을 불태워버린 관동대지진 이후에도 화재에 대한 뾰족한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다.


이 상황에서 둘리틀 공습이 있었다. 일본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일본의 자신감


둘리틀 공습은 일본인들에게 잘못된 편견을 심어준다.


“미국의 폭탄은 두려워 할 게 못된다.”


16기의 경폭격기가 흩뿌린 한 줌도 안 되는 폭탄을 경험한 일본. 이들은 미국의 폭탄이 그리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고, 불이 붙더라도 충분히 소화가 가능하다고 자신하게 된다. 이는 당시 일본 정부의 발표도 있었지만, 실제로 경험한 일본 국민들의 경험칙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군부와 정부는 재빨리 ‘공습대책’을 준비했다.


당시 일본 전국에는 100만개가 넘어가는 ‘반상회’가 있었다. 10~12세대를 한 단위 조직으로 묶은 반상회는 총력동원의 토대였다. 정부는 각 가정마다 모래, 물탱크, 양동이, 삽, 빗자루를 준비하게 했고, 이를 반상회를 통해 감시 감독했다. 아울러 이 모래와 양동이, 빗자루를 가지고 ‘소이탄’을 진화하는 훈련을 시작했다(빗자루와 양동이로 소이탄을 진화할 수 있다는 믿음은 어디서 나온 걸까?). 그 훈련의 대부분은 반상회 조직을 동원해 양동이 릴레이 전달 훈련이었다.


이 훈련이 끝난 다음에는 ‘필승의 방공선서’라 해서 하늘을 지켜내겠다는 선서를 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일종의 해프닝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전쟁이 장기화 되면서 일본 정부도 자신들의 방공망을 강화해야 하고, 미국의 공격에 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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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이 지나면서 일본은 새로운 국민 방공법을 선포한다. 이 법의 핵심은 전략물자를 생산하는 중요 노동자들은 공습기간 중에도 도시를 떠날 수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뒤이어 집집마다 방공호를 만들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집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상점가에도 참호를 파게 했다.


술을 마시거나 물건을 사러 왔다가 폭격이 이어지는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당시 일본인들은 상점가 참호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등화관제를 한 상황에서 익숙지 않은 길을 걷다 참호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많은 골절 환자들을 ‘양산’해 냈다. 상점가에 비치한 방화수 통들도 문제였다. 미국의 폭격과 뒤이은 화재를 대비해 설치한 방화수 통들은 어느새 ‘모기 양식장’으로 변해 있었다. 고여 있는 물은 썩게 되고, 이 더러운 물은 모기들의 안식처가 됐다.


이런 원성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미군의 발자국 소리에 대비하기 위해 부산을 떨었다. 미국이 솔로몬과 뉴기니를 함락하고, 길버트 군도를 점령하자 도쿄 우에노 공원의 사자와 대형 육식동물, 초식이지만 사람에게 위해를 끼칠 수 있는 동물들을 죽였다. 이는 현명한 처사였다. 독일의 경우도 베를린 공방전 당시 동물원에서 뛰쳐나온 동물들이 총알과 포탄이 난무하는 베를린 시내를 이리저리 뛰어다녔던 걸 생각한다면 발빠른 대처라 할 수 있다.


1943년 말, 일본 내무성은 도쿄에 방공 총본부를 설치한다. 이 방공 총본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정책이 방화대(防火帶)의 설치였다. 불이 번지는 걸 막기 위한 방화선의 설치라고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종이와 나무로 만든 도시. 게다가 인구밀도는 세계 최고수준을 자랑하는 도쿄에 소이탄이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불지옥이다.


