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알고 가는 BL 상식


BL(Boys Love)

남자와 남자의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 만화, 애니메이션, 드라마CD, 게임 등 창작물을 총칭하는 말. 크게 1차 창작계(오리지널 작품. 작가의 100% 창작), 2차 창작계(패러디 등), RPS(실존인물을 두고 하는 창작. 팬픽션이 이에 해당)로 나뉜다. 여성들이 주소비자이나 '여성향(여성을 타겟으로 한)'과는 다르기 때문에 'BL'이라고 딱 집어 말한다.


커플링(Couple-ling)

공과 수의 관계를 한 번에 나타낼 때 주로 사용. 공을 왼쪽에, 수를 오른쪽에 놓고 그 사이에 곱하기를 넣으면 된다. ‘도진X청명’이라고 하면 공이 도진, 수가 청명(유에를 가장한 도진이 남친)이라는 뜻이다. 왼쪽 오른쪽을 반대로 쓴다는 건 공과 수가 아예 바뀌는 것이므로(세상에 청명X도진이라니) 유의해야 한다. 이걸 ‘리버스’라고 하는데, 보통 리버스 추종자와는 겸상 안 한다. 신이여 저 리버스를 멸하소서...


공(功)

‘공격’의 준말로 BL에서 주도적 역할-예컨대 성관계-을 한다. 
수(受)

‘수비’의 준말로, 공의 반대말이며, 반대역할 또한 맡고 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ㅇㅇ공/ㅇㅇ수

공과 수는 각각의 특징에 따라 'ㅇㅇ공' 'ㅇㅇ수'와 같이 부른다. ㅇㅇ부분에 해당 공/수의 특징을 기술하는 것이다. '집착공'은 '집착이 심한 공'이라는 뜻이며, '미인수'는 말 그대로 '생김새가 아름다운 수'라는 뜻이다.


* 공과 수를 구별하는 팁
웬만한 작품에서 공이 수보다 피지컬 면에서 훨씬 뛰어나다. 만화라고 하면 그림체가 더 굵고 길며, 소설이라고 하면 ‘잘생김’ ‘큰 키’ ‘떡 벌어진 어깨’와 같이 묘사한다.


공수구분2.png
작은 애들이 죄다 수


공수구분법.png
노출 심한 애가 수인 건 진리 아닙니까?

공/수 구별이 확연한 ‘시미즈 유키’의 BL만화 <ZE>


덩치가 비슷하게 묘사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땐 거의 웬만해서 더 야하게 생긴 애가 수다. (수가 더 덩치가 클 때도 있는데-'떡대수'라고 함- 잘 보면 수가 더 야하게 생겼다)


123.jpg
‘오게레츠 타나카’의 <이스케이프 저니>. 오른쪽이 수라능


떡대수.jpg

'카노 시우코'의 <P.B.B>. KTX 타고 가면서 봐도 야하게 생긴 금발이 수 아닙니까


간혹 가다 공이 더 예쁘게 생긴 경우도 있는데(‘미인공’이라고 부름),


엉엉.jpg
‘카시오’의 <마음을 죽이는 방법> 왼쪽이 수, 오른쪽이 공.


잘 보면 알 수 있다. 공인 오른쪽이 더 예쁘게 생기긴 했지만 요염하기는 수(왼쪽)가 더 요염하다. 철없고 마음을 주체 못해서 몸부터 들이대는 공과 사연 있고 그 사연으로 인해 공을 강하게 내치지 못하는 수, 라는 스토리로 벌써 BL논문 다섯 개는 썼다.


BL을 열심히 독파하다 보면 공/수 구분 정도는 무리 없이 할 수 있으니 모두들 열심히 BL을 즐기는 것으로 합시다. 간밧데!



185085770.jpg



카드캡터 체리의 도진(카드캡터 체리에서 체리네 오빠)과 청명(암튼 도진 남친)을 보고 ‘어어 저놈들?’이라는 생각부터 했던 어린 시절에 알았어야 했다. 앞으로의 인생은 BL이 채울 것이란 걸.


도진청명.jpg


성에 눈 뜬 초등학교 고학년 때 ‘잘생긴 사람이 두 명이면 행복도 두 배’라는 진리를 알아버린 게 잘못이다. 과년한 나이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BL만화와 소설의 표지만 봐도 내용을 70% 이상 유추할 수 있는 마법사가 되어있었다.


