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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름에는 비어가든


맥주는 세계 각국에 많은 애호가가 있는 술로, 한국에서도 널리 사랑받는 주류 중 하나죠. 오비, 하이트, 롯데 3대 제조사뿐 아니라 요즘에는 수입맥주 소비도 늘어나고 있고 수제맥주 시장도 활발하다고 들었습니다. 일본 역시 한국 못지않게 맥주를 좋아합니다. 회식 자리에서 술을 처음 주문할 때 맥주를 안 시키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인데, 여름이면 "비어가든"에서 한잔하는 것도 일본인들이 맥주를 즐기는 전형적 스타일입니다.


비어가든이라 함은 여름철에 백화점 건물 옥상 등에 개설되는 옥외형 술집입니다. 요즘에는 집집마다 제공하는 요리나 안주도 다양화되고 콘셉트도 다채롭습니다. 아름다운 야경을 즐길 수 있는 야경 비어가든이나 잔디밭 위에 테이블을 배치한 정원 비어가든, 고급스러움을 내세우는 고급형 비어가든 등등 취향에 따라 많은 종류의 비어가든을 즐길 수 있습니다. 필자도 여름만 되면 한번씩은 비어가든을 찾는 편인데 지갑 사정을 고려해 되도록이면 일정 금액을 내고 일정 시간 동안 마실 수 있는 무한리필 방식을 선호합니다(가격대는 2시간에 한국 돈으로 30,000원에서 50,000원 가량. 가게에 따라 먹을 거리도 무한리필에 포함됩니다).



케모노프렌즈 가든에서 생맥 무한리필. 앞쪽의 요리는 _서발 오무소 幸�.jpeg


그런데 올 여름에 가 봤던 비어가든은 좀 이색적이었습니다. 도쿄 이케부쿠로에 있는 그 비어가든은 이름하여 "케모노프렌즈 가든". 아는 분도 있겠지만 케모노프렌즈란 지금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끄는 애니인데, "케모노"는 "짐승"을 뜻하는 일본말입니다. 애니는 "자파리파크"라 불리는 가공의 공간(인류 멸망 후의 지구처럼 보임)을 무대로 유일한 인간으로 등장하는 "가방짱"이 젊은 아가씨로 의인화된 짐승인 "프렌즈"들과 우정을 키우면서 지(知)의 결집체인 "도서관"을 향해 여행하는 스토리입니다. 재미있는 스토리와 귀여운 캐릭터가 맞물려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는 케모노프렌즈는 각종 관련 상품은 물론 편의점의 판촉 행사나 동물원과의 콜라보 행사 등에도 등장했고 지금도 전국 각지에서 관련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필자가 이번에 가본 케모노프렌즈 가든은 그런 콜라보 기획의 하나로, 비어가든이 케모노프렌즈 콘셉트로 꾸며진 것입니다. 이런 콜라보 기획 가든은 일반 비어가든과 비교해서 가격이 훨씬 더 비싸기 마련인데, 필자가 간 케모노프렌즈 가든의 입장료는 3,000엔(약 3만원)이고 맥주를 1시간 반 무한리필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의 무한리필의 시세를 아는 분에게는 약간 비싸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먼저 케모노프렌즈 가든에 입장하기 위한 티켓 값 3,000엔에 500엔 상당의 푸드 교환권이 2장 포함됐었습니다(총 1,000엔 분). 푸드 메뉴는 크게 1,000엔 짜리와 500엔 짜리로 나뉘어져 있고, 1,000엔 짜리 중에는 양이 적은 분들에게 식사가 될만한 메뉴도 있었습니다. 500엔 짜리 메뉴는 안주 거리 정도인데 맛은 좋아 보였습니다.


케모노프렌즈 가든이 입장료를 적절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두 번째 비법은 손님 스스로 맥주를 따르는 셀프 서비스 방식을 취했던 데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무한리필 2시간 하면, 보통 '종료 30분 전에 마지막 주문'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케모노프렌즈 가든은 셀프 서비스이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조금 여유롭습니다. 게다가 퇴장 시간에서 조금 지났다고 해서 손님들이 마시는 중에 시간 다 됐으니 바로 나가라고 하는 스태프는 없을 겁니다(저희도 10분 가량 초과해서 퇴장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맥주를 많이 마셔서 기억이 희미합니다). 스태프들은 맥주 서빙 대신 서발 차림의 코스프레를 하고 있었고, 저희와 얘기도 잠시 나눴습니다. 그 스태프는 코스프레를 일로 하고 있기는 한데 원래 코스플레이어이며 서벌 차림도 꼭 하고 싶었답니다. 취미와 실익이 잘 맞았는, 덕업일치였던 것 같습니다.



