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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프가 지붕(혹은 벽)을 뚫는 일은 X소 음반판매량 집계 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며칠 전 퍼진 한 연구결과가 편견 아닌 편견을 와장창 부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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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환경연대, 김만구 강원대 교수의 ‘여성건강을 위한 안전한 월경용품 토론회’ 발표)

...?


'여성환경연대와 강원대 연구팀이 총 10종의 생리대의 유해성분을 조사했고, F사의 팬티라이너에서 매우 높은 수치의 총휘발성유기화합물(TVOC)가 나왔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F사의 팬티라이너는 릴리안 팬티라이너로 밝혀졌다.


생리대를 대량구매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참이었다. 무슨 제품을 샀더라, 하고 고민하는 건 길지 않았다. 나는 확실히 그걸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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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릴리안...


어떻게 확신할 수 있었냐면, 주로 릴리안을 사기 때문이다. 생리대 자체 향이 강해서(파우더향이랄지) 생리냄새를 가려주기도 하고, 어디를 가든 할인 행사를 했다. 생리대가 워낙 비싸고, ‘유기농’ 같은 글자가 붙은 건 더할 나위 없이 비싸니, '상대적으로 저렴한' 릴리안을 살 수밖에 없었다. 눈앞의 지갑을 보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다. 나아가 ‘이렇게 합리적인 가격인데 안 사고 배긴단 말이야?’라며 자기최면을 걸며 흐뭇해하기도 한다. 물론 흐뭇함 그 어디에도 ‘유해물질(TVOC. 총휘발성유기화합물)’은 없었지만서도...
*“TVOC는 1급 발암물질 등이 포함된 휘발성유기화합물질을 통칭하는 것이다. 흡입됐을 때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적정 기준치가 설정돼 있는데, 피부에 노출됐을 때도 흡수될 수 있다(링크)

*현재 식약처 품질관리기준 항목엔 유기화합물(TVOC) 유무가 없음. 폼알데하이드, 색소, 형광물질, 산·알칼리에 한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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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건강 이상도 없었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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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터진 후 “릴리안 있니?”라는 질문에 흔한 친구의 대답.

생리기간이 짧아진 게 내 몸의 문제인 줄만 알았고...



깨끗한나라의 안 깨끗한 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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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깨끗한나라(릴리안을 만든 회사)가 처음 낸 공식입장은 사과가 아닌 ‘우리 제품 안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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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사용자들이 깨끗한나라에 '출혈량이 줄었다'며 한 환불요청에 이렇게 대답한 적도 있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권고에 맞춰 생산되기 때문에 문제가 없고 출혈량이 줄어든 것은 확인 불가능한 주관적인 문제" "의사에게 생리대 때문에 생긴 문제라는 소견서를 받아오면 환불해주겠다"(링크))


25일에는 ‘접착제는 안전하다’고 주장했으며(릴리안 생리대 전 제품에 원료로 사용된‘스틸렌부타디엔공중합체’가 UN의 유해 화학물질 시스템 GHS에 의해 발암물질로 분류돼 있다는 주장과 관련, “인체에 전혀 해가 없다”고 밝혔다(링크)), 28일에는 여성환경연대와 김만구 교수팀에게 ‘(다른 제품에서도 유해물질이 나왔는데) 릴리안만 이름을 공개한 이유를 밝히라(링크)’고 요구하기도 했다적반하장잼. 현재 홈페이지엔 “강원대 김만구 교수 실험결과는 상세한 시험방법 및 내용이 없고. 연구자간 상호 객관적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아 과학적으로 신뢰하기 어렵다”는 식약처의 의견을 크게 실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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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욕을 바가지로 먹어서인듯) 8월 23일 환불을 하겠다고 발표한다(환불시작은 8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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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럭시노트7 사태 때 이재용이 썼던 사과문을 참고한 뒤 다시 써오도록...


“저희는 우선적으로 제품과 제기되는 부작용과의 인과관계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이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함께 조사 결과가 나오기에 앞서 먼저 고객 여러분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이를 반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기업의 책임 있는 행동이라고 판단하여 환불 조치를 실시하고자 합니다.”


...? 애초에 책임 있는 기업이라면 그런 물질은 쓰면 안 되는 거 아니니? 우리는 잘못이 없는데 원성이 자자하니 사과하는 척 하면서 (푼)돈이라도 돌려주겠다는 말 잘 들었다.


깨끗한나라는 환불이 구국의 결단인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상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환불은 절대로 이 사태의 해결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용하지 않은’ 생리대에 대해 환불조치를 하면 이미 사용한 생리대에 있었을 유해물질이 사라지나, 아님 유해물질로 인해 생겼을 지도 모르는 신체적인 문제가 없어지나. 없어지는 건 화장실 서랍장의 릴리안 생리대와 깨끗한나라에 대한 신뢰, 그리고 산부인과 진료비(생식기에 무슨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르니) 뿐인데, 뭔 놈의 환불. 환불은 부가적이면서도 당연한 수순이다.


