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다운로드.png



쇼펜하우어는 1788년 단치히(지금은 폴란드의 그단스크)의 고급주택에서 태어났다. 단치히는 그때도 폴란드령이었지만 당시 유럽 땅의 소유권은 워낙 복잡했다. 당시 단치히는 독일어권이었고 주민들도 독일인으로 통했다.


아이의 이름은 아르투어. 아버지 하인리히 쇼펜하우어는 유럽 전역을 아우르는 무역망을 구축한 부유한 상인이었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국왕이 집안에 방문한 적도 있다. 이렇게 성공한 하인리히는 이제 결혼을 원했다. 하인리히는 38세라는 늦은 나이에 스무 살이나 어린 18세의 요한나와 결혼했다. 갑부의 늦은 결혼이니만큼 지난 청춘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받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요한나가 미모와 젊음 만으로 나이든 부자에게 팔려갔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단치히 시의원의 딸인 요한나는 여성이 교육받을 기회가 흔치 않던 시절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통달하고 빛나는 문학적 재능을 자랑하던 소녀였다. 예쁘고 활달하고 외향적이었으며 남자들을 휘어잡는 힘이 있었다. 한 마디로 국제적인 퀸카였다.


집안의 입장에서는 이런 처녀를 봉건 귀족의 가문에 시집 보내 시월드 체험을 시킬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저냥한 결혼을 시켜서 육아와 살림을 하게 내버려두기도 애매하다. 이런 상황에서 요한나에게 반한 하인리히는 이상적인 남편감이었다. 나이는 많아도, 아니 그 때문에 요한나를 잘 대해 줄 것이고 불필요한 살림에서 해방시켜 줄 터였다. 요한나의 작품활동과 사교계 활동에 필요한 돈이야 차고 넘치는 하인리히였다. 요한나는 남편의 보호와 후원 속에서 문학적 재능을 키워나갔다.


하인리히는 낙천의 여왕쯤 되는 요한나와 정 반대의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과묵하고 음울했으며, 무엇보다 돈 문제에 있어서는 인정사정 없는 냉혈한이었다. 그랬던 그에게도 희망이 있었으니, 나이 마흔이 넘어 간신히 본 아들, 쇼펜하우어 집안의 종손인 아르투어였다.


아르투어는 하인리히의 사업체를 모두 물려받아 더 크게 키울 운명을 지고 태어났다. 그러나 금수저에게도 결핍은 있었다. 아르투어는 비상한 머리에 섬세한 성격을 갖고 태어났다. 그러나 성격은 딱히 좋지 않았다. 그는 매사에 의심하고 따져 묻기 좋아하는 귀찮은 아이였다. 거기다 말솜씨도 기가 막혔으니 애물단지였다. 꼬맹이 쇼펜하우어는 어른들은 죄다 거짓말장이라는 확신을 가지며 자라났다.


쇼펜하우어는 돈의 괴물 아버지로부터 인간을 관찰하고 의심하고 무자비하게 파고들며, 기회가 오면 거꾸러트리는 품성을 물려받았다. 어머니로부터는 출중한 언어능력과 상상력을 물려밨았다. 이런 아이에게는 인문학이 적성이었다.


johanna schopenhauer wiki cc.jpg

요한나 쇼펜하우어


요한나는 아들의 음울한 성격이 걱정이었다. 그녀는 아들의 기분을 맞춰주려고 노력했지만 꼬마 쇼펜하우어는 당췌 엄마라는 사람이 어째서 이렇게 기분이 좋은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가하면 아버지는 너무 과묵해서 아이는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9살이 되고 여동생 아델레가 태어나자 아버지는 집을 함부르크로 이사하면서(도시마다 자기 건물과 서재가 있었다) 아들을 프랑스에 있는 친구 집으로 보냈다. 어릴 때부터 외국을 체험해보게 하려는 안배였다. 특히 친구에게는 아들의 프랑스어 학습을 좀 봐 달라고 부탁했다.


어머니의 언어능력을 물려받은 쇼펜하우어는 2년만에 프랑스어를 마스터했다. 이런 재능은 아버지에게 훌륭한 무역상의 조건으로 보였다. 무역업은 외국어능력이 필수니까. 11살이 된 쇼펜하우어는 사립학교에 입학한다. 성공한 상인들이 자신의 2세를 보내는 엘리트 비즈니스 스쿨이었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은 왜 불완전한지, 세계는 왜 부조리한지 알고 싶었다. 그런 그에게 상업학교는 고문이었다.


ArthurSchopenhauer.jpg


쇼펜하우어에게 학우들이란 아버지 잘 만나 돈자랑이나 하며 돈 벌 궁리만 배우는 원숭이들이었다. 어른들의 말을 믿지 않은 쇼펜하우어는 유럽의 위대함과 돈의 훌륭함을 믿지 않았다. 위대하면 다른 대륙을 착취해도 되는가? 그게 위대함인가? 길거리마다 거지와 병자들이 신음하고 있는데 왜 부자들은 반성을 모르는가?


고통의 4년을 보내고 집에 돌아오자 아버지 하인리히는 상을 주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독일 전역과 체코를 여행한다. 아버지는 미래의 무역 재벌에게 견문을 넓혀주고 싶었지만 아들은 심드렁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자 아르투어는 폭탄 선언을 했다.


