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1. 세상의 모든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 군대


‘상식적인 일들을 곱게 상식적으로 처리하지 않는 사회’의 대표적인 집단을 손으로 꼽자면 단연코 군대일 것이다.


군대에서 사소한 사건으로 희귀 난치병인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에 걸린 육진훤, 육진솔 형제가 사고를 당한 순간부터 현재까지 경험한 군대는 일반인의 상식으로 익히 알고 있는, 또는 요청되는 상식적 절차와 처우 따위를 철저히 뭉갰다.


물적‧인적‧시간적 조건으로 한 명이 한 번에 하나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인데, 한 명이 한 번에 세 개를 하라고 요구하면서 ‘까라면 가는 게 군대’라는 식의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관습이 당연한 문화로 자리매김한 지 이미 오래전이라 ‘비정상의 정상화’는 앞으로도 영원히 요원해 보인다.


업드려_뻗쳐.jpg


진훤, 진솔 형제가 군대에서 처음 다치고 CRPS 판정을 받기까지 군대의 대응이 가장 안타깝고, 비상식적이었다. 이후 국군수도병원에 입원하면서 지금까지 진훤, 진솔 형제와 가족이 군병원에서 당한 이 ‘비상식적인’ 일들을 모두 나열하면 10권짜리 대하장편소설 분량도 모자란다. 그런데 이 ‘비상식적인’ 역사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아픔은 오롯하게 환자인 진훤, 진솔 형제와 부모의 몫이다.


2015년 8월 3일과 9일에 두 형제는 입원을 했다. 진솔 씨가 3일에 먼저 입원을 했고, 진훤 씨가 9일에 입원했다. 보통 입원실이 있는 병원에서는 입원환자를 돌보는 보호자를 위한 간이침대가 마련되어 있다. 그런데 분당에 위치한 국군수도병원에는 이 보호자를 위한 간이침대가 없다. 제공되지 않아, 하루 종일 진훤, 진솔 형제 곁에서 간병하는 유선미 씨는 밤에 잠 잘 때 아이들의 휠체어에 앉아서 토끼잠을 청해야 했다.


그렇게 11개월이 지난 후 선미 씨는 군 간부가 암병동에 입원할 때 간이침대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서야 보호자 침대가 ‘없어서 못 준 것’이 아니라 창고에 ‘쌓아 놓고도 안 준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선미 씨는 창고에 쌓여 있는 간이침대를 보고, 처음부터 없다면서 밤이면 밤마다 휠체어에 앉아 잠을 청하다 못해 나중에는 병실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잠을 청하는 환자 보호자들의 모습을 뻔히 보고서도 외면해온 간호장교랑 그야말로 대판 싸웠다고 한다.


통상 입원병동에는 환자 침대 머리맡이나 손 가까운 곳에 ‘비상벨’이 놓여있다. 위급한 상황 발생 시 의료진의 빠른 대응과 의료서비스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아주 상식적이고도 당연한 ‘비상벨’이 국군수도병원에는 작동하지 않는다. 처음에 선미씨가 왜 없냐고 물었을 땐 고장이 났다고 했는데, 그 고장은 선미 씨가 있던 3년 동안 한 번도 고쳐지지 않았고, 고치려는 시도도 없었다. 환자의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보호자나, 옆 침대에 입원해 있는 병사들이 데스크까지 달려가서 불러야 한다. 그것도 아니면 아픈 환자 자신이 스스로 데스크 간호장교들에게 찾아가서 알려야 한다. 몸에 통증이 심각해 거동이 극도로 조심스러운 통증의학과 진료를 받는 입원환자들이.


아직까지도 입원해 있는 진훤 씨 병실 침대 주변에는 그동안 전기 콘센트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휴대폰 배터리 충전도 어려웠고, 컴퓨터와 전자기기 사용도 어려움을 겪었다. 선미 씨가 “제발 휴대폰 충전이라도 하게 전기 코드 꼽는 콘센트라도 좀 마련해달라”고 요구한 지 3년 만인 올 여름에야 침대 머리 맡 벽에 콘센트를 설치해줬다. 그런데 전기 연결이 되지 않아, 사용을 못하고 있다.


