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철지난 구매기


지난달 11일이었던가요. 국순당의 주도인지 CU편의점의 주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인터넷의 여러 신문 매체에 신상 주류에 대한 홍보자료가 쫘~악 풀렸습니다. 이름은 막걸리카노. 14일이 출시 예정일이었습니다.


망작 혹은 괴작이 예상되는 술들에 대한 개인적인 호기심, 그리고 모 암살자의 사주가 더해져서 '이것은 마셔봐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 출시일을 기점으로 서식지 주변의 CU편의점을 털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막걸리카노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이 어려움들이 소비자 권익을 지키고자 하는 주변 편의점 점주님들의 배려였음을 이제서야 깨닫게 되는군요. 어쨌든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고 한참의 시간이 흘러 지난 4일에야 발주를 부탁해 두었던 편의점에서 획득할 수 있었습지요. 지갑에서 돈을 꺼내 계산을 마치던 마지막 순간, 술 하나를 사고자 더워 뒤질 8월 한가운데를 헤메던 저에게 부끄럽지 않을 제품이길 기도하였습니다.


돌아보면 대략 20여 개의 편의점에 50여 회를 방문한 것 같습니다. 제 몫으로 남아있던 1년치 편의점 방문권을 지난 20여일간 모두 소모한 느낌이네요. 금연을 시작한 이래로 이렇게도 많은 편의점에 많은 횟수를 방문한 해는 없었는데 말이지요.


Edm229v20170816.png



철지난 이야기


회사명보다 "백세주"라는 대표 상품으로 더 잘 알려진 국순당에서는기본적인 형태의 막걸리로 "옛날 막걸리 古"나 "국순당 생막걸리", "대박" 같은 제품들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사실 막걸리에 '무언가'를 섞은 제품들이 그리 새롭지만은 않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국순당에서는 기묘한 맛이 조합된-자몽, 청포도, 소다맛의 "아이싱"이라던가 복숭아막걸리, 바나나막걸리, 치즈막걸리로 이어지는 3연괴작 - 막걸리를 통해 나름의 변태성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우리 술'의 전통적인 모습을 중시하던 우리술 업체치고는 상당히 신선한 행보였습니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막걸리가 갖고 있는 '장년, 노년층이 소비하는 술'이라는 이미지로 인해 소비 시장이 확장되지 못하는 점을 극복하고자 20~30대도 즐길 수 있는 막걸리를 만들자는 주장이 국순당 수뇌부의 마음을 강타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한 전차로 이번 신작인 막걸리카노의 등장은 저에게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았습니다. 국순당의 지난 3연괴작 때 이러다 커피맛 막걸리나 초코맛 막걸리가 곧 나오겠구나 예상한 적이 있을 정도니까요. 글을 쓰다보니 생각난 게 '그리 신선한 떡밥이 아닌데 왜 이것을 글로 적고 있는 것인가'인데 역시 모 암살자의 협박이 원인이 아닌가 싶긴합니다.


"저것은 막걸리가 아니다!"라며 '막걸리 순수령'의 제정을 외치는 일부 세력들에게 적당히 욕도 들어먹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다양성을 꾀하는 이러한 행보들에 마땅히 동의하고 칭찬하며 응원하는 바입니다. 누군가가 다양한 욕망을 충족시켜 줄, 어쩌면 변태성 가득한 제품들을 만들어 낸다면 다른 누군가는 전통의 모습을 고이 간직한 깊이 있는 막걸리를 만들면 되는 것 아닐까요. 물론 그게 "맛있어"야 한다는 절대조건에 도달한 다음의 논의겠습니다만 말입니다.