누구를 그지로 보는지 환불단가 또한 성의라곤 1도 없다. (한국소비자원은 단가에 대해 '자발적 환불인 만큼 법적 문제는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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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한 생리대에 대한 환불은 없다.


팬티라이너: 95원~105원
소형: 130원~215원
중형: 150원~245원
대형: 170원~280원
오버나이트: 265원~355원


한국소비자원 참가격 정보서비스에 따르면 우리나라 생리대의 낱개당 가격은 331원이다. 릴리안의 환불단가 중 생리대 평균 가격인 331원에 미치는 건 오버나이트 하나 밖에 없다. 오버나이트가 생리대 중에 가장 비싼 제품이라는 것, 개당 779원(위스퍼 코스모 울트라 날개. 8/29 서울 소재 이마트 기준)에 팔리는 오버나이트도 있다고 생각하면 도저히 '환불'단가라고는 볼 수 없는 수준이다.


깨끗한나라는


“환불 단가는 릴리안 공식 온라인몰 판매 가격을 기준으로 했으며 일각에서 주장하는 원가는 아니다.”


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저 가격으로 생리대 살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말해줘라. 마트에서 덤핑 세일 할 때 아주 저가 라인의 생리대나 살 수 있을까. 아님 유통기한 임박 상품. 언제부터 ‘소비자가’ 혹은 ‘판매가’가 마트 세일 가격에도 못 미치게 되었을까? 물건이 가장 비싸다는 백화점에서 릴리안을 구매한 사람도 있을 텐데 구매가의 1/2이나 보상받을는지 모르겠다.


“해외에서 판매되는 생리대 가격은 우리보다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다. 생리대 1개당 일본은 181원, 미국은 181원, 덴마크는 156원, 캐나다는 202원, 프랑스는 218원으로 조사됐다. 우리나라보다 적게는 113원, 많게는 150원 싸다.”

<The scoop>


환불해줄 때만 OECD를 따르기로 한 것이 아닌 이상...



살 때는 네 맘대로였겠지만 환불할 땐 아니란다


라고 해도 결국 환불을 받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릴리안이라면 꼴뵈기도 싫다던가 꼴뵈기도 싫다던가 꼴뵈기도 싫다는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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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스러운 마음으로 한다는 환불절차는 다음과 같다.


① 릴리안 인터넷 웹사이트 및 고객지원센터 통한 환불 접수
② 택배사의 제품 수거 (택배비는 깨끗한나라 부담)
③ 회수 수량 확인
④ 환불절차 종료 후 고객 등록 계좌로 일괄 환불
⑤ 환불 완료 문자 전송 안내


택배회수 외의 환불은 불가능하다. 말이 ‘환불’이지 물건에 하자가 있는 것이므로 무조건 리콜에 가까운데도 불편한 절차를 걸쳐야 한다. 고객변심환불이야 뭐야... 고객변심환불과 다른 건 영수증이 없어도 된다는 것, 구매 시기 상관없다는 것, 개봉상품도 가능하다는 것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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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점에서는 영수증 지참, 미개봉 상품에 한해서 환불이 가능합니다."

우리 동네 백화점에서는 해주지만 '고객변심환불' 수준. 이런 안내문이 붙어있는 곳 조차 거의 없다.


그럼 환불을 시작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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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구매하면 2.47kg의 생리대를 환불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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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상단부터)
팬티라이너(릴리안): 45개 (70개 중 45개 남음)
소형(초흡수): 72개 (18개입x4통)
중형(초흡수): 48개 (16개입x3통)
대형(초흡수): 36개 (14개입x2통+낱개8개)
오버나이트1(릴리안): 21개 (14개입x1+낱개7개)
오버나이트2(숨쉬다): 12개 (12개입x1)


개봉여부와 상관없이 낱개로 계산하나 숫자는 꼭 잘 세어주어야 한다. ‘환불신청 시 주의사항’에 이렇게 나와있다.


“신청한 수량과 회수한 수량이 다를 경우, 환불금액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손가락발가락이 모자라면 계산기를 쓰라는 건데, 틀린 말은 아니다. 필요한 절차인 것도 맞다. 1개 샀는데 10개 샀다고 소비자가 거짓말을 하면 어떻게 하나. 분명 악용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라고 소비자는 못 믿겠지만 절대 깨끗한나라 제품엔 나쁜 물질 따위는 있지 않고 환불단가도 원가가 아닌 판매가가 맞다. 암튼 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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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5kg의 생리대들을 환불하면 43,455원을 돌려받을 수 있다. 생리대의 용도를 무시하고 단순계산하면 234개를 ‘환불’해 받는 가격이다.


“우리나라 생리대의 낱개당 가격은 331원으로 조사됐다. 이를 한달 평균 사용량(40개)에 대입하면 약 1만3240원이다. 1년(480개)으로 환산하면 15만8880원에 이른다.”