"상인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환갑이 다 돼가는 나이였고, 아들은 아르투어뿐이었다. 청천벽력이었다. 하인리히는 아들을 달래기 위해 역제안을 한다.


"세계여행을 하자꾸나."


유럽의 좋은 도시에서 좋은 경험을 시켜주면 무역상이 얼마나 좋은 직업인지 알게 되리라는 심산이었다. 이렇게 온 가족이 초호화 유럽 여행을 떠나게 된다. 엄마 요한나와 아들 아르투어는 각자 자신만의 일기를 썼다. 요한나의 일기는 세계여행의 낭만을 담았다. 아르투어의 일기에는 세계의 비참이 담겼다.


거리에서 구걸하는 프랑스 빈민의 비참한 모습.

장교에게 채찍질을 당하며 행군하는 영국 병사.

항구마다 참혹한 강제노동을 당하는 흑인 노예.

부모님은 정녕 이러한 광경이 아무렇지 않다는 말인가?


그런 와중에 런던에 머물 때는 신부에게 영어를 배웠는데, 이때부터 학습한 영어를 쇼펜하우어는 평생 완벽한 발음과 문법으로 가다듬었다.


아르투어는 호화 여행을 통해 기분이 풀어지기는커녕 더 철학적인 소년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우리나라 드라마에 나오는 재벌가가 다 그렇듯, 쇼펜하우어 가문도 아들의 미래에 가차없었다.


schopen1.jpg

젊은 시절 쇼펜하우어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에게는 재벌 2세가 신입사원부터 수련을 시작하듯 이미 실습 코스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는 실습 상인으로서 단치히에 끌려가 가게의 점원이 되었다. 장사를 하려면 손님에게 억지로 허리를 숙이고 웃음을 짓는 법부터 배우라는 것이었다. 과연 냉혈한 사업가답다.


아버지의 부하들과 지인들로 가득 찬 안전한 세계였지만 쇼펜하우어에게는 감옥이었다. 그는 틈만 나면 문학과 수학을 공부했으며 책과 강연을 찾아 실종되곤 했다.


한편 요한나는 요한나대로 사고를 쳤다. 좋은 의미의 사고다. 그녀는 가족여행이 남긴 감상을 책으로 정리해 여행기를 출간했다. 이 책은 유럽에서 주목받으며 문단에 그녀의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하인리히의 걱정은 오직 아들뿐이었다.


하나뿐인 아들을 무역상으로 키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하인리히 쇼펜하우어는 절망했다. 우울증은 쇼펜하우어 가문의 가족력이었다. 이 집안에는 이전에도 자살한 사람이 둘 있었다. 그래도 타인의 선의를 믿지 않는 음울한 성격은 이 집안이 상인가문으로 생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사업체를 국제적으로 키운 건 하인리히였지만.


부자의 공허함이 이런 걸까? 하인리히는 아무리 열심히 일했어도, 또 열심히 일해도 그걸 받아줄 후계가 없다는 사실에 정신이 녹아내리고 말았다.


1805년 4월 20일. 함부르크 운하에 한 남자의 시신이 떠올랐다. 국제적인 부호 하인리히 플로리스 쇼펜하우어였다. 자기 소유의 물류창고에 숨어 홀로 괴로움에 신음하다가, 물품에 습기가 차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나 있던 창을 통해 운하로 몸을 던지고 말았던 것이다.


사본_-16439_03Vater.jpg

하인리히 플로리스 쇼펜하우어


17세의 쇼펜하우어는 아버지를 죽게 했다는 죄책감에 몸서리친다. 그리고 가족이 바이마르로 이사할 때 자신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함부르크에 혼자 남아 상인 실습을 계속하기로 했다. 아버지의 생전 소원이나마 들어드리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쇼펜하우어는 어느새 정신을 차려 보면, 함부르크에서 열리는 골상학, 천문학 강연에 와 있는 스스로의 모습에 절망하고 말았다. 죄책감, 멀어져가는 꿈, 이미 지나버린 시간, 방황만 거듭하는 자신의 모습.


쇼펜하우어는 어머니 요한나에게 편지를 썼다. 요한나의 답장은 감동적이다.


"사랑하는 아들아, 너무 괴로워하지 말아라. 너도 아다시피 철학자는 먹고 살기가 고단하단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선택하고 싶다면, 엄마가 최선을 다해 도울게."


쇼펜하우어는 남들은 대학에 갈 열여덟 나이에 드디어 현재의 인문계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김나지움에 입학할 수 있었다. 이대로 열심히 공부하기만 하면 꿈을 이룰 수 있는 걸까?


인생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쇼펜하우어에게 아버지의 그늘이 일반커피였다면 어머니의 그늘은 T.O.P였다.



2부 <어머니의 그늘>에서 계속...




지난 기사


헤겔에겐 어마어마한 친구가 있었다







필자가 진행하는 방송



122456122.jpg


팟빵 : https://t.co/lIoFGpcyHW 
아이튠즈 : https://t.co/NnqYgf5443


트위터 : @namyegi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namyegi




필자의 신간 


183756842.jpg 



이미지를 누르면 굉장한 곳으로 이동합니다.





필독

트위터 @field_dog
페이스북 daesun.hong.58


편집: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