나나나.jpg
그들의 접점은 ‘나’라는 것으로 해두겠다.


잘생긴 남자 둘이면 벌써 백년해로다.



BL이 넘쳐서 공부가 되어버렷


어디에나 있고 어디서든 있는 BL을, 1차/2차/RPS 가리지 않고 파다보면 한 가지 결론에 이른다. 나만큼 내 취향을 잘 알고 이해해주는 사람은 없으니 내가 창작을 하자는... 물론 이건 재능이 따라줄 경우의 이야기로, 되도 않는 글재간으로 공과 수의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 보면 손발은 물론 공간까지 오그라드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창작은 전문인의 손길에 남겨두는 게 좋다는 걸 깨닫고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이다.


다음 수순은 나의 취향에 맞는 사람(BL작품 작가)을 찾아 떠나는 길고 긴 여정이다. 지뢰와 헛발질의 연속이다. '이 작가 나와 마음이 맞는 것 같아'라고 생각하는 순간 분뇨를 투척하거나(당연히 피지컬 좋은 애가 공일 줄 알았는데 수였다거나), 윤리적 책임을 물어야 할 작품을 들이대며 이래도 나를 좋아할래? 라고 묻기도 한다(너무 좋아했던 작가가 알고 보니 아청법에 걸려야만 하는 사람이었다던가). 난관을 헤치고 인생작가를 발견한다 해도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남는다.


언어의 문제다. 한국의 BL시장이 예전에 비해 양지화되고, 웹툰, 웹소설 등으로 인해 많이 커졌다고는 해도 무구한 역사를 지닌 일본의 BL시장에는 아직 비할 바가 아니다. 일본은 만화, 애니메이션, 소설, 게임, 드라마CD 등 플랫폼이 다양하다. 당연히 작품도, 작가도 훨씬 많다. 콘텐츠 업계에서 볼 수 있는 원 소스 멀티 유즈(One-Source Multi-Use. 하나의 컨텐츠를 여러 매체로 담아내는 것)가 활발할 정도로 시장의 크기가 다르니, 선택지도 넓고, 좀 더 많은 취향의 사람을 포괄한다.


나도모가위험한지알고시픈걸.jpg
일본에선 매년 ‘이 BL이 위험해!’라는 BL만화/소설 베스트 20선을 내놓는다. 일본 서점에서 ‘이 랭크에 나온 BL’이라며 홍보할 정도로 유명한 랭크.


그래서일까, 나와 취향을 맞는 작가, 즉 영혼의 짝은 십중팔구 일본인이다. 일본어를 쓰는 이와 마음이 맞는다는 건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가시밭길이라는 것과 동의어로...


물론 일본어를 못해도 영혼의 짝의 작품을 보는 방법은 있다. 하나,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출판된 작품을 보거나, 둘, (만화 혹은 애니인 경우) 일본어-이자 내용-는 스루하고 그림만 본다. 전자의 경우 정발되면서 생긴 미친 하얀칠과 검열로 보다만 것 같은 불쾌함을 경험할 수 있으며, 후자의 경우 엄청난 현타가 온다. 내용은 하나도 이해를 못하고선 야한 장면만 돌려보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야한 것도 흐름이 있어야 즐거운 법이다. 야한 장면만 볼 거였으면 애초에 포르노를 봤지!


뭐가글케이상한지알려주실분괌.jpg
사실상 가장 이상한 사람: 이걸 보고 즐거워 하는 사람(=나)


영혼의 짝이 만든 창작물에 대한 결핍 혹은 현타를 느끼다 보면, 일본어를 배우는 수밖에 없네, 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다자이 오사무가 술 안 먹기로 결심해놓고 '어쩔 수 없네'라며 또 다시 술을 마셔버리는 것처럼 나 또한 커다란 결심을 하는 것이다.


솔직히 이런 시도가 이전에도 몇 번 있었지만, 매번 기합만 들어가서 실패했다. 마음먹고 산 일본어 책만 여러 개다. 어째서 책만 사면 기합이 눈 녹듯 사라지는지 모르겠으나 여하튼 책장에 교본만 여러 개 꽂혀 있으면 깨닫는 게 있다.


얘는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공부를 안 한다.


카시오-2.jpg
인생 BL만화 작가 ‘카시오(カシオ)’. 내용도, 그림체도 너무 야해서 한국에 정발된 작품이 몇 개 없다. 일본에선 벌써 10개 넘는 책을 냈는데 말이지...


