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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 관람가 / 컬러 / 108분



피하지 마. 어차피 내일도 힘들어 ​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의 <몬스터 콜>은 한국에도 출간된 적 있는 패트릭 네스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포스터부터 일단 호감이 갔었다. 사전정보 없이 한국 개봉용 포스터를 봤을 때 최소한 양심을 지켰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포근한 파스텔 톤의 색감을 가진 따뜻한 괴수 판타지물로 보이는 포스터이지만, 태그라인에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판의 미로>의 제작진이 참여했다고 써 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판의 미로>는 한국 개봉 당시 너무나 발랄한 폰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라는 되도 않은, 무엇보다 원제에 없는 부제를 넣은 바 있다. 이는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부모와 자녀들을 방심하게 만들었고, 홍보에 속아 극장에 찾아온 이들의 정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실제로 <판의 미로> 제작진(정확히는 특수분장팀)이 참여했으니까 포스터 태그라인은 사실을 기록하고자 쓰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와 함께 (해당 작품과 크게 관련은 없으나) <몬스터 콜> 또한 결코 편하게 볼만한 스타일은 아니라고 미리 인지시켜줄 수 있다. 판타지 장르... 이기는 하다, 일단은. 그러나 판타지를 곧 ‘상상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세상에서의 모험’이라고 생각했을 경우, 상당히 당황스러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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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코너(루이스 맥더겔)는 아마 ‘세상에서 가장 힘든 열두 살 소년’이리라. 어머니(펠리시티 존스)는 중병에 걸려 있어 언제 사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고, 함께 살지 않는 아버지(토비 켑벨)는 좋은 친구이지만 부모로서는 대책 없는 인간이다. 코너는 어머니의 건강 악화를 이유로 너무나 싫어하는 할머니(시고니 위버)의 집에 살아야 하는 위기에 처해 있다. 학교생활은 참사 그 자체다. 동급생인 해리(제임스 멜빌) 패거리들에게 구타당하며 사는 게 일상이니 말이다. 위안이 되는 건 어머니에게 배운 그림 그리기 뿐이다.


이런 코너에게 또 하나의 시련이 닥쳐온다. 새벽 12시 7분이 되면 집 창가에서 멀리 보이는 나무가 괴물(리암 니슨)로 변해 찾아온다는 것이다. 나무 괴물은 요구한 적도 없는데 다짜고짜 세 가지 꿈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하더니, 이야기가 끝나면 코너에게서 ‘네가 감추고 있는 꿈’이 하나 있던데 그걸 들어야 쓰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도대체 스스로도 감추고 있는 꿈이 뭔지 모르겠는데, 덩치로 보나 목소리로 보나 말하지 않으면 “아이 윌 파인드 유 앤 킬 유”라고 할 듯 하여 코너는 난처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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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콜>은 판타지 장르답게 시각적으로 특기할만한 구성들이 있다. 일단 나무 괴물이 집을 때려 부수는 등 난동을 피우고, 길지는 않지만 코너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모두 수채화 스타일의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된다. 소위 ‘재미있다’는 작품들이 필수적으로 갖고 있는 ‘혼돈, 파괴, 망가’의 요소가 모두 위에 언급한 장면들에 담겨 있다. 이런 부분들은 모두 코너의 현재 상태를 표현하는 의도로 이용된다. 이 소년이 품고 있는 내면 풍경과 순간순간 변화하는 심리, 계속해서 영향을 끼치는 환경 등. 작품은 전체적으로 어둡고 격정적이다. 어떤 때는 관람 자체가 좀 버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고작 열두 살 소년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데 저렇게까지 어둡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말이다. 성장물에서 기대하는 따뜻함이 모자란 탓에, 보고 있으면 왜 내게 이 지랄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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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하게도 작품은 주인공과 정령/괴물의 관계를, 툭하며 말다툼하고 거부감을 표시하는 쪽으로 묘사하고 있다. 보통 중반부를 넘어가면 이런 티격태격하는 관계가 각자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방향으로 흘러가거나,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거듭나는 방향으로 전환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코너와 나무 괴물은 첫 만남부터 거의 작품이 끝나기 전까지 불편한 관계를 유지한다. 가장 큰 원인은 어머니를 낫게 해줄 존재가 필요하다는 코너의 외침에도 괴물은 아랑곳하지 않고 동화 이야기나 늘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동화 이야기는 본편과 크게 상관없는데다 결말부가 흔히 기대하는 형태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끝나버려 찝찝함을 안긴다. 이런 연출은 기괴하면서도 그 윤곽이 자세히 잡히지 않아 흥미를 가지게 만든다. 괴물이 말해주는 이야기에서 구현되는 세상은 단순히 선과 악으로 구분할 수 없으며, 무조건 낙관적이거나 비관적으로 살 수 없는 미묘함이 있다. 성인이나 되어서 이해할 성질의 미묘함을, 어린 아이에게 말해주고 있으니, 코너만 매번 상대방의 지랄맞은 행동에 괴롭다. 그러나 이 지랄은 나무 괴물이 코너가 자의든 타의든 이미 어른이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저지를 수 있는 행동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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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물게 코너와 괴물이 죽이 잘 맞는 순간이 있다. 코너가 자신을 괴롭힌 해리를 때려눕히거나, 할머니의 물건을 모두 때려 부수는 등 싫어하는 사람에게 폭력적인 행동을 할 때다. 그 때는 괴물이 나타나서 오히려 코너를 부추기거나 고분고분 따른다. 코너의 행동 덕에 괴롭힘을 일삼던 패거리, 손주가 자신을 싫어하는 근원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할머니는 나름의 ‘뜨거운 맛’을 보기도 한다. 말하자면 역지사지. 사자성어로서가 아니라 ‘역으로 지랄해줘야 사람은 지 일인 줄 안다’라는 의미로서 말이다.


