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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란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한 모든 사항을 관장하는 곳으로 일정한 질서와 규율로 조직된 집단이다. 군대는 다른 나라의 침략을 막기 위해 강한 국방력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병을 양성해 병력을 증강시키는 것은 군대의 주요한 업무 중 하나다.


한편으로 군대는 행정으로 조직으로 운용되는 집단이다. 행정은 일관성을 중시하는데, 될 수 있는 한 루틴(rutin)하게 돌아가는 걸 원칙으로 여긴다.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일관성은 각기 다른 상황에서, 각기 다른 사람들이, 각기 다른 질병에 걸렸음에도 '일관성'이라는 폭력적인 모습으로 발현되곤 한다.


다른 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똑같은 진료를 처방을 한다면, 그 일관성은 무엇일 위한 것인가? 그 일관성이 조직의 목표를, 정의로운 결과를 담보할 수 있는가? 그럴 리 없다.


그 일관성의 덫에 걸려, 군 생활 도중 희귀난치병에 걸려 의가사제대를 했음에도, 이후 병에 대한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군인과 그 가족들이 있다. 그들이 군대의 행정 처리에 느끼는 갑갑함은 쉽게 가늠하기조차 힘든 수준이다.



"군대란 그렇다. 수많은 장병들이 똑같이 생활하는 곳이다. 진훤, 진솔 형제같이 특이한 병에 걸려 본인은 계속 고통을 호소하는데, 상사는 할 수 있는 게 군대 매뉴얼에 따른 조치다."


"군대에서 쓰는 건 가장 후지고, 군용하면 제일 하급이다. 왜 그러냐? 군병원? 거기 뭐 제대로 된 진료나 할 수 있냐? 당장 장교들 많이 있는 암병동과 사병들 많이 있는 병동의 시설 차가 나는 것도 그렇다. 아픈 건 다 똑같은데 계급 따라 진료 등급 나뉘어야 하냐?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고 하지만, 신성한 의무 아니다. 그냥 2년 동안 교도소 생활하는 것이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고 하려면, 군대와서 병역의무 하는 동안 최저임금 이상은 줘야 하고, 군대 와서 아프면 될 수 있는 한 국가가 최선의 책임을 다하려고 해야 한다."


박근배 변호사




군법무관으로 십 년 동안 재직했고, 군을 떠난 후 변호사로 근무하면서 군복무 중 희귀병인 ‘크론병’에 걸린 사병의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박근배 변호사(한화그룹 경영지원실)는 군 행정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며, 진휜 진솔 형제의 경우 "차라리 빨리 행정처분을 받는 것이 좋다"고 했다. 지금으로선 공무원의 재량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니, 처분 결과를 확인 후 소송으로 처리하는 것이 해결방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진휜, 진솔형제의 사건을 취재하며, 형제와 비슷한 과정을 겪은 이후연 씨(33세)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12년 전인 2005년 6월, 군대에서 훈련 도중 입은 사고로 CRPS 진단을 받고, 2006년 3월에 의가사제대후 11년째 진훤, 진솔 형제처럼 마약류의 진통제를 먹으며, 민간병원에서 마취통증 의학과를 비롯한 몇 개의 과에서 매주 진료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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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연 씨


후연 씨는 처음 사고가 나고 6개월이 지나서야 민간병원에서 CRPS 진단을 받았다. 그동안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한쪽 다리가 불에 타고, 칼로 살이 포 떠지는 고통을 견뎌야 했다. 민간병원에서 CRPS 확진을 받고 3개월 만에 의가사제대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제대 후 5급 국가유공자 판결을 받기까지 행정처분 취하소송으로 2년을 보내야 했다. 


진훤, 진솔 형제처럼 군대에서 희귀난치병에 걸린 환자들의 ‘죽음보다 못한 삶’을 들려주고자, 기자와 후연씨의 대화 내용을 싣는다. 옆에서 보고 들은 진훤, 진솔형제의 일상과 고통, 증상이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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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까지도 소송을 했다고 들었다. 무슨 소송이었나?


: CRPS가 그동안 왼쪽 다리에서 상체까지 전이되었다. 이 부분을 공상처리에 인정해달라고 요구하니까, 보훈처 쪽에서는 ‘전이가 되지 않는 병이라고 알고 있다’면서 못 해준다고 했다. 그래서 소송했다. 법원에서는 전이가 되는 병으로 인정했다. 상체도 공상으로 인정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그런데도 보훈처 측에서는 국가유공자등급을 올려주지 않았다. 법원에서 5급 이상을 받아야 된다고 조정문이 나왔는데도 서울지방보훈처에서는 이행을 하지 않았다. 7급으로 떨어뜨려서, 7급 판정을 받은 1년 4개월 동안 연금과 보상 혜택이 많이 깎였다. 그 때문에 카드빚이 1400만 원이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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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해서 문제가 있었다. 십 년 사이 몸은 더 안 좋아졌는데, 심사할 때 또 검사할 때 보훈처 직원과 의사들이 상식적인 행정절차를 거치지도 않고 중간에 오류가 있는데도 시정을 하지 않아, 작년까지 송만 3번, 신체검사만 4번 했다. 그때마다 담당자와 의사들 말이 다 달랐다. 


