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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7. 03. 금요일

에너지전환 








에너지업계엔 아시아 프리미엄이라는 게 있어. 중동에서 석유나 가스를 팔 때 동아시아로 보내는 건 유럽쪽보다 가격을 더 받는 관례를 말해. 쓰는 건 많은데 나는 건 별로 없고, 사오는 거리는 먼 지역적 특성 때문에 생긴 거야. 게다가 유럽은 파이프로 가져오는 게 더 많은데 동아시아는 배로 운반해야 돼. 운송비는 물론 가스의 경우 액화하는 비용이 추가로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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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까지 왕복 약 25,000km.빈 배로 가는 데 보름, 석유 싣고 오는 데 3주 정도 걸린대.

 

일본이야 본래 섬나라니까 그렇다 치고, 우리나라는 20세기 중반 이래 대륙과 단절된 시대를 살아오면서 덩달아 이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었지. 하지만 우리는 단연코 섬나라가 아니야. 대륙과 붙어 있는 반도 국가, 엄연한 대륙국가야.

 

아시아 프리미엄에서 벗어나는 단초를 마련한 건 중국이야. 2014년 5월 시진핑과 푸틴은 총 계약액이 4천억달러(약 405조원)에 이르는 세기의 거래를 성사시켰어. 매년 380억㎥의 천연가스를 가스관을 통해 30년 동안 중국에 공급하기로 한 거야. 당시 계약 가격은 러시아에서 유럽에 파는 가스값보다도 싼 걸로 알려졌어. 이건 아시아 프리미엄이 아니라 아시아 에누리인 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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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위대한 칭구! 쓰바씨바~” “일대일로여~ 띵호아~”

2015.5.8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출처: 연합뉴스)

 

2014년 9월 1일, 러시아 국영가스회사인 가즈프롬은 푸틴대통령과 장가오리 중국 공산당 상무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야쿠티야(사하) 공화국 수도 야쿠츠크에서 ‘시베리아의 힘’ 가스관 기공식을 가졌어. 이 가스관은 시베리아 사하에서 생산되는 가스를 극동의 블라디보스톡까지 연결하는 가스관이야. 도중에 하얼빈으로 들어가는 이 가스관의 중국 지선(동부노선)을 통해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중국에 가스를 공급한대.

 

9월 11일에는 타지키스탄의 수도 두샨베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 정상회의에서 만난 시진핑과 푸틴이 시베리아 가스를 신장위구르자치구 등 중국 서부로 연결하는 가스관(서부노선) 건설도 가속화하기로 합의했어. 우크라이나 사태로 서방세계의 경제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에게 중국은 위기의 탈출구이자 최대의 파트너가 되었지. 세계의 자원을 빨아들이고 있는 자원 블랙홀 중국에게 이웃한 러시아는 최선의 에너지 공급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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걍 빨뿌리만 묻으면 되야~ (출처: 연합뉴스)

 

우리는 석유와 가스의 대부분을 중동에서 가져와. 석유는 약 84%, 가스는 45%를 중동에서 수입해. 2014년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에서 들여온 석유는 4,217만 배럴로 전체의 4.5%인데, 이건 중국을 경유하는 파이프로도 가져올 수 있는 에너지야. 만약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석유와 가스를 파이프로 가져올 수 있다면 우리는 중동 의존도를 줄이고 더 많은 양을 이쪽으로 분산할 수 있어.

 

중국은 물론 우리와 같은 처지에 있는 일본도 러시아와 가스관을 연결하는 데 관심이 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천연가스 사용량이 급증하여 시베리아 산 가스는 일본의 에너지 안보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거든. ‘시베이리아의 힘’ 가스관도 블라디보스톡에서 일본으로 가스를 실어 나르려는 거야.




1. 남북러 가스관 사업

 

시베리아의 가스에 대한 한국 정부의 접근은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 됐어. 1988년 서울 올림픽을계기로 노태우 정부가 시작한 북방외교는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겹치면서 1990년 한·소 수교, 1991년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1992년 한·중 수교로 결실을 맺어. 자연스럽게 한국과 중국, 러시아 세 나라 모두 관심이 많은 시베리아 가스 개발과 도입에 대한 협의도 이루어졌지. 1992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노태우-보리스 옐친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사하공화국의 차얀다 가스전 공동개발의정서를 체결해. 1994년 모스크바를 방문한 김영삼 대통령은 옐친과의 회담에서 북한 통과 가스관을 추진하기로 하고, 우선 공동으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실시하기로 합의했어. 하지만 1995년 12월에 끝난 타당성 조사에서 사하 지역의 열악한 인프라와 경제성 부족, 북한 경유의 불확실성 등으로 사업이 중단돼.

