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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2. 12.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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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들밥 먹는다면, 대표차 한 번 몰아봐야. 진짜 기사 아니겠냐?”

 

라며, ‘대표차’에 대한 철학을 말씀하셨던 S기사님! 그런데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게 하나 있었다. 바로 ‘법인카드였다. 수행기사가 법인카드가 필요한 걸까? 사장님의 계산은 수행비서가 하지 않나?



“(웃음) 그건 저희 기사들이 쓰는 겁니다.”

 

“기사님들이요?”

 

 

흥미진진해지기 시작했다. 수행기사의 세계에도 그 나름의 ‘법칙’이란 게 있었다.

 

 

“음... 예전에 보면, 그룹끼리... 그러니까 L그룹이나 H그룹에서 모임을 주최할 때가 있습니다. 비슷한 업종들의 수장들끼리...(웃음) 할 이야기가 좀 많겠습니까?”

 

“많겠죠!”

 

“그럼, 밑에 있는 비서실이 서로 일정을 조율해요. 보통 골프 약속을 잡죠. 그때 알았어요. 우리나라 9시 뉴스에 나오는 일들은 죄다 골프장에서 결정된다고...”

 

“(웃음) 아놔...그거 명언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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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문제는 의전입니다. 주최가 누구냐에 따라 다르지만, 다른 그룹에 밀리지 않을 정도로 준비해야 하거든요.”

 

“아...그런 것도 있어요?”

 

“그럼요. 비서실끼리 눈치 싸움 대단합니다. S는 저번 모임 주재할 때 얼마치를 쐈다. 선물은 어떻게 했고, 의전은 어떻게 했다라고... 딱 기준이 나오면, 다른 그룹 비서실에서도 그에 맞춰서 준비를 하죠. 비서실이 완전 난리가 나죠. 사단장 검열이 나왔다고 해야 하나?(웃음) S그룹이 이만큼 했다. 그럼, 우리도 최소한 그 정도는 해야 한다! 그런 자존심 싸움이 되는 겁니다. 솔직히 L이나 H가 S보다는 뒤처진 건 사실이잖아요?”

 

“그렇죠.”

 

“그래도 그런 회합이 있을 때는 최소한 동급이라는 생각으로 임하는 거죠. 그래서 하나부터 열까 전부 세세하게 준비하고, 치밀하게 진행을 하죠. 기 싸움인 거죠.”

 

“골프 치는데, 그렇게 준비할 게 많나요?”

 

“(웃음) 저도 몰랐는데, 은근히 준비할 게 있던데요? 그런 날이면, 저희들도 특별히 복장에 신경 쓰고, 차도 깨끗하게 세차하고... 대표분들도 상대 회사 사람들하고 말할 것들 준비하시고...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은... 주최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부대장 이취임식 때 사열하는 기분으로 준비하는 거죠. 골프장 부킹은 기본이고, 라운딩 동선, 맥주집에서의 메뉴, 모임이 끝나면 대표분들께 선물을 드려야 하니 그 선물도 준비해야 하고... 아, 수행인원들에게도 작은 선물 하나씩 돌리거든요.”

 

“아... 수행인원이라면, 수행기사 분들도 포함되겠네요?”

 

“그렇죠. 그게... 어떻게 되냐면, 대표분들 라운딩 돌 때 저희들은 저희들끼리 주차장에서 차 대놓고 모이거든요. 다 업계 사람이고, 비슷비슷한 업종에 있는 대표분들 모시니까 다들 안면 트고 그렇죠. 그런데 이런 회합 자리에서는 나름 각을 세우죠. 일단 중요한 게 이잖아요? 기사들은 모시는 분들이 오기 전에 후다닥 배를 채워놔야 해요. 이게 또 웃긴 게, 수행기사 하다 보면, 우리나라의 맛집이란 맛집은 죄다 알게 돼 있어요. 여기가 어디 CC다 하면, 어디에 오골계 잘하고, 어디에 두부찌개 잘하고... 다 견적이 나오거든요. 저희들 암묵적인 룰이 CC가 있다면, 그 CC 반경 4킬로미터 안쪽 밥집을 정합니다. 그럼 주최 측의 대표기사가 식사를 하러 가자고 해요.”

