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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돈을 벌면 공부가 하고 싶고, 공부를 하면 돈이 벌고 싶어지는 법. 나름 빡센(?) 어학원에 들어가 매우 성실하게 학원생활을 하며 새로운 환경에서 잘 적응하면서 살았지만, 아끼고 아껴도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문제가 있었다. 한국에서 모아온 돈을 아무리 아껴도 매달 최소생활비 및 6개월에 한 번씩 내는 어학원 비용 등은 어쩔 수가 없었다. 거기다 리만쇼크까지 왔다. 엔이 치솟을 대로 치솟았다.


일본어도 한참 모자라고(일본 와서 JPLT 2급에 합격함), 자신감도 한참 모자랐지만, 돈이 없으니 다른 방도가 없었다. ‘바이토(일본에서는 아르바이트를 바이토라고 한다)’를 구해야 했다. (참고로 유학비자소지자는 일주일에 바이토를 28시간까지 할 수 있으며, 반드시 입국관리소에서 ‘자격외활동허가서’를 받아야 한다)


일본에서 유학생이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는 일본어를 얼마나 잘 하냐에 따라 차이가 있다. (재능이 있다면 전문성 있는 바이토도 할 수 있다)


초급: 한국식당 및 한국인을 상대로 하는 일 / 전단지 돌리기 / 일본식당에서 설거지
중급: 편의점 / 패밀리레스토랑 / 이자카야 / 패스트푸드점 / 라면집 / 슈퍼
고급: 서점 / 사무직 아르바이트 / 통번역 등 고급일본어를 구사하는 일



한국식당 : 도쿄23구, 시급 950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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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아르바이트 했던 곳은 시급 950엔의 한국식당이었다.


당시 나의 일본어 수준은 유치원 애들보다 못했으며 한문에도 까막눈이었다. 당연히 일본인이 운영하는 가게나 일본인이 많이 오는 곳은 솔직히 겁이 나서 전화해볼 엄두조차 못 냈다. 그래서 한국어로도 할 수 있는 바이토를 찾았다(일본어를 잘 못하던 시절이라 유학생이 많이 찾는 인터넷 카페에서 찾았다).


우선시 했던 것은 위치였다. 어학원 또는 집과 가까워야 했다. 한국식당은 코리아타운(신오오쿠보)에도 엄청 많고 구인도 많은 편이지만, 오가는 시간이 아까웠다. 집과 어학원에서 가까운 곳을 우선으로 찾았고, 다행히 동네의, 자전거로 8분정도 거리의 한국식당에 일할 수 있었다.


사장님도 주방에서 일하는 이모도 너무 좋으신 분들이었다. 달달 외울 수 있게 메뉴를 복사해주셨고, 그것을 다 외우자 어리버리한 상태로나마 일을 할 수 있었다. 일도 크게 힘들지 않았다. 저녁 오픈시간 전에 와서 청소하고 메뉴판 닦고 세팅을 한 뒤, 본격적인 저녁시간이 되면 음료조제 및 서빙을 했다.


사장님은 일본에 산 지 30년이나 된 분이셔서 아주 빠삭하셨다. 일본 문화 등에 대해 많이 알려주시고, 대학원 시험 등 중요한 일이 있을 때나 아픈 날도 시원하게 일을 빼주시는 등 도움을 많이 받았다. 아무리 한국식당이라고 해도 손님들이 거의 일본인이다 보니 예상보다 일본어도 많이 늘어있었다. 다만 일본어를 못해서 일본에 와서까지 한국가게에서 일한다는,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은 있었다.


평균 일주일에 3일 정도 출근해서 받는 월급은 대략 5만 엔 전후였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이 돈으로 월세(야칭)을 낼 수 있었다.



편의점 : 도쿄23구내 조용한 주택가 근처. 시급 880엔~900엔


한국식당을 그만두고 잠시 바이토를 쉬웠다. 그리고 두 번째 바이토이자 편의점, 그러니까 콘비니[일본에서는 영어의 ‘Convenience Store’를 줄여 콘비니(コンビニ)라고 한다)] 바이토를 구했다. 이곳에서도 약 1년 정도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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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보이기에 뭔가 한가해보이고 시간이 나면 틈틈이 다른 것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선택한 바이토였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완전 힘들었다. 중노동이 많아 오죽하면 일본 애들도 ‘콘비니 바이토’는 꺼린다고 한다. 그래서 외국인을 많이 뽑는단다.


내가 일했던 콘비니는 조용한 동네에 있었지만 지하철역 근처라서 바쁠 때는 엄청 바빴다. 거기다 점장이 여자라는 이유로 싫어해서 너무 힘들었다(부점장은 착했지만). 몸도 힘든데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까지 있으니 정신과 육체가 멀쩡한 날이 없었다. 또 외국인인데다가 일본어도 완성단계가 아닌지라 근무도 많이 넣어주지 않았고, 시급도 연수 때는 880엔 정도라 큰돈이 되지 않았다(큰돈을 바란다면 새벽타임을 공략하길).


그래도 그만두지 않고 이 악물고 했던 이유는, 편의점이 집에서 자전거 타고 5분 거리에 있었고, 편의점 일이 너무 복잡하고 배울 것이 많았는데 그 때까지 익혀둔 것이 아까웠다. 또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 한명 빼고는 다 일본인이어서 일본어가 많이 늘었다. 계산대 화면이 다 한문이라서 덕분에 한문도 많이 익혔다. 폐기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던 건 유학생 입장에서 좋았다. 거기다 일본에서는 바이토가 자기한테 보통 1년은 넘게 일한다. 나도 뭔가 꾸준히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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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서도 표정이 안 좋은 것을...