케모로프렌즈 가든은 맥주잔을 씻고 가져갈 수 있음(왼쪽 사진은 _아라시상_, 오른쪽 사진은 _서발_).jpeg



케모노프렌즈 가든이 그리 비싸지 않은 세 번째 이유이자 도쿄 시내로 나가기 싫은 제가 멀리 이케부쿠로까지 간 결정적 이유이기도 한 것은 바로 케모노프렌즈의 주요 캐릭터가 프린트 된 맥주잔을 가져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맥주 제조사 상표(로고)가 붙여진 맥주잔은 공장 견학을 가면 매점에서 판매하고 있고 판촉 증정품으로 나눠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프렌즈 캐릭터가 프린트된 잔은 행사장에 직접 가서야 입수할 수 있는 것이고 나중에 잔만 사려고 해도 하나에 3,000엔 정도 가격은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케모노프렌즈 뿐만 아니라 캐릭터 굿즈는 물건 자체 가치를 훨씬 넘는 가격이 책정되는 것이 일반적이죠). 같이 있던 친구는 "나는 이 맥주잔만을 3,000엔에 팔아도 샀을 것이다"라고까지 했었죠. 필자도 동의합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올 여름 평소와 전혀 다른, 이색적인 비어가든을 즐겼습니다. 참고로 저희가 시킨 푸드 메뉴는 ①서발 오무소바(오무라이스의 라이스 부분이 야키소바가 된 것, 1,000엔 메뉴), ②얼큰 프랑크푸르트 소시지(한국의 양념 치킨보다 덜 달고 비교적 순수 고추 맛이 난 소스가 절묘하게 맛있음, 500엔 메뉴), ③얼큰 치킨 다리 후라이드(튀기기 전에 미리 맵게 양념해 두고 튀기고 나서 흑후추(블랙치킨) 아니면 고추가루(레드치킨)를 뿌린 것, 각 500엔 메뉴)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먹음직스러웠고 가격 대비 만족스러운 메뉴였습니다. 



2. 축제도 있어요


필자는 개인적으로 비어가든의 포인트가 '더운 여름에 옥외에서 마시는 맥주의 시원함'을 즐기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비어가든에서 시원한 맥주를 제공해주기만 하면 충분할 겁니다. 그런데 맥주 애호가 중에는 맥주의 시원함과 함께 그 맛 자체를, 더군다나 여러 가지 맛을 다양하게 즐기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특히 크래프트 비어라고도 불리는 수제맥주는 양조소마다 맛의 개성도 다양하고 뚜렷하기 때문에 맥주의 맛을 즐기고 싶은 사람한테 인기가 많죠. 그러나 판로가 넓지 않아서 새로운 맛을 찾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맥주축제는 맥주 팬들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회입니다. 세계 각국의 유명 브랜드는 물론 일본 각지의 '이름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맛은 괜찮은 수제맥주'가 한 자리에 모이는 자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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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그리 맥주의 맛 자체에 고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수제맥주가 약간 비싸기도 하다 보니 평소에는 수제맥주를 그리 많이 마시는 편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필자도 일년에 한 두번씩 찾아가는 맥주축제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케야키광장 맥주축제(けやきひろば ビール祭り)입니다. 이 맥주축제는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さいたまスーパーアリーナ)에서 해마다 봄과 가을에 열리는데, 올 가을에는 기간이 8월 30일부터 9월 3일까지였고 참여 브랜드 수는 102개였습니다. 세계적으로 봐서 어느 정도 큰 규모인지는 모르겠으나 맥주를 마시고 취하기에는 충분하겠죠. 


이번에는 일본인 친구 1명, 미국인 친구 2명과 함께 마지막 날인 9월 3일에 갔다 왔습니다. 마지막 개최일이자 일요일이었던 만큼 입장 시작 전에 슈퍼 아레나에 도착했는데도 줄이 길었습니다. 입장 시간이 되자 줄은 빠르게 짧아졌고 줄을 선지 20분 정도 지나 아레나 안에 들어갈 수 있었죠. 다만 줄이 그렇게 길게 이어진 만큼 자리(라고 해도 당일에는 앉아 마실 수 있는 자리가 다 예약제였기 때문에 서서 마시기 위한 스탠딩 테이블)를 구하기는 되게 어렵겠다 싶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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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입니다...