 

“단체로 차를 몰고?”

 

“(웃음) 아니죠. 기사가 8명이라면, 대표로 차량 2대에 8명이 나눠 타서 이동하는 겁니다.”

 

“시간대는 다 비서진들에게 통보하구요?”

 

“당연하죠. 대표님들의 라운딩이 어디 정도 갔다하면, 그때 저희들은 밥 먹으러 가는 겁니다. 비서들한테서 연락이 오기도 해요. 지금 4번 홀이다. 식사 먼저 하시고 대기해라 뭐 그렇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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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한 나라의 전자산업을 움직이는 이들이 아닌가? 철저한 국빈급 의전이 시작되는 것이다.(재계 서열 1~20위 권 기업들에 초청 강연을 가 보면 확실히 그 ‘의전’의 급을 확인할 수 있다. 나 같은 이름 없는 강사들이라도 대리급이 나와서 영접을 하고, 대기실에 들어가면 강연 실무진 급의 장이 와서 인사를 하고 강연 제반사항을 설명한다. 이후 식사는 기본이고, 만약 이동거리가 길어지면 작은 종이상자에 간식거리와 음료수까지 넣어서 전달해 준다. 작은 차이 같은데, 의전에 대한 경험이 없거나 준비가 안 돼 있는 곳에 가 보면 확연히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지난 연말에 S그룹에서 분리해 나간 C그룹 임원진 강연을 갔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고, K공기업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아예 이 낮거나 대학교 강연을 가다 보면... 의전에 대한 느낌이 다르다. 꼭 의전을 받아야 한다는 ‘꼬장’을 부리는 게 아니다. 최소한 어디로 가야될지 몰라 강사가 멀뚱거리며 두리번 거리게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뭐 그렇다고...)


이 대목에서 갑자기 ‘법인카드의 용도에 대해 갈피가 잡혔다. 이 정도 의전이라면 역시 기사들에게도 비슷한 형식미가 주어질 듯 싶었다.

 

 

“아... 그럼 회합 주최의 대표차 수행기사가 나머지 모임 참석자 수행기사 밥을 사주는 건가요?”

 

“그렇죠. 회사 체면이 걸린 문제니까. 수행기사들에게도 챙겨줘야 할 건 다 챙겨주란 소리죠. 그때 법인카드가 나오는 겁니다. 보통 그렇게 썼어요. 회합이나 모임 있을 때 기사들끼리 있으면, 자연스럽게 대표차 수행기사를 바라보게 되잖아요?”

 

“그렇죠. 술자리에서 대표 얼굴 보는 거처럼요.”

 

“맞습니다. 그럼 대표차 기사가 계산을 하는 거죠. 이걸 비서실에서도 인정해 줘요.”

 

“아... 그래서 법인카드가 필요한 거군요.”

 

“(웃음) 이것도 어찌 보면 회사 간의 체면싸움이니까요.”

 

“아까 기사님들한테도 선물이 전달된다면서요?”

 

“예, 저희들한테도 선물이 나옵니다. 주로 주최 측 기사나 그쪽 비서실 대리 분들이 챙겨주시는데, 쌀이나 사과 같은 과일, 생활용품... 그런 걸 트렁크에 실어 주죠.”

 

“쌀이요?”

 

“예 쌀이요. (웃음) 20킬로 한 포대면, 한 달 먹잖아요? 저희한텐 그런 게 더 좋죠. 주관사가 어디냐에 따라 선물의 종류가 다르긴 하지만, 거의 엇비슷한 금액에 맞춰서 나와요.”

