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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걸린 환자들은 몸속에척추자극기 설치하는 수술을 많이 받는다. 신경에 미세한 전기 자극을 주어 심각한 통증 신호를 느끼도록 하는 치료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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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추자극기 삽입 수술을 받은 진훤 씨, 동생 진솔 씨도 이 수술을 받았다


군대에서 사소한 사고로 입은 골절상이 끝내 CRPS 확진된 육진훤(24), 육진솔(23) 형제도 지난 3월과 1월에 수술을 받았다. 형제는 등허리 쪽을 절개해 척추신경자극기 배터리를 삽입하고, 척추 쪽과 옆 쪽까지 절개해서 전선을 연결했다. 평생 몸속에 지니고 있어야 하는 반 영구적인 수술이다.


예상치 못한 충격이 가해지면 수술한 부위의 피부가 찢어질 수도 있고, 척추 쪽에 삽입한척추신경자극기 끊어지거나 망가질 있어 항상 기계장치에 신경을 써야 한다. 어딜 가나 리모컨과 충전기를 가지고 다녀야 한다. 현재까지는 CRPS 치료약이나 수술을 비롯한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아 시술로 통증을 조금이나마 완화시켜주거나 마약류 진통제로 그저 고통을 견뎌내야 한다.


병의 특성상 증상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사지가 불타는 고통이 계속되는 병이라, 장애진단이 내려지기도 어렵다.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장애인 장애등급표에서 정하는 기준 지체장애 기준 △절단장애 △관절장애 △지체기능장애 △변형 등의 장애 어느 항목에도 증상이 부합하는 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뇌의 손상으로 인한 복합적인 장애인 뇌병변장애 항목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때문에 CRPS 환자들은 의료복지 대상자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 CRPS 걸린 이유가 군대 때문이 아니라고?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의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일반적으로 골절과 같은 부상 또는 수술 팔다리에 발생한다. 다만 증상 초기 CRPS 환자들에게 많이 투여되는 약을 쓰고, 신경차단 치료를 하는 조치만 빠르면 다행스럽게도 CRPS 넘어가지 않는 경우도 있고, CRPS 진행됐더라도 3개월 안에척추자극기삽입 수술을 하면 고통을 줄여주는 많은 도움을 받는다.


CRPS 환자 중에 군대에서 사소한 골절상이나 타박상이 원인이 환자 비율이 많은 것도, 군에서 CRPS 걸린 환자들의 증상이 다른 CRPS환자들보다 심각한 것도 이러한 의료체계의 문제와도 무관치 않다. 2005 군대에서 CRPS 걸린 환자들 문제가 본격적으로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한 이후로 꾸준히 증가해, 현재 CRPS 걸린 환자들은 1 5000~2만여 명에 이른다. 배우 신동욱씨도 지난 2010 현역으로 입대해 훈련을 받던 쓰러져 국군수도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고, CRPS 판정을 받아 투병하다, 2011 의병 제대했다.


진훤 씨와 진솔 씨도 처음 경미한 사고를 당한 시점부터 군병원 측에서 단순 타박상 또는엄살이라며 파스 달랑 붙여주거나, 정밀진단치료를 하지 않아 초기 치료시기도 늦어졌을 더러, CRPS 판정을 받고 민간병원위탁 치료 허가를 내주지 않아 시간을 낭비하면서척추자극기삽입 수술도 늦게 받았다. 특히 진훤 씨는 늦어진 대응 때문에 척추신경자극기 삽입수술의 효과도 거의 못 보고 있다는 주치의의 소견이다.


그런 와중에 군에서는 진솔 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난 3 14일, 상병으로 의병전역 시켰다. 진훤 씨도 그 해 8 9일자로 만기 전역했다. 사실상 의가사제대다. 군에서 부담해야 하는 치료비를 줄이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CRPS 평생 치료를 받아야하는 데도, 현행법상 전역한 군인에겐 군병원에서는 6개월까지만 무상치료를 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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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병증으로 얼굴과 온 몸이 고름으로 뒤덮힌 진훤 씨가 고통으로 의식을 잃고 누워 있는 모습


이를 기준으로 하면 진솔 씨는 군에서 지난해 9 14일자로, 진훤 씨도 2 9일자로 군병원 무상치료가 끝이 났다. 실제로 군병원에서는 올해 2 입원치료 중인 진훤 씨에게 퇴원을 종용했었다.


2015 12 8 정의당 김종대 의원이 국회에서 형제의 사연을 성토하면서 군의 책임 있는 조치 이행을 촉구한 이후 군은치료비 전액을 군에서 책임지며, 해당 장병의 빠른 쾌유를 위해 끝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공언했다. 그러나 이후 국방부와 군병원측이 보여준 행태는 이러한 공언을 무색케 했다.


그러나 이러한 공언은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고, 치료비 전액은커녕 형제의 척추자극기삽입수술 비용으로 진훤 씨와 진솔 씨 몫을 합쳐 700만원만 지급했을 뿐이다.