입장하자 마자 입구 근처에 있는 자리는 비교적 비어 있었고 필자 일행도 무사히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어차피 서서 먹는데 자리 잡기가 그렇게 중요하냐는 의문을 갖는 분도 있을 텐데 적어도 여러 사람이 같이 있을 때에는 아주 중요합니다. 먼저 아주 다양한 브랜드가 출점하고 있기 때문에 맛을 보고 싶어하는 브랜드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죠. 크나 큰 아레나 안에서 각자 마시는 맥주를 사고 다시 모일 기지가 필요한데 자리는 바로 그 기지 역할을 해 주죠. 또한 짐을 갖고 갔을 경우에는 자리 위 아래에 짐을 놓을 수도 있습나다. 많은 사람이 몰려온 회장에서 짐을 들고 맥주를 손에 들고 하는 상황은 상상하기만 해도 불안하죠. 더구나 맥주 브랜드에 따라서는 그 지방의 맛있는 먹을 거리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상상해 봅시다. 등에 멘 배낭이 다른 사람에게 닿지 않도록 조심조심 군중 속을 지나가는데 한 손에는 그렇지 않아도 맥주가 넘쳐흐를 것같은 컵을 들고 있고 앞에는 일본 모 지방에서 올라온 수제맥주 브랜드가 구수한 바베큐 스테이크 냄새를 물씬 풍기고 있지만 나머지 한 손에는 축제 회장의 지도를 쥐고 있는 상황… 절대로 피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오로지 맥주만 조져서 맥주 감정사 자격(이런 자격증이 실제로 있는지 모르겠지만)을 따려고 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맛이 있는 안주와 함께 맥주를 즐기고 싶어하는 것이 보통이죠. 좁더라도 맥주하고 안주를 놓아 두는 쟁반 역할을 해주는 자리가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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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무사히 자리를 잡을 수 있던 필자 일행은 오전 11시쯤부터 오후 4시쯤까지 넉넉히 수제맥주를 마시고 안주(라고 부르기가 어려운 햄버거를 먹은 친구도 있었음)를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중간에 슈퍼 아레나 근처에 사는 필자의 대학 선배도 참가). 


참고로 축제 기간 중 회장 입구에서 브랜드 배치도(회장 지도)나 전단지를 무료로 나누어 주고 공식 가이드북이나 축제 관련 물품을 판매하기도 합니다. 친구에게 주는 선물 삼아 기념품을 사도 좋겠고 가이드북을 사도 좋겠습니다. 특히 가이드북(정가 300엔 정도이었을 겁니다)에는 출점 브랜드의 다양한 할인 쿠폰이 붙어 있습니다. 맥주를 2, 3잔 정도 마시고 조금이라도 안주를 사 먹을 경우에는 실속도 있고, 할인을 안 해주는 브랜드 중에서는 가이드북을 갖고 있는 손님에게 브랜드 관련 굿즈를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필자는 하와이에서 출점한 "코나 브류잉(Kona Brewing)"에서 코스터를 받았습니다(맥주 구입 필수)). 당일의 기억이 희미해서 나머지 것들은 잘 전해 드릴 수가 없는데 너무나 즐거운 시간이 된 것은 확실합니다.



3. 맥주를 마실 수 없는 세 가지 경우와 “유사맥주”


필자는 비어가든이나 맥주축제가 없어도 날마다 집 안팎에서 열심히 맥주를 마시고 있습니다. 일을 하거나 친구와 놀다 귀가하면 캔맥주를 하나 마시고 휴일에 집근처에서 친구와 점심을 먹을 때면 생맥주로 건배… 이런 식으로 평소에도 맥주를 잘 마시는 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맥주를 마시고 싶어도 마실 수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는 조금이라도 도수가 있는 알콜 음료를 섭취하면 안 되는 경우고, 두 번째는 알콜 섭취는 문제되지 않는데 맥주를 살 수 있는 형편이 아닐 경우, 그리고 세 번째는 넓은 의미로 몸 상태가 맥주를 허용하지 않을 경우입니다. 