 

 

(이 부분은 나도 이해가 갔다. 초청강연을 가다 보면 ‘선물’을 받는 경우가 많다. 내 경우에는 USB와 같이 작지만, 쓸모있는 것들을 많이 받았다. 24기가짜리 USB를 받았을 때는... 솔직한 심정으로 하나 더 주면 안 되냐는 말이 목까지 치고 올라왔다.)

 

 

“하긴 그만큼 고생을 하시니까요. 대표 분들은 술자리도 많고, 아무래도 늦게 퇴근하시다 보니...”

 

“(웃음) 대표차가 근무환경은 더 좋죠.”

 

“예?”

 

“회식 때 대표가 눈치 없게 끝까지 있으면 그렇잖아요? 높은 사람이 빠져줘야 아랫사람이 숨통을 틔고 놀 거 아닙니까?”

 

“에이, 안 그런 대표도 많아요.”

 

“(웃음) 제가 모셨던 분들은 다 그런 분들이셨어요. 1차 때 한 1시간? 가볍게 이야기 나누고 술잔 두어 순배 돌리곤 나오세요. 물론, 계산은 다 해주고 나오죠. 그리곤 바로 퇴근이죠. 대표님 퇴근하면, 저도 바로 퇴근이니까. 다른 임원분들 수행기사들 보다는 훨씬 더 편했죠. 대신에 대표님이 전무 시절에... 그때는 정말 빡세게 일했죠.”

 

“전무 시절이 빡셌나 보죠?”

 

“... 이게 조직이란 게, 그러니까 어떤 조직이든지 간에 올라가다 보면 결국 만나는 게 정치 아닙니까?”

 

“그렇죠.”

 

“정치를 안 하면 살아남을 수가 없죠. 그리고 그 정치의 시작이 술자리고, 모임이니까요.”

 

“그렇군요. 모시던 분이 전무이사 시절에 정치를 하셨던 거군요?”

 

“글쎄요. 그게 정치일까 싶은데요?”

 

“정치가 아니라면...?”

 

 

기사 분은 핸들을 잡고 한참을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아마도 ‘단어’를 고르는 중인 듯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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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이 공대출신이셨는데... 정말 기계 밖에 모르셨어요.”

 

“예.”

 

“담배는 원래 안하셨고, 술도 그리 좋아하시는 분이 아니신데...전무 되시고 나서부터 술자리가 잦아지셨어요.”

 

“누굴 만나기 위해서요?”

 

“만날 사람이 좀 많겠어요? 연구원들, 생산시설, 공장, 그룹 본사직원, 바이어, 관리직원, 언론사 등등등”

 

“많죠.”

 

“...어찌보면 임원이란 게 비정규직이잖아요? 이게 계약기간 내에 성과 못 내면 그대로 쫓겨나는 파리 목숨이잖아요.”

 

“그렇죠. 그럼 그 분 자리에 위협이 오거나...”

 

“(웃음) 설마요. 그 분은 그 분야에서 넘버 원이셨어요. 그 분은 그대로 있어도 부사장, 사장까지 올라갈거란 말이 나올 분이셨죠.”

 

“그런데요? 그럼 굳이 그렇게 무리하실 필요가”

 

“그 분 표현으론... ‘믿음을 나눠주러 간다.’라고 하셨어요.”

 

“...믿음을 나눠준다?”

 


공대 출신이 이렇게 시적인 표현이라니...

 

 

“자리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관리의 영역... 그러니까 사람들 관리해야 하는 일이 늘어나잖아요? 덩달아서 옛날에 친하게 지냈는데, 높은 자리 올라가더니 변했다라는 뒷소리도 들리고...결정적으로 보이지 않는 그 ‘라인’이란 거에 흔들리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구요.”

 

“아...”

 

“그 분이 높은 분들 찾고, 주변 동기들 만나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기본적으로 밑에 사람들... 특히나 연구파트랑 검수파트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아...”

 

“밑에 분들 많이 챙겼고, 오로지 실력... 실력이라고 하긴 뭐하고, 좋은 물건...저도 자세히는 모르는데, 연구원들 많이 챙기셨어요. 애들이 소외감 안 느끼도록... 기억하고 있다. 열심히 해라. 내가 잊지 않고, 네들 ‘공’을 인정받게 해주겠다...”