충전_진훤.jpg

입원실에서 휴대폰 충전기를 꽂는 진훤 씨


전기콘셉트.jpg

진훤 씨와 어머니 유선미 씨의 2년에 걸친 요구 끝에 콘센트를 설치해 줬지만,

전기가 연결되지 않아 있으나 마나가 돼 버린 전기 콘센트


또 민간병원으로 위탁 치료를 나가고 있다는 이유로 군병원에서는 퇴원을 종용하는가 하면, 합병증으로 열이 올라 당장 혼수상태에 빠져들고, 뒤로 넘어가는 진훤 씨를 보고도 담당군의관이 진료를 거부한 일, 척추자극기삽입수술이 잘못된 바람에 2차 수술을 한 진솔 씨의 입원을 거부하면서 ‘집에는 안에 화장실이 있으니 집으로 가라’고 내친 일, 병원 밥은 어디나 맛이 없다지만, 맛을 따지기 넘어서 아예 죽지 않으려면 먹어야 하는 부실하기 그지 없는 식사, 병 고치자고 들어온 병원에서 되레 병을 얻어 나갈 판이다.


선미 씨는 “암병동을 가보니까 여기하고는 천양지차다. 군 간부들이 주로 입원해 있어서 그런가. 깜짝 놀랐다”고 분노했다. 문제가 안 될 일을 감추고, 대응을 최대한 늦춰, 문제를 만드는 정말 불합리하고도 갑갑한 조직이었다. 그렇다면 제도와 문화를 개선해야 하는데, 그런 혁신의 추동력마저 기대하기 어려운 집단이라는 진단이 결코 과하지 않다.



2. CRPS 환자, 국가유공자 되기는 ‘낙타 바늘구멍 통하기’


제도가 문화를 만드는 건지, 문화가 제도의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건지 정확한 파악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군 복무 중 상해를 입은, 특히 희귀성 난치병에 걸린, 그 중에서도 CRPS에 걸린 사병들에 대한 공상(公傷)인정 내지 국가유공자 지정이 극히 어려운 현행 ‘국가유공자 예우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른 보훈체계도 불합리하긴 마찬가지다.


2011년 개정된 ‘국가유공자 예우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안에 따라 ‘주요 질병 별 국가유공자 요건의 기준과 범위’에 CRPS환자도 공무상 질병에 포함시켰지만,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기는 맨 손가락으로 바위에 글씨를 새기는 일 만큼이나 어렵다.


지난 5월 5일자 <시사저널>의 ‘악마의 통증 CRPS 軍 환자들의 비명’ 보도내용에 따르면 2015년 6월 군 입대 후 9월 자대에서 유격훈련 중 입은 무릎 부상이 CRPS로 이어진 홍모 씨(23)도 의병제대 후 국가유공자 신청을 했지만 탈락했다. 홍 씨의 부모는 고액의 변호사 수임료를 써서 국가를 상대로 ‘국가유공자 비해당 취소처분’ 행정심판을 진행 중이다.


홍 씨가 고통으로 얼룩진 세월을 보내는 동안 장애보상금으로 달랑 530만원과 척수자극기 시술 비용을 지원해 주는 것으로 손을 털었다.


국가보훈처는 홍 씨에게 국가유공자 대신 보훈대상자로 지정 신청을 권했지만 이 또한 국가유공자 지정만큼이나 어렵긴 매한가지다. 가까스로 된다고 해도, CRPS환자는 보통 보훈대상자 5~7등급을 준다. 그나마 급수를 받지 못하면 비보험 빼고 진료만 가능하고 다른 혜택은 없다. 보훈대상자의 경우에는 국가유공자의 70% 선에서 보상금이 지급된다. 최하 등급인 7급을 받으면 부양가족수당 지급도 안 되고, 자녀 취업지원과 진료비 감면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스크린샷 2017-09-25 오후 10.54.39.png

기사 원문 - 링크


이렇다보니 군 복무 중 사고로 병을 얻었음에도 희귀 난치병이라 보험이 안 되는 고액의 약값과 진료비가 대부분 환자 본인과 가족의 부담으로 고스란히 돌아오게 된다. 군에서는 대부분 강제전역에 가까운 의병제대로 책임을 빨리 끊어 버린다. 진훤, 진솔 뿐 아니라 대부분 CRPS에 걸려 의병제대한 군인들은 ‘쫓겨났다’고 생각한다.