언제 처음 다쳤나?


군입대한 지 반년 만인 2005년 6월 23일 사고가 났다. 경기도 포천에 있는 8사단 10연대였다. 일명 ‘오뚜기 부대’. 군대에서 연대 전술이라는 훈련 중 3미터 정도 높이에서 시멘트 바닥으로 잘못 낙하했다. 그 때 떨어지면서 차라리 어디 부러졌으면 좋았을 걸 너무 사지가 튼튼해서 타박상 상태로 병원에 실려 갔다. 충격이 커서인지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병원에서 4~5명이 달려들어서 내 몸을 잡고 움직여 검사했다. 처음 진단이 전신 타박상이었다. 2주간 입원하라고 했었는데, 내 전임자가 입원한 지 5일 후 전역해 버리는 바람에 나는 다른 훈련을 준비해야 했다. 그 훈련준비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내 담당 부사관이 또 퇴역해버린 상태였다.


4일간 침대에서 움직이지 못했는데, 5일째 겨우 목발집고 일어섰고 그 상태에서 강제 퇴원했다. 퇴원하고 훈련 준비를 하는 데 목발짚고 겨우 서서 걷지도 못하는 나한테 수십 킬로그램이나 되는 짐을 옮기라는 둥, 명령을 계속 내렸다. 어쩔 수 있나. 시키는데 해야지.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상태에서 훈련 준비할 거 하고 다시 병원에 입원했다. 입원한 곳은 연대의무대였고, 통증이 나아지질 않으니 옮겨서 재입원한 것은 사단의무대였다. 거기서 기껏 한 검사라곤 X-ray검사였는데 아무것도 안 잡혔다. 4개월 동안 군병원에서만 있었고, 차도가 없으니 그 즈음 부모님이 오셔서, 외부 병원 몇 군데를 갔다. 거기서도 잘 모른다 했다. 디스크가 삐져나온 것 같다는 진단 정도 나왔는데, 경기도 포천에 있는 일동 국군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담당 간호사가 마침 CRPS 군 전역자 1호, 2호를 담당했었다. 그 경험으로 내 상태가 CRPS인 것 같다고 알려주는 바람에 강남성모병원에 가서 반년 만에 CRPS 진단을 받았다. 2006년 1월 진단을 받고 3월에 제대했다. 


군에서 치료받는 6개월 동안 어떤 치료를 해줬나?


기껏해야 물리치료 해주고, 소염제 줬다.


그럼 전역하고 지금까지 치료는 어디서 받고 있나?


진단은 강남성모병원에서 받았는데, 진료는 진훤, 진솔이 형제처럼 서울대병원에서 10년간 진료받고, 처방받아서 마약류 진통제라고 하는데 그냥 마약을 먹고 있다. 


척추자극기삽입수술은 안 받았나?


2010년에 수술을 했는데, 테스트 기간(1주일) 동안 부작용이 심해서 뺏다. 


부작용이 많이 심했나?


그 수술 때문에 오히려 증상이 악화됐다. 


진훤씨도 효과를 못 본 것 같다고 하더라. 그럼 처음 발병할 때부터 지금까지 11년째 온몸이 불타는 고통을 시시때때로 느끼나? 


그렇다. 화상을 입은 듯 뜨겁고 쓰라리고, 강직이 오면 근육 섬유 하나하나를 쥐어짜는 듯 아프고, 칼로 난도질하는 것 같다. 또 습도의 영향이 큰 것 같다. 비오고 안개 끼고, 습도가 조금만 높으면 몸이 바로 무겁고 더 예민해진다. 

 

그동안 취직은 해봤나?


집이 어려워서, 전역 후 계약직으로 잠시 일을 했었다. 그때 이 병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겁도 없이 일을 시작했다. 그때 발짝이 와서 오른쪽 폐에 물이 3분의 2가 찼었다. 그때문에 수술하고, 그 후유증인지 뜬금없이 열이 나고, 한겨울에도 열이 나고 몸에서 땀이 뻘뻘 흐를 때가 있다. 


일하고 싶은 생각은 없나?


하고 싶다. 일하고 싶어서 이력서를 내보기도 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일부 특수 직업군 외에는 자택근무 하는 걸 선호하지도 않고, 기본적으로 근무시간에는 출근해서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어야 하지 않나? 그리고 나는 병원 진료 가고 어쩌고 하는 날 빼면 기껏해야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 출근할 수 있는데, 또 나가서 갑자기 발작이 오면 한두 시간 정도 못 일어난다. 그러니 어디 취직하고 출근하는 건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래도 CRPS 진단받고 빠르게 전역했다. 