 

“멋진 분이시네요.”

 

“멋진 분이셨죠.”

 

 

뭔가 씁쓸한 표정이 눈가에 묻어나오고 있었다. 어떤...사연이 있어 보였다. 무슨 말을 던져야 할지 단어를 고르던 그때, 기사님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지금도 신갈 근처를 지날 때마다 울컥 합니다.”

 

 

에...신갈 근처? 혹시 신갈인터체인지? 거기서 설마...교통사고? 그 대표 분이 돌아가신 걸까?

 

 

“어...기사님 그럼 대표 분이 교통사고라도...?”

 

“에? 아뇨. 그게 아니라... 그 분이 신갈 가는 길에 가끔씩 차를 세워달라고 하셨어요.”

 

“신갈 인터체인지요?”

 

“예.”

 

“왜요?”

 

 

씁쓸한 미소를 짓던 기사님. 사람 참 감질나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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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이 가끔 그랬어요. 영통에서 서울로 올라갈 때 갑자기 신갈 쪽으로 가자고 하면, 저도 짐작을 하죠. 아... 뭔가 있구나. 그렇게 신갈 쪽으로 가다 보면, 인터체인지 들어가기 전에 차를 세워요. 차는 씽씽 지나가고... 그러면, 차에서 내리셔서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세요. 가끔 자리에 앉기도 하시고...”

 

 

새벽 시간대... 인적이 드문 그때 자동차에서 나오는 배기음을 뒤로 하고, 번뜩이는 헤드램프를 조명으로 S社 전자 부분의 수장이 뭔가를 고민한다?

 

 

“...참 쓸쓸해 보였어요. 남자가 남자를 보면서 어떤 연민 같은 감정이 든다는 거. 그거 참... 짠해요.”

 

“그러게요.”

 

“그렇게 고민을 한 다음 날이나 다다음 날이면... 신문에 뭐가 크게 터져요.”

 

“터진다면?”

 

“(웃음) 말 그대로 기사가 나는 거죠. S가 대한민국을 먹여살린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리고 그 S를 먹여살리는 건 S전자구요. S전자에서 뭘 개발했다거나, 무슨 실적이 발표된다거나...”

 

“아!!”

 

“수원 사시면 아시겠지만, 예전에 S전자 월급날 되면, 수원이 들썩였잖아요?”

 

“그렇죠. 수원은 S가 먹여 살렸죠.”

 

“(웃음) 수원뿐이겠습니까? 하긴, 요즘은 공장이 많이 빠져나가서 예전만큼은 아니지만...그래도 수원은 S가 빠지면 휘청일 겁니다.”

 

 

S에는 S전자와 S후자가 있다는 ‘농담’이 있다. 연말 되면 자동차 딜러들이 S전자 앞에 진을 치고 있다가 PS받은 직원들에게 달려가 차 바꿀 때 안 됐냐고, 살살 꼬리친다고 하는데... S전자가 아니라 다른 그룹에 다니는 직원이 필자에게 농담처럼 한 말이 있다.

 

 

- 에이, S에는 S전자(前者) 가 있고, S후자(後者)가 있다니까. 난 S후자야.

 

 

S전자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작은 PS를 받았다며, S라고 해서 다 같은 S가 아니라고 강변했지만, 그 PS의 금액을 어렵게 ‘확인’한 뒤에,

 

 

- 씨바...S후자(後者)라도 좋으니, S에 들어가고 싶다!

 

 

란 말이 나왔다. 각설하자,

 

 

“참... 씁쓸하죠. 그 큰 결정을 내려야 하는 부담감이란 게... 저 같은 놈은 평생 가도 모를 거에요.”

 

“왜요. 그래도 그 분 곁에서 지켜봐 주셨잖아요. 그 분도 기사님을 의지했을 거예요.”

