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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콘텐츠를 가진 사람은 요절하지 않는 한 평생 무명의 그늘에 갖혀 살기는 어렵다. 다만 너무 앞서나갈 경우 무명의 고통이 길 수는 있다. 쇼펜하우어가 그랬다.


쇼펜하우어의 긴 무명시절을 이해하려면 당시 독일의 시대적 분위기를 알아야한다.


피히테, 셸링, 헤겔과 같은 철학자는 칸트가 남긴 난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출현했다. 칸트가 남긴 난제란 무엇인가? 이런저런 가지를 다 치고 몸통만 거칠게 말하자면 '정언명령',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는 도덕률'이었다.


미대 입시생들이 그리는 뎃셍을 생각해보자. 원근법과 명암은 그림의 '질서'다. 형상이라고 한다. 그 질서의 명령으로 캔버스에 긁혀 남는 연필의 흑연은 '질료'다. 리영희의 책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이고, 칸트 철학은 '세계는 형상과 질료의 균형으로 유지된다'이다.


인간은 옳은 일을 해야 한다는 '정언명령', 칸트의 윤리론은 질서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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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 좋은데, 헤겔이 출현했을 당시의 독일은 후진국이었다. 사상, 교육, 예술에서는 선진국이었지만 정치적으로는 봉건적이었다. 지상에 붙어있지도 않은 '신성로마제국'을 모시는 신하들이 독일 땅을 조각조각 분할해 사유화한 상태였다. 황체 선거권을 가진 '선제후'에게는 자신의 영지뿐 아니라 주민들까지 사유재산이었다.


선제후들은 사치를 위해 다름아닌 자신의 백성들을 상대로 인신매매까지 저질렀다. 거주 이전의 자유를 박탈한 채 외국의 전쟁에 용병으로 팔고, 부상자는 현지에 버려두었다. 예쁜 처녀들을 아랍의 술탄에 팔기도 했다. 지식인들은 개탄했다.


'역사상 독일처럼 인간이 노예상태로 전락한 시공간은 없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1789년에 시민혁명이 일어나 구체제(앙시앙 레짐)를 뒤집자, 옆나라 독일의 지식인들은 눈이 뒤집혔다. 우리는 중앙집권적인 절대군주제도 확립하지 못했는데, 프랑스인들은 그 절대왕정마저 뒤집고 시민국가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첨예한 철학적 이론을 벗어나 윤리-정치적으로만 접근해보자. 사람은 당연히 착하게 살아야 한단다. 뭐 맞는 말이다. 내 마음속에 반짝이는 도덕률이 있고, 그건 수학처럼 선험적인 질서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이웃이 영주의 눈밖에 나 멍석말이를 당하면 어찌하는가? 나 하나 착하게 살았으니 "그는 좋은 이웃이었습니다"를 읊조리며 천국 가시라고 기도하면 되는가? 그게 나라면? 착하게 살아왔으므로 부끄럽지 않게 영주의 폭력 앞에 벚꽃처럼 스러지면 되는 문제인가?


칸트의 철학에는 '저항'과 '더 나은 미래'가 없다. 그는 인간과 세계를 성공적으로 설명했을 뿐 '시대'를 말하지 않았다. 피히테와 셸링을 거쳐 등장한 헤겔은 드디어 '시대정신'을 이야기한다.


시대정신. 세상은 반드시 발전하며 지금의 불행은 '정-반-합'의 반에 해당할 뿐이라는 이야기. 빛나는 시대는 온다. 비록 프랑스만은 못할지라도 내가 무릎을 꿇은 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다!


심지어 자발적일 필요도 없다. 무릎꿇림을 당해도 좋다. 저 나폴레옹이라는 영웅이 출현해 독일의 봉건 영주들을 짓밟고 이땅을 근대시민정신으로 물들이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이전까지 법은 영주의 기분이었다. 이제 인권을 근간에 둔 나폴레옹 법전이 오셨다. 당연히 전쟁에 져서 기꺼이 점령당할 일이다.