 

한편 한러 가스관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일취월장 G2로 부상한 중국이 풍부한 달러를 앞세워 시베리아의 자원 개발에 본격적으로 눈독을 들이게 돼. 옛 사회주의 동맹 러시아를 향한 중국의 진출은 거침이 없었지. 1999년 모스크바를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은 중-러간에 논의되고 있던 이르쿠츠크 PNG 사업에 참여를 희망해. 2000년 11월 한중러 3국은 공동 타당성 조사 추진 협정서에 서명을 하고 이듬해부터 타당성 조사에 착수해. 2003년 11월에 완료된 조사에서 3국은 이르쿠츠크에서 만주리-선양-다롄을 거쳐 서해 해저관으로 평택을 잇는 방안을 구상했어. 이르쿠츠크 북쪽 코빅틴스크 가스전을 개발해 4,300km의 가스관으로 연간 중국에 200억㎥, 우리나라에 100억㎥를 공급한다는 계획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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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서방은 산뚱반도에서 해저관으로 가져가래. (출처: 중앙일보)

 

하지만 러시아는 사업 승인을 보류하고 가즈프롬이 주도하는 UGSS(Unified Gas Supply System)를 추진해. UGSS는 러시아 내의 가스전을 연결하는 통합가스관망을 건설하는 계획이야. 푸틴의 등장으로 소련 해체의 충격에서 벗어난 러시아가 신발끈을 고쳐 매기 시작한 거지.

 

한반도에도 큰 변화가 나타났어.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여 6.15 남북공동선언을 이끌어낸 뒤 상황이 바뀌었지. 북한을 경유하는 육상노선이 가시권으로 들어온 거야. 2001년 남북한은 이 가스관 노선의 타당성을 공동으로 조사하기로 합의해.

 

한-러간에도 논의가 진전되어 2006년 10월 노무현 정부는 ‘가스관을 통한 천연가스 공급에 관한 정부간 협력 협정’을 체결하고, 한국가스공사와 가즈프롬이 정부 위임기관이 되어 양사간에 가스협력의정서에 사인을 했어. 2007년 러시아가 야크추크와 이르쿠츠크, 블라디보스톡 등을 연결하는 UGSS 동부가스프로그램을 확정한 뒤, 2008년 9월 이명박 정부는 러시아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북한 경유 가스관 건설 공사에 대한 합의를 하고, 한국가스공사와 가즈프롬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블라디보스톡에서 북한을 거쳐 한국으로 오는 가스관을 건설한다는 양해각서를 체결해.

 

하지만 이전 두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고 나선 이명박 정부는 북한과 대결 노선을 걷고, 2010년 천안함 사건 등 일련의 사건들은 남북한 사이의 골을 깊게 했어. 자연 북한이 빠진 남북러 가스관 사업은 지지부진해질 수밖에 없었지.

 

금강산 관광이 옛이야기가 되고 동해안을 따라 내려오는 남북러 가스관 사업은 먼 훗날의 이야기가 되어가던 2011년 8월, 돌연 돌파구가 열리는 듯했어. 러시아를 방문한 김정일 위원장이 울란우데에서 메드베데프 대통령을 만나 이 사업에 적극적 참여 의사를 밝힌 거야. 한국가스공사와 가즈프롬은 곧바로 러시아 PNG 로드맵을 체결하고, 그해 11월2일 상트페테르부르크 한러 정상회담에선 사할린-하바롭스크-블라디보스톡-북한-한국을 잇는 가스관을 2013년 9월에 착공해 2017년부터 가스를 공급하기로 합의해.

 

그런데 이를 어쩔... 한-러 정상회담이 있은 지 한달 보름 만에 김정일이 사망했네. 그 후 북한은 김정은이 이어받아 정권 안정이 최우선 과제가 되고, 남한의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3대 세습이 곧 존망하기를 바라며 허송 세월을 보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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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이 그때 안 죽었으면 경의선이, 김정일이 그때 안 죽었으면 남북러 가스관이 연결되었을 수도...

(출처: 한국경제신문)

 

이러는 사이에 지난해 러시아는 중국과 세계 최대의 가스 거래를 성사시켰어. 박근혜 정부로부터 남북러 가스관에 대해 별다른 답변을 듣지 못한 러시아에게 이제 한국은 우선 협상 대상국이 아니야. 중국과 사업이 추진되고 있으니 '중국에서 해저관으로 가져가든지 블라디보스톡에서 LNG로 가져가든지 알아서 하숑' 뭐, 이런 입장이야. 그런데 블라디보스톡에서 LNG로 가져오면 PNG보다 30% 이상 비싸. 블라디보스톡에 액화 시설을 유지해야 하고 또 LNG선이란 게 삼성중공업이나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한테는 효자 상품이지만 운송비가 좀 비싸거든.