<The scoop>


43,455원을 234개로 나누면 약 185원이 나오고, 여기에 1년 사용량 480개를 곱하면 89,000원 정도가 된다. 이래도 원가가 아니라고 할 셈이냐고 진짜 1년치 생리대가 이 가격이었으면 손녀딸을 안고 펄쩍펄쩍 뛸 것이다. ㅅㅂ


생리대 파악이 다 되었으면 본격적으로 환불절차를 밟는다. 릴리안 사이트(http://www.thelilian.com/)에 접속한 뒤, ‘회수 및 환불신청 바로가기’를 누르면 이런 화면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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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정보, 계좌정보, 구입정보(는 선택) 등을 입력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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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정보를 입력한다. 제품을 하나하나 선택한 뒤 ‘제품 추가’를 누르면 계속해서 추가할 수 있다. 친절하게 예상 환불금액까지 알려준다. 나는 위에서 나왔던 것처럼 43,455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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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 제공은 아무래도 옵션


밑에는 반송정보가 있는데, 주의할 점은 ‘박스에 포장’을 한 제품만 수거가 된다는 거다. 박스에 담지 않으면 무효니 알맞은 크기의 박스가 없다면 재활용 버리는 날을 노려 하나 구해오거나 작디작은 박스에 제품을 한 개씩 보내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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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박스에 예쁘게 싸야지 된다.


신청을 마치고 나면 '7일 안에 택배사에서 제품을 수거하러 온다'는 알림이 뜬다. ‘우리 제품 안전하다’고 말하는 기세처럼 환불도 당장 내일 해줄 것 같지만,


“환불 진행은 10월 1일 ~ 12월 31일까지 확인 순서에 따라 순차적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라고 하니 연말까지 용돈 받는 심정으로 얌전히 기다리는 게 좋겠다. 인간적으로 세금이나 송금수수료는 떼지 말아줬으면...



당연한 것을 하지 않은 결과


앞서 나온, 깨끗한나라가 부정하지 못해 난리인 여성환경연대와 김만구 강원대 교수의 발표에 따르면, (릴리안을 포함한) 조사대상이었던 총 10개의 생리대 모두에서 휘발성유기화합물(TVOC)가 나왔다고 한다. 거기다 다른 생리대는 다른 발암물질로 1등을 먹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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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A사가 릴리안 팬티라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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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유해물질에서 1등 경쟁 중인 타 회사들.


“1,2,3 트리메틸벤젠과 1,3,5 트리메틸벤젠은 C사 생리대 제품들에서 가장 많이 나왔고, 톨루엔과 에틸벤젠은 B사 제품에서 가장 많이 검출됐습니다. 독성이 강한 벤젠의 경우엔 TVOC양이 가장 많은 릴리안 제품에선 발견되지 않았지만 B사와 D사의 경우엔 아주 적은 양이지만 나왔습니다.“ 

<JTBC>


참고로 조사대상이 된 건 "깨끗한나라와 유한킴벌리, LG유니참, 한국P&G 등 판매량이 많은 4개 회사(링크)"다.
*국내 생리대 시장점유율: 유한킴벌리(57%), LG유니참(21%), 깨끗한나라(9%), 한국P&G(8%) 순. (출처: 심상정 의원실)


여성용품을 파는 회사가 여성을 얼마나 쉽게 알았는지와 그동안 식약처가 얼마나 안일했는지를 감동적일 정도로 잘 알겠다.


예의 발표가 있었던 '여성건강을 위한 안전한 월경용품 토론회'는 다음과 같이 끝을 맺는다.


여성용품 안전성 관리를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면, NGO-정부(식약처)-기업 간 협의체를 구성, 함께 연구하여 합리적인 기준을 제정할 것을 제안하는 바입니다.


(중략)


[제안사항]
1) 생리대 안전선 공동 모니터링 상설화(중국, 일본 등 수입품 포함)
2) 보다 명확한 안전기준 마련을 위한 기업 간담회 및 공동 협의체 구성
3)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정기적인 생리대 안전성 시험 및 공동연구 시행
4) 생리대 전 성분의 점진적 공개를 위한 공동 노력


<여성건강을 위한 월경용품 토론회 자료집> 47p 中


매우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아무도 이 '당연한 이야기'를 실현해오지 않았다는 거다. 식약처가 가이드라인을 주지 않는데 회사가 나서서 단가가 많이 들면서도 여성의 몸에 전혀 문제가 없는 제품을 만들 리가 없지 않나(그래도 유해물질을 나오는 건 너무 심하지 않냐). '생리대 점유율 1~4위 회사의 제품 모두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된 것은 당연한 이야기를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모든 이들이 만들어낸 결과일 뿐이다.


이 사태가 "깨끗한나라를 비롯한 생리대 회사들 나쁜 놈이다" 혹은 업계에 대한 간단한 제제 정도로 끝나버린다면 비슷한 일은 몇 번이고 벌어질 것이다. 언제 어떻게 또 다른 유해물질이 검출될 지 모르며, 해당 회사는 환불을 대대적인 선처인 척 해주며 마무리를 지으려 할 것이다. 인구의 절반이 40년 가까이를 써야 하는 필수품에 대한 '대접', 이 기회를 삼아 바뀌어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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