철지난 리뷰


이름

막걸리카노


막걸리+아메리카노의 단순한 작명센스지만 막걸리가 갖고 있는 촌스러운? 이미지 때문인지 방언의 어미로 자주 사용되는 '~라카노'가 떠오릅니다. 이름을 만들 때 이런 생각을 못하고 지나치진 않았을 것 같으니 어쩌면 중의적인 이미지를 노렸을지도 모르겠구나는 생각을 해봅니다. 단순하면서도 각인되기 쉬운 이름이라 나름 잘 지었구나 싶네요.


alc 4%. 용량 350ml. 캔용기. 가격 1500원. 유통기한 1년, 카페인 103mg

유통기한을 보면 짐작하시겠지만 제품유형은 살균탁주입니다. 일반적인 막걸리들이 6%의 알콜을 갖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평균보다 약간 낮은 수치입니다. 그리고 용기는 캔. 적은 용량, 낮은 도수, 휴대성이 좋은 용기, 그리고 충성도 높은 기호 식품인 커피까지. 20~30대의 젊은 소비자를 고려한, 접근성이 매우 뛰어난 제품을 만들고자 했음을 짐작케합니다.


내용물을 보다 뭔가 어색해 보여서 자세히 보니 캔 자체에 인쇄를 한 것이 아니라 페트재질에 인쇄를 하고 그것을 랩핑한 점을 찾을 수 있었는데요 제작단가를 낮추기 위한 선택 혹은 단기 생산, 소량 생산을 계획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200304573.JPG


번외로 오마이뉴스에서 고카페인 -사실 카페인 함량 103mg이라는 게 어느정도의 고카페인인지는 감도 오지 않지만- 을 문제삼은 기사를 내서 국순당측에서 해명자료를 내기도 했습니다. 1군 발암물질 가득한 '술'이라는 음료를 마시면서 '고카페인 이거 건강에 안 좋은 거 아니야?'라는 질문을 하는 것도 어쩐지 미안하고 어색한 모양새긴 하지만 어쨌든 나이트캡 용도로 쓰기엔 부적절할 것 같습니다. 극한의 취향을 견뎌낼 수 있다면 클럽에 입장하기전에 한 캔 쪽 빠시고 둠칫둠칫 비트에 심장박동을 맞춰보는 용도로 사용해 볼만 할지도요.



200304574.JPG


외형

막걸리의 탁함과 커피의 갈색이 적절히 보기싫게 어우러진 색의 모습. 모든 술을 잔에 따라서 마시는 성향이지만 이건 그냥 캔째로 마시는 게 시각적으로 옳지 않을까 싶습니다.


막걸리의 쿰쿰함이 20%. 빵에서 느껴질법한 곡물향 20%. 캔커피의 커피+초코스런 달짝달짝한 향이 60%. 아메리카노의 깊고 고소한, 마음이 따뜻해지는 향을 기대했지만 그런 것은 조금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막걸리카노라는 그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마땅히 막걸리의 맛과 아메리카노의 맛이 어딘가에서 만나 섞여들어가는 그림을 상상하며 마셔봅시다. 입안 절반정도를 채울 양을 가볍게 밀어넣고 천천히 느껴봅니다. 막걸리를 베이스로 한 것치곤 생각보다 가벼운 느낌의 물질이 입안을 한바퀴 돌고 혓바닥에서는 막걸리의 느낌보다는 탄산음료에 가까운 모양새의 약한 탄산감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게 뭘까요......?


막걸리의 시큼털털한 맛이 20%. 캔커피 레쓰비에 맥콜을 살짝 섞은 게 아닌가 싶은 기묘한 맛이 80%쯤 되겠습니다...


"생쌀을 곱게 갈아 7일간 발효하여 더욱 깔끔하고 부드러워진 막걸리와 MULTI-STAGE SPRAY DRIED공법으로 만들어진 깊고 풍부한 로스팅 커피와의 블렌딩으로 완벽하게 균형 잡힌 풍미와 입안 가득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커피막걸리입니다." - 막걸리카노 제품 설명중


위 문구를 생각해내야 했던 직원분이 누구실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엄청나게 고민하셨을 것 같습니다. 이런 말도 안되는 문구를 뽑아내야 하는 자신의 모습에 얼마나 자괴감을 느끼셨을는지요. 고생하셨습니다.