난 일본에 갈 때마다 꼭 북오프(일본의 중고서점), 만다라케, 케이북스(둘 다 일본의 서브컬쳐 굿즈샵)에 간다. 나올 때면 두 손에 각종 BL만화와 드라마CD가 가득이다. 읽어봤자 들어봤자 이해도 못하는 걸 왜 그렇게 사냐고 물으면 우리 작가님이 작품을 냈는데, 우리 작가님 작품을 성우가 녹음해주는데 그걸 어떻게 안 사냐고 대답할 것이다. 원래 BL은 사고 보는 거 아닙니꽈?!
* 드라마CD: 음성 기반의 드라마로, 우리나라의 라디오 드라마라고 생각하면 쉽다. CD로 만들어 판매하기 때문에 드라마'CD'라고 표기하며, 대체로 만화 혹은 게임 등을 드라마CD로 이식한다.


등짝싸대기각.jpg
꼭 좋아하는 작가 뿐 아니라 예전에 좋아했다던가 눈에 띄었다던가 하는 작품 등도 사모으다 보면 이렇게 된다. 이거보다 더 많은데(160권 정도 있는 부분) 양심상 이 정도만 찍었다


니혼고노홍.jpg

일본어 책도 이 정도다. 하핫.


어느새 집에 엄청나게 쌓여버린 만화니 드라마CD니, 아베가 감사인사를 해도 모자랄 국제적 돈지랄을 보고 생각했다. 일본BL 작품으로 일본어 공부를 하면 흥미도 동기도 있으니 오래할 것이고, 잘생긴 남자도 볼 수 있는데다 근무시간에도 맘껏 BL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아무래도 BL이 넘쳐서 공부가 되어버릴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물까치치치치.jpg
물까치는 게이- 게-이- 하고 운다.



변명은 충분해


까놓고 말하자면 아예 일본어를 못하는 건 아니다(앞에서 못한다고 했지만 '아예' 못한다고 하진 않았다능). 얼마 전 JLPT N3을 취득했으며, 12월 N2(일반적인 회화가 가능하고,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수준) 시험을 앞두고 있다. 일본인과 떠듬떠듬 대화도 한다. 나리타공항 2터미널 면세점에서 록X땅 점원에게 핸드크림을 판촉(을 가장한 강매) 당한 전력이 있다. 어줍잖게 일본말 하면 이렇게 된다.


문제는 내가 객관식에 특화된 한국형 입시 일진(토익 공부 짬밥이면 수동형, 사역형 같은 거 잘 구분 못해도 점수가 나온다)이라는 것이다. 후려쳐가며 공부했더니 점수와는 무관한 일본어 실력을 갖고 말았다.


책상공부만 하던 사람들이 일본 가서 가장 많이 느끼는 게 책으로 배운 일본어와 실생활 일본어의 차이라고 한다. 심지어 책상공부도 오래 하지 않은 내가 은어, 비속어, 신조어 등 실생활 일본어의 집합체인 BL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BL 보려고 일본어 하는 건데 왜 때문에 이해할 수가 없죠? 예, 몰라서 그렇습니다.


네개발이요여기서요.jpg
<개발BL> 네? 개발이요? 여기서요?


남은 건 일본BL을 엄청 읽거나 들어서 실생활 일본어를 개발, 아, 아니 익히는 것이다(그리고 BL을 더 열심히 본다). 그게 바로 BL이 넘쳐서 공부까지 되는 순환이건만, 이렇게만 하면 일본어가 얼마나 늘었는지를 알 수가 없다. '느낌상 일본어가 늘어버렸어요'라는 말로 마무리한다면 모두가 나에게 이래서 덕후는 안 된다고 손가락질 하고 말 것이다.


기승전결을 위해서라도 일본어가 얼마나 늘었는지를 알 수 있는 지표가 필요하고, 지표라고 하면 단연 시험일 것이다. 실생활 일본어 익힌다면서 갑자기 시험을 지표로 삼으려고 하냐면 시험만큼 객관적인 게 없고, 내가 실생활 일본어는커녕 그냥 일본어도 제대로 못하기 때문이라고 답하겠다.