이를 막기 위해 구역마다 방화대를 설치하겠다고 나선 거다. 그 결과 방화대 지역으로 낙점된 곳의 가옥과 빌딩들은 허물어뜨렸다. 그렇다면, 그 안에 거주하고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이들은 정부가 지정한 ‘버려진 빌딩’이나. 주변 친척집, 지방으로 이주했다. 그 수만 2만 명이 넘어갔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시대를 초월한 폭격기와 한 남자의 등장으로 물거품으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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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티스 르메이(Curtis Emerson LeMay)와 B-29가 만났을 때


1943년부터 생산돼 1946년까지 3,970대가 생산된 B-29는 1943년 당시 구현할 수 있는, 그리고 머릿속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신기술을 때려 넣은 첨단 기술의 총합이었다.


엔진출력이나 선내 여압조정이 되는 조종실, 중앙제어식 기관총좌,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초기형 컴퓨터(컴퓨터라기보다는 계산기에 한없이 가깝지만), 3만 피트에서 5천 킬로미터가 넘어가는 어마어마한 작전행동반경. 일본에게는 재앙이었고, 미국에게는 필승의 카드였다.


당시 B-29의 개발은 미국으로서도 엄청난 도박이었다.


“30억 달러의 도박”


B-29개발 프로젝트를 바라보던 미 육군 항공대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핵폭탄을 개발하는 맨하튼 프로젝트의 비용이 20억 달러였던 걸 생각하면, 말 그대로 ‘도박’이었다. 그 과정도 도박이었다.


보통 전투기나 항공기를 개발할 때는 시험제작기를 만들고 이 시험제작기를 통해 각종 시험과 개량을 통해 완성도를 높여간다. 작전 요구성능에 부합된다는 판정을 받으면 그때부터 양산체제에 들어가는 게 통례다. 그러나 B-29는 이런 과정 자체가 생략됐다.


B-29의 프로트타입이라 할 수 있는 YB-29가 만들어지기 전에, 아니 설계도면이 겨우 완성된 상태에서 해당 생산업계에 발주가 들어갔다. 즉, 설계도만 보고 협력업체에 발주를 넣어 부품 생산에 들어간 거다.


(설계도 완성도 이야깃거리가 많은데, 누구도 만들어 보지 못한 이 ‘괴물’을 만드는데 겨우 2년 남짓이 걸렸다. 수 천 명의 항공기술자, 설계사들을 ‘갈아 넣어’ 2년여 만에 ‘뚝딱’ 찍어냈다. 1941년 5월. 히틀러가 소련으로 치고 들어가기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개념연구 단계였던 이 폭격기는 진주만 공습과 국제정세의 획기적인 변화 앞에서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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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덕분에 보잉社는 오늘날 최고의 민항기 생산 업체가 될 수 있었다. B-29를 개발하면서 얻게 된 여압설계 능력과 장거리 운항 능력의 확보는 이후 생산되는 보잉 여객기 개발의 단초가 되어준다.


군사상식에 문외한인 이들을 위해 잠깐 설명하자면, 우리가 해외여행을 갈 때를 잠깐 떠올려 보라. 여객기를 탈 때 산소마스크를 쓴다거나. 두꺼운 방한복을 입지 않잖은가? B-29가 등장하기 전 유럽전선을 종횡무진 휩쓸고 다니던 B-17을 보면, 두꺼운 가죽점퍼에 입에는 산소마스크를 착용한다. 그러나 B-29 조종사나 승무원들을 보면 평상복 차림에 여유로운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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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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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9


오늘날 여객기의 경우 통상 기내 1만 미터 상공이라면, 해발 1,500~2,000미터에서 느낄 수 있는 0.8기압의 영향을 신체가 받는다(비행기 안에서 귀가 먹먹해지는 경험 해보지 않았나?).


간단히 설명하면, 기압은 고도가 높아질수록 낮아진다. 사람은 인체에 맞는 대기압(1기압)에 맞는 기압을 유지하지 못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이를 막기 위해 여객기 내에는 공기 압축장치를 통해 콤프레셔를 통해 기압을 맞춰주고 산소를 공급해준다.