하지만 작품은 이런 상황 직후에 어떤 식으로든 코너가 현실에서 불이익을 받는 순간을 보여준다. 교칙에 따라서 불이익을 받는 상황을 피하지 못하며, 할머니의 물건을 부순 날엔 생전 처음으로 그녀가 자신을 향한 살의에 가까운 분노를 표출하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한다. 코너는 상대방에게 생전 처음으로 ‘ㅇㅇ 나 좀 개새끼임’을 인증시키며 감정에 충실해지지만, 동시에 스스로 내린 결정이 불러 오는 결과와 짊어져야 할 무게에 대해서 생각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코너가 스스로도 감당 못 할 가장 날 것의 생각을 입으로 뱉어내는 후반부의 한 장면의 충격이 특히 대단하다. 잔인하고 슬프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후련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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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하면서 처음 느꼈던 불편함이 뭔지를 생각해 봤다. 태그라인에서 인용된 <판의 미로> 때문에 성인 관객에게도 호소력이 강하겠다는 예측은 했었지만, 열두 살짜리 소년의 성장 이야기이니 무조건 따뜻하겠다고 생각한 점이 컸다. <몬스터 콜>은 그런 점에서 굉장히 탁월한 성장물이다. 일단 성장물이라는 장르의 범위를 ‘유년시절’에 한정짓지 않고 더 넓게 받아들여지게끔 한 부분이 있으며, ‘고생 끝에 구원이 온다’는 식의 기약 없는 낙관적 미래를 약속하지 않는다. 작품은 나이와 상관없이 성장은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을 복기시켜 준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희망과 불행은 순서와 예정 없이 찾아오며, 이를 앞에 두고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


작품은 다가오는 미래를 회피하지 않는 태도를 중요하게 여긴다. 구원에 대해서도 소박하다. 이 작품은 슬프고 지칠 때 이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나눌 수 있는 ‘사람의 존재’가 허용된 구원이라며, 그 이상은 허황된 상상일 뿐이니까 바라지도 말라고 말하는 듯하다. 유독 가슴 시리게 와닿은 이유가 있다면, 코너에게 ‘꿈속의 괴물이라는 존재’가 알려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년은 그제야 괴물을 보낼 수 있다. 판타지의 형식을 빌려 이야기를 진행하지만 매 순간순간 현실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성장을 통해 느꼈을 고통의 정서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 정서를 느낄 수 있다면 여전히 정체되지 않고 성장 중인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성장은 연령대와 상관없이 고통스럽게 진행되는 법이니까. 이런 작품이 빛나는 이유는 ‘내가 더 아파하며 자랐다’는 식으로 전국고통자랑을 하지 않고, ‘나도 너와 비슷하게 아파하며 자랐다’고 말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름의 시각효과가 가미된 작품이라 과잉으로 표현될 수 있는 위험이 있었을 텐데 그걸 잘 피해갔다.



<몬스터 콜>은 안타깝게도 현재 다른 작품들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상영되고 있다. 세상에는 상영관을 잡지 못한 작품들이 수십 편이 더 있기에 돋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의외로 이런 류도 생각보다 빨리 사라진다. 대형 멀티플렉스에서 상영될 작품이긴 하지만 중간급 작품들의 비애도 의외로 서글프다. 태생부터 존재감이 약하고, 독립/예술영화관에 걸리겠다고 비벼볼 수도 없다. 조금이라도 큰 화면에서 볼 수 있을 때 보고 오시라. 리암 니슨과 시고니 위버 이름이 눈에 띄어서 보게 될 가능성이 크고, 그들이 명연을 펼친다. 보고 난 뒤 코너 역을 맡은 루이스 맥더겔의 눈빛을 비롯한 모든 연기를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올해 개봉작 중에서도 특히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겠구나 싶을 정도로 좋다. 정말 진심으로 부탁드리는데, 이 작품 극장가에서 사라지기 전에 보러 가시라.



p.s.

1) <몬스터 콜>을 보고 있으면 리암 니슨의 다른 주연작 한 편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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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판 <A특공대>의 한 장면인데, 실제 본편에는 저런 자막이 나오지 않는다. 온라인에서 생성된 ‘짤방’이다. 위 사진 속 리암 니슨이 한 말의 의미는 죽기 싫으면 ‘빨리 재밌는 이야기를 하나 더 하라’는 것이다. '짤방 속의 리암 니슨' 은 재밌지 않으면 총을 쏜다. <몬스터 콜>에서 코너에게 이야기를 들어야겠다는 괴물의 모습에서 이상하게 짤방 속 리암 니슨의 모습이 겹쳐져 보는 내내 의도치 않게 웃었다.




홍준호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