 

“(잔잔하게 웃으며)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할 때가 가끔 있어요. ‘아... 내가 그분에게 짐은 아니었구나’ 가끔 말동무도 해 드리고...농담도 같이 나누고...”

 

“(조심스레) 그런데 그 분하고 왜 헤어지신 거예요?”

 

“아, 그 분이 해외공장 책임자로 나가게 된 거예요. 낙마나 좌천이 아니라 영전 ‘전’ 단계였죠.”

 

“영전 전 단계요...”

 

“그렇죠. 이미 그때도 외국 한바퀴 돌고 오면, 그룹 본사로 올라 갈 거라는 말들이 있었죠. 뭐, 발령만 안 났다 뿐이지 이미 내정됐다는 말 들이 파다했어요 (웃음) 아닌 말로, 기사들 소문이 제일 빠르고 정확해요.”

 

“(폭소) 맞네요. 고급정보를 바로 옆에서 들으시니.”

 

“(웃음) 그렇죠. 그러다 보니 눈치 빠른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저희들에게 정보 얻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고 했는데...”

 

“(호기심) 그래서요? 그럼 어떤...”

 

“(웃음) 무슨 댓가를 받고 스파이처럼 말을 전달하거나 하진 않았어요. 그리고, 제가 기사 생활 30년 가까이 하면서 느낀 건데...다 올라갈 사람이 올라가고, 될 사람이 된다는 거예요.”

 

“성실하고 능력있으면 올라간다?”

 

“그렇죠. 안타깝게도 능력을 다 발휘 못하거나, 운이 나빠서 미끄러지거나...그런 경우도 있지만, 결국은 다 가진 것 만큼, 자기가 한 만큼 돌아가요. S가 그렇게 허튼 회사가 아니에요(웃음).”

 

“그래도 정보를 원하는 사람들은 있잖아요?”

 

“(웃음) 그렇죠. 있죠. 아니, 많죠. 그럴 때보면, 난감 할 때가 있어요. 오래 알던 사람이 이번에 누가 어디로 갈지 물어보는 경우도 있고, 그러면... 참 난감하죠.”

 

“왜요?”

 

“기본적으로 저희가 듣고, 보고, 알게 된 것들이 새어 나가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무슨 비밀엄수각서 같은 걸 쓰나요?”

 

“(웃음) 그런 게 아니라... 기본이죠. 각서 같은 걸 쓴 건 아니지만, 불문율 같은 거죠. 우리가 아는 걸 남한테 옮기다보면... 소문 잘못 나고, 그러다 피해를 볼 수도 있는 일이니까요. 우리가 아는 이야기는 우리끼리 알다 사라지게 해야죠. (웃음) 그렇지만, 퍼즐 같은 걸 맞춰나가다 보면... 결국 완성되게 돼 있어요.”

 

“퍼즐을 맞추다뇨?”

 

“음... 이런 거죠. A이사가 이런 말을 하고, B상무가 저런 이야기를 해요. 그리고 C 전무가 무슨 고민을 해요. 그럼 이 임원분들 기사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되면... 그림이 나오죠. C전무가 고민하는 게 뭐고, 회사에 지금 어떤 일이 있다.”

 

“아...”

 

“초짜들이 처음 그거 알고는 동네방네 떠들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리면, 저희 같은 고참들이 지그시 눌러주곤 했죠. 핸들밥 오래 먹고 싶다면, 입조심하라고...”

 

“아... 이게 어떤 불이익이 있는거군요?”

 

“(웃음) 설마요. 그게 아니라... 저희는 모시는 분과 오래 해야 하잖아요? 그 당시엔 회사에 소속 돼 있지만, 제가 모시는 분이 영전하고 하면, 저희도 따라가고... 그런 경우가 많은데, 야 S 저놈은 입이 싸다... 뭐 그런 소문 돌면 좋겠어요? 안 데리고 가죠.”

 

“아, 그런 게 있군요. 그런데... 그 모시던 분이 해외로 나가셨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된 겁니까?”