 



2. 전력망 연결

 

전력망 연결은 가스관보다 좀 더 쉬워. 우리나라와 북한, 일본, 중국, 러시아의 전력망을 서로 연결하는 거야. 대륙 국가 간에는 인근 고압 송전선을 이으면 되고, 한일간에는 해저선으로 연결하면 돼. 1980년 11월 해저동축케이블이 현해탄을 잠수해 건넌 뒤 1990년 5월에는 해저 광케이블이 일본과 홍콩으로 뻗어나갔어. 전력망을 해저선으로 연결하는 것도 마음 먹기에 달려 있지.

 

전력망을 연결하여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이점은 크게 두 가지야. 전력망 운영의 안정성 제고와 재생가능에너지원 발전의 확대.

 

우리나라의 전력망은 섬처럼 고립되어 있어. 하지만 주별로 전력망을 운영하는 미국의 경우 급하면 이웃한 주에서 송전을 받거나 남는 전력을 이웃 주에 판매할 수 있지. 따라서 고립된 전력망에 비해 운영 상 안정도가 높아. 또한 블랙아웃이나 공급 전력의 품질 유지를 위해 확보해야 하는 예비전력율도 낮출 수 있고.

 

전력수급비상단계_150521.jpg

  

우리나라의 전력 수급 비상 단계는 5단계야. 예비전력이 400만kW가 되면 준비단계, 그 이하로 떨어지면 관심 –> 주의 –> 경계 단계를 거쳐 100만kW 아래로 내려가면 심각한 수준이 돼. 주파수가 떨어지는 등 전력 품질이 악화되고 급기야는 블랙아웃을 막기 위해 순환 정전을 실시하게 되지. 2011년 9월 15일에 경험했던 그 상황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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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엘리베이터에 갇힌 사람들 구하느라 전국의 소방서가 총출동했다지 아마~ (출처: 연합뉴스)

 

그니까 우리는 평소 400만kW, 즉 원전 4기 정도의 전력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생산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거지. 왜? 전력 공급 안정을 위해서. 그런데 미국은 이 예비전력이 150만kW 정도라는 거야. 우리의 전력망이 외부와 연결되어 서로 주고받기를 한다면 적어도 원전 2기 정도의 발전소를 짓지 않아도, 또 매일 돌리지 않아도 되는 거지.

 

한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자연’에너지의 보급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어. 일본 전역에 태양광발전소를 짓는 게 소프트뱅크의 주요 사업이 되었지. 손회장은 일본 경단련에서 유일하게 원전 축소 목소리를 내는 기업인이기도 해. 그런 그가 2011년 9월 자연에너지재단을 설립하면서 ‘아시안 슈퍼그리드’를 제안해. “몽고의 바람과 태양을 이용하면 원전 2000기에 해당하는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이를 아시아 전역으로 송전할 때 교류 방식은 전력손실이 30%에 달하지만 직류 방식은 3%에 불과해 자국에서 전기를 생산하는 것과 거의 마찬가지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게 손 회장의 제안 이유 중 하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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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력망 섬에서 벗어나는 거얌~ (출처: 중앙일보)

 

생산량이 들쑥날쑥하는 재생가능에너지원 발전량 문제를 이웃한 국가가 협력하여 해결하는 사례는 이미 유럽 전력 시장에서 이루어지고 있어. 노르웨이는 자연 조건으로 대부분의 전기를 수력생산하는 나라야. 한편 덴마크와 독일 북서부 지방은 풍력발전이 많이 보급된 지역인데 야간에는 풍력발전량이 소비량을 넘어서. 이때 덴마크와 독일에서는 남는 전기를 노르웨이의 양수발전소로 보내. 그리고 부하량이 많은 낮에 되받아 사용해. 이렇게 자연 조건이 다른 나라 사이에 전력망을 연결함으로써 재생가능에너지원 발전의 장애물이 하나 제거되는 거야.


석유와 가스관의 연결, 전력망 연결과 전력 시장의 통합 등 지역 국가간 에너지 협력은 뺏고 빼앗기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이익을 보는 상생의 관계를 전제로 해. 모두가 득을 볼 수 있는 그런 분야야. 현재 화폐통합의 수준까지 올라선 유럽연합이 1950년대 철강석탄공동체에서 출발한 건 눈 여겨 보아야 할 대목이야. 세계 경제의 한 축으로 자리잡은 동아시아가 상생과 협력, 평화의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반성과 사죄에 기반해야 하지만, 한편에서는 상생의 경험을 쌓아나가는 일들이 많아져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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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너클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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