CRPS 환자들이 겪는 육체적 고통도 고통이지만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방도가 없어서' 자살을 결심하게 된다. 아픈 몸으로 취업을 기대할 수도 없고, 나날이 자신들의 병치료로 기울어 가는 가세와 수반된 부모사이의 불화 때문에 환자들이 자살을 ‘당하는 것’이다.


그나마도 희박하지만 ‘목숨 붙어 있는 한 그래도 살아 보고 싶어’ CRPS 환자들은 국가유공자나 보훈대상자 인정을 받으려고 시도해 보지만 그 과정에서 국가보훈처가 행하는 행정서비스가 환자들을 그야말로 ‘질리게’ 만든다.


진훤, 진솔 형제도 마찬가지다. 2016년 3월 강제전역 당한 진솔 씨가 먼저 국가유공자 신청을 넣었지만 6개월에 걸치는 기간 동안 무성의하고 형식적인 행정서비스로 일관했다. 주소 등록지는 인천이지만, 분당국군수도병원에 입원해 있는 진훤 씨 때문에 군 병원 숙소에서 생활하는 부모에게 휴대폰으로 등기 문자 발송 한 번 없었고, 당사자인 진솔 씨는 파주 이모집에서 기거하며 보살핌을 받는데도 보훈처는 전화확인 한 번 없이, 등기서류를 주소지를 발송해 3번이나 반송되었다. 신청 후 6개월 동안 간단한 전화연락 한 번만 했어도 없었을 반복된 착오를 만들었고, 결과는 물론 ‘역시나’였다.


그나마도 지난 8월 정권이 교체되고 보훈처장도 바뀌면서 상태가 심각한 CRPS 환자들에게 보훈대상자 재신청을 권유했다. 그리고 지난 22일 신체검사 안내 문자를 발송해 진훤, 진솔 형제도 다음 달(10월) 필요한 서류를 갖춰 다시 신청해 볼 계획이다.


보훈대상자 신청을 위해 그동안의 진단서와 의무기록, 진료기록을 첨부하는 것 외에도 다시 보훈지정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아야 한다. MRI와 근전도 검사 등 필요한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보훈병원에서는 오후 시간 때는 이미 검사 환자들이 꽉 찼으니 오전 8시, 9시에나 내원해 검사를 받으라고 한다. 오전 시간 때 서울대병원에서 진료와 치료를 받아야 하는 진훤, 진솔 씨에겐 이마저도 쉽지 않은 일이다. 보훈병원에서는 검사 시간을 옮겨 줄 수 없다고 요지부동이다.



편지 (1).jpg


3. “그동안 들어간 치료비 반 줄게, 받을래?”


지난 3년 동안 어머니 선미씨는 두 아들을 위해 정의당 심상정 대표에게 문제 해결을 간곡히 요청하는 손 편지를 써 보내기도 하고, 페이스북을 통해 이 같은 자신들의 처지를 알렸다. 국방부 홈페이지에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게시물도 올렸지만 이내 삭제 당했고, 군사전문가인 정의당 김종대 의원에게도 사연을 알렸고, 김 의원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이 두 형제의 사연을 알렸다. 선미 씨도 언론보도에 적극적으로 나서 많은 보도가 나갔지만, 그 때마다 다가온 건 절망이었다.


정의당 윤소하 의원이 지난 5월 27일 군병원에 방문해 진훤 씨의 상태를 살피고, 선미 씨를 통해 그간의 사정을 전해 들으면서 사태 해결을 위한 노력을 보이기도 했다. 이 자리에는 군병원관계자와 의무사령부관계자도 동석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나 이틀이 지난 29일 윤소하 의원이 비서관을 통해 선미 씨에게 “군에서는 그동안 진훤, 진솔 씨 치료비로 들어간 금액의 반 정도를 보상해 준다고 한다”면서 어떻게 할 것이냐며 의사를 타진해왔다.


그 때 선미 씨는 “아들들이 다쳤는데 무슨 진료비 반으로 모든 문제 해결을 끝내려고 하는 것이냐. 아이들이 다쳤을 때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은 군부대 인사들과 당시 상황, 훈련소 등 진상조사와 그에 따른 조치, 우리 아들 뿐 아니라 군대에서 CRPS를 비롯한 희귀 난치병에 걸린 병사들에 대한 치료 및 보상 체계 마련”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이후 9월 초 더불어민주당에서 선미 씨에게 요청이 왔다. 진훤, 진솔 형제의 그간 의무기록을 비롯한 각종 서류화 함께 요구 사항 전달해달라는 요청이었고, 선미 씨는 의무기록과 윤 의원에게 밝힌 요구사항을 똑같이 전달했다.