알콜 섭취가 아예 안 되는 경우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을 때나 금방 운전을 해야 할 때 등이 있겠죠. 한편 알콜 섭취 자체는 가능하지만 은근히 비싼 맥주를 마시기가 꺼려질 경우에는 맥주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맥주와 거의 비슷한 만족감을 주는 대체 수단이 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몸상태가 맥주를 허용하지 않을 경우에는 통풍에 걸렸다거나 배가 나온 경우를 들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맥주를 먹을 수 없는 상황에 있을 때에는 맥주 같은데 맥주가 아닌, 유사맥주로 욕구를 채울 수 있습니다.

 
아예 알콜을 섭취하지 못할 때에 마실 거리로서는 일단 각종 탄산음료가 있겠죠. 실제로 필자가 한때 같이 어울리던 친구는 "그냥 콜라나 사이다 마시면 되는데"라 말하곤 했었습니다. 어이없는 소리입니다. 그 친구는 맥주를 거의 안 마셨기 때문에 모르겠지만 맥주 애호가라면 맥주가 주는 상쾌감, 시원함, 그리고 콜라나 사이다로 채울 수 없는 맥주의 쓴 맛도 알 것입니다. "주"를 포기해 버린 판에 "맥"까지 내놓으면 어떡합니까. 이런 상황에서 맥주 팬의 구세주가 되어주는 것이 이른바 "논알콜(non-alcoholic) 맥주"입니다.


일본에서는 음주운전에 대한 단속이 강화된 2000년대 초반에 출시됐는데, 논알콜이라면서도 일부 제품은 아주 미량의 알콜 성분이 포함됐었고 맛도 맥주를 대신할 만한 것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한때 논알콜 맥주의 매출은 줄어들었다고 하는데, 알콜 도수가 완전히 제로인 제품이 속속 출시되면서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했답니다. 맥주를 좋아하는 동시에 커피 중독자이기도 한 필자는 애초 술을 마실 수 없을 때에는 늘 커피를 마시기 때문에 논알콜 맥주를 먹을 기회는 딱히 없죠. 논알콜 맥주를 마실 때가 있다면 필자가 차를 몰고 선배들을 회식 자리로 모셔야 할 때나 회식에서 필자를 제외하고 아무도 술을 먹지 않는 경우 정도가 되겠지만, 나이를 먹다 보니 어느새 차를 운전해 주는 후배도 생겼고 술을 마시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회식에 참석하는 것은 과학소설에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맥주를 마시는 것을 아무도 안 막는 상황임에도 맥주를 마시는 것이 꺼려질 때가 있죠. 주된 이유는 다른 주류, 니혼슈(정종)나 쇼추(소주)보다 맥주가 은근히 비싸기 때문입니다. 니혼슈는 슈퍼마켓에 가서 10,000원 정도 주면 700ml 짜리 한병 살 수있고 쇼추는 좀 더 싸게 마실 수 있습니다. 특히 쇼추 같은 경우에는 쇼추에다 다른 음료(뜨거운 물, 우롱차, 각종 탄산음료 등등)를 타고 마실 경우도 많고 그렇게 하면 잔 당 가격은 훨씬 더 낮아지겠죠. 반면에 500ml 짜리 캔맥주는 3,000원을 조금 넘을 정도입니다. 니혼슈나 쇼추가 천천히 마시는 술임을 감안하면 역시 맥주가 약간 바싸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니혼슈나 쇼추는 그 풍미나 입맛이 맥주와 전혀 다르고 니혼슈나 소츄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도 첫 번째 한잔은 맥주로 시원하게 시작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꽤 많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맥주를 마시는 사람도 있고요. 그래서 맥주가 약간 바싸게 느껴지는 상황에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유사맥주입니다.


일본에서는 주세법 상 맥주의 호칭을 사용하려면 재료로 맥아(옥수수나 쌀 등 다른 재료를 섞을 경우 맥아의 1/2 이하), 호프, 물을 쓴 발포성 주류(거품이 일어나는 술)이어야 되는데 이 조건에 해당하게 되면 100ml 당 22엔의 주세를 내야 됩니다. 예를 들어 500ml 짜리 맥주를 300엔 주고 사면 그 3분의 1 정도는 세금이라는 셈이죠(아이러니하게도 한국 국내 편의점에서 수입맥주 4개를 만원에 파는 것이 일반화되면서 일본 맥주는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싸게 마실 수 있게 됐습니다. 물론 맥주는 신선도가 맛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같은 캔맥주라 해도 일본 것은 일본에서 마시는 것이 더 맛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이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억울해서 일본에서 캔맥주를 마실 수 없을 겁니다. 단, 필자는 신토불이 원칙을 따라 웬만하면 숙소 근처에 있는 마트로 가서 하이트 병맥주를 즐겨 마시는 편입니다). 가격표를 보기만 해도 비싸고 주세율을 알게 되면 억울한 일본 맥주인데, 이런 소비자의 마음을 알았는지 다름 아닌 맥주 제조사가 주세법 상 맥주의 정의에 해당하지 않으면서 맥주 같은 맛이 나는 발포성 주류를 제조・판매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요즘에는 한국에서도 잘 알려져 있는 발포주가 바로 그것이죠.