척추자극기삽입수술비용은 통상 1500 정도가 든다. 3년간 민간병원에서 받는 치료비의 30~60% 국방부에서 건강보헌공단에 지급하는 형태로 부담해야 함에도 3 18일부터 5 말까지는 부담금 지급조차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뒤늦게 이유를 추궁하자 군에서는단순 행정상의 실수 뿐이라고 일축했다.


지난 3년간 형제의 시술 비용 뿐만 아니라 치료비용은 원에 이르고, 매주 들어가는 진료비와 약값만 해도 원은 훌쩍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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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수도병원 앞에서 진훤 씨의 휠체어를 밀고 있는 유선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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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두 형제를 치료하고 간병하는 동안 어머니 유선미 씨도 병을 얻었다

의사는 당장 수술이 시급하다고 다그치지만 선미 씨는 그럴 형편이 못 된다

합병증으로 치솟은 혈압



2. 자신을 파괴하는어긋난 복수심누가 키웠나?


진훤 씨는 날로 상태가 심각해지다보니, 급기야는 마음의 병으로 이어졌다. 공황장애로 신경정신과치료까지 받고 있고, 합병증으로 점점 코피를 흘리는 횟수가 많아지고, 이제는 한 번 코피가 터지면 멈추지 않아 애를 먹기 일쑤다. 얼마 전에는 백혈병 검사까지 마쳤다.


이런 끝을 없는 고통이 계속되고, 무엇보다 자신들이 병에 걸린 이후로 가세까지 기울면서, 부모와 가족들에게 현실적인 무게와 고통이 날로 더해지는 모습을 보자 형제는 이제 국방부와 나라에 대한 원망을 넘어, 자신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복수를 대신하려 했.


동생 진솔 씨는 지난 5 30 유서를 놓고 손목을 그어 자살시도를 했고, 12월에도 자살시도를 했다. 그리고 올해 7 생일을 며칠 앞두고 자살시도를 부모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진훤 씨 또한 지난해 손목을 그어 자살시도를 했다.


“CRPS 환자들은 칼로 손목을 긋는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미 , 다리에 이상의 고통을 계속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일 같이 그렇게 고통을 당하고 사느니, 칼로 손목 긋고 죽고 끝내자 싶은 것이다.”


진훤, 진솔 씨의 어머니 선미 씨의 울음 섞인 설명이다. 실제로 CRPS환자들의 자살 시도율은 15% 높은 편이다.


중에서도 군에서 CRPS 걸린 환자들은 자신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복수를 한다는 마음이 크다는 것이다. 다년간 CRPS 환자들만 치료한 전문가들의 비공식 경험담에 따르면 군대에서 CRPS 걸린 환자들은 병이 나아서 사는 복수가 아니라, 자신이 자살해서군대에서 CRPS 걸린 병사가 국방부의 무관심 끝에 자살했다 뉴스가 언론에 나는 복수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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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훤 씨, 진솔 씨 모두 절망 끝에 칼로 손목을 긋는 방법으로 자살시도를 했다


형제의 어머니 선미 씨로부터 담당주치의가 해주는 이런저런 말을 전해 들으면서, 이들에게 나라도 눈길을 거두지 말아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우리나라 20~30 사망원인 1위는 단연코 자살이다. 전체 자살률이 낮아졌던 2015 통계에 따르더라도 20~30 남성의 자살률은 오히려 늘었다. 취업 실패, 가난, 이별, 불우한 가정환경 자살 이유는 차고 넘치지만, 모든 자살은사회적 무관심에 의한 타살 단순사회적 타살 수밖에 없다.


진훤, 진솔 씨의 사연을 접하고도 힘으로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살기도 바빠서 관심을 거두고 , 혹여라도 이들 형제와 가족에게 불행이 생기면, 사회 구성원 하나인 책임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없을 같았다.


다른 이유는 오랫동안 형제의 어머니를 만나오면서, 어머니 상태 또한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간에서 담으로 통하는 혈관이 막혀 소화불량에, 숨이 가쁘고, 옆구리 통증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3 동안 진훤이 진솔이 간병을 하면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생병을 얻었다. 당장 수술이 급한 상황이지만, 형제 치료비를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현실이다. 자신의 수술비 300만원을 감당할 여력이 없어 수술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마저 수술로 병상에 누워 버리면 입원치료 중인 진훤 씨를 사람이 없기 때문에 수술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그런데 이제는 선미 씨를 진료하는 의사가 화를 낸다. 합병증이 심각해져서, 혈압까지 치솟아 의사는 빠른 시일 손을 써야하는 위급한 상황이라고 선미 씨를 재촉하지만, 선미 씨와 진훤, 진솔이의 사정은 매일 조금씩 나빠질 뿐이다.



3. 날마다 조금씩 나빠지는 현실, 끝이 있겠지


기자가 진훤, 진솔 씨의 어머니 선미 씨를 만난 2 17 저녁 숭실대 부근의 커피전문점에서였다.


어머니는 마침 형제 증상이 심각한 진훤 씨를 대리고 병원에 다녀온 후였다. 이날은 병원을 데리고 가야 하는 진훤 씨의 아버지가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은 얼마 몸을 겨누기가 힘들었다. 이러한 사정을 선미 씨는 페이스북에 올렸고, 형제의 사연을 보고 차량 봉사를 자처한 페이스북 친구의 도움을 받아 서울대병원으로 진료를 다녀오던 중이었다.