5655995320aedd91459b.jpg



4. 군 미필자 두 명은 왜 ‘개고생’을 자처했나?


올해 3월 부산고등법원에서는 군 입대 후 한 달 만에 신부전증을 진단 받고 의병전역한 사람도 보훈보상대상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당사자가 입대 전부터 만성신부전을 앓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더라도, 입대 후 군 교육훈련을 받다가 만성신부전증 진단을 받았다면 군 복무 중 교육훈련과 직무수행이 원인이 돼 당사자의 기존 질병이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급격히 악화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보훈보상대상자가 된다고 보았다.


또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5월 육군훈련소 훈련 중 병사가 중상을 입었음에도 처리 과정에서 합의를 종용, 은폐하려한 행위는 국가의 기본권 보장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인권위는 “병사들의 가치를 소중히 하고 그 명예를 존중하는 국가의 책무”라며 “이 권고가 군 인권의식을 한 단계 높이는 주요 결정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권고했다.


군 복무 중 만성신부전증이 악화된 것은 보훈보상대상자가 되지만, 군 복무 중 다쳐서 CRPS에 걸린 사병들이 보훈보상대상자가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또, 훈련소 훈련 중 꼭 폭발물이 터져 병사의 사지가 잘려나가야 중상이라는 말인가. 이 경우만 꼭 합의 종용이고, 은폐한 것이란 말인가? 이 경우만 인권침해란 말인가? 사소한 사고로 단순 골절상을 방치해 병을 키우고, 민간병원 위탁 진료도 허가하지 않고 시간을 질질 끌고, 다친 사병 더 골병들 게 하고, 진료비 중 일부만 보상 해주고 군병원에 입원실 없다며 수술한 환자를 나가라고 하는 건 인권침해가 아닌가?


이런 비상식적인 군대 문화에서 이렇게 저렇게 죽어나가는 사병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알리고자 기자와 진훤, 진솔 형제를 돕기로 한 시민이 1인 시위에 나섰다.


어쩌다 보니 기자와 그 시민 모두 ‘군 미필자’라 “군대도 안 갔다 온 것들이 뭘 안다고”라는 비판이 가해질까봐 또 일말의 ‘진정성’을 보여주고자, 군사지역인 산 정상에 오르는 ‘개고생’을 감내하고 피켓시위를 벌이기로 결정했다.


지난 22일 기자와 시민 한승표 씨는 일단 청와대 뒷산이자 군사작전지역인 인왕산과 북악산에 올라 피켓시위를 벌였다.


Untitled-1.jpg

인왕산과 북악산 정상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는 한승표 씨


군복이나 경찰제복이 아닌 등산복과 등산 모자를 쓴 경찰들 코앞에서 피켓을 들고 진훤, 진솔 형제를 비롯한 군대에서 희귀 난치병에 걸린 사병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치료를 요구하는 구호도 외쳤다.


한승표 씨는 지난 2014년 경기도에 있는 ㄱ외고에서 방과후 강사로 근무하면서 수능 기출문제를 담은 프린트 교재에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문구를 넣어 배포했다. 이를 한 학생이 한 보수 시민단체에 제보했는데, 이를 <조선일보>가 보도하면서 문제를 키우자 학교측이 징계 방침을 발표해 스스로 사직서를 제출한 바 있다. 승표 씨는 또 대학시절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 금지’를 위한 기자회견을 기획하기도 했다. 승표 씨는 어려서 앓은 소아마비 증세로 병역 면제 판정을 받았다.


앞으로도 군사지역에 위치한 산 정상에서 군 사병들의 인권문제 개선 촉구를 위한 피켓시위 일명 ‘개고생’은 계속될 예정이다.





지난 기사


육진훤과 육진솔, 끝나지 않는 고통

진훤, 진솔 형제는 왜 자살시도를 하는가






편집장 주


이 기사는 오랜 기간 육진훤, 육진솔 형제를 취재한 

"헤르매스 아이"님과 협의 하에

국방부에서 해당 문제를 외면하지 않을 때까지 

 매주 딴지일보에 연재하기로 했습니다.



 제보: DDANZI.MASTER@GMAIL.COM







헤르매스 아이


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