콘비니에서 같이 일했던 친구들과 손님이야기를 하자면 책 한권을 써도 모자라지만(하핫) 각설하고 일본 편의점에서 하는 일은 이 정도다(한국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 계산(‘레지’라고 함)

- 신문 정리: 일본은 아직도 종이신문이 많이 나온다. 시간대별(조/석간)로 나눈 뒤 바코드에 입력하고, 안 나간 신문은 정리해서 뒤에 가져다 놓으면 수거업자가 수거해간다.

- 튀김 만들기: 편의점에선 온갖 튀김을 파는데(닭꼬치, 핫도그, 고로케 등), 이것도 바이토가 튀겨야 한다. 보통 본사에서 냉동상태로 보내면 그걸 보관했다가 떨어지면 튀기고 떨어지면 또 튀겨내는 식이다. 튀김을 튀김기에 넣고 나서 건지고 진열하는 일은 물론 설거지도 해야 한다. 겨울에는 호빵이 종류 별로 추가된다.

- 은행업무: 일본 편의점에선 수도세, 전기세 등 공무를 볼 수 있다. 손님이 용지를 가져오면 바코드 찍고 돈 받고 도장을 찍어주는 일을 한다.

- 택배업무: 겨울이면 스키용품부터 골프채까지 각양각색의 물건들을 받는다. 제일 귀찮은 업무였다.

- 유통기한 관리: 유통기한이 있는 음식(음료수 및 냉동식품 등)을 정리한다.

- 청소: 일본 콘비니에는 공중화장실이 딸려있는 경우가 많아서 화장실 청소도 해야 한다. 시간대 별로 하는데 나는 항상 시간대가 빗겨서 청소를 한 적은 없다.

- 쓰레기 분리수거

- 담배, 복사기 종이, 커피 등 채워 넣기



이게 다 한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바쁜 곳은(역 근처는 정말이지 비추한다)은 멘탈 나갈 정도로 바쁘다. 단 5분도 앉아서 쉬지 못할 정도로 노동강도가 세다. 일에 비해 임금이 적으며(도쿄라고 해도 콘비니는 아직 시급이 800엔~900엔 초반이 많다), 어느 나라든 성격 나쁜 사람이 있기 마련이라 별 일이 다 있다. 돈을 던지거나 숟가락 안 넣어줬다고 소리를 지르는 등 정신까지 힘들게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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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종류를 다 외워야 하는 것도 힘들었다. 이렇게 번호가 쓰여 있긴 한데 담배를 이름으로 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일본의 특성상 손님이 없어도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한다. 손님 없어도 비닐을 만들어 놓는다던가 음료수를 정리한다던가 담배를 빼곡이 채워 넣는 등 일을 찾아서 해야 한다.


쓰다 보니 단점이 많긴 한데, 장점도 있다. 편의점 일은 한 번 잘 배워두면 어디가서든 척척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손에 물을 덜 묻히는 편이기도 하고, 식당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 보니 모르는 새에 일본어가 많이 는다.



평균 시급이 900엔이라는 가정 하에, 유학비자소지자는 일주일에 28시간을 일할 수 있다. 이 시간을 꽉꽉 채워 콘비니 바이토를 한다면,


900엔 x 28시간 = 25,200엔 (일주일)
25,200 x 4주 = 100,800엔 (한달)

+ 교통비는 따로 지급. 순수한 월급 계산

+ 도쿄, 2013년~14년 기준. 다른 지방은 시급이 더 저렴할 수 있음


한달에 최대 100,800엔을 벌 수 있다. 물론 이건 가정이고, 내 경우를 생각해도 처음부터 28시간을 다 일하게 해주는 곳은 거의 없다.


현실성을 부여해서, 대학 또는 대학원을 다니는 한 유학생이 수업을 마치고 하루 4시간씩 4일을 나간다고 하면, 일주일에 16시간, 한 달에 64시간이다. 총 57,600엔(900엔 x 64시간)을 벌 수 있다는 말이다. 문제는 절대 하루에 4시간씩 일주일에 4일씩 편의점 일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수업 마치고 바로 편의점으로 달려가서 4시간 동안 일을 하고 돌아오면, 빨리 와도 10시다. 그 때 밥 먹고 씻고 이래저래 하면 하루의 피로가 물밀 듯 밀려오면서 과제고 뭐고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아니면 시급이 살짝 높은 새벽에 일하는 방법도 있는데, 일본도 범죄예방 등을 위해서인지 웬만해선 여성은 새벽반에 넣지 않는다. 외국인도 범죄의 타겟이 되므로 잘 넣지 않는다. 그만큼 새벽시간 취객도 들어오고 좀도둑도 들어온다. 안전한 동네라면 무방할 수도 있지만.



콘비니 바이토를 할 때도 삽질을 많이 했는데, 생각해보면 사실 삽질의 가장 큰 이유는 ‘나의 일본어실력 부족’이었다. 일본어만 잘하면 어떤 바이토 문제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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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학 준비와 어학원

2. 유학생활과 절약, 친구 사귀기





바야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