당시 군병원에서 디스크 수술하다 죽어 나가는 사람도 봤다. 그리고 외부 진료를 받아야 하는데 그건 지원도 해주지 않아서 빨리 퇴원해서, 국가유공자 인정을 받는 게 낫다 싶어서, 빨리 전역했다.  


CRPS는 희귀난치병이라 비보험 진료와 약값이 많은 걸로 알고 있다. 치료비도 만만치 않을 텐데 그건 어떻게 감당하고 있나?


국가유공자여서 진료비는 지원을 받는다. 그런데 비보험 진료비나 약값은 지원을 담당자가 안 해주려고 해서, 그때마다 싸우다 보니, 그런 문제가 생기면 싸우는 데 전문이 됐다.  


소송 말고 정상적인 절차로, 그냥 순리대로, 상식대로 하고 싶었는데 매번 그게 안 됐다. 법제도상 모든 방법을 다 썼다. 정상적인 절차로 안 돼서 담당 공무원을 권리행사 방해죄, 직무유기로 형사고발까지 했었다.  


지금은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하려고 한다. 국가유공자등급 신청을 하려고 보훈병원에서 신체검사를 했는데, 처음에 담당 의사가 검사를 빼먹고 진행했고, 이를 담당 공무원에게도 말했다. 그런데 담당 공무원이 ‘검사는 의사의 영역으로 공무원이 참여할 수 없다’고만 했다. 그때문에 5급에서 7급으로 떨어졌었다. 그 세월이 1년 4개월이었고, 이 기간 동안 연금이나 치료비 지원금 손해 본 걸 소송해서 받으려고 한다. 연금으로 치료 받고, 생활하는 데 연금이 깎여 빚이 많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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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비와 약값으로 한 번에 얼마 정도 나가나?


보통 14만 원 정도 나간다. 


듣기로는 먹는 진통제가 마약류라고 하는데, 부작용은 없나? 벌써 11년째다.  


마약류가 아니라 그냥 마약이다. 부작용이 점점 심해진다. 요즘은 호흡이 잘 안 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언덕 중턱인데, 이 중턱까지 올라오는 거 자체가 호흡이 안 될 정도로 숨쉬기가 많이 어렵다. 호흡이 잘 안 된다. 또 2010년도로 기억하는데. 뜨거운 물에 들어가면 좋다고 해서 목욕탕에 한 달에 한 번 갔었다. 어느 날 쓰러졌다. 병원 가보니 부정맥 진단을 받았다. 내가 먹고 있는 약이 액틱구강정 패타닐이라는 약이다. 이 약은 말기암 환자들 가는 길 편히 가시도록 아플 때 쓰세요, 이런 약이다. 이걸 먹으면서 심장이 많이 안 좋아졌다.


진훤씨는 요즘 그 약 때문인지, 코피가 자주 나고 한번 나면 잘 안 멎어서 백혈병 검사까지 했다. 어머니 유선미 씨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도 그렇다. 코피가 안 멎어서 코 지지는 수술을 하다가 발작이 나기도 했다. 이 진통제 때문인 거 같다. 그 약을 쓰면 콩팥에서 독소를 다 해독하지 못해서 붓는다. 그때 모세혈관 손상이 많이 된다. 코에서도 모세혈관이 손상돼 피가 계속 나오는 것 같다. 


혼자 사나?


그렇다. 부모님과 여동생 둘이 있는데, 혼자 사는 게 정신건강에도 좋다. 아버지와 불화가 심했다. 


혼자 있을 때 아프고 발작 오면 힘들지 않나?


마음은 편하다. 발작 오면 그냥 또 약을 쑤셔 넣고 통증 끝날 때까지 버틴다. 벌써 11년째라 일상이다. 


군대 가기 전에 뭐했나?


대학생이었다. 운동처방학, 스포츠의학 전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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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 후 학교 졸업은 했나?


못했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했고, 강의실에 앉아서 수업 듣고, 강의실과 강의실을 찾아다니고 하는 것조차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였다. 


대부분의 하루 일상은 어떻게 보내나?


하루종일 책 읽고, 소송 준비하고, 비슷한 일을 당한 분들 어려움을 호소해 오면 그 분들 도와주는 일들을 한다. 조언도 하고. 


진훤, 진솔 형제 이야기는 들었나? 그 어머님과는 안다고 들었다. 