시험을 지표로 삼는다고 해도, 12월에 있을 JLPT N2를 그 도구로 쓸 순 없다. 아니 그렇게 두진 않을 거다. 1년에 딱 두 번 볼 수 있는 시험이다. 이걸로 장난질 치면 감안안둔다.
*JLPT(Japanese Language Proficiency Test. 일본어능력시험): 일본국제교류기금과 일본국제교육지원협회가 주최하는 시험. N1~N5까지의 5개의 레벨이 있으며, 뒤의 숫자가 낮을수록 높은 수준


해서 JPT(Japanese Proficiency Test)를 지표로 삼기로 했다. 일본의 교육기관 순다이에서 출제하며 YBM에서 주관하는 시험이다. JLPT보다 공신력(?)은 덜하지만 매달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며, 합/불합을 나누는 자격증 개념의 JLPT와 달리, JPT는 토익처럼 점수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성적이 얼마나 늘었는지/떨어졌는지 알기 쉽다. 무엇보다 토익이랑 매우 비슷해서 입시형 양아치에게 안성맞춤인 것을...



BL이 JPT로 넘쳐버렷


BL로 일본어 공부의 가장 큰 목적은 '모든 BL을 무리 없이 소화해버렷!'이지만 시험을 보기로 한 마당이니 JPT에 맞게 'BL로 공부하기'의 방식을 수정하기로 했다. 12월에 있을 JLPT N2 시험을 위해서임을 부정하지 않겠다.


JPT는 크게 청해(듣기)/독해로 나뉜다. 청해는 사진묘사, 질의응답, 회화문, 설명문으로 나뉘고, 독해는 정답찾기, 오문정정, 공란메... 으음... 이들의 파트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파트별로 공부할 거였다면 학원을 다녔다. 중요한 건 청해는 BL드라마CD로 공부하고, 독해는 BL만화와 약간의 BL소설로 공부할 것이라는 점이다.


CD.jpg
(이것들은 내 것이 아니지만) 드라마CD도 나름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JPT의 문제유형을 싸그리 무시한다는 건 아니다. 토익의 배경이 '회사'인 것처럼, JPT 문제들의 배경이 어디인지를 유심히 봐야 한다.


일반문학도 그렇지만, BL 또한 배경이 다양하다. 보통 'ㅇㅇ물'로 명명해 분류한다. '리맨물('샐러리맨물'의 준말로, 회사를 배경으로 한 BL)' '전문직물(리맨물이 일반 회사라면 전문직물은 '사'가 들어가는 직업세계를 배경으로 한 BL)' '학원물(학교를 배경으로 한 BL)' '연예계물(연예계를 배경으로 하는 BL)' 등 상상하는 무엇이든 배경이 될 수 있으며 'ㅇㅇ물'로 이름 붙일 수 있다.


이 중 JPT에 나오는 배경과 똑같은 배경의 BL을 보는 식이다. JPT 또한 토익처럼 '회사'를 배경으로 한 문제가 많다면 리맨물을 조온나게 본다. (리맨물로 회사언어만 익히고 끝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면 경기도 오산이다. 이들은 회사에도 있지만 집에 꼭 간다. 그게 또 일상물 아니겠냐고)


안기고싶은남자.jpg
‘사쿠라비 하시고’의 <안기고 싶은 남자 1위에게 협박 당하고 있습니다>의 드라마CD(위)와 만화책(아래).

모든 공부에는 반복이 중요하댔다. 똑같은 걸 다른 방식으로 보고 들으면 얼매나 좋게요?



뜬금없지만 뜬금없이 지치는 느낌이므로, 본격적인 공부는 다음부터 하기로 한다. 그냥 가긴 매정하니 시작점이자 현재 나의 일본어 수준을 알려줄 JPT 점수를 박제하겠다.


jpt성적.jpg


JPT에 따르면 595점은 JLPT N2 정도의 성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나는 객관식에 특화된 한국형 입시양아치로, 취준하던 짬바(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있다. 이런저런 시험 좀 많이 보러 다니면 실제 실력보다 성적이 잘 나오는 마법을 부릴 수 있다.


생각보다 더 잘 봐서 그런가 마지막에 볼 시험점수가 이것보다 못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든다. 그 땐 익힌 일본어가 아까우니 BL전문 번역자로 직업을 바꿔볼랑가 하겠다. 현재로썬 할 줄 아는 번역이라곤 '아...' '하읏...' 밖에 없지만서도...




챙타쿠

Profile
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