커피전문점 사장님은 부당한 공권력에 피해를 입은 소시민과 사회적 약자들을 돕는 시민들의 SNS모임의 회원이었고, 형제의 어머니와 하루 시간을 진훤 씨를 자가용차로 분당 국군수도병원에서 서울 혜화동에 있는 서울대병원까지 실어 나르며 진료를 도운 시민 또한 모임의 회원이었다. 기자도 SNS 모임에서 활동한 있다. 이러한 사정으로 기자와 선미 씨, 진훤 씨는 안면을 트게 됐다.


그날 모인 자리에서 선미 씨는 진훤 씨와 진솔 씨의 그간 사연을 자세히 전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동안 진훤 씨는 테이블에서 홀로 커피전문점 사장님이 빌려준 노트북으로 게임만 한마디가 없었고, 사람들과 마주침은 물론이요, 오랜 시간동안 얼굴에서 어떤 표정도 찾아 없었다. 젊은 청년의 무표정과 침묵이 무겁고도 깊게 다가왔다.


"진훤아, 이제 가자!" 라는 엄마의 소리를 듣고서야 테이블에 앉아 일제히 자신만을 바라보는 어른들과 한 번 마주칠 뿐이었다.


자신을 차에 태워 분당에서 서울대병원으로 데려다 시민이 "진훤아 기다릴 테니, 게임하던 친구들한테 인사하고 노트북 꺼라. 게임하다 그냥 나오면 그거 예의 아니다"라는 농담을 던진 후에야 설핏 아이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게 넉살 좋은 농담을 던진 시민의 차를 타고 분당 국군수도병원으로 향하는 선미 씨와 진훤 씨를 배웅한 며칠 선미 씨와 기자는 장소에서 재회했다. 기자가 시민모임에서 만난 동갑내기 친구를 커피전문점에서 만난다는 소식을 들은 선미 씨가부탁이 있다 막둥이 딸과 함께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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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미씨는 기자에게 방송이나 신문에서도 진훤이 진솔이 사연이 다뤄지긴 했지만, 상황은 나아진 하나도 없다는 것, 그리고 3 형제의 투병 생활이 계속되다 보니, 이제 현실적으로도 형제의 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이라는 어려운 사정을 털어놓았다.


선미씨 부부는 국군수도병원 보호자 속소에서 생활하고 있다. 일단 증상이 심각한 아들 진훤 씨는 국군수도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일주일에 하루 혹은 이틀 많게는 ,,, 모두 진료를 다녀야 하고, 진솔 군은 파주에 있는 선미 씨의 동생네 집에서 보살핌을 받고 있다.


서울대병원 진료가 있는 날은 밤에 선미 씨 부부가 진솔 씨를 숙소로 데려와서 하룻밤을 보내고, 새벽부터 시작되는 서울대병원 진료를 보고 파주에 있는 동생집으로 데려다 주는 생활을 3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중학생인 막내는 주중에는 선미 씨가 성당에서 알게 지인의 집에서 기거하며 학교를 다니고, 주말에는 분당에 와서 보낸 일요일 다시 인천 지인 집으로 돌아간다.


이러한 사정을 이야기하는 선미 씨의 안색이 심상치 않았다. 떨림은 계속됐고, 가만히 앉아 이야기 하는 와중에도 숨이 고르게 쉬어지지 않는 모습이 역력했다. 구안와사를 앓아 양방, 한방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완치는 못하고, 대체의학으로 효과를 기자는 문화센터 평생교육원에서 이침을 배운 적이 있어 아는 돌팔이(?)’ 되었다.


간과 , 척추의 심상치 않은 상태를 감지한 기자는 선미 씨에게 병원진료를 권유했고, 선미 씨는 4 막내딸마저 몸져누우면서 자신의 심각한 상태를 이기지 못하고 진료를 받았다. 당장 수술해야 한다는 의사에게 그러지 못하는 사정을 청한 끝에, 약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단란하고, 건강했고, 넉넉했던 가정의 다섯 식구는 3 장성한 아들이 군대에 입대한 이후로 순차적으로 돌아가면서 병원신세를 지고 있고, 생활고만 더해갈 뿐이었다.


취재할 때마다 기자는 위로라고 해줄 말이 없어 선미 씨의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다. 그리고는끝이 있겠지. 언젠가 고통도, 상황도 끝이 있을 거예요라는 말만 반복한다. 말의 행간에는 고통 끝내주고 싶다 간절한 소망이 기도처럼 스며들어 있다.





지난 기사


육진훤과 육진솔, 끝나지 않는 고통






편집장 주


이 기사는 오랜 기간 육진훤, 육진솔 형제를 취재한 

"헤르매스 아이"님과 협의 하에

국방부에서 해당 문제를 외면하지 않을 때까지 

 매주 딴지일보에 연재하기로 했습니다.



 제보: DDANZI.MASTER@GMAIL.COM







헤르매스 아이


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