B-29는 여압장치가 달려 있었고, 이 덕분에 더 높은 고도에서 ‘쾌적한 폭격’을 할 수 있었다. 당시 일본인들은 B-29의 승무원들이 제대로 된 항공복을 착용하지 않고 비행하는 걸 보며, 미국이 물자부족으로 조종사와 항공병에게 항공복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선전했지만 말이다...


B-29가 일본 상공에 등장했다. 그리고 1945년 2월 대일(對日) 폭격을 책임지는 제21폭격기 사령부 사령관으로 커티스 르메이가 취임했다.


"무고한 민간인은 없다(There are no innocent civilians)."


란 말로 유명한 커티스 르메이. 베트남전 당시 베트남을 폭격해 석기 시대로 돌려놔야 한다는 주장으로 주변을 아연실색케 했던 ‘인간백정’이 등장한 거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효과 없는 고고도 폭격 대신 저고도 폭격을 명령한다(당시 고고도 폭격의 명중률은 2%에 불과했다). 아울러 폭탄의 종류도 바꿨다. 일본의 주택이 주로 나무로 만들어졌다는 것에 착안해 폭격기에 소이탄을 가득 채워서 날렸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결과가 도쿄 대공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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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3월 9일.


사이판과 티이안 섬에서 344기의 B-29가 날아올랐다. 이들은 총 2,400여톤의 소이탄을 도쿄에 떨어뜨렸는데, 이때 당시 B-29들은 한 발이라도 더 많은 폭탄을 장착하기 위해 방어기총을 떼어내고 탄약도 덜어냈다.


이들은 도쿄 시내 8,500여곳에 골고루 폭탄을 떨어뜨렸고, 그 결과 12만 명의 사망자(일부에선 19만7천명이란 주장도 있다)가 발생했고, 가옥 25만 동이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지옥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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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러일전쟁]


2부

드레드노트의 탄생

1차 세계대전, 뒤바뀐 국제정치의 주도권

일본의 데모크라시(デモクラシー)

최악의 대통령, 최고의 조약을 성사시키다

각자의 계산1

8년 의 회, 던 축 

일본은 어떻게 실패했나2

만주국, 어떻게 탄생했나



외전

군사 역사상 가장 멍청한 짓

2차대전의 불씨

그리고, 히틀러

실패한 외교, 히틀러를 완성시키다

국제정치의 본질



3부

태평양 전쟁의 씨앗1

태평양 전쟁의 씨앗2

도조 히데키, 그리고 또 하나의 괴물

일본을 늪에 빠트린 4명의 '미친놈'

대륙의 각성완료, 다급해진 일본

대동아(大東亞)의 환상에 눈 먼 일본

일본, 건드리지 말아야 할 걸 건드렸다 1

일본, 건드리지 말아야 할 걸 건드렸다 2

일본의 패배

일소중립조약이 파기되던 순간 1

일소중립조약이 파기되던 순간 2

천조국, 움직이다



4부

왜 일본은 미국과 전쟁을 하려고 했을까

신성불가침으로 만들어진 권력, 덴노(天皇)

일본의 반인반신, 덴노(天皇)의 오판과 태평양 전쟁

미국과 일본의 외교와 태평양 전쟁

정신력으로 전쟁을 결정한 일본

미국의 최후통첩, 헐노트(Hull Note)

진주만 공습, 두고두고 욕먹는 이유

인류 역사상 가장 병신같은 선전포고

미국, 2차대전에 뛰어들다

전통이란 이름의 살인, '무사도(武士道)'

맥아더의 오만, 태평양전쟁 필리핀 전장

일본, 필리핀의 물가를 100배로 만들다

미국과 일본이 필리핀을 이용한 방식

전쟁은 돈으로 하는 것이다

자살특공대 가미카제(神風)의 등장

일본의 비명이 종말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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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더가 디비주는 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


괴물로 변해가는 일본

조약, 테이블 위의 전쟁

러시아 vs 일본 한반도에서 만나다






펜더


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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