일반 맥주가 500ml 캔 기준으로 300엔 정도라고 치면 발포주는 200엔 전후 가격에 살 수 있습니다. 물론 맥주나 발포주의 가격은 가게마다 차이가 나지만 발포주 가격은 맥주 대비 3분의 2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겁니다. 문제는 맛인데 맥주보다 맥아 사용량이 적다 보니 당연히 맥아가 빚어내는 깊이 있는 쓴 맛은 기대할 수 없지만 처음 한 입의 시원함은 나름 괜찮은 것 같습니다. 아니면 첫번째 한잔은 역시 맥주이어야 한다는 사람도 두 번째부터는 그냥 취하기만 하면 된다는 차원에서, 그리고 맛을 도외시할 수 있으면 발포주가 맥주를 대신해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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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일본에 있는 편의점이나 슈퍼에 가서 맥주 코너에 진열된 다양한 상품을 꼼꼼히 살펴 본 적이 있는 분은 알텐데 유사맥주 상품 중에 맥주도, 발포주도 아닌 '기타 양조주'라든지 '리큐르(リキュール)'라는 표시가 붙은 것을 본 분이 있을 겁니다. 기타 양조주는 맥아가 전혀 함유되지 않은, 바꿔 말해서 맥아 대신 다른 곡물을 재료로 한 것입니다. 그 대표격인 기린(キリン)의 "노도고시 <나마>(のどごし<生>)"는 맥아가 전혀 안 들어 있고 대신 대두단백을 재료로 하고 있습니다. 노도고시는 대략 '음식물이 목을 넘어갈 때의 느낌'이라는 뜻인데 일본 사람들이 맥주에 요구하는 점을 딱 한마디로 표현하는 이름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맥주를 대신하는 상품의 이름으로써 아주 훌륭한 것 같죠. 한편 "리큐르"는 맥아가 들어 있든 아니든 다른 주류가 섞여 있는 술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필자도 종종 마시는 산토리의 "킨무기(金麦)"는 상품명에 나타나듯이 맥아가 상당량 들어 있음에도 소맥 유래의 스피리츠(양조주)가 섞여 있기 때문에 맥주나 발포주로 분류되지 않고 리큐르로 분류되는 것이죠(한국에서도 한때 인기였다가 이제 판매가 시작된 "호로요이(ほろよい)"도 주세법 상 분류는 킨무기와 같은 리큐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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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술을 마셔도 되고 맥주를 살 수 있는 경제력이 있음에도 맥주를 마실 수 없거나 꺼릴 경우가 있습니다. 건강 상태나 체형이 마음에 걸릴 때입니다. 이럴 때면 그냥 술을 안 마시면 된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겠지만 상쾌감의 유혹은 쉽사리 뿌리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각 주류 회사는 통풍이니 비만을 걱정하는 사람을 위해 통풍의 주요 원인 물질로 알려진 프린체나 비만을 유발할 당질을 줄이거나 아예 완전히 제거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필자의 친구도 하루에 2리터씩 맥주를 마시다 통풍에 걸렸는데 지금은 기린의 "탄레이 그린라벨(淡麗グリーンラベル)"을 즐겨 마시고 있답니다. 맥아 함유량이 적은 탄레이 그린라벨은 발포주로 분류되는데 맛도 마실 만하고 당질 70% 오프이자 프린체도 적은 편이죠.


몸에 좋은 것은 맛이 없다는 말을 증명하듯 당질이나 프린체를 뺀 유사맥주는 맥주와 비교하면 맛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익숙해지면 그리 위화감 없이 마실 수 있답니다. 건강이나 체형에 신경쓰는 분은 한번 시도해 볼 만한 것 같습니다. 참고로 맥주 중에 비교적 프린체가 적게 들어간 것은 아사히 슈퍼드라이(한국에서 그냥 "아사히 맥주"라고 부르는 그것)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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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레 히요코


편집 : 딴지일보 인지니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