 

“그분이 그랬어요. 여기 수원 공장에 자리를 하나 봐주겠다고, 자기가 해외 가면 한 2~3년 예상하고 있는데, 그때까지만 여기서 고생하라, 그렇게요.”

 

“...에?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때 제가 모시던 분이 해외를 가면... 제 소속이 애매해 지잖아요? 당장 회사로 올라가서 다른 임원분들 차를 몰수도 있겠지만, 그게 또 다 자기 기사들이 있고... 회사에서 엄한 데 발령낼 수도 있고... 당장 이 분은 해외로 나가는데, 제 자리 봐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수원공장 운송팀에 제 자리 봐줄 테니 거기서 한 2~3년 기다려 달라는 거죠.”

 

“문제가 심각한 건가요?”

 

“심각하기 보다는... 많은 고민을 하게 되죠. 당장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타격이 크고...”

 

“큰가요?”

 

“꽤 크죠. 임원분들 모시면, 저희한테 나오는 판공비나 잔업수당 같은 게 다 사라지니까요. 그리고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모르잖아요? 샘플 공수하는 일 하게 되면, 계속 인천공항만 왔다갔다 하는 경우도 있고... 다른 건 다 넘어가도, 제가 애가 둘이잖아요. 돈을 어떻게 맞춰야 하니까...”

 

“고민이 크셨겠네요. 그래서 남기로 하셨어요?”

 

“그 분도 미안한 기색으로 자기가 너무 욕심을 부렸다며, ‘네가 편한대로 해라’라고 말하는데... 이런저런 고민을 계속했죠. 같이 한 정이 있고, 2~3년 다른 일 하다가 그 분이 국내로 돌아오면 다시 핸들 잡으면 되지 않을까란 생각도 하고, 당장 큰 애 대학 보낼 걱정도 해야 하고... 눈 딱 감고 이 분 위해서 2~3년 뛰어보자 결심했어요. 고민 참 많이 했어요.”

 

“고민이 컸겠네요.”

 

“컸죠. (웃음) 그런데 연락이 왔어요.”

 

“연락요?”

 

“예... 왜 아까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제가 S전관 비서실에서 과장, 차장분들 카풀로 모셨다고요.”

 

“아...!!”

 

“그때 모셨던 과장 분이 S그룹 계열사(경비, 경호를 전문으로 하는...꽤 유명하다.)의 사장으로 발령 난 거예요.”

 

“아...”

 

“사람 인연이란 게 참 무서워요.”

 

“그렇네요. 그때 그 분이 찾은 건가요?”

 

“(웃음) 그렇죠. 그 분이 사장이 되고 나서 절 찾은 거죠. 20년 전에 제 차를 탔던 기억이 그때까지 있으셨나 봐요. 본사 인사팀에 연락해서 내가 아직 S에 남아 있는지, 있다면 지금 어디있냐고 알아보신 거예요.”

 

“야... 진짜 인연이란 게 무섭네요.”

 

“무섭죠. 그래서 사람은 사람 대할 때 조심해야 해요. 저 사람이 어디서 어떻게 될지 누가 알아요? 그러니 늘 성실히, 최선을 다해서 사람을 대해야 해요.”

 

 

기사님의 놀라운 인연... 그리고 그 인생의 철칙과 같은 ‘성실’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보면, 정말 인생의 교과서를 보는 느낌이었다. 한참 이야기가 재미있어 지려는 타이밍에... 끊어야겠다. 미안하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첨언 : 모 소설가 선생님이 2014년 갑오년의 당부 말씀으로 내게 한 말이, “소모되는 칼럼이나 에세이 같은 거 더 이상 쓰지 마라.”였는데, 그 당부를 한 달 만에 어기게 됐다. 그래도 단서조항으로, “정 쓰고 싶다면 남는 걸 써라.”라고 했는데... 아 모르겠다. 이게 남는 글인지... 변명을 해야 하려나?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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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홀짝, 보리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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