안다. 진훤, 진솔 형제와 같은 의사선생님한테 진료를 받고 있다. 한 번 담당 의사가 바뀌면서 CRPS 환자들이 복용해오던 약을 처방해주지 않아서 큰 소란이 있었다. 작년쯤으로 기억한다. 진훤씨도 그때 갑자기 먹던 진통약을 먹지 못해서 병이 악화되고 크게 고생했던 걸로 알고 있다. 그런 일이 벌어지자 처음 우리를 담당했던 의사가 나에게 ‘다른 환자들을 위해서 뭔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그 일을 계기로 진훤, 진솔 형제 어머니 유선미 씨를 알게 됐고, 추후에라도 어떤 식으로든 돕기로 했다. 


진훤, 진솔형제에게 해줄 수 있는 현실적인 조언이 있나?


빨리 국가유공자가 되는 게 지금으로선 최선의 길이다. 국가보훈처에 유공자신청을 하고, 그 처분 결과를 가지고 소송을 하던지 다음 스텝을 빨리 밟아야 한다. 


연금이라도 받고, 치료비라도 지원을 받아야 한다. 


진솔 씨가 얼마 전에 또 자살시도를 했다. 진짜 군대에서 CRPS에 걸린 환자들은 자신이 죽어서 신문에 나는 게 복수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나도 자살시도를 네 번이나 했다. 마지막에는 식칼로 배를 네 번이나 찔렀는데도 안 죽더라. 대성통곡을 한 다음에 마음을 다시 먹었다. 내가 내 마음대로 죽지도 못한다고 한다면 가능한 범위에서 최대한 즐기고, 하고 싶은 거 하고 살겠다고 마음을 바꿔 먹고 그 후로는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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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훤 씨진솔 씨 모두 절망 끝에 칼로 손목을 긋는 방법으로 자살시도를 했다 


앞으로 CRPS 같은 환자들 인권 위해서 연대해서 무언가 할 생각은 없나?


있다. CRPS를 포함해서 새로운 환우회를 설립할 것이다. 통증환우회. 그래서 소송이라든가, 이 분들 위해서 뭔가 할 것이다. 2008년도에 국가유공자 지원 및 예우에 관한 법률이 개정됐다. CRPS 진단을 받은 사람들은 5급이라고 명시되어 있는데, 5급은 나밖에 없다. 법이 다 있다. 공무원들이 그 법을 다 안 쓸 뿐이다. 이런 경험들을 토대로 통증환자들을 돕는 일을 할 계획이다. 


다리에서 상체로 전이가 됐다고 하는데 요즘은 주로 어디가 아픈가?


목 아래부터 좌반신 전체가 다 아프다. 왼쪽 갈비뼈, 왼쪽 손, 팔 안쪽 부드러운 살 있는 부분, 등에서 날개뼈 부분 일대가 안 좋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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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연씨와 이야기를 나누던 그 기간 진훤, 진솔 형제는 3일 동안 아침 새벽부터 밤까지 진료를 받기 위해 서울대병원에서 각 과마다 돌아다니며 이 검사, 저 검사를 받았고, 가정 상황 때문에 마음에 병을 입은 진훤, 진솔 형제의 여동생도 엄마 유선미씨 손에 이끌려 서울대병원에서 신경정신과와 내분비과 진료를 받았다. 


한동안 진훤, 진솔 형제의 일에 관심을 보이며 국회에서 공론화에 나서기도 했던 정의당 김종대 의원과 통화를 시도했으나 마침 국정감사가 시작돼 통화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13일 국정감사 첫날, 국회 국방위원회 국감장에서는 여야 의원들이 송영무 국방부 장관을 불러 이러저러한 질의와 질타를 하루 종일 이어갔으나, 군에서 희귀병에 걸린 장병들의 처우에 관한 문제는 한마디도 언급되지 않았다. 


다만, 양심적병역거부와 관련해 ‘장관은 찬성하냐!’, ‘명칭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군대에 가면 비양심적이란 말인가?’라는 질타는 몇 번 쏟아졌을 뿐이다. 


그 질문을 하는 국회의원들이나, 국방부 장관이나 미국 재향군인회 회장이 양심적병역거부에 대해 ‘그러한 사람들의 양심의 자유까지도 보장하는 국가이기에 기꺼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하는 것이다’라는 발언은 상기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유불문하고 군대에서 다친 사병들의 치료와 앞날까지 보장해주는 국가일 때 기꺼이 우리 청년들이 목숨을 걸고 국방의 의무를 다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고 김정은 핵실험과 전술핵배치를 운운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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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다치면 어떤 대우를 받을까


법은 보호막이 아니라 통곡의 벽이다





편집장 주


이 기사는 오랜 기간 육진훤, 육진솔 형제를 취재한 

"헤르매스 아이"님과 협의 하에

국방부에서 해당 문제를 외면하지 않을 때까지 

 매주 연재하기로 했습니다.



 제보: DDANZI.MASTER@GMAIL.COM






헤르매스 아이


편집: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