'아메리카노'라는 음료에 대한 제 편견이 부른 참사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술 어디에서 아메리카노의 캐릭터를 찾아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보통은 레쓰비같은 방향성의 캔커피 음료를 아메리카노라고 부르지는 않는 것 같은데 말이지요. 그리고 막걸리의 캐릭터를 찾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냥 바닥에 깔린 막걸리맛 약간에(그마저도 막걸리+커피인 음료임을 알고 있기에 느꼈을 법한) 단맛이 과한 캔커피를 왕창 부어놓은 맛 같습니다.


어쩐지 캔커피에 소주를 약간 타고 맥콜을 조금 부어도 비슷한 맛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물론 실제로 만들어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술에서 느껴지는 단맛도 막걸리에서 느낄 수 있는 곡물스런 단맛이 아니라 단맛 가득 캔커피나 시럽에서나 느낄법한 그냥, 저스트 단맛입니다. 기분이 좋아지는 단맛과 기분이 나빠지는 단맛 중 어느쪽이냐면 후자쪽에 가깝다 하겠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을 꼽자면 단맛이 과도한 것치고는 끈적거리지 않았다는 점 정도일까요. 나름 시음하겠다고 두 개나 샀는데 ㅅㅂ


이도저도 아닌 괴작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막걸리의 맛은 죽었고 아메리카노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무런 기대없이 그냥 캔커피 맛의 RTD음료라고 생각한다면 그럭저럭 단맛만으로도 넘길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국순당이고 그래도 막걸리인데... 국순당의 3연괴작 중 가장 별로였던 치즈막걸리보다 더 실망스러웠습니다. 치즈막걸리는 '아 이거 막걸리구나'라는 생각이라도 들었다면, 이건 '뭐지...?'싶을 뿐입니다. 한 모금만을 마시고 하수구나 변기에 흘려보냈다는 후기들을 몇번 접하였기에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마음을 다잡았던 것이 그나마 끝까지 마실 수 있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20766225_108696893181680_947770476157992960_n.jpg



마치며

'옛날 막걸리 古'를 만들어낼 정도로 탄탄한 기본기를 갖춘 국순당이 왜 이런 걸 만들어냈을까 궁금해집니다. 기획과 상상이 현실을 뛰어 넘어버린 결과물일까요? 막걸리라는 점은 중요치 않고 그냥 팔릴 법한 무언가를 만들려고 했던 걸까요? 직원분들도 나름 술잘알일 텐데, 완성품을 만들고 모니터링을 했을 터인데 이것이 우리 앞에 현실로 존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막걸리 시장확대를 위한 노력들은 항상 감사하고 존경하는 바입니다만, 이왕 할 거면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어주길 바랄 뿐입니다.


제품을 기획한 직원분은 회사에 남을 수 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다음 가을의 초입에 이 술을 다시 구할 수 있을까요? 알 것... 아, 아니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술을 맛 볼 때면 이 술을 다른 누군가에게 추천할 수 있을 것인가, 추천 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곁들일 것인가 고민해 보는데요. 이 술은 추천할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다행입니다. 막걸리도 마시고 싶고 커피도 마시고 싶으신데 주머니에 어째서인지 1500원이 있다구요? 그래서 꼭 막걸리카노를 마셔야겠다구요? 유니세프는 너님의 후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p.s.

언제나처럼 제품 구매에 도움을 준 제 지갑에게 감사드립니다.


제 주문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발주를 해주신 점주님께 감사와 사죄의 인사를 전합니다.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남은 제품들이 언젠가 다 팔리길 기도하겠습니다.





지난 기사


IPA

밀맥주

Trappist

대동강맥주

Pilsner

한국 맥주 디벼보기

stout

Kölsch

부엉이 맥주

오비,그리고 소독약 냄새 맥주

자연 발효 맥주

'더 프리미어 OB' 시음

희석식 소주에 대한 이야기

세븐브로이 M&W 그리고 사이더

Be High, Hug Me, All New Max

뉴비, 오비 바이젠 시음기

국민막걸리 K, 오비둥켈, 카스 비추

임페리얼 스타우트 맥주 

세션 비어(Session Beer)

클라우드 마일드

호가든 유자, 과르네리 6종, 강서에일

어떤 맥주에 관련된 이야기

필리이트(FiLite)





Anyone


편집 : 꾸물

Profile
데굴데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