그리하여 악성 베토벤은 나폴레옹의 개선행렬 앞에서 열렬히 박수를 쳤고 그에게 바치는 3번 교향곡을 썼다. 헤겔은 예나를 점령한 나폴레옹이 자신이 차지한 도시를 순시하는 모습을 발코니에서 내려다보고 '말을 탄 세계정신'이라고 칭송했다.


그러나...


쇼펜하우어의 질문은 천재적이면서 파괴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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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세상에 꼭 꿈과 희망이 있어야 돼?"


그렇지 않은가? 철학적 사유를 하다가 꿈도 희망도 없다는 결론이 나오면 그게 진리 아닌가. 꿈과 희망이 반드시 있을 거라 가정한 후, 거기에 과정을 끼워맞추면 주객이 전도된 거 아닌가? 세상이 그럼 먹고 먹히는 정글이지, 시대정신이 있어서 인류를 발전으로 이끈다고? 물질적 조건이 나아지는 건 그냥 기술개발이지, 거기 웅대한 시대정신이 어디 있으며...


"시대정신 어디 있나요? 손에 잡히나요? 뭐 가져와 보시던가요."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서양문명을 지배하던 유일신의 관념에 결정타를 날렸다. 그는 신은 물론이요, 신의 그림마저 삭제했다.


데카르트는 신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폭탄을 던졌다.


스피노자는 아 그 신? 인격을 가진 유일신 할아버지가 아니라 세상에 깃든 질서 같은 거야~ 를 외치며 범신론을 제기했다.


칸트는 신에 기댄 도덕이 진짜 도덕이 아님을 증명했다.


헤겔은 절대정신을 설파했다.


즉 선악의 이분법으로 세계를 나누었을 때 명백히 선의 영역에 포섭되는 강력한,


<질서>


이것이 신의 그림자였던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이것을 치워버렸다. 따라서 동아시아인인 우리에게 쇼펜하우어가 이야기하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생뚱맞거나 비관적인 세계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원래부터 유일신이 없었다. 하지만 유럽의 기준에서 그의 철학은 지극히 비관적이었다.


발전을 추구하는 당대 유럽의 열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쇼펜하우어가 잘 팔릴 리가 없었다. 이것이 그의 무명생활이 길었던 이유다. 긴 무명생활은 그에게 고통을 안겼다. 그의 생각에 유럽인들은 자신의 사상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열등했다.


"두 발로 멀쩡히 걷는다는 사실만으로 나와 대등하다고 여기는 인간들과 상종하지 않겠다."


쇼펜하우어의 30대는 우울했다. 그는 타인과의 교류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외국어를 익히며 외로움을 달랬다. 덕분에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를 통달하게 된다.


쇼펜하우어는 자살을 권하지 않았다. 자살도 인간의 실존적 선택 중 하나라고 이야기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가 '자살 철학자'로 과장된 이유는 역시 자살을 금기시하는 기독교 문화에서 당대 유럽이 자유롭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아무튼 쇼펜하우어의 꿈은 가까이 하기 어렵지만 존경스럽고 어려운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인간을 혐오하지만 인간들에게 사랑받는 이지적인 악당'이 그의 컨셉이었다. 참 중2병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초연하고 시니컬한 염세주의자여야 하는데...


정작 그가 묵던 여관에 불이 났을 때 쇼펜하우어는 그 누구보다 먼저 여관을 탈출하는 기록을 세웠다. 베를린에 콜레라가 돌았을 때는 신속하게 이사 준비를 마치고 프랑크푸르트로 이사했다. 바로 이 콜레라로 베를린에 있던 헤겔은 사망하고 말았다.


쇼펜하우어는 콜레라를 피해 사랑하는 푸들과 함께 프랑크푸르트에 이주해, 여기서 여생을 보내고 사망한다. 그는 여기서 긴 무명 시절을 견디고 마침내 노년에 이르러 전 유럽의 존경을 한 몸에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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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


쇼펜하우어의 삶1 : 아버지의 그늘

쇼펜하우어의 삶2 : 어머니의 그늘

쇼펜하우어의